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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대전 병원에서 지내시면서 틀니도 하시면서 겨울을 지내신 아버님이 집으로 퇴원하셨다. 겨울내 주인을 기다린 집에서는 봄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뒤울안 머위들은 꽃을 피우며 봄을 준비하고 돌나물 민들레 냉이 쑥 달래는 지천으로 마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참 쌉쌀한 머위 맛 그 쌉쌀함 아니었으면 그 엄동설한을 어찌 견뎌냈을까? 보랏빛 줄기의 머위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관동화라고 한다. 이 머위꽃을 발견하고 곱게 따 효소를 담갔다. 그 쌉쌀함이 설탕과 버무려져 발효가 되면 어떤 맛이 날까? 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먹는다고 하는 꽃이라고도 하는 머위꽃 아버님과 함께 뒤울안 머위들은 부채처럼 자랄것이다. 저녁상에 작은 머위잎을 삶아 된장과 무쳐냈더니 그 맛이 그만이다. 봄은 이렇게 쌉쌀히 오는구나. 가슴은 아릿하지만 봄향은 향기롭게 핏줄속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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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앞마당의 목련나무가 너무 우거져 그늘이 넓다고 목련나무 가지를 쳐내고서 아직 피지못한 봉오리가 아깝다고 한봉지 따가지고 왔다. 박하향이 나는 목련차도 괜찮고 목련효소도 좋다고 내가 몇번 말하는것이 기억났다고 한다. 올 봄 심술궂은 꽃샘추위가 몇번 다가와 목련은 냉해를 입었다. 껍질을 벗기자 작은 꽃봉오리들이 군데군데 상처를 입고 있었다. 보드랍고 향긋한 목련봉오리로 효소를 담갔다. 목련 향기 우러나 몸까지 스며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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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님 여든 여섯번째 생신을 맞아 서산을 다녀왔다. 서산을 간 김에 부석사를 둘러보고 싶어 우리내외만 잠깐 부석사를 다녀왔다. 서산 도비산 부석사 몇년전 배흘림 기둥이 유명한 영주 부석사도 다녀왔는데 이름이 같은 부석사가 서산에도 있었다. 서산 부석사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되돌려오려 애쓰고 있는 절이다 이 부석사를 둘러보았다. 고즈녁하게 서해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찰이었다. 하늘은 어찌나 파란지 한푹의 도화지였다. 부석사의 염원이 꼭 이루어 지기를 하늘도화지가 그린 나무는 그야말로 명화였다 부석사에는 보기에도 멋진 나무들이 빼곡했다 이 나무가 부석사의 역사를 알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부석사 배롱나무도 철골처럼 강인해 보였다 서산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까지 둘러보고 돌아온 봄 날이다. 산수유 개나리 노란빛을 더하고 매화 눈 뜨는소리 목련 꽃잎 펼치는 소리 그리고 봄 햇살 세상으로 내려보내는 소리가 서리서리 엮어 멋진 봄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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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사투를 벌이셨다. 방송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남편의 문자를 받았다. 놀라지 말고요 충대병원 응급실로 와요. 방송시간에 나 놀랄까봐 남편은 그때까지 기다렸다 연락을 했다. 아랫집 사는 제부가 나를 데리러 오고 동생도 일하다 말고 달려오고 이렇게 대전에 사는 사위 둘,,딸둘이 응급실에서 쇠잔한 아버지를 바라봐야했다. 남편이 공연을 다녀오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더니 여사님께서 좀 이상하시다고 해 차를 돌려 아버지댁으로 가고 외삼촌께서 달려오셔서 119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오셨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집에 계신 여사님께 아이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셔서 어찌 할 바를 몰랐는데 마침 큰사위가 전화를 해서 어찌 반가웠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아버지 얼굴이 창백했다. 혈압이 210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최저의 혈압 30가까이 떨어지셨다고 한다. 아버지 몸이 차디찼다. 내가 갔을때도 혈압이 197이었고 맥박은 42라는 숫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을 만지자 얼음같았다. 그 와중에서도 서울애들에게는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다. 급하게 달려 내려 올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연락하는게 옳다고 해도 아버지는 극구 말리셨다. 그러기로 했다. 다행이 혈압이 안정이 되시고 아버지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응급실 정말 생과 사의 마지막 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곳이다. 고함과 비명과 신음소리로 가득한 곳에서 아버지는 절대절명의 위기를 넘기셨다. 말씀을 하기 시작하셨고 웃으셨다.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식들 고생 안시키고 세상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여든 일곱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셨다. 몇년 전, 아버지는 사후신체를 병원에 기증하셨다. 지식들 호강시킨 것 없고 세상에 기여한 일 없어 몸이라도 주고 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 도장을 자식들이 찍으며 참 마음 아렸다. 그런 아버지...자신의 모든것을 자식들에게 주신 가시고기 같은 사랑을 베푸셨다. 그러고도 자신의 몸을 세상의 의학발전을 위해 주신다는 아버지 그 소중한 아버지가 편찮으시면 우린 더욱 놀란다. 어머니도 그렇게 모든것을 세상에 주시고 떠나셨다. 사후신체를 병원에 기증하는 일 자식들에게는 몇배의 아픔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그 숭고한 뜻을 받들고 있다. 아버지는 6시간이 넘게 병원에 계시다 다행이 집으로 퇴원하셨다. 이런 급박한 상황을 아들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시니요. 아버지 말씀하셨다. 낼이 금요일인데 다들 일해야 하는데 우리 아들들 급하게 내려올거고 그러면 괜히 복잡해 진다고...하셨다. 그 마음..이해가 되기도 안되기도 하지만 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저녁 내내 뒤척였다. 아버지 오래 우리 곁에 계시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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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를 낳고 유전적으로 모유가 풍부해 민서를 먹이고도 짜내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던 때.. 귀한 쪽잠 설쳐가며 유축해 얼려놓고 냉동실에 가득 쌓여 처치곤란이던 여름.. 처리방법을 고심하던 차에 모유드림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모유가 부족하거나, 인공영양에 알러지가 있어 모유만 먹어야 하는데 모유가 적어 고민인 엄마들에게 모유를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아까운 모유였기에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다니 설레었다. 관련 까페에 가입하고 모유드림을 게시하고 기다렸다. 연락이 없어 거의 포기하려 할 때쯤, 렬이를 만났다. 렬이는 민서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귀여운 사내아이였다. 7월 사촌시누이의 혼인이 있고, 그 다음날. 렬이와 부모님이 우리집에 왔고 꽁꽁 얼려 놓은 모유를 담아드렸다. 렬이 어머님은 그 후로도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며 따뜻하게 마음을 나누어 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렬이의 돌이 되었고, 렬이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던 난 조그만 모자를 준비해 보내고 혼자 뿌듯해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렬이 아버님의 갑작스런 방문이 있었고, 민서 돌선물로 이렇게나 예쁜 옷과 이렇게나 정성스러운 손편지를 받았다. 아.. 이렇게 따뜻할 수가..감동..감동이었다. 세상은 아직 살만 한 것 같다. 우리 민서는 이렇게 사랑받고 있었다. 민서가 바라보는 세상은 늘 이렇게 배려있고 따뜻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민서를 키우며 드는 수 없는 생각들에 희망을 더할 수 있었던 행복한 오늘이다. ----------------------------------------------------------------------- 며느리의 카스에 올라온 이글을 읽고 나도 기뻤다. 젖이 부족한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 엄마에게는 이 젖이 참 감사한 일 이었을것이다. 아기를 배부르게 먹일 수 있다는 기쁨'엄마의 가장 큰 즐거움 아니겠는가! 친정어머니께서도 나를 낳고 젖이 흔하셨다고 한다. 그때는 산모가 제대로 먹을 것도 없어 염천 7월에 나를 낳으시고 애호박을 따다가 밀국수를 해서 첫국밥으로 드셨다고 한다. 어떤걸 드셔도 어머니는 그 음식을 젖과 바꾸셨다. 흔하게 흘러넘쳤다고 한다. 내 태몽이 어느 샘물에서 용 한마리가 끝도없이 쌀뜨물을 밷어주는걸 받으셨다고 했다. 너는 밥이 흔할거라고 늘 말씀하셨다. 어머니 젖이 많아 이웃집에 노산을 해서 젖이 모자란 남자아이를 먹였다고 한다. 그아이 할머니가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아이를 데려와 나와 한쪽씩 배부르게 먹었다고 하셨다. 배를 채우고 잠이 든 손자를 안은 할머니는 늘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며 우리가 좀 자랐을 때 그 할머니는 나를 손주며느리 삼고 싶다고 하셨단다. 실은 나는 그아이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런 재미있는 일화만 있을 뿐이다. 어머니의 흔한 젖을 먹고 잘 자랐으리라 그 아이도 지금 나처럼 나이가 들어가고 있겠다. 우리 민서가 젖이 흔해서 다행이었다 먹고도 늘 남아서 아까워 했는데 그런 싸이트를 통해 공감을 하고 젖을 나누어 주었다니 정말 잘 한일이다. 민서가 그 젖을 먹고 지금 건강히 자라듯이 렬이도 건강하게 잘 자랄것이다. 또 렬이 부모님의 그 마음이 렬이에게 정성을 다해 사랑을 베푸는 아가로 길러내시리라 믿는다. 정말 내며느리 민서엄마 생각만해도 마음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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