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사투를 벌이셨다.
방송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남편의 문자를 받았다.
놀라지 말고요
충대병원 응급실로 와요.
방송시간에 나 놀랄까봐 남편은 그때까지 기다렸다 연락을 했다.
아랫집 사는 제부가 나를 데리러 오고 동생도 일하다 말고 달려오고
이렇게 대전에 사는 사위 둘,,딸둘이 응급실에서 쇠잔한 아버지를 바라봐야했다.
남편이 공연을 다녀오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더니 여사님께서 좀 이상하시다고 해
차를 돌려 아버지댁으로 가고
외삼촌께서 달려오셔서 119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오셨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집에 계신 여사님께 아이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셔서 어찌 할 바를 몰랐는데
마침 큰사위가 전화를 해서 어찌 반가웠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아버지 얼굴이 창백했다.
혈압이 210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최저의 혈압 30가까이 떨어지셨다고 한다.
아버지 몸이 차디찼다.
내가 갔을때도 혈압이 197이었고 맥박은 42라는 숫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을 만지자 얼음같았다.
그 와중에서도 서울애들에게는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다.
급하게 달려 내려 올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연락하는게 옳다고 해도 아버지는 극구 말리셨다.
그러기로 했다.
다행이 혈압이 안정이 되시고 아버지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응급실
정말 생과 사의 마지막 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곳이다.
고함과 비명과 신음소리로 가득한 곳에서 아버지는 절대절명의 위기를 넘기셨다.
말씀을 하기 시작하셨고 웃으셨다.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식들 고생 안시키고 세상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여든 일곱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셨다.
몇년 전, 아버지는 사후신체를 병원에 기증하셨다.
지식들 호강시킨 것 없고 세상에 기여한 일 없어 몸이라도 주고 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 도장을 자식들이 찍으며 참 마음 아렸다.
그런 아버지...자신의 모든것을 자식들에게 주신 가시고기 같은 사랑을 베푸셨다.
그러고도 자신의 몸을 세상의 의학발전을 위해 주신다는 아버지
그 소중한 아버지가 편찮으시면 우린 더욱 놀란다.
어머니도 그렇게 모든것을 세상에 주시고 떠나셨다.
사후신체를 병원에 기증하는 일
자식들에게는 몇배의 아픔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그 숭고한 뜻을 받들고 있다.
아버지는 6시간이 넘게 병원에 계시다 다행이 집으로 퇴원하셨다.
이런 급박한 상황을 아들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시니요.
아버지 말씀하셨다.
낼이 금요일인데 다들 일해야 하는데 우리 아들들 급하게 내려올거고
그러면 괜히 복잡해 진다고...하셨다.
그 마음..이해가 되기도 안되기도 하지만 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저녁 내내 뒤척였다.
아버지 오래 우리 곁에 계시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