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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여울지기
(jongyeoul78)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검천리에는 팔당 호반의 정암산 맑은물이 흘러서 남한강으로 마지막 終을 친 S자 계곡속에 종여울이라는 작은 집의 변해가는 4계절의 이야기를 종여울을 통해 서로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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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ki41 on 2011-11-21 in 나의 사진여행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 올해로 그 실체가 드러났고 내년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주변을 다닐 것이다. 그중 소문난 자전거 길 한곳을 다녀왔다. 일단 보기에는 좋았다. 여러분들도 내년부터 다녀보시고 판단하면 될 듯…. 국도와 철도. 철도는 걷기길이었다가 4대강 개발과 함께 걷기길, 자전거길이 되었다. 팔당댐부근. 시작점인 팔당역 부근의 자전거 길. 신나는 자전거 여행. 짧은 몇시간정도의 자전거 타기는 평상시 복장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 장시간 탈경우에는 제대로 준비를 하고 타야만 한다. 자전거는 초식동물이다. 얼룩말이나 사슴이다. 자전거 안장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풀을 뜯는 영양의 엉덩이다. 마름모꼴의 자전거 프레임은 암소의 갈비뼈다. 톱니바퀴로 이뤄진 자전거 크랭크는 코끼리의 기다란 이빨이다. 자전거는 우직하다. 불평이 없다. 그저 페달을 밟기만 하면 군말 없이 나아간다. 자동차와 교행하는 부분에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남한강자전거길이 지난달 8일 열렸다. 팔당대교에서 충주댐까지 128.8km 거리. 자전거로 보통 8∼9시간 걸린다. 이 중 팔당대교∼양근대교까지(29km)의 풍광이 으뜸이다. 느릿느릿 놀며쉬며 달리면 왕복 5시간정도 걸린다. 형형색색의 라이더들이 자기 스타일대로 자전거를 탄다. 휴일 중앙선 전철은 울긋불긋 옷차림의 승객으로 꽉 찬다. 운길산 예봉산을 찾는 등산객과 남한강자전거길을 찾는 라이더, 그리고 걷기여행자까지 발 디딜 틈이 없다. 평일엔 40대 이상 여성이 많고, 주말엔 50, 60대 남성들로 왁자하다. 중앙선 전철 맨 앞 칸과 맨 뒤 칸은 평일에도 자전거로 만원이다. 양평경찰서에선 자전거순찰대까지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팔당댐을 한눈에 볼수 있는 봉쥬르 부근. 아직도 가을의 정취가 채 가시지 않았다. 양수대교 옛철길을 건너면서는 바닥에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유리판이 설치되어있다. 자전거 전용 쉼터.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곳에는 자전거 펌프나 음료수자판대 등이 있다. 팔당대교∼양근대교 자전거길은 중앙선 폐철로 위에 시멘트 등으로 메워 길을 냈다. 자전거전용로 2차로(폭 3m)에 보행자도로 1차로(폭 1.5m). 중간 중간에 녹슨 옛 선로를 남겨뒀다. 터널도 봉안, 용담, 부용1∼4, 도곡, 원복, 기곡 등 9개나 된다. 기곡터널이 570m로 가장 길다. 북한강철교(560m)와 터널 대부분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역시 공존. 오가는 차 걱정없이 시간이 나면 훅 자전거를 들고나가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탈수 있는 자전거길. 팔당∼양근대교 코스는 가장 아름답지만 빨리 달리긴 무리다. 주말이나 휴일엔 도보여행자와 라이더가 너무 많아 위험하다. 자전거는 빨라 봐야 시속 30km 정도다. 이 코스에선 시속 15km 이하로 달리는 게 적당하다. 그래야 숲 속의 새소리와 한강의 물소리 바람 소리가 들린다. 연보라 쑥부쟁이가 보이고 노란 감국의 진한 향기가 콧속을 간질인다. 추억의 사진갤러리로 바뀐 옛 능내역 대합실. 남양주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도시이다. 다산은 옛 능내역에서 1km 떨어진 마현리(馬峴里)에서 태어났다. 그곳엔 다산과 그의 부인 풍산홍씨(1761∼1838)의 합장묘가 있다. 자전거길을 따라가다가 옛 능내역에서 한강 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능내역 하나의 역사가 이루어지면 기존의 역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능내역은 능내역의 역사를 담은 전시장이 되었다. 2005년 4월 1일 폐쇄됐던 옛 능내역(1956년 개장)은 갤러리로 다시 태어났다. 통학생, 동네 주민, 촌로 등 지난 세월 능내역을 배경으로 찍은 수많은 사람의 사진이 걸려 있다. ‘추억의 사진 전시장’인 셈이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금세 훈훈해진다. 군데군데 차를 마시거나 찐빵,만두 따위로 허기를 채울 별미집들이 곳곳에 있다. 길거리 음식점의 테이블 자전거길 옆의 음식점들. 자전거는 인명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사고를 내진 않지만 약간의 실수로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타면서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남한강은 삼척 대덕산이 뿌리이다. 영월 단양 제천 충주를 휘돌아 나온다.현재 그길의 역순으로 충주까지 남한강 자전거 길이 개발되었거나 완공을 눈앞에 두고있다./김화성전문기자 글발췌 중앙선 옛길은 터널이 많다.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지날 때면 색다른 감정이 된다. 사람이 지나가면 불이 켜지는 터널. 철길의 흔적은 곳곳에 남겨두었다. 하지만 방심해서 이곳으로 빠지면 부상을 입을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 ▼ 자전거 교통법규 ▼ ○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자동차로 취급된다. ○ 운행 중 사람을 다치게 할 경우 5년 이하 금고나 2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 횡단보도 건널 땐 반드시 내려서 끌고 가야 한다. 탄 채 횡단보도 건널 땐 자동차로 간주된다. 끌고 걸어가야 보행자로 인정된다. ○ 뺑소니자전거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 도로 주행 땐 반드시 우측 통행이며, 역주행, 인도 주행, 중앙선 침범 땐 제재를 받는다. 또한 자전거는 2대 이상 나란히 달리면 안 된다. 중앙선 전철 자전거길 진입 가능역 중앙선 전철은 일주일 내내 맨 앞 칸과 맨 뒤 칸에 자전거 탑승 가능. 남한강자전거길 진입 가능역은 △덕소역 △팔당역 △운길산역 △양수역 △신원역 △국수역 △아신역 △오빈역 △양평역. 자전거 대여소 ○ 팔당역 시작 지점 유료대여소=1인용 한 시간 3000원(2인용 6000원). 양평 쪽으로 가더라도 다시 돌아와 반납해야 한다. 011-9706-8570 ○ 양수역 무료대여소=주민등록증 등 신분증 제시. 9∼17시 운영. 분실 시 실비 보상 (남 17만 원, 여 15만 원). 역시 양수역에 다시 돌아와 반납해야 한다. ▼ 4대강 자전거길 ▼ ○ 새재자전거길=충주탄금대교∼상주상풍교 100km ○ 낙동강자전거길=경북 안동시 낙동강∼낙동강하 구둑 317km ○ 영산강자전거길=영산강 하구둑∼담양댐 132km ○ 금강자전거길=금강 하구둑∼세종시 114km 단체 라이딩 시 주의사항 ○ 보호장구는 필히 착용(헬멧, 장갑, 야간에 전장라이 트, 후방 깜박이)해야 손목인대 파열, 손목뼈 골절, 쇄 골 골절을 막을 수 있다. ○ 교통 신호는 반드시 준수 ○ 안전요원 외 한 줄로 라이딩 ○ 단체 라이딩 시 선두 추월 금지(개별 행동 금지) ○ 라이딩 시 이어폰 및 음악(스피커) 금지 ○ 앞 사람과의 거리는 자전거 한 대(2m) 정도의 거리 유지 ○ 수신호 숙지 및 준수 ○ 기본 수리공구 지참(예비튜브, 공구, 펌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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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의 김정호’ 뉴질랜드 출신 로저 셰퍼드 함남 안변군과 강원 회양군(현 강원 고산군과 회양군)의 경계를 가르는 철령과 주변의 백두대간 모습. 사진 우측의 하얀 건축물은 고개에 세워진 김일성 기념비. 로저 셰퍼드 씨 제공 사진 더 보려면 Click! 단군, 산신, 비석, 땅끝지맥…. 40대 중반의 뉴질랜드 사내 입에서 이런 단어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로저 셰퍼드, 올해 45세인 전직 뉴질랜드 경찰관이다. 그는 “백두대간이 내 삶을 바꿔 놨다”고 고백했다.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 백두대간의 남한 쪽 산맥은 벌써 훑었고, 지난달 15일부터 보름간은 북한 쪽을 ‘탐색’한 뒤 1일 베이징을 거쳐 한국으로 건너왔다. 본격 종주를 하려면 4개월이나 걸릴 뿐 아니라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금강산부터 문필봉까지 ‘거점 산행’을 하는 것이었다. 금강산∼식개산∼두류산∼남대봉∼우라발산∼북대봉∼백산∼민봉산∼철옹산∼문필봉으로 선을 잇되 거점 산에서 다음 산까지는 평양에서 렌트한 도요타 랜드크루저를 이용했다. 거점 산들은 프렌드십소사이어티(friendship society)라는 국제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미리 북한 당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완전한 종주는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백두대간을 이었던 사람은 없다. 월간 ‘산’에 실린 기사를 보면 “백두대간의 북쪽 지역은 어차피 갈 수 없는 곳이고…”라고 아예 접어놓고 있다. 그도 그런 의미를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전남 해남에서 백두대간 강연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11일 동아일보를 방문해 북에서 찍은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백두는 하나다”라고 말했다. 평남 양덕군 북대봉에서 만난 북한의 항일유적지 안내원과 기념촬영을 한 로저 셰퍼드 씨.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의 빅토리아대에서 ‘전략연구(strategic study)’로 석사학위까지 딴 그의 직업은 원래 경찰관이었다. 뉴질랜드에서 등산도 하고, 아프리카에서 8년간이나 야생을 누빈 적은 있지만 백두대간처럼 한 민족의 역사와 에너지, 그리고 무한한 스토리를 품고 있는 산을 종주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2006년 휴가차 한국에 왔다가 등산친구들로부터 백두대간 얘기를 들었을 때 ‘놀랍고 경이로웠다’고 했다. “세계의 산들이 모두 자기 이야기를 갖고 있겠지만 백두대간처럼 스토리가 이어지는 산맥은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백두대간이 한국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가 제겐 경이로웠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백두대간 종주를 죽기 전에 해야 할 ‘버킷리스트’에 올려놔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그걸 알고 (쇠말뚝을 박고)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그는 이어 “나는 백두대간 외에는 다른 나라 산을 가본 적이 없지만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과 백두대간을 함께 경험한 미국인 등산친구는 ‘백두대간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작년엔 ‘BAEKDU DAEGAN TRAIL’이라는 제목으로 영문 안내서적까지 냈다. 부제는 ‘산악문화를 통한 한국의 아이덴티티 탐구’. 70일 동안 남쪽 대간을 섭렵하며 수많은 사진을 찍고, 그 사진들을 토대로 자료조사를 거쳐 이야기를 접목한 책이다. 내년에 백두산까지 마저 올라 본 뒤 백두대간 가이드북을 하나로 이을 계획이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산경(山經)을 지도로 체계화한 사람이 대동여지도의 김정호다. 그는 대화 도중 김정호 얘기를 자주 했다.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의 별명을 김정호로 지어줬다고도 했다. ‘도대체 왜?’냐고 물어봤다. 그는 “백두대간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인생의 새로운 탐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김창혁 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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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박범신 박영석 대장과 2인, 나는 '죽음'이라 말하지 않겠다간밤에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박영석 대장이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너털웃음을 웃고 있는 이미지가 내 눈앞에 남아 있었다. 작년 이맘때던가, 남극탐험을 얼마 앞두고 재동 한 음식점에서 만났을 때 술잔을 기울이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이제 세계적인 산악인으로 성공했으니 안락한 생활을 할 때도 되지 않느냐고, 왜 또 그 험한 길을 굳이 가려 하느냐고 범박하기 이를 데 없는 질문을 했다. "이렇게 살아있잖아요!" 그는 거두절미 자신의 가슴을 주먹 쥔 손으로 탁 두들겼다. 나는 찔끔해서 섬광 같은 그의 시선을 피해 눈을 돌렸다. 뻔한 일상에 습관적으로 기대 살고 있는 내 유약한 삶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와 신동민·강기석 대원을 위한 위령제를 지냈다는 뉴스가 들리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지금 나는 조사를 쓰고 있는 게 아니다. 산악소설 '촐라체'에서 나는 이렇게 쓴 바 있다. "죽고자 가는 게 아니다.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는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했고 모든 대륙의 최고봉에 올랐으며 북극과 남극점을 발로 찍었다. 일찍이 어느 산악인이나 탐험가도 도달하지 못한 대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위대한 기록과 함께 그도 나이가 들었고, 올해로 꽉 찬 마흔여덟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언제나 새로운, 더 위험한 길을 향해 담대하게 떠났다. ▲ 마지막… 손 흔드는 박영석 대장… 실종 당일인 지난 18일 안나푸르나 남벽을 오르기 시작한 박영석 원정대의 모습. 흰색 원 안에 손을 흔드는 이가 박영석 대장, 먼저 오르고 있는 이는 신동민 대원이다. /대한산악연맹 제공그에게 있어 자본주의 문명이 주는 달콤한 일상은 가짜이고 허울에 불과했다. 이미 그의 발밑에 깔린 히말라야 14좌에 새로운 '코리안루트'를 내겠다는 꿈은 그의 꿈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꿈이었다. "내가 시작하면 누군가 계속 가지 않겠나?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계속 갈 것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말하자면 누군가의 등대, 뒤따라오는 누군가의 지도가 되기 위해 이미 위대한 정상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새로운 길을 간 것이다. 그러니 그와 그들이 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히말라야 14좌를 처음으로 완등한 라인홀트 매스너는 빙벽에 둘러싸인 ‘죽음의 지대’를 뚫고 나가려면 어떤 ‘모럴’이 필요하다고 썼다. 고산 등반가들에겐 한 발 한 발이 모두 ‘무덤과 정상 사이’에 걸쳐져 있으므로 그곳에서 그들은 ‘지각이 더 맑아지고’마침내 ‘전혀 새로운 생의 비전을 연다’는 것이다. 일상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현대인에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실존적 모럴이며 비전이다. 그들은 그러므로 야성을 거세당한 우리 대신 그곳에 갔으며, 걸었다. 놀라운 생의 비전을 우리 앞에 열어 보이려고. 차세대 산악인이라 손꼽혔던 신동민 대원은 고된 등반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동료들을 위해 묵묵히 ‘청국장이나 홍어찜’까지 맡아서 조리했던 덕인이었으며, 서른세 살의 강기석 대원은 베이스캠프에서 늘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아카데믹한 산악인’이었다는 말을 뒤늦게 듣는다. 박영석 대장은 물론, 그들에게도 ‘코리안루트’는 개인의 꿈이 아니었음이 틀림없다. 이상향의 뜻으로 쓰이는 샹그릴라는 본래 ‘언덕 저쪽’이라는 뜻이다. 지금이라도 그들이 ‘언덕 저쪽’에서 신들메를 고쳐 신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산을 내려오며 손을 흔들어줄 것 같다. “산에 가야 산악인이지!” 박영석 대장의 목소리가 여전히 우렁우렁 귓속을 울린다. 그와 그들은 단지 산악인이 아니었다. 우리의 꿈을 대신 짊어지고 간 극상의 모럴, 참된 비전이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들을 떠나보내지 않았다. 사고 닷새前, 산속 마지막 생일잔치… 朴대장은 속삭였다 "황홀해" [산에도, 남극에도, 북극에도… 길없는 곳에 길을 만든 사나이 박영석] 朴대장, 대원들에 짬뽕 대접 "가능성 1%만 있으면 도전" 세계 최초 그랜드슬램 달성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 '바보처럼 살았군요' 즐겨 불러… 마치 산처럼… 우직했던 바보 박영석(48) 대장은 도전에 늘 목말랐던 사나이였다. 그는 한 번의 혹독한 실패 후 "다시 오면 내가 개다"라고 할 만큼 치를 떨었던 북극점에 재도전해 2005년 4월 마침내 태극기를 꽂았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좌(座), 7대륙 최고봉, 3극점(남·북극, 에베레스트)에 모두 도달하는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그때 박영석 대장의 도전이 마침표를 찍었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장은 "1%의 가능성이 있다면 어디든 도전한다"며 다시 장비를 꾸렸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영혼의 고향'이라고 부르던 히말라야에서 신동민(37)·강기석(33) 대원과 함께 잠들었다. ▲ “아버지, 보고 계시나요” 30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열린 실종자 위령제에서 박영석 대장의 장남 성우(21)씨가 절을 하고 있다. 옆에 서 있는 이는 박 대장의 동생 상석(46)씨. /대한산악연맹 제공 박 대장은 서울 토박이다. 위로 누나가 4명이었던 6남매의 장남은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오산고 사격부에서 활동했던 그는 고2 때인 1980년 히말라야 마나슬루를 등정하고 돌아온 동국대 산악부의 카퍼레이드를 보고 가슴 속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1983년 동국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한 박 대장은 곧바로 산악부에 가입했다. 1993년 아시아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를 무산소 등정한 그는 2001년 7월 K2(8611m)에 오르며 히말라야 8000m 14좌를 완등했다. 당시 세계 최단기간 등정 기록(8년2개월)이었다. 무서운 기세로 14좌에 올랐지만 그는 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었다. 1991년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100m를 굴러 떨어져 마취도 하지 않고 얼굴에 철심을 3개나 박았다. 1995년엔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긴 북동릉을 오르다 눈사태를 맞아 눈더미에 파묻혔지만 셰르파에게 발견돼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1997년에는 다울라기리(8167m)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추락하다가 얼음기둥에 배낭끈이 걸리며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북극점을 밟으며 '산악 그랜드슬램'을 이룬 박 대장에게 강연 등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제의가 쏟아졌지만 그는 "탐험가에겐 정년(停年)이 없다"며 또 다른 모험을 택했다. 박 대장은 산에 오르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등로주의(登路主義)'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라 믿었다. 히말라야에 자신의 길인 '코리안 루트(Korean Route)'를 내고 싶었다. 2007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신(新)루트를 개척하고자 떠난 박 대장은 5년 이상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후배 대원 둘을 눈사태로 잃었다. 후배들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살면서 재우고 먹이며, "선배는 무조건 주는 존재"라고 할 만큼 후배 사랑이 각별했던 그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한동안 술에 젖어 살았던 그는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결국 '한국인의 길'을 냈다. 박 대장은 에베레스트와 함께 '히말라야 3대 남벽(南壁)'으로 불리는 안나푸르나와 로체에 '코리안 루트'를 낸 후엔 뒤로 물러날 생각이었다. 자신을 도와준 셰르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네팔 카트만두에 컴퓨터를 보급하고, 병원도 지을 예정이었다. ▲ 생일 케이크 자르는 朴대장(사진 왼쪽)… 박영석 대장(노란 옷)이 자신의 음력 생일인 지난 13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생일케이크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신동민 대원이 준비한 박대장의 생일 케이크(사진 오른쪽).‘축 생일 사랑해요’라고 쓰여있다. /노스페이스 제공 지난달 19일 출국한 박영석 원정대는 고지대 적응을 위해 아일랜드 피크(6189m)에 오른 뒤 지난 9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음력 생일을 지내는 박 대장은 13일 그곳에서 생일상을 받았다. 원정대에서 요리사로 통하는 신동민 대원이 '축 생일 사랑해요'라고 쓴 생일 케이크와 미역국을 준비했다. 박 대장은 "오늘은 정말 황홀하다"고 했다. 그는 다음날 생일 축하에 대한 보답으로 손수 짬뽕을 끓여 대원들을 열광시켰다. 지난 18일 안나푸르나 남벽 등정에 나섰던 박 대장 일행은 짙은 안개와 낙석 위험으로 오후 4시(현지시각) 하산을 결정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베이스캠프와의 교신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됐다. "내려오다 죽을 뻔했다"며 터뜨린 너털웃음이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음성이었다. 박 대장은 평소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자주 불렀다. 도전밖에 모르던 '아름다운 바보'는 그렇게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의 품에 영원히 안겼다. 박영석 원정대, 빙탑지역에 묻힌 듯 ▲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오른쪽부터)과 강기석, 신동민 대원이 지난 2009년 에베레스트 원정 길에서 밝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영석 원정대는 지난 18일 '가스, 낙석이 많아서 하산한다'는 교신을 마지막으로 실종됐다. /연합뉴스 이인정 산악연맹 회장 “내년 수색때 찾을 수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다 실종된 박영석 대장 등 3명이 출발점으로 하강한 뒤 ABC(전진)캠프로 가던 중 플라토(빙탑지역)에서 눈사태를 만나 파묻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대한산악연맹측이 30일 밝혔다. 원정대 일원으로 ABC 캠프에 머물며 박 대장 일행과 교신해온 이한구 대원은 이날 카트만두 시내 ’호텔 히말라야’에서 실종자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사고 발생 이후 수색과정에도 줄곧 참여해온 이 대원은 “김재수 대장과 김창호 대원 등이 참가한 3차 수색도중 안나푸르나 출발점 부근에서 박 대장 일행의 하강 로프가 잘려 있고 그 부근에 잘린 로프가 잘 정돈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박 대장 일행이 등반도중 눈사태를 만나 서둘러 로프를 타고 하강한 뒤 ABC 캠프를 향해 가던 도중 플라토에서 세락(딱딱한 눈덩이)형 눈사태를 좌우에서 만나 파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전 수색과정을 통해 유력한 실종 추정지역으로 간주된 베르크슈룬트(남벽과 빙하 사이)와 주변 설사면(눈쌓인 지역)에는 박 대장 일행이 없는 것으로 3차 수색을 통해 결론이 내려졌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내년 봄쯤 기상조건이 좋아지고 첨단장비를 동원해 수색을 재개하면 박 대장 일행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브리핑을 주재한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도 “올해 수색에서 얻은 성과는 베르크슈룬트 및 설사면에는 박 대장 일행이 없고 플라토 지역이 유력한 실종 추정지역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라고 확인했다. 이 회장은 이어 “실종자 가족들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면서 “내년에도 박 대장 일행에 대해 수색을 계속하면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부언했다. 박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은 지난 18일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려고 등반하던 중 실종됐다. 박 대장 일행에 대한 장례식은 내달 1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대병원에서 ’산악인의 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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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락극혜애정다(歡樂極兮哀情多).' '환락이 극에 달하고 나면 슬픈 정만 많이 남는다.' 예전에 소설가 이병주도 이 구절을 찬탄한 적이 있지만, 여러 번 씹어 볼수록 절창이 아닐 수 없다. 한(漢)제국의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한무제(漢武帝)가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신하들과 함께 흥겨운 잔치를 하다가 읊은 '추풍사(秋風辭)'의 한 대목이다. 황제가 누려본 환락의 극치는 무엇이었을까? 절대 권력의 쾌감이었을까? 아니면 궁궐 미인들과 누려본 성적(性的) 오르가슴이었을까? 슬픈 정(哀情)이 남지 않는 쾌감이 있다면 그것은 '마운틴 오르가슴'이 아닌가 싶다. 등산의 즐거움 말이다. 조선 후기 장동김씨(壯洞金氏)로서 최고의 명문가였지만, 권력보다는 제자 양성과 산수 유람으로 한세상을 보내고자 했던 김창협은 "산수를 보는 것은 마치 성현군자를 보는 것과 같다"고 고백하였다(以下 이종호,'권력과 은둔'에서 인용). 금강산(金剛山)을 갖다가 모든 산 가운데 최고의 성인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근래에 중국 황산(黃山)과 금강산을 비교하곤 하는데, 두 산을 모두 올라가 보니 금강산이 한 수 위다. 왜냐하면 금강산에는 동해바다의 수기(水氣)가 밀려와 바위산의 화기(火氣)를 달래주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운무에 싸인 황산의 경치는 대단하지만 수기가 부족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김창협의 동생 김창흡은 한발 더 나갔다. "산천은 나에게 진실로 좋은 벗이며 또한 훌륭한 의원이다(誠一好友也 亦一良醫也)." 등산이야말로 병을 치료해 주는 의사라고까지 생각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유봉(1672~1744)은 "유산은 독서와 같다(遊山如讀書)"고 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보는 것만 독서가 아니고 명산을 노니는 것도 또한 독서와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위에 오르고, 노을을 감상하고, 소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독서라면 독서이다. 이런 지점에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 안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민서(1633~1688)는 "등산은 술 마시는 것과 같다(遊山如飮酒)"고 했다. 등산할 때 너무 많은 일행이 함께 가면 시끄럽고 서너 명이 가면 단출하면서 분위기가 집중되어 좋다는 뜻이리라. 등산의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 등산용 재킷은 연 4조원 규모로 성장한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다. 브랜드마다 주력 등산용 재킷엔 하나같이 "눈과 비, 바람은 차단하고 땀은 밖으로 배출한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이런 기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재킷 외피에 쓰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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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지상 100m 협곡 난간길 내년 1월 재개통 깎아지른 수직 암벽의 지상 100m 높이 남짓한 곳에 폭 1m의 가느다란 실오라기 같은 길이 달려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로 불리는 스페인 남부 엘코로 협곡에 있는 ‘엘카미니토델레이’ 난간길이다. 1905년 협곡 양쪽 발전소를 오가는 근로자들을 위해 설치된 이 길은 2000년에 두 명의 ‘행인’이 떨어져 사망하자 ‘공식적’으로는 폐쇄됐다. 그럼에도 위험과 스릴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심지어 난간길이 끊긴 곳을 암벽에만 의지해 지나는 사람도 있다(작은 사진). 이 길은 보수공사를 마치고 내년 1월 정식 재개통된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9일 전했다. 관광의 최소 조건은 ‘12세 이상, 고소공포증이 없을 것’ 이 두 가지밖에 없다고 한다. 과거의 ‘830만 명 무사고 기록’ 돌파가 가능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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