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 가기
ㅣ
내 블로그 글쓰기
ㅣ
내친구 블로그
로그인
ㅣ
블로그 산책
ㅣ
鳥監圖...烏監圖
세상을 보는 방법에 대해,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http://blog.azoomma.com/richard/
프롤로그
|
블로그
|
일기
|
프로필
|
방명록
|
흔적
|
RSS 구독
이웃블로그 (2)
[
신청하기
]
|
즐겨찾기 추가
카론
(richard)
나를 중심으로 다양한 세상의 모습과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정리해 놓는 곳입니다. 어서오세요.
문화/순수예술/문학
카테고리
전체보기
(841)
가족
家族 傳記
(15)
여행 일기
(43)
抒情 문학
에세이 落葉의 書
(17)
詩源
(0)
시사통신
정치/경제
(438)
사회/문화/국제
(231)
과학에세이
(97)
인기글
|
새글
인기글
|
새글
최근 덧글
현병철의 국가인권위는 상을 줄 자격이 없다. 한 여고생의 글
오랜 장마 끝에 하늘로 자라는 무지개를 보았네.
재용이 승마를 배우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 초상화
이상한 나라의 Alice
개일까? 곰일까? '카우카시안 오브차카'
생명을 대하는 태도, 극명한 두 대립
우주에서 가장 큰 별, 그 어마어마한 크기란...
10년째 새해 해 맞이
연탄배달 봉사 다녀왔어요.
최근 방문자
조은희
quinon
강재1
dkwnaak
박창순
인기태그
loading..
◎ 우는 아기 달랠 때에는 (진공청소기)가 특효이다. 태아가 뱃속에서 듣는 엄마의 숨소리와 옷깃 스치는 소리가 진공청소기나 TV 소음, 자동차 엔진소리, 세탁기 소리 등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생후 3개월 미만인 아기들은 진공청소기 소리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와 같은 편안함을 느껴 울음을 그치게 된다. ⊙ 라면을 먹고 얼굴이 붓지 않으려면 (우유를 부어 먹으)면 된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는 일정량의 수분을 몸에서 배출되는데 라면을 먹고 잠을 자면 라면의 염분이 수분을 붙들어 놓아 얼굴이나 몸이 붓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라면에 우유를 부어 먹으면 우유의 칼슘과 칼륨이 라면의 염분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몸을 붓지 않게 해준다.⊙ 여름철 뜨겁게 달궈진 차 안이 (문을 다섯 번 여닫으) 면 시원해진다. 한 여름, 자동차 실내 온도는 80도 까지 올라갈 정도로 매우 덥다. 이럴 때, 간단히 자동차 실내 온도를 낮추는 법!!!보조석의 창문을 연 다음, 운전석 문을 다섯 번 열고 닫으면 차 내 온도가 약 20도 가량 떨어진다. 실내의 뜨거운 열기가 문을 여닫음으로 인해 보조석 창 밖으로 빠져나가는 원리.* 문을 여러 차례 여닫거나 보조석 이외 뒷자석 창문까지 열어두는 것은 실내 온도를 낮추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딸꾹질은 (혀를 잡아당기면) 멈춘다. 딸꾹질을 일으키는 신경은 주로 혀에 분포되어있다. 그래서 혀를 잡아당겨 딸꾹질을 일으키는 신경에 다시 자극을 주면 딸꾹질을 멈추게 된다. (혀 당기는 법 : 혀 아래 안쪽 깊숙이를 지압하듯 지긋이 잡아 준 다음 확 잡아 당기지 말고 부드럽게 뺀 뒤, 30초 정도 잡고 계시다가 놓으면 됩니다.)⊙ 발 저릴 때는 (다리를 X자로 교차) 하면 된다. 장시간 무릎꿇고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발저림!발이 저리는 이유는 발에 충분히 혈액이 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 30초 정도 다리를 X자로 교차하여 다시 꿇어앉았다 일어나면 신기하게도 다리 저림이 사라지게 된다. 혈액을 원활하게 공급해주는 혈을 지압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분식집 라면이 더 맛있는 이유똑같이 끓인 라면이라도 집에서 끓인 라면보다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이 더 맛있는 이유! 스펀지 연구소에서 전격 분석해 봤다.1. 용기 - 라면을 끓일 때 양은 냄비로 끓일 경우, 빨리 끓고 조리 후 온도가 빨리 내려가서 면발을 쫄깃쫄깃하게 유지할 수 있다.2. 물의 양 - 작은 생수병 하나의 양인 500cc로 라면을 끓일 경우 라면 국물이 가장 맛있다는 염도 1.2 의 맛을 낼 수 있다.3. 화력 - 일반 가정의 가스레인지보다 화력이 훨씬 강한 LPG 가스의 화력으로 라면을 끓일 경우 면발이 꼬들꼬들하게 익힌다.4. 조리시간 - 서울 시내 유명한 분식집마다 약간씩 차이는 보이지만 모두 일정한 조리시간을 지키고 있었다. 약 2분 30초 가량 조리할 경우 가장 맛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술에 취했을 때는 (계란 프라이를 먹으)면 깰 수 있다.콜레스테롤은 위 내의 알코올을 분해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된 계란이 술 깨는 데 효과적이다. 좀 더 빠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계란의 노른자를 덜 익힌 프라이나 날계란 상태로 먹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실험을 해 본 결과 계란 프라이를 먹은 1시간 후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해보니 수치가 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마늘 냄새 없애는 데에는 (전통 창호지) 가 특효다. '알리신'이란 성분이 바로 독한 냄새의 주성분. 입에서 나는 마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껌, 녹차, 우유 그리고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파슬리와 창호지로 실험해 본 결과 창호지를 사용했을 경우, 마늘 냄새 수치가 가장 많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창호지의 주재료인 닥나무에는 많은 섬유소가 있는데, 그것이 입 속의 마늘 및 잡냄새를 흡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창호지 사용법 마늘을 먹은 후 창호지를 작게 잘라 껌처럼 씹는다. 2~3회 창호지를 교체하며 씹은 후 물로 헹구어 뱉어내면 된다. 단, 시중에서 판매하는 창호지는 표백을 위해 염산과 같은 화학약품을 사용 하기 때문에 입에 넣으면 큰일나므로 반드시 전통 방식으로 만든 창호지를 사용해야 한다. ⊙ 휴대폰은 (냄비)에서 안터진다.휴대폰의 전파 파장은 금속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양은 냄비 속에 휴대폰을 넣어두면 울리지 않는다. (011, 017은 휴대폰/ 016, 018, 019는 PCS로 PCS는 휴대폰과 전파 파장이 다르므로 본 실험에서는 제외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실험은 장소와 기지국과의 상황여부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 게는 어지러우면 (앞으로 걷는)다. 게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지러움을 느끼면 평형감각이 흐트러져 옆이 아닌 앞으로 앞으로~~ 걷는다.⊙ 단무지를 제일 처음 만든 사람은 (다꽝) 이다. 일본 에도시대 다꽝스님이 전쟁이 나서 먹을 것이 없는 백성들을 위해 반찬으로 짠지를 만들었는데, 이를 맛 본 도쿠가와 이에미츠 장군이 그 짠지를 처음으로 만든 다꽝 스님의 이름으로 명한 것이 바로 단무지의 어원이 되었다고...⊙ 닭은 걸을 때 목을 흔든다. 그러나 목을 고정하면 (넘어진다.) 닭이 목을 흔드는 이유는 세가지. 첫째, 대퇴부가 몸 안쪽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며 둘째, 몸의 중심을 얻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라고... ⊙ 짬뽕은 (일본어)이다.개화기,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가난한 중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음식이 짬뽕의 원조다. 이 음식은 당시 중국 사투리 인사말을 잘못 알아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짬뽕'이 되었다고... 현재 국어사전에도 짬뽕은 일본어에서 유래된 외래어라고 표기되어 있다.⊙ 돼지는 (하늘)을 볼 수 없다. 땅에서 나는 감자와 고구마 같은 음식을 좋아하는 토굴성 동물인 돼지는 그 특이한 목구조상 고개를 15도 이상 들 수 없다.⊙ 교통카드는 (담배 비닐 안)에서 작동되지 않는다.교통카드를 담배 비닐과 담배갑 사이에 끼워 단말기에 대면 작동되지 않는다. 그 장애요인은 두 가지 바로 담배와 담배 케이스 안 은박지이다. 여기서 주 장애요인은 은박지로 교통카드 안의 무선주파수가 금속성 물질에 흡수되어 카드는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담배갑에 담배가 꽉 차 있으면 은박지가 카드에 밀착되어 작동되지 않지만 담배가 빠져 카드와 은박지 사이가 벌어지면 작동이 된다.⊙ 맥주병은 다른 병들과는 달리 (물에 가라앉지) 않는다. 흔히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맥주병' 같다고 한다. 그러나, 맥주병은 물에 잘~ 뜬다. 빈 맥주병을 물에 띄우면 병 안으로 물이 들어가게 되고 물이 들어간 만큼 공기가 밖으로 나온다. 특히 목이 긴 맥주병은 이 과정을 반복, 결국 맥주병의 무게와 부력이 같아져 물에 뜨게 되는 것이다.⊙ '사랑해요' 는 없어지지 않았다. (물을 부으)면 보인다. * 수줍게 사랑 고백을 할 때 사용해 보세요. ① 수성펜과 연필을 준비한다. ② 수성펜으로 종이 위에 쓰고 싶은 글씨를 쓴다. ③ 연필로 글씨가 보이지 않게 덧칠하여 완전히 지운다. ④ 그 위에 물을 붓는다. ⑤ 글씨가 물 위로 떠오르게 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원리에 의한 것이다. 종이와 수성펜 사이에 피막이 형성되면 그 피막 사이로 물이 들어가 잉크가 녹으면서 떠올라 글씨가 보이게 되는데, 연필의 흑연이 글씨가 흩어지는 걸 막아서 글씨 모양 그대로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 손을 교대로 (머리 위)에서 두드려 보면 안된다.책상 위를 교대로 '두구두구~' 쳐보면 얼마든지 박자를 맞춰 칠 수 있지만, 머리 위를 쳐보면 금새 박자가 꼬이게 된다. 손바닥을 쫙 펴고 머리 양 옆을 세게 칠수록 금방 박자를 놓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오른손은 왼쪽 뇌가, 왼쪽 손은 오른쪽 뇌가 지배한다. 처음에는 번갈아 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점차 정보가 양쪽 뇌를 교차하면서 점차 동조화 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양손이 동시에 움직이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계란)끼리 부딪치면 꼭 하나만 깨진다.계란마다 각각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계란 두 개가 부딪치면 하나만 깨진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크기가 더 작은 것(밀도가 높기 때문), 신선도가 높은 것, 껍질이 두꺼운 것 그리고 어미닭의 영양상태가 좋은 것일수록 깨지지 않는다.⊙ 아기가 울 때 (귓속을 만져주)면 뚝! 그칠 수 있다.아기가 울 때 엄마가 아기의 귓구멍을 새끼 손가락으로 살짝 자극을 주면 아기가 울음을 뚝! 그친다.실험 결과 이런 현상은 생후 24개월 아기까지 유효하며 개월수가 낮을수록 효과는 10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문의는 아기 귀는 예민한 부위이기 때문에 계속 만져주면 외이도염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응급경우에만 사용할 것을 권했다.⊙ 잘 달리고 싶으십니까? (고무줄) 하나면 됩니다.노란 고무줄을 발목에 끼우고 한 번 꼬아 8자로 만든 뒤 엄지발가락에 끼우면 준비 끝!(한꺼번에 고무줄 3개씩 양쪽 발에다 해야함)발에 고무줄을 감으면 발에 있는 인대의 힘이 더 강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인대의 힘이 강해진다는 것은 뼈와 뼈 사이가 모아진다는 의미로 그렇게 되면 발의 근력과 근지구력이 높아진다.실제 실험 결과 100미터 달리기에서 기록이 단축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달리기 뿐 아니라 멀리뛰기에서도 놀라운 기록 향상 결과를 볼 수 있었다.⊙ (건빵) 7개를 1분 안에 못 먹는다.건빵은 오래 보관하기 위해 수분 함량이 5∼6%로 낮다. 그리고 맛을 부드럽게 하는 기름 함량도 1.5 kg으로 낮다. 수분과 기름 ?량이 낮기 때문에 다른 음식에 비해 건빵 7개를 1분 안에 먹는 것은 매우 힘들다. 건빵 안에 별사탕이 들어있는 이유도 당분으로 하여금 입 안에 침을 돌게 하기 위한 것으로 건빵을 좀 더 먹기 쉽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전자 계산기) 하나면 그녀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다.마음에 드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손쉽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먼저 계산기를 그녀에게 주고 전화번호 앞자리를 누르라고 한다. 여기에 ×250 , ×80 을 한 후에, 전화번호 뒷자리를 더하고 다시 한 번 뒷자리를 더하게 한 뒤, 계산기를 돌려 받는다.깔끔하게 ÷2를 하면 신기하게 그녀의 전화번호 국과 번호가 다 뜬다! -진짜 됩니다. 확인 해 봤음.⊙ 전화기 버튼을 누르지 않고도 (휴대폰 버튼을 대신 누르) 면 전화가 걸린다. 휴대폰을 송화기 부분에 대고 번호를 누르면 신기하게도 전화는 걸린다. 일반 전화의 송화 부분에 휴대폰 키소리를 입력하면 일반 전화가 키소리를 인식하여 전화가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이때 발신 번호는 일반 전화의 번호가 표시되고, 전화비 역시 일반 전화의 요금만 청구된다. ⊙ (아킬레스건을 주무르) 면 몸이 주~욱 늘어난다.허리를 숙여 손이 바닥에 닿는 유연성 테스트를 잘하려면 발목 뒤편의 아킬레스건을 주물러주면 된다. 약 10분간만 주물러주면 근육이 이완되어 최고 15cm 정도까지 몸이 늘어난다. 그러나 이것은 단 1회성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지만 지속적으로 아킬레스건을 마사지 해주면 몸이 유연해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O형 다리는 (무릎을 굽혔다 천천히 펴) 면 곧게 펴진다. O자로 휘어진 다리 때문에 사진 찍을 때 고민이신 분들에게 희소식! 잠깐이나마 쭉~ 곧은 일자다리를 만들 수 있는 스트레칭법 공개!!! <방법>무릎을 45도 구부려 두 무릎이 닿게 한 뒤 5~10초 가량 그 자세를 유지한 다음 무릎을 붙인 상태로 천천히 일어서면 벌어져있던 다리가 신기하게 붙어있다. 평소 힘을 써서 붙이려고 해도 잘 안붙던 다리가 붙는 이유는 위와 같은 자세를 했을 경우, 무릎 뒤의 인대가 이완돼 골반이 일시적으로 교정되기 때문이다. 실제 교정 클리닉에서 사용되고 있는 스트레칭법으로 발뒤꿈치를 든 상태에서 하게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삶은 달걀은 (훅~ 불) 면 껍질이 쉽게 벗겨진다. 삶은 달걀의 위, 아래 부분을 조금씩 벗겨낸 뒤, 달걀을 잘 쥐고 뾰족한 부분에 입을 대고 훅~ 불면 껍질이 쉽게 쑤~욱 벗겨진다. 달걀의 흰자와 껍질 사이에 있는 얇은 막에 공기가 들어가 흰자와 껍질이 잘 분리되게 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휴대폰 진동을 (머리 위)에서 못 느낀다.휴대 전화의 진동모터의 떨림을 정수리에서는 느낄 수 없다. 진동은 근육에 의해 느끼게 되는데 머리에는 근육 분포가 적어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휴대폰을 진동 모드로 돌려놓고 정수리에 두면 전화가 와도 그 떨림을 느낄 수 없고,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진동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전혀 진동이 오는 것을 느낄 수가 없다.
생활지식
덧글
(1)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1미터. 사람들의 일반적인 스케일이죠. 10월의 따뜻한 날 한 남자가 공원에서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그의 곁에는 여러가지 물건들이 있군요. 이 사진의 작은 사각형 안의 공간이 다음 사진 내용이 되는겁니다. '인간은 모든것의 척도이다.'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에서부터 시작해봅니다. 이 그림을 잘 기억해주세요. 10센티미터. 더 조밀한 비율입니다. 이 사진은 손등을 조금 확대해서 보여준 그림입니다. 1센티미터 손등의 그림을 더 확대한 모습이죠. 손등의 주름은 그만큼 손이 유연성이 있다는걸 의미한답니다. 0.1 센티미터(1밀리미터) 살 아래엔 작은 혈관이 흐르겠죠? 0.1밀리미터. 머나먼 별이 익숙하지 않은것처럼, 우리의 몸이라고 해도 이렇게 확대된 부분은 익숙하지가 않군요. 0.01밀리미터 하얀 림프구 세포입니다. 1마이크로미터. 세포의 핵으로 들어가는겁니다. 1000 옹스트롬. (0.1마이크로미터 , 0.0000001미터) 기다란 분자 구조가 얽히고 섥혀서 세밀한 DNA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DNA구조는 모든 세포 내의 핵에 존재합니다. 100 옹스트롬 DNA의 2중 나선 구조지요. 10 옹스트롬 분자단위의 스케일입니다. 1 옹스트롬 원자 단위의 스케일입니다. 핵 주변으로의 전자 구름이 보입니다. 0.1옹스트롬 탄소원자입니다. 1 피코미터 (0.000000000001미터) 원자의 핵. 0.1 피코미터 좀 더 가까이서 볼까요? 0.01 피코미터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는 원자의 핵 입니다. 0.001 피코미터 현대 물리학에서 최근에 탐구하기 시작한 양성자의 안쪽 부분이지요. 0.0001 피코미터 더 확대해보면 무엇이 있을까요... 다시 시작합시다. 다시 인간으로부터 다시 시작해봅시다. 10미터. 남자와 여자가 같이 공원에 소풍을 온 그림이죠. 100미터. 고속도로와 부두가 보이네요. 1킬로미터 도시가 보입니다. 10킬로미터. 도시의 중심도 보이고, 여러가지가 보이는군요. 모든것이 나타납니다. 100킬로미터. 시카고의 거대도시 영역입니다. 더불어 호수의 끝이죠. 1000킬로미터. 상공의 낮은 궤도에서 관찰한 모습입니다.1000만이 넘는 사람들의 거주지가 보이지요. 만 킬로미터.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어두운 바다. 갈색의 땅. 동쪽으로 도는 지구. 1967년이 되서야 인간은 지구를 지구 밖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되었지요. 10만 킬로미터. 100만 킬로미터. 달의 궤도입니다. 1000만 킬로미터.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입니다. 1억 킬로미터. 다른 행성들의 궤도도 보이는군요. 10억 킬로미터. (~7AU) 태양계입니다. 다른 행성들은 잘 보이지 않지만 태양 하나는 참 잘 보이네요. 멀리 목성이 궤도가 보입니다. 100억 킬로미터. 태양계 행성들 보일건 다 보입니다. 1000억 킬로미터. 태양도 작게 보이는군요. 1조 킬로미터. 오직 태양만이 보입니다. 10조 킬로미터 (대략 1광년) 빛이 1년을 여행해야 갈 수 있다는 거리인 1광년입니다. 10광년 (3파섹) 100광년 참 넓기도 한 우주~ 1000광년 슬슬 은하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1만 광년 커다란 별들도 전체적으로 봤을땐 작은 입자같군요.. 하나의 구름처럼 된 듯한 모양입니다. 10만광년 .. 100만광년 더 넓게.. 1000만광년(3메가 파섹) 그렇게 거대한 은하도 하나의 점으로.. 1억 광년 우리 은하가 겨우 보이는군요.. 10억 광년 대부분의 공간이 이렇게 비어있는것처럼 보입니다.. 더 먼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크기
,
단위
덧글
(1)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1. 모든 여자는 창녀다? 얼마 전 조선일보 기자가 했다는 접대부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어느 분의 말대로, 난 그가 술을 처먹고 썼는지, 제 정신에 썼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굉장히 격한 상태, 즉 속에서 솟구치는 충동을 제대로 제어하기 힘든 상태에서 쓴 게 아닌가, 하고 짐작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그가 평온을 유지한, 제 정신 상태였다면, 그 발언이 낳을 파장을 염려해 감히 여자 아나운서가 접대부와 같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비록 그의 제 정신에는 아나운서가 접대부라는 생각은 고스란히 남아있겠지만 말이다. 즉, 그는 그저 실수를 한 것이다. 그는 그 실수를 통탄하며 이렇게 투덜거릴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아나운서를 봤을 때 접대부와 똑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인데, 왜 저에게 아나운서가 어떻게 접대부냐고 물으시면, 머리 속에서 그저 접대부와 똑같았다는 느낌이 들어 그리 한 것 뿐, 어째서 그렇다는 건…….” 그리고 바로 그 전에는 밀양에서 벌어진 집단강간사건이 우리들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었다. 이 사회에 대해 분노하는 능력밖에 갖지 못한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나는, 도대체 그 고등학생들의 눈에 그 어린 여학생들이 무엇으로 보였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이 사회가 정말 잘못 됐어도 많이 잘못 됐다는 걸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엔, 그 여학생들이 포르노에 나오는 정액받이, 그 이상이 아니었다. 이건 그들이 포르노를 많이 보고, 잘못된 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혹은 인간성이 파탄 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위의 조선 직원이 여자 아나운서를 접대부로 본 것이나, 고등학생들이 여학생을 정액받이로 취급한 것이나, 본질적으로는 대동소이하다. 차이가 있다면 환경에 따른 문화적 차이일 뿐이다. 조선일보 기자는 자신의 사회 환경에 걸맞게 모든 여자가 룸싸롱 접대부로 보인 것이고, 밀양의 고등학생들은 자신들의 문화에 걸맞게 작고 힘없는 여자애들이 정액받이로 보인 것이다. 즉, 모든 여자가 창녀로 보인 것이다. 그렇다, 모든 여자는 창녀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완강하고도 끈질기게 여자들의 자리를 창녀로 묶어두길 고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를 비롯해 이 사회의 남자들은 절대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사회가 여자들의 자리를 창녀로 묶어둔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언제 우리 사회가 여자들을 집장촌으로 밀어 넣기라도 했단 말인가? 오히려 지금 꺼내주고 있지 않은가? 내가 언제 여자를 창녀 취급이라도 했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 남자들이 여자들을 창녀로 취급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여자들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게 보인다.이 말은 그윽하게 여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그 시선을 발사시킨 나의 인식이 이 사회 권력관계의 자장 안에 있어 절대 그윽하게 유지될 수 없다는 걸 뜻한다. 우리 시선을 규정하는 인식과 권력의 문제, 그렇다. 이건 권력의 문제이다. 권력이 단순한 억압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자발적, 묵시적, 무의식적 동의에 의해 작동된다는 사실이 지적된 것도 벌써 오래전이다. 여자가 창녀로 보이는 것은 이 권력 작동의 효과다. 우리는 매순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두 뭐 잡고 반성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모두 반성하자는 말은, 주소가 잘못 적힌 편지와 같다. 정작 필요한 놈들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글은 이 글을 촉발시킨 분노와 어울리지 않게 굉장히 ‘관념적’이고 난삽할 것이다. 소위 ‘카프카적 상황’을 연상시킨다. 어떤 소심한 물리학자가 물을 마시려고 자기 방문을 나서 부엌으로 가려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자기가 부엌으로 가기 위해선 이리 저리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는 지구의 엄청난 속도를 뚫고 방문을 통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난 그가 자신이 내야할 속도를 계산해보고 나서 물마시기를 포기했는지, 아니면 문틀에 부딪혀 죽었는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알고 있는 건, 그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더라도 최선을 다해 뛰었더라면 물을 먹을 수 있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최선을 다해 뛸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천천히 갈 요량이면 시도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어려운 점은 이 글이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남성적인 언어로밖에 쓰여질 수 없다는 점이다. 어디 여성뿐이겠는가. 사회적 소수자의 어려움은 자신들의 언어를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건 개혁의 어려움으로 통하고, 역으로 서프의 필요성을 증대시킨다. 2. 강간의 왕국 ‘강간의 왕국’이라는 말은,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이단 옆차기로 뛰어 오르면서 내뱉은 말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 대사는 즉석에서 이루어 졌다는데, 아마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행위를 지적하려다 보니 동물의 왕국을 빗대서 그 말이 나온 것 같다. 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행위를 오직 인간만이 저지른다. 강간만이 아니라 모든 흉악범죄는 오직 인간만이 저지른다. 그럼 이러한 행위는 본능적인 것일까, 아니면 문화적인 것일까?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같은 종끼리 권력다툼을 벌일 땐 사냥할 때와 다르게 상대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무기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종족을 보존해야하는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권력을 위해 집단학살하는 인간도 있다. 그 새끼처럼. 그럼 다시 이런 권력에의 의지는 본능적일까, 문화적일까?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본능적인 권력에의 의지를 바탕으로 인간은 문화라는 걸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적특성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된 화성연쇄살인범의 경우, 그가 느낀 쾌감은 정확히 성적 쾌감이 아니라 권력적 쾌감이다. 그 놈은 연약한 여자가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며 절절매는 것을 보면서 극도의 쾌감과 흥분 속에 자신이 전지전능한 신의 자리로 올라서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너무 끔찍한 예지만, 이런 힘이 팽창하는 쾌감과 연결된 권력의지가 인간의 문화의 바탕을 이룬다는 것은 분명하다. “강간범들, 밥은 먹고 다니냐” 아무리 수준 높은 문화를 구가하는 사회라 할지라도 인간의 성적특성을 바꿀 순 없다. 그건 성적특성이 수준 높은 문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학자는 이걸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인간의 문명은 생물학적 진화가 도저히 따라 갈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즉, 지금의 문화는 권력투쟁의 결과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이룩한 찬란한 문명이라는 건 야만의 앞면일 뿐이다. 어떤 이는, 역사의 장면 장면마다 떼 지어 널부러져 있는 시체더미위에 세워진 문명이란 승리자가 부르는 이름일 뿐이라고 갈파했다. 소위 인간성을 비롯한 인간적인 모든 것은 자연적인 것도, 그렇다고 이성적인 것도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권력적이다. 바로 ‘권력의지’의 역학 관계에 따라서 인간 세상은 구성되고 각각의 의미가 배분된다 3. 여자가 더 섹스를 좋아한다? 멍청한 질문으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섹스를 했다. 누가 더 쾌락을 느꼈을까? 정말 멍청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이렇게 질문해 보자.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섹스를 해서 모두 오르가즘을 느꼈다. 누가 ‘감각적인 쾌락’을 더 많이 느꼈을까? 역시 멍청한 질문이다. 그건 개인마다 다르고, 할 때마다 상황마다 다르고, 그 느낌을 수치로 표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 더 멍청하게 ‘평균적으로 봤을 때’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감각적 쾌락’을 많이 느낄 것 같은가? 남자는 여자가 더 그럴 것 이라고 말하고, 여자는 남자가 더 그럴 것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전에도 이런 멍청한 논란이 있었는지, 그리스 신화에 보면 제우스와 헤라가 이 문제 가지고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보다 월등히 유치한 이 그리스 신들은, 그럼 여자로도 살아본 적이 있고 남자로도 살아본 적이 있는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자는 결정을 내린다. 그 사람 왈. “제가 경험한 것을 한 치의 거짓도 보태지 않고 말씀드리건대, 여자가 남자보다 아홉 배는 더 쾌감을 얻습니다.” (헤라는 이 말에 열 받아서 그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리고, 제우스는 미안해서 그에게 위대한 예언의 능력을 준다. 그가 바로 외디푸스왕에도 나오는 유명한 장님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다) 최소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쾌감을 얻는다? 그런데, 왜 남자는 섹스를 못해서 안달을 하고, 여자는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애를 쓰는가? 보통 남자가 섹스에 더 적극적이고 여자는 수동적이다. 왜 그런가? 내숭인가? 순결 강박인가? 아니면 여자는 ‘원래’ 수동적인 존재여서? 내 생각은 만약 감각적 쾌감을 수치로 잴 수 있다면, 평균적으로 여자가 더 많이 얻을 것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출산에 대한 염려를 불식시켜야만 하는 생물학적 작용까지 고려하면 신화에 나오는 말이 그럴 듯하다. 하지만 이게 남자가 적극적이고 여자가 소극적인 모습과 부딪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남자는 섹스를 통해 감각적 쾌락과는 다른 무엇을 더 얻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여자의 ‘감각적 쾌락’과 대비해서 아까 ‘권력적 쾌락’이라고 이름 붙였던 그 무엇이다. 비록 감각적으로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얻는 게 적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권력적 쾌락을 남자는 섹스를 통해서 얻는다. 그래서 그 ‘지랄들’을 한다. 이 가설은 여러 가지 장면을 통해 그럴싸함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결혼한 후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남자들은 지명방어전이다 뭐다 하면서 마치 섹스에 초월한 척 그야말로 내숭을 떨면서 뒷구멍으로는 어떻게 껀수 하나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쓴다. 아내를 사랑한다면서도 그런다. (그렇다, 남자들은 섹스와 사랑이 분리되어 있다) 왜 다시 그 ‘지랄들’을 할까? 답은 당연히 아내보다는 다른 여자가 ‘권력적 쾌락’을 더 많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런 남자들의 속성(?)을 다음과 같은 농담으로 표현했다. “글쎄, 내가 아는 어떤 사람 중엔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바보도 있다네.” ‘권력적 쾌락’을 쫒아 2차를 갔다가 혹시 아내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남자들은 항변한다. 그건 단지 비즈니스일 뿐이라고. 이게 그저 남자들의 구질구질한 변명 같은가? 이건 단순한 변명이 아니다. 남자들은 정말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건 2차가 접대하고 접대받는 공적 생활의 연장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비즈니스라고 하는 걸 넘어서 공적 생활 자체가 남자들의 ‘권력적 쾌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남자들에게 섹스는 비즈니스다)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커플들을 예로 들면, ‘권력적 쾌락’과 ‘감각적 쾌락’ 사이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사랑하는 내 남자가 너무 강렬히 원하니까 그 사랑의 표시로 섹스를 하지만 섹스만을 통해서 얻는 ‘감각적 쾌락’은 미미할 정도이다. 그건 호로몬 분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생물학적 이유와 함께, 감당하기 힘든 ‘권력적 쾌락’에 휩싸인 남자가 너무 빨리 일을 끝내는 수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자가 만족을 못 느낀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부분은 그렇겠지만 오르가즘을 맛 볼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여자의 경우는 섹스를 통해서 라기 보다는 사랑을 통해서 오르가즘을 맛보기 때문이다. 남자는 앞서 말했듯 사랑과 섹스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을 통해서 오르가즘을 느끼기가 굉장히 어렵지만 여자는 섹스와 사랑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감각적 쾌락’이 형편없이 부족하더라도 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위에서 눌러서 헉헉대는 걸 좋아서 그러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자) (그렇다. 여자는 남자처럼 그렇게 섹스와 사랑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서 여자의 ‘감각적 쾌락’이라는 건 집중되어 있지 않고 분산되어 있다. 반면, 남자는 섹스와 사랑이 분리된 상태에서 ‘권력적 쾌락’마저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그럼 한 번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강간은 성관계인가, 아니면 일방적 폭력인가? 앞서 살펴본 대로,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경우에도 한쪽은 성기에 집중된 섹스를 하고, 한쪽은 자신의 전체로 사랑을 함으로써 “성관계가 없는데” 하물며 강간을 성관계라 주장한다면,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미친놈일까? 정상일까? 정답은 물론 정상이다. 왜 그런 미친 주장이 정상이 되는지. 왜 그런 의미와 가치의 전도가 일어나는지 천천히 둘러보자. 4. 어머니는 위대하다?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너무 많아서 그런지 얼핏 생각이 안 나는데, 가령 이런 말들이 흔히 떠돈다. 여자는 쓸데없이 말이 많다.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다. 여자는 도저히 속을 모르겠다. 여자는 북어와 함께…, 여자는 수동적이다 등등. 어떤가, 맞는 말 같은가? 이걸 한 마디로 뭉뚱그리면, ‘여자는 주체적이지 못하다’가 된다. 위의 말들은 주체적이지 못한 여자들의 변주된 모양이다. 여기서 잠깐 주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성립하는지 아주 간단하게 기술해보자. 주체는, 사물 대신 상징(언어)를, (어머니에 대한) 사랑 대신 (거세 위협 아래) 도덕을, 더 확대하면 육체, 감각, 놀이 대신 정신, 이성, 노동을 즉, (너무 너무 충만했던) 앞의 것들을 억압하고 (뼈대만 남은) 뒤의 것들을 ‘필요’에 의해 취함으로써 주체가 된다. 그런데, 억압은 완전하지 않고 승화는 불충분해 주체는 항상 욕망하는 주체가 된다. 아까 나는 남자는 사랑과 섹스가 분리됐고, 여자는 통합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아울러 남자는 섹스를 통해 권력적 쾌락을 얻고, 여자는 사랑을 통해 감각적 쾌락을 얻는다고도 했다. 그럼 이걸 ‘주체화 과정(외디푸스화)’에 대입해 보면, 여자는 주체화 이전의 미분화된 존재임이 드러나고 남자만이 승화에 성공한 주체란 걸 알 수 있다. 자연적인 성은 두개지만 사회적인 성은 남성 하나 밖에 없다. 즉, 분화되지 못한 여자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언어, 이성, 도덕을 갖지 못하고 ‘주체’인 남성들에 의해 사회적 위치를 할당받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 받는다. 그 사회적 위치는 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사적 영역’이고 그 존재의 의미는 다름 아닌 ‘성적 대상’이다. 그래서 여자는 오로지 성적 존재로서 두 가지 이미지로 대변된다. 하나는 창녀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이다. 창녀는 여기서 쾌락적인 성을 대표한다. 찰나적이고 경박하고 소모적이며 믿을 수 없는, 타기할 만한 성, 반면 어머니의 성은 신성한 ‘생산’에 이바지 하는 성을 대표한다. 즉, 같은 성적 존재라도 생산적인 성을 담당하는 어머니는 거룩해지고, 소모적인 성을 대표하는 창녀는 하수구 취급을 받는다. (거룩한 어머니의 역할이 중단될 때는 곧바로 요부, 곧 창녀 같은 아내로 돌아가야 한다) ‘어머니는 위대하다’라는 말이 있다. 어머니가 도대체 왜 위대한가? 나를 낳고 길러주셨기 때문에. 그렇다. 나라는 ‘주체’를 ‘생산’하고 주체를 위해 ‘헌신’ 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좀 더 풀어 말하면, 어머니의 모성(여성성)이 그 자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생산과 헌신이라는 ‘남성적 가치’를 실현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이런 말을 누가 하는가? 당연히 ‘나’라는 ‘주체’가 한다. (무엇을 말하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말하는 가가 중요하다) 고로, 성적 존재로서의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가치는 외모밖에 없다. 과거가 있는 여자는 용서해도 못생긴 여자는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외모가 여자의 유일한 가치이다. 그건 여자가 개인적으로도 미분화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도 미분화된, 즉 전근대적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대를 통과하지 못한 여자에겐 ‘내면’이 없다. 내면을 가지지 못한 존재가 무슨 개인적인 생각이 있겠는가? 내면이든, 개인이든 모두 근대의 산물이거늘. 우리는 여기서 위에서 말한 주체화 과정이 근대화과정의 다른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즉, 주체화(외디푸스화) 과정이란 근대사회가 요구하는 사회화과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5. 여자는 비즈니스를 해도 섹스다? ‘근대 이전에도 여자들은 그런 취급 받았는데요?’ 하고 질문이 나올 것 같다. 맞다. 근대 이전에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도 그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전도가 일어나는 지점은 정확히 여자들은 근대이전의 미분화된 존재로 남겨놓고, 남성들이 자신들을 근대적 주체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오해하는 곳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오해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면, 자신들은 ‘사회적 생산’을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모든 걸, 자기 안의 자연까지 대상화하고 변형시켜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생산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근대의 역설이 발생한다. 자신들이 근대적 주체라고 내세우는 근거가 되는 뭔가를 생산하는 능력이 고스란히 자본으로 이양되는 것이다. 여기서 자본주의화에 따른 근대화 과정을 길게 서술할 수는 없지만, 아예 서술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아주 간단하게 근대화의 과정을 말한다면, 근대화란 기존의 지역공동체 대신 시장이 생산-교환의 중심을 이루면서 그 시장을 관리할 (근대)국가가 출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장과 국가에 걸쳐 거대한 공공-공적 영역이 출현하고 거기에 따라 새로운 정치체계와 법체계를 비롯해 여러 사회적 제도가 구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젠 남성들이 자신들을 주체로 내세우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공공영역을 독차지하기 위해서이다. 합리적인 이성을 바탕으로 한 정신적인 주체, 자유롭게 행동하고 그 행동에 책임을 지는 도덕적인 주체, 그런데 그 주체는 스스로를 긍정함으로써 그런 모양을 띠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대립항목들을 부정하고 타기하고 배제함으로써 유지된다. 이른바, 여성적인 것, 곧 성적인 것. 미분화되고 물질적이고 비생산적이고 믿을 수 없는 욕망 덩어리를 부정해야한 주체의 가오가 서는 것이다. 이렇게 공적 남성 주체/사적 여성 성적존재가 분할된 상태에서는, 앞서 잠깐 말한대로, 똑같은 성관계를 해도 남자에겐 사회적 생산에 복무하는 비즈니스고, 여자에겐 쾌락을 위한 성행위다. 즉 남자는 섹스를 해도 비즈니스고, 여자는 비즈니스를 해도 섹스가 된다. (여자가 술집에서 웃음을 팔던, 몸을 팔던, 영혼을 팔던 이건 명백히 공적 매매행위다. 남자들이 노동력을 팔고, 간혹 사주에게 영혼은 물론이고 전 존재를 파는 행위와 똑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자는 사적영역에 묶어둬야 하는 존재기 때문에 그 행위는 사회적 생산이 아니라 개인적인 속성에서 기인한, 즉 끼가 많아서, 혹은 밝혀서 하는 행위로 그 의미가 둔갑한다) 이게 가증스러운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성 구도이다. 그 가증스러움은 소위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주체가 여성적인 것을 극복했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걸 대단하다고 여기는 허황되고 기만적인 믿음에서 발원한다. 쾌락, 성, 여성적인 것으로 매도되는 것은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남자들이 이성과 도덕을 무기로 사회적 생산에 임하는 모습이 이런 것들을 탐하는 권력의지의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우리 사회의 근대는 자본주의화에 따른 근대화가 아니라 근대화에 따른 자본주의화였다. 국가가 주도해서 근대화를 이룬 ‘덕분에’, 우린 시민 사회가 담당해야 할 공공영역이 배제된 모래시계 모양 사회가 된 것이다. 즉, 이름만 공화국이고, 그 안을 채워야 할 내용이 뭉텅이로 빠져있어,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군지도 모른다. 근대화 과정이 왜곡되다 보니 주체화 과정을 통해 얻어내야 할 항목, 주체, 내면, 개인, 개성, 도덕, 이성등 시민 사회를 이루어가야 할 필수 항목들이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즉 주체화과정을 통해 가상적으로나마 서있어야 할 이성과 도덕의 미비로 말미암아 ‘위선을 발휘할 능력’마저 빼앗겨버린 것이다. 그 항목들이 사회적으로 누락되어 있는데, 여자들에게만 누락되어 있다고 뒤집어씌우는 것, 그래서 되도록이면 현 체제를 길게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것, 이 차별을 통한 지배전략에 대부분의 남자들이 즐겁게 동조하는 것, 그리고 공동체의 붕괴와 시민 영역의 미비로 여성들조차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가족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남성들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데 근거로 이용된다는 것. 이것들이 대충 성차별 문제의 정치적 함의가 아닌가 한다. 6.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이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이끈다는 말은 괴테가 한 유명한 말이다. 여기엔 사실 남성적 권력의지에 의해 갈갈이 찢겨 싸우는 세상을 통합하고 치유하는 여성성에 대한 무한한 경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위대한 사상은 속화되어 이용되는 운명을 겪는다. 니체의 ‘권력의지’가 나찌에 의해 오용되고, 이반 까라마조프의 생각이 스메르쟈코프에 의해 실행되듯이. 이 말도 마찬가지다. 자칫 잘못하면, 현실에서 벌어지는 고통과 부조리의 문제를 상징적인 차원에서 해소하고 할 일 다 했다는 ‘교양인’의 태도를 낳기 쉽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난 기본적으로 계급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를 계급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성차별뿐만 아니라 지역차별, 학벌차별 등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는 모두 계급의 문제고 지배 세력의 통치 전략의 문제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우리 사회의 여자와 남자 중 누가 더 공사 구분을 잘 하는가? 누가 더 원칙을 잘 지키는가? 어느 재벌회사 이사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여자들은 자기들이 요구하는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고. 어련하겠는가. 그 능력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실력이 아니라 접대 능력, 조직에서 인맥 형성하는 능력, 접대를 통한 부패 적응 능력, 집 같은 건 도외시하고 조직에 헌신하는 능력을 의미하니까, 여자는 영원히 그런 능력을 발휘하느라 스트레스 ‘이빠이’ 받은 남자들을 위무하는 능력만 발휘하게 되는 위치에 앉아 있는 것 아닌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공사구분을 잘하고 상식과 원칙을 지키며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기는 힘들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뛰어난 사람들이 어디든 있기 마련이지만, 원칙을 지키는 게 무슨 ‘고귀함’도 아닌데 언제까지 원칙을 지키는 것을 힘들고도 드문 상태로 둬야 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이 갈 곳은 결혼밖에 없다. 결혼 잘 하는 것이 주체적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어거지 말이 성립할 지경이다. “난 노예적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했다. 남편이 뭘 하건 돈만 많이 가져오면 된다. 난 남편과 상관없이 소비의 주체로 살면 그만이니까.” 분명 여성들이 이 사회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소비의 주체로 사는 것보다는 생산의 주체로 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주체로 서기 위해서는 좀 가혹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결혼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이건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건 바로 ‘존재의 긍정’이라는 과정이다. 이건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이끌어야 하는 소명(?) 과 통하는 얘기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남성에 의해 낙인찍힌 성적존재라는 레떼르를 똑같이 부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까 여자는 감각적 쾌락, 성적 존재 고로 열등한 존재로 낙인 찍혔다. 그런데 그것들이 남성들이 규정한 대로 진짜 열등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긍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들이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평가와 함께 긍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가치의 전도가 다시 일어나면서 긍정이 되는 것이지, 가치의 전도 없이 긍정한다는 것은 우선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건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뭐냐, 거세당한 남성이라는 것을 긍정한다는 것인데, 열등한 것은 긍정될 수가 없는 것이다. 남성이 부정하는 쾌락이, 여성이, 성적 존재가 그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정신 혹은 이성 혹은 주체보다 우월하다는 것, 오히려 그것들은 파생적인 것이고 여성적인 것이 근본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긍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애초에 왜 여성적 가치가 열등한 것으로 낙인 찍혔는가? 인간의 문화라는 게 남성적 권력의지에 의해 축조되어서 그런 것 아닌가? 그럼 니체를 오용해서 한 번 따져보자. (오늘 니체 자주 나온다. 사실은 전체에 걸쳐 흐르고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가장 ‘반여성적’이라고 평가받는 니체를 통해 여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니) 우월함과 열등함. 다시 말해 잘난 존재와 못난 존재는 긍정과 부정으로 구분된다. 즉, 그것은 존재의 질을 가리키는 표현들이다. 반면에 힘이 센 것과 힘이 약한 것, 곧 강함과 약함은 능동과 수동으로 구분된다. 그것들은 힘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들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힘의 형태가 존재의 질을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언제나 존재의 질이 힘의 형태를 규정한다. 즉 힘이 강하다고 잘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힘만 세고 못난 것, 우린 그걸 괴물이라고 한다. 그럼 한 번 보자. 남자가 노련한 척 하면서 여자들을 열등한 존재로 모는 근거가, 자기들은 생산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그 사회적 생산 능력이 자신을 잘나게 한다는 것이다. 좋다. 일단 그 힘은 능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정하고 배제하고 착취하는 힘, 착취하고 착취해서 더 힘이 붙고 그만큼 더 잘난 체하고. (브레히트의 말대로, “남자는 노련한 척 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그건 말 그대로 잘난 체 하는 것이지 진짜 잘남이 아니다. 왜냐하면 존재의 질 자체가 부정이기 때문이다. 진짜 잘남은 다른 걸 착취하지 않는다. 긍정은 다른 것에 ‘대해서’ 서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서있는 존재의 질에 대한 표현이다. (석가모니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이런 뜻 아닐까) 너무 거창한가?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 하니까. 그럼, 자신을 긍정하는 여성적 주체의 존재 방식은 어떻게 될까? 이 야만적인 문화에서. 최소한 남성적 주체처럼 자신의 못남을 보상받기 위해 다른 대상을 착취하는 형태가 아닌, 착취를 통하지 않고 생산하는 그런 방식이 될 것이다. 예전에 김현이 자주 그랬다. ‘문학은 억압하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문학하라는 얘기 아니다.) 억압하지 않고 영향력을 끼치는 행위. 그게 뭘까? 니체는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라고 외치면서 예술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난 정반대로 사랑을 염두에 둔다. 사랑. 고작? 그렇다. 사랑으로 남성적 권력의지에 터 잡고 있는 문화가 극복되지는 못하겠지만, 거기서 파생되는 엄청난 고통을 완화시킬 수는 있기 때문이다. 고로, 남자들이여, 사랑할 능력이 모자라거든 최소한 지속적인 위선의 능력을 보여 달라. 소통의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여야 하지 않겠는가. ⓒ jamin20
강간
덧글
(1)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131
[132]
133
134
135
136
137
138
139
140
제목 + 내용
이름
태그
검색
최근이웃블로그
나의 사랑, 나의 일...
명철블로그
즐겨찾기
재원이랑 재용이랑...
사랑과 음악......
시인의 방
쌍둥이엄마의 이판사...
허브아기의 만화가게...
블로미와 함께하는...
커피 이야기
푸른잎이 가져다 ...
하쿠나마타타
日新又日新
만화로 보는 이선...
내안의 자연 - ...
cebu life/...
행복한 우리 수현...
▒ 落書 葉書 ▒...
제목+내용
닉네임
태그
검색
today
0
| total
3209
0
명에게 즐겨찾기
1
회 스크랩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