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 가기
ㅣ
내 블로그 글쓰기
ㅣ
내친구 블로그
로그인
ㅣ
블로그 산책
ㅣ
사랑으로 상처받기 보다는 사랑하라
당신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합니다
http://blog.azoomma.com/silkjewel/
블로그
|
일기
|
프로필
|
방명록
|
흔적
|
RSS 구독
이웃블로그 (0)
[
신청하기
]
|
즐겨찾기 추가
비단모래
(silkjewel)
당신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합니다
카테고리
전체보기
(2026)
오르가즘 -그 아름다운 비밀
(35)
엄마와 추억만들기
(65)
사랑밖엔 난 몰라
(1873)
내가 사랑하는 시한편
(31)
아들아!너도 아빠처럼 멋진 남편이 되거라.
(4)
내사랑 계족산
(12)
기본 주제방
(6)
제목+내용
닉네임
태그
검색
최근 방문자
재재맘
선녀님
dkwnaak
운주산야풍
최경상
뉴욕의태양
mango
올리비아
brabrakim
황정숙
즐겨찾기
살아가는 것들의 ...
happy life...
포토다큐
햇살한줌
그대가 머무는곳....
bird's-eye...
무산농원
봄의 길목의 둥지...
이런저런 얘기
마지막을 위하여...
절망에 물들지 않...
아침편지 가족공간...
최근 덧글
섹슈얼 감 구경오세요
아버지의 꽃
4월 첫 날
김장은 협동과 사랑나눔이다
고향에
36년 전의 택일지
우리동네 칼국수집
오래된 것들에 대한 연민
고마운 하루
꽃이 되었다
today
0
| total
16222
44
명에게 즐겨찾기
2
회 스크랩 되었습니다
loading..
아침단상. | 엄마랑 추억쌓기 2005.11.24 한치 앞 우리의 인생길을 알 수 없듯이 안개 자욱한 아침이다. 우울한 뉴스가 들리는 아침...왜 지하철로 뛰어 들었을까? 어떤 상처였기에 견딜 수 없었을까? 자신의 몸에 불을 놓은 그 농부의 심정은 얼마나 절박 했을까? 살아있음에서 죽음을 택해야 했던 사람들 죽음이 선택이 아니라 그냥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면 안되는 걸까?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순간 얼마나 두려울까? 왜 살아있음을 선택하지 못했을까? 그들의 마음을 알지못해 그들이 선택한 죽음을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 선택은 옳은걸까? 엄마의 한복치마 엄마가 남겨놓은 옷을 정리하다 가져 온 벨벳치마...... 스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벨벳 바지를 가져와 벨벳 숄하나를 만들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손에 없어졌을...태워졌거나 아님 헌옷수거함으로 들어갔을지 모를 옷이...다시 생명이 되어... 내 몸에서 숨 쉴수 있게되었다. 엄마가 한복을 곱게 입고 나서던 길목 참 환했었다. 돌아가셔서 마지막 의과대학으로 가시던 그날도 엄마에게 평소 엄마가 아끼고 잘 입으시던 옥색 한복을 입혀드렸다. 그냥 주무시는 것 같이. 모양은 바뀌었어도 엄마의 흔적이 남은 스커트와 숄. 누구의 소설 제목처럼 '죽음보다 깊은 잠' 자지않고 새로운 아침을 맞게되어 다행이다.
사랑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마지막 선물 | 엄마랑 추억쌓기 2005.11.22 아버지와 저녁 약속을 하고 아버지께 갔는데 베란다에 주먹만한 무가 옹기종기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니 엄마가 심어놓고 간 것인데......이거 심어놓고 아픈 바람에...그리고 떠나는 바람에......돌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자랐다. 가져가서 김치담아라" 실은 더럭 겁이 났지만 뽑느라고 고생하신 아버지 맘도 그렇고 아내가 남겨놓은 마지막 손길을 자식들이 감사히 여겨야 기뻐하실 것 같아 두단을 선뜻 들고 오고 말았다. "나머지는 네 오빠들 내려와 가져간다고 했으니......" 우리가 주택에 살 때......집을 세주고 아파트로 두분이 이사하셨다. 아파트의 편리함 때문에 우리는 두분을 편안히 살게 하고 싶어 아파트를 장만하고 이사하는 날...엄마는 싫어하셨다. 그동안 함께 살아온 골목 사람들과, 함께 한 울타리에서 살던 사람들과 정이 많이 들으셨다. 음식을 많이 해서 나누어 먹고 함께 김장하고 함께 장을 담그고 도시속에서도 시골같은 정을 나누며 살아오신 세월들을 나눌 수 없음을 섭섭해 하셨다. 아파트로 이사한 2년후 쯤, 세 놓았던 주택집 앞으로 길이 났고 우리집은 헐리고 말았다. 같이 살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이사가고 길이나고 남은 땅이 덩그마니 남았다. 그곳이 엄마의 텃밭으로 변했다. 엄마는 그곳에 한약찌꺼기를 사다 묻었고 계분을 사다 부어 고랑을 내고 여름에는 상추 쑥갓 열무를 심었고 호박도 서너군데 심으셨다. 하루에도 몇번씩 아파트에서 오가며 발자국 소리를 들려줬고 무공해 야채라고 가져다 먹으라 전화를 하셨었다. 무 다섯개는 신문지에 싸서 야채박스에 넣어놓았다. 그곳에 감장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을 하셨고 고추를 심어 풋고추를 따서 양념을 하셨다. 올해도 엄마는 그곳에 200포기의 배추와 무. 갓. 파를 심으셨다. 그리고 며칠 후 어깨에 담이 든것 같다고 아파하셨다. 그길로 병원에 입원하고 엄마 몸 전체에 퍼져버린 암세포때문에 엄마는 자신이 심어놓은 배추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해 하시면서 답답해 하셨다. 아버지께 배추가 어떤지 보고오라고 하셨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주 잘 크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잘 커야 김장 할텐데......" 김장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엄마는 그만 떠나시고 말았다. 무를 들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남편이 놀랐다. "또 아프면 어쩌려고......" "엄마 마지막 남긴 건데....힘들어도 해 봐야지....." 부지런히 다듬는데 남편은 뭐 도울거 없느냐고 주방을 기웃인다. 직장일로 학교로 친정으로 하루종일 뛰었을 아내가 밤에 김치를 담근다고 하니 안스러운 모양이다. 무 다듬은 쓰레기를 묶어 버려주고 들어온다. "시레기 삶아서 냉동실 넣어줘" 남편은 시레기를 한주먹씩 짜서 봉지에 담으며 "무청이 통통해서 맛있겠다"한다. "땡큐~^*" 동치미를 담글까 하다가 절여진 무를 타원형으로 잘라넣고 무청은 반만 잘라 길게 넣고 풀국에다 고추가루 조금. 생강. 마늘.소금 대파는 숭숭 잘라 맨밑에 깔고 물김치를 담갔다. 동치미는 시어지면 먹기 나쁘지만..이 김치는 익어도 시원하게 먹을 수 있기때문이다. 이 김치가 익을때쯤 엄마 49제가 돌아올텐데. 가슴이 뻐근하게 아프다. 앗..새우젓을 다지지 않고 넣었더니 여기저기 보이네 아들이 말했다. "두 할머니가 엄마 배신하고 가시니 엄마가 힘드네...와 맛있는 냄새나는데요" 일일이 사진을 찍고 글로 남겨놓는건 엄마가 마지막 주고 가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엄마가 심은 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무 어디쯤 엄마 손길이 남아 있을까? 고랑에 열무씨를 놓던 엄마의 모습이 아른하다. 배추는 오빠랑 언니들이 잘 묶어놓았다고 했다. 이번주 쯤 내려와 김장을 한다고 했다. 아마 오빠들도 엄마가 남겨놓고 간 마지막 선물에 가슴이 짠 하리라. 다시는 받을 수 없는 엄마의 선물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간직하리라. 보고싶다......병원에서 함께 사진 찍으며 V를 그리던 엄마~ 보고싶다. 오늘 밤 무지.
사랑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얼레빗,참빗 | 엄마랑 추억쌓기 2005.11.05 엄마의 화장대를 정리하다 나온 엄마가 쓰던 참빗과 얼레빗과 비녀. 엄마를 기억하며 가지고 왔다. 엄마 머리는 삼단같이 긴 머리였다. 위암으로 수술하기 전 까지는. 엄마가 머리를 빗을 때 마다 아버지가 머리를 따주셨고 엄마는 단정히 비녀를 꽂았다. 그리고는 화려한 한복을 입으셨다. 어디를 나가도 엄마는 눈이 부셨다. 동백기름을 바른 머리는 반들거렸고 머리카락 한올도 흐트러지지 않으셨다. 참빗으로 결곱게 빗은 엄마의 머리가 그리운 밤이다. 내가 철이 들기시작하면서 본 엄마의 머리는 쪽진 머리였다.젊은 나이인데도 비녀를 꽂은 엄마는 할머니같았고 그런 모습을 하고 학교라도 올라치면 나는 엄마가 다른아이들 엄마처럼 파마를 하고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엄마의 쪽진 머리는 엄마의 트레이드 마크였다.윤기나게 검은 엄마의 머리는 앉으면 땅에 닿을정도로 길었다,혼자서는 머리를 따서 쪽을 찌기가 불편하니까 엄마는 가끔 내게 머리를 땋아 달라고 하셨다.나는 엄마의 긴 머리를 만지면서 동백기름이 손에 묻는것이 너무도 싫었다.긴머리를 참빗으로 촘촘하게 빗어내리고 거기에 동백기름이나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엄마의 머리는 그야말로 반짝반짝하게 빛이났다.앉은 화장대 앞에서 엄마는 머리를 빗으며 참 행복해 했다.엄마의 머리가 참으로 무서웠던 적도 있다그건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때인데 엄마는 그 긴머리를 풀고 곡을 하고 계셨다.그 뒷모습이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무서운할머니 같았다.내가 시집온 후로 엄마의 머리를 땋아주는건 아버지 몫이였다,아버지는 엄마의 긴 머리를 척척 잘도 따 내리셨다.아내의 머리를 땋아주며 행복해하던 아내를 위해 아버지는 싫다 내색 없이 엄마의 머리를 책임지고 있었다.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추운 겨울날에도 엄마는 은비녀를 단정히 꽂고 한복을 입고 계시면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어디를 가든 엄마는 눈에 띄였고 고운 한복과 어울린 한국여인네의 자태를 간직하고 계셨는데...위암3기의 엄마는 수술전날 그 긴머리를 자르셨다.병실에서 보자기를 걸치고 미용실 아줌마의 가위에무참하게 잘려나가는 엄마의 머리를 보는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엄마에게 긴머리는 목숨과 같은 것이었는데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었는데입을 꼭 다물고 눈을 감은채 자신의 머리가 잘려지는 순간 엄마는 무슨생각을 하셨을까?아버지는 검은 비닐봉지에 엄마의 긴 머리를 주워담아 조끼 주머니에 넣으셨다아마 아버지에게도 특별한 엄마의 머리이리라아침마다 아내의 머리를 빗기며 나누었을 은근한 사랑도 있었으리라그머리는 아마 아버지의 책상서랍에서 엄마의 옛시간을 안고 간직되겠지엄마는 짧게 머리를 깎고 아주 귀여운 할머니 모습으로 돌아왔다이쁘다고 엄마 정말 이쁘다고 말했지만 엄마는자신의 머리가 잘려나간것에 텅빈 가슴으로머릴 만지고 계시겠지물론 엄마의 머리는 시간이 가면 다시 길겠지만이젠 우리엄마는 암투병을 하면서 그 아름다웠던 쪽진 머릴 다시는 할수 없을지도 모르지우리 6남매에게 지조를 알게한 엄마의 긴 머리가 잘려나가듯 엄마 몸속에 있는 암세포까지 잘려나가기를 기원 하며 엄마의 쾌유를 진심으로 빈다 2003년에 썼던 글을 다시 옮긴다
사랑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2005년 10월28일 금요일 새벽 2시30분 참으로 고요하게 엄마는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단풍길을 두고 참으로 맑은 가을 하늘을 두고 아버지의 쓸쓸한 얼굴을 남겨두고 육남매의 가슴에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두고 엄마는 현옥이 엄마는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어찌도 그리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감고 계시는지 현옥엄마는 사후신체를 병원에 기증하셔서 본인의 뜻에 따라 엄마를 병원 연구동에 남겨두고 돌아왔습니다. 참으로 아프고 슬프지만 엄마는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쳤습니다. 엄마는 아주 중요한 연구자료로 쓰여질 것입니다. 엄마! 벌써 엄마가 보고싶으니 어쩌지? 그렇게 많이 울었는데도 엄마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보고싶네 엄마 정말 고마웠고 엄마 딸이게 해줘서 행복했고 나 많이 사랑해서 정말 행복했어요 엄마! 홀로 남으신 아버지 잘 지켜주시고 많이 울던 큰오빠 작은오빠 막내..그리고 목놓아 울던 엄마 딸들 엄마가 잘 지켜줘요 엄마집에서 돌아오면서 충남대학병원을 지나오며 문득 엄마가 지금 저기 어디쯤 있을거란 생각에 눈물이 많이 났어요. 우리 엄마 외롭지 않았음 좋겠는데 우리 육남매 가슴속에 남아있는거 일았으면 좋겠는데 엄마 우리두고 가시면서 얼마나 돌아보셨어요 아버지 두고 가시면서 얼마나 안타까우셨어요 엄마가 그리도 사랑하던 아버지 그리도 좋아하던 아버지 였는데. 엄마 이번에 보셨죠 우리 육남매 얼마나 세상을 열심히 살았는지 엄마 큰오빠가 얼마나 훌륭한지..얼마나 막내가 멋있는지 작은 오빠가 얼마나 일처리를 잘하는지..후하게 대접하라던 엄마의 말씀에 따라 며느리들이 엄마뜻에 따른 손님대접을 훌륭하게 했어요 그리고 엄마 딸들과 사위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엄마 손자 손녀들이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지.. 엄마 마음이 놓이셨죠? 엄마가 낳은 육남매가 그렇게 밝게 세상을 살았어요 엄마가 늘 이웃에게 풍족하게 해라..라고 말씀하셔서 였는지 모든게 풍성했고 정말 많은 분들 다녀가셨어요. 엄마 나 그런데 지금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요 아무말도 못쓰겠어요 아침에 마지막으로 엄마와 작별인사 할때 엄마의 싸늘한 볼을 만졌는데 엄마 딸 손길 느꼈어요? 아~정말 그땐 너무 슬펐어요 엄마 ! 조문오신 분들이 엄마 영정사진을 보고 많은 분들이 칭찬하셨어요 생전에 엄마가 가장 행복해하던 모습을 쓰자고 했는데 엄마 하늘나라 가서도 장구치고 살라고 엄마가 장구대회 나가서 수상하셨을 때 사진 이잖아요. 그날 엄마 딸 앞에서 참 행복해 하셨잖아요. 엄마! 세월이 가면서 엄마와의 추억때문에 많이 아파하겠지만 잘 지낼께요 아프지 않고 건강할께요 열심히 공부해서 이루고자 하는 뜻 꼭 이룰께요 엄마 사랑했어요 엄마 딸이라서 행복했어요 엄마 안녕!! 안녕!!
사랑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국화옆에서 | 엄마랑 추억쌓기 2005.10.27 국화옆에서 서 정 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니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엄마! 국화가 피어나는 계절인지 엄마는 알고나 있는지 오늘밤 엄마의 얼굴은 핏기가 가시고 입술이 까맣게 타고 있었어 링겔이 들어가는 손은 퉁퉁 부었고 엄마손을 가만히 만져도 미동도 하지않는 엄마가 너무나 안쓰럽네 요즘 거리의 노란 은행잎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 병원에서 나오며 중촌 네거리를 운전하며 오다 노란 은행잎이 무성한 길을 지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엄마를 불렀어 엄마의 얼굴이 노오란 은행잎 같았어 엄마! 우리가 병원에 가서 하는말 알아듣기는 하는거야? 엄마랑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었던 그때 우리가 가면 노래하라고 해서 노래 부를 수 있었던 그때 그때가 그립네. 오다가 엄마 담당 의사선생님을 만났어 이제 엄마에게 어떤 검사도 하지 않기로 했다네 난 그래서 우리엄마 아프지 않도록만 해달라고 했어 아프기 전에 진통제놓고 진정제 놓고 수면제 놓으라고 했어. 그렇게 라도 며칠만 더 견뎌줘 하루라도 더 견뎌줘 엄마가 이땅에 없다면 노란 은행잎도 국화도 아름답지 않을거야 엄마 가을엔 떠나지 말아 너무 슬플 것 같아 그렇잖아도 내겐 너무 아픈 가을이거든 엄마 있지... 동생 회사에서 공모전이 있었는데 내가 아이디어를 냈잖아 그게 1등상을 탔어 엄마가 알았으면해 동생이 상품권을 전부 나를 주면서 좋아하는 모습에 아버지도 많이 기뻐하셨어. 정말 우리에게 기쁜일 많은데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네. 엄마의 핏기없는 노란 얼굴 '엄마' 하고 부르면 '왜 딸아'하던 그목소리 듣고 싶네. 자꾸만 줄어드는 엄마와의 시간 슬프네.. 엄마 나 지독한 감기에 걸렸어. 면역성이 많이 떨어졌대 맥도 무지 약하대. 이러면 엄마는 그랬지. 엄마손은 약손이라고. 엄마의 약손이 그리운 밤이네. 엄마~이밤도 무사히 넘겨줘 내일 일 마치는 대로 엄마에게 갈께. 그리고 또 일요일은 엄마곁에서 잘께.엄마 손 잡고.
사랑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391
392
[393]
394
395
396
397
398
399
400
제목 + 내용
이름
태그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