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화장대를 정리하다 나온
엄마가 쓰던 참빗과 얼레빗과 비녀.
엄마를 기억하며 가지고 왔다.
엄마 머리는 삼단같이 긴 머리였다.
위암으로 수술하기 전 까지는.
엄마가 머리를 빗을 때 마다
아버지가 머리를 따주셨고
엄마는 단정히 비녀를 꽂았다.
그리고는 화려한 한복을 입으셨다.
어디를 나가도 엄마는 눈이 부셨다.
동백기름을 바른 머리는 반들거렸고 머리카락 한올도 흐트러지지 않으셨다.
참빗으로 결곱게 빗은 엄마의 머리가 그리운 밤이다.

내가 철이 들기시작하면서 본 엄마의 머리는 쪽진 머리였다.젊은 나이인데도
비녀를 꽂은 엄마는 할머니같았고 그런 모습을 하고 학교라도 올라치면
나는 엄마가 다른아이들 엄마처럼 파마를 하고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엄마의 쪽진 머리는 엄마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윤기나게 검은 엄마의 머리는 앉으면 땅에 닿을정도로 길었다,
혼자서는 머리를 따서 쪽을 찌기가 불편하니까 엄마는
가끔 내게 머리를 땋아 달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의 긴 머리를 만지면서 동백기름이 손에 묻는것이 너무도 싫었다.
긴머리를 참빗으로 촘촘하게 빗어내리고 거기에 동백기름이나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엄마의 머리는 그야말로 반짝반짝하게 빛이났다.
앉은 화장대 앞에서 엄마는 머리를 빗으며 참 행복해 했다.
엄마의 머리가 참으로 무서웠던 적도 있다
그건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때인데 엄마는 그 긴머리를 풀고 곡을 하고 계셨다.
그 뒷모습이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무서운
할머니 같았다.
내가 시집온 후로 엄마의 머리를 땋아주는건 아버지 몫이였다,
아버지는 엄마의 긴 머리를 척척 잘도 따 내리셨다.
아내의 머리를 땋아주며 행복해하던 아내를 위해 아버지는 싫다 내색 없이
엄마의 머리를 책임지고 있었다.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추운 겨울날에도 엄마는 은비녀를 단정히 꽂고
한복을 입고 계시면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든 엄마는 눈에 띄였고 고운 한복과 어울린 한국여인네의
자태를 간직하고 계셨는데...
위암3기의 엄마는 수술전날 그 긴머리를 자르셨다.
병실에서 보자기를 걸치고 미용실 아줌마의 가위에
무참하게 잘려나가는 엄마의 머리를 보는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에게 긴머리는 목숨과 같은 것이었는데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입을 꼭 다물고 눈을 감은채 자신의 머리가 잘려지는 순간 엄마는
무슨생각을 하셨을까?
아버지는 검은 비닐봉지에 엄마의 긴 머리를 주워담아 조끼 주머니에 넣으셨다
아마 아버지에게도 특별한 엄마의 머리이리라
아침마다 아내의 머리를 빗기며 나누었을 은근한 사랑도 있었으리라
그머리는 아마 아버지의 책상서랍에서 엄마의 옛시간을 안고 간직되겠지
엄마는 짧게 머리를 깎고 아주 귀여운 할머니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쁘다고 엄마 정말 이쁘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자신의 머리가 잘려나간것에 텅빈 가슴으로
머릴 만지고 계시겠지
물론 엄마의 머리는 시간이 가면 다시 길겠지만
이젠 우리엄마는 암투병을 하면서 그 아름다웠던 쪽진 머릴 다시는 할수 없을지도 모르지
우리 6남매에게 지조를 알게한 엄마의 긴 머리가 잘려나가듯 엄마 몸속에 있는
암세포까지 잘려나가기를 기원 하며 엄마의 쾌유를 진심으로 빈다
2003년에 썼던 글을 다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