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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부터 오늘아침까지 웃음과 사랑을 뜸뿍 안겨준 채원이를 대전역에 내려주고 출근했다. 제아빠 병원 출근이 나이트란다. 기차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잔다 칙폭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잔다. 차안에서 채원이는 노래를 불렀다. 아침에 할아버지가 출근할때 "할아버지 안녕히 계셔요" 하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 할아버지 회사가서 돈 벌어서 채원이 까까 살줄게"라며 애써 섭섭함을 감추던 채원 할아버지.. 어떡하냐 너 가면 니 할머니 허전해서..오늘저녁 퇴근해 오면 집이 썰렁 할텐데.. 오히려 내걱정이다. 온집안 흐트러졌고 군데군데 낙서도 남긴 채원이.내 손녀. 함머니도 케티엑스타고 채원이랑 가요.. 큰 눈으로 바라보던 아가. 추석에 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가는 손녀에게 손을 흔들며 허전함속에 다시 그리움을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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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에 손녀를 내려주고 보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태풍 말로가 또 오고 있다는 소식에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한 월요일 내 책상에 조그만 메모하나가 놓여잇었다. ㅋㅋ...아프지말고..오래 하세요..ㅋㅋ 누구인지 모르겠다. 이름도 없다. 말랑한 ..마음이 환해진,파란색 손목보호대 탄력성이 우수한 젤 타입의 손목보호대라고 써있는 케이스를 뜯으며 마음이 푸근해졌다. 어느 후배가 내가 요즘 손목이 아파서 우울해 하고 있으니 놓고 간 것이리라. 그렇게 가만히 사랑을 놓고간 사람은 누구? 오늘 하루 일하면서 이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어려움에 있는 분들께 나도 따뜻함을 전하는 글을 쓰리라. 오늘...행복하게 지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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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부적 오랫동안 실업자였던 그는 며칠 전부터 도로변 화분에 꽃을 심는 공공근로를 하고 있었다. 화분 안에 심겨진 팬지가 노랑나비처럼 봄바람에 팔랑거렸다. 보도블록 틈 사이로, 무수한 행인들의 발걸음 속에서도 살아남은 노란 민들레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 생명력에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그는 지갑 속에서 뭔가를 꺼내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네, 그게 뭔가?" 동료인 김씨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부적이네." "부적? 부적이 뭐 그래? 그냥 흰 종이쪽지구먼." 그 흰 종이쪽지는 누가 뭐래도 그에게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효과 만점인 희망부적이었다. 그는 종이쪽지를 접어 다시 지갑 속에 집어넣으며 생각에 젖어들었다. 석 달 전의 일이었다. "나가! 이제 당신 얼굴도 보기 싫어!" 소파에 앉아 하릴없이 비디오를 보고 있던 그에게 퇴근한 아내는 쿠션을 집어던졌다. 그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텔레비전을 끈 다음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내는 날이 갈수록 사나워지고 있었다. 그가 7개월 전에 실직을 한 다음부터 그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는 급속도로 달라졌다. 그는 이리저리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으나 청년 실업자도 수두룩한 판국에 쉰 줄에 가까운 그를 써주겠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학비를 벌기 위해 아내는 식당에서 하루 열두 시간이나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험한 일이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아내의 짜증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고, 퇴근만 하면 그에게 신경질을 부리곤 했다. 두 아이의 학비와 학원비를 줄일 수도 없는 일이었고 아직 아파트 대출금도 다 갚지 못한 터였다. "첫째야, 오늘이 아버지 제삿날인데 올 수 있겠니?" 아침에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그는 한숨이 나오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시간 아내는 식당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접시를 닦고 있을 것이다. 아내에게 제사를 지내러 가자는 전화를 하려다가 그는 수화기를 도로 내려놓았다. 시골집 대문 앞에는 그와는 10년 터울인 동생의 벤츠가 주차되어 있었다. 벤츠 옆에 주차된 그의 오래된 승용차는 칠이 벗겨지고 군데군데 흠집이 나있어 아주 초라해 보였다. "온다고 욕 많이 봤데이." 어머니가 그의 손을 잡고 애잔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어머니를 볼 때마다 그는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작은아들은 잘나가는 변호사인데 맏이가 실업자 신세를 못 면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는 묵묵히 지방을 쓰고 제사상에 제수를 진설했다. 절을 끝내고 나서는 동생과 음복을 했다. 아주 쓸쓸하고 조용한 제삿날 풍경이었다. 동생과 어색하게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해 그는 자리에서 일찍 일어섰다. 다음 날 출근할 것도 아니면서.. 그는 붙잡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시골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참 어둠 속을 달리던 그는 한 손으로 양복 주머니 속의 담배를 찾았다. 그런데 주머니 속에서는 담배 대신 꽤 두툼한 봉투가 나왔다. 그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 속에는 꼬깃꼬깃한 지폐 뭉치와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는 실내등을 켜고 편지를 들어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째야 우야던동 히믈 일지 말거래이. 이 에미는 니만 잘 데라꼬 조상님 전에 빌고 또 빈다. 누가 뭐라케도 니는 내한테 시상에서 질로 귀한 아들이다. 어깨를 피거래이. 소기 탄다꼬 담배 너무 피지 말고 힘들 때일수록 모믈 잘 건사하거래이. 울매 안 되지만 이 돈으로 식구들하고 맛난 것도 한번 사 머거라. 살다보마 해가 뜨는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는 기다. 눈보라 치는 날도 있고 말이다. 지금은 추븐 겨울이지만 쪼매마 이쓰마 니한테도 꼬치 피는 보미 꼭 올 끼다. 내는 우리 아들을 민는다. 이 에미가 아들한테 이 말 한마디는 꼭 하고 시프다. 사랑한데이! 우리 아들. 늘근 에미가 쓴다. 글씨라기보다 괴발개발 그린 그림에 가까운 어머니의 편지는 소리 나는 대로 쓰는 바람에 맞춤법이 엉망이었다. 학교 문 앞에도 못가본 어머니는 글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실의에 빠져 있는 맏아들을 위하여 일흔이나 된 연세에 힘들게 글자를 배웠던 모양이었다. 그는 가슴이 먹먹해져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명치께에 아릿한 통증이 왔다. 잠시 생각에 젖어있던 그는 어머니의 편지를 정성스레 접었다. 그리고는 편지를 지갑에 넣어 양복 안주머니 속에 넣었다. 사랑한데이, 하는 어머니의 정겨운 음성이 그의 쓰라린 가슴을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희망부적을 가슴에 품은 그는 운전대를 잡고 어깨를 쫙 펴보았다.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그의 앞에서 어둠이 검은 물살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출처 : 희망라면 세 봉지(김옥숙 지음) ********************************************* 지갑 속에 꽂혀있는, 핸드폰 액정 속에 담겨있는 저마다의 사진들을 보면 아, 누구나 희망부적 하나쯤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의 삐뚤삐뚤한 편지 한 장, 당신을 믿는다는 그 한마디,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랑하는 사람의 따스한 말 한마디, 우리들의 희망부적이 아닐까요? 이현옥시인님께서는 어떤 희망부적을 가지고 계신지요? 2010. 9. 6. - 밝은태양 - *음악이 안나오면 메일하단의 표시하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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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이 증조할아버지 여든셋의 할아버지는 세살 증손녀를 보시고 활짝 웃으셨다. 노래를 불러드리고 만져드리는 어린 손길 그 손길이 얼마나 귀여우셨을까? 채원이 대전에 내려오면 아버님께 간다. 채원이를 보시면 기뻐하신다. 손자의 아기..대견해 하신다. 채원이의 재롱은 오랜 병상에 계신 할아버지를 활짝 웃게 만들었다. 채원이도 할아버지께 가서 마음껏 재롱을 부린다. 할아버지 얼른 나으세요,,하면서 아버님은 어린증손녀에게 어떤 위안을 얻으셨을까? 할아버지 다리를 주무르며 호를 하던 채원이의 고사리손 아버님이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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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방에서 배운 노래와 무용으로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준 저녁 집안이 웃음으로 가득찼다. 채원이는 제 아빠 이이폰을 기가 막히게 다룬다. 동영상도 찾아 보고 노래도 찾아듣고 만화영화도 보고잇다. 격세지감... 그러며 두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어려서 이렇게 핸드폰과 컴퓨터를 가지고 놀면 정서감은 어떡할까? 두번째는 저 어린게 나도 겁나서 바꾸지 못하는 저런 기계를 다룰줄 안다는게 신기하다. 요즘 식당에 가보면 어른들은 밥을 먹고 아가들은 핸드폰에서 나오는 만화영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우리채원이도 뽀로로만 틀어주면 그만이니 이해가 간다. 핸드폰 화면을 손으로 쓱쓱 문지르며 제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아기 현대문명은 이렇게 아기들마저도 문명속에 끌였다. 이것을 가지고 놀면 몇시간이고 집중하는 아가. 이세상 모든 흥미로운 것들이 이 기계안에 있다니.. 그래서 우리는 채원이가 오면 밖으로 데리고 다니며 체험을 하려고 한다. 박물관 과학관 놀이공원 이런곳을 다니며 손으로 만져보게하고 눈으로 보게하고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다. 어제도 시골로 데려가 닭 돼지 소 그리고 들판의 벼 콩 해바라기꽃 코스모스꽃을 보여주었다. 아 이쁘다~하는 감탄사를 가르쳐주었다. 아..이쁘다...아 이쁘다를 연신 하는 채원이를 보면서 눈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라기를 바랐다. 남편이 어머님 산소에 벌초를 가면서 오늘은 지벵서 푹 쉬란다. 뜨거우니 따라오지 말란다. 허긴 따라가도 손도 못쓰니 아무것도 도와줄수가 없으니 오히려 신경만 쓰일것 같았다. 다음주에 친척들이 모여서 벌초를 한다는데 어머님 산소는 장남인 남편이 해마다 한다. 채원이와 노래도 하고 블럭쌓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덕으로 제아빠가 어려서부터 가지고 놀던 미니카가 종류대로 많이 있어서 그것도 이젠 채원이가 대를 물려 가지고 놀게 되었다. 우리아이들도 어려서 이 미니카를 가지고 놀면서 거리에 다니는 자동차 이름을 아주 빠르게 익혔다. 다이아몬드 블럭을 가지런히 쌓아서 탁자에 올려놓는다. 아이와 무엇을 하며 농아야 할까. 어제 시골에 다녀오다가 봉숭아를 따왔는데 아이와 봉숭아물 들이며 예쁜 꿈물을 번지게 할까? 아니면 백화점 놀이시설 입장권이 있는데 거기를 데리고 갈까.. 하고 싶은건 많은데.. 시대가 참 많이 변했다. 기계가 아이들까지 차지하는 시대.. 나는 워낙 깊은 산골에 살았기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마치고 대전으로 전학오기 전까지는 전기불도 수도물도 자동차도 보지못하고 자랐다. 오직 산과 하늘 들판 개울이 내눈에 들어오는 전부였다. 아버지께서 어린딸을 위해 바가지 깨진것을 동그랗게 오려서 소꼽장난 거리를 만들어주셨다. 밥쭉정이에 나무를 끼워 수저를 만들었고 엄마 구리무 빈통은 아주 고급스런 살림이었다. 흙퍼서 밥하고 풀뜯어 반찬하고 개망초뜯어 계란 후라이하고 한상차려놓고 아저비께 잡수시라고 하면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덕으로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감꽃목걸이 만들어 주셨고 가을 알록달록한 감잎으로 치마를 만들어주셨고 토끼풀꽃 반지..그리고 토끼풀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쒸워주셨었다. 종이학을 접어 날려주셨고 가을이면 아카시아 나무에다 코스모스 잎을 꽂아 꽃방망이를 만드렁 주셨다. 위로 오빠둘은 나무로 총 칼 팽이를 가지고 놀때면 나는 아버지와 알콩달콩 놀았다. 학교에 들어가니 연필을 직접 다 깎아서 필통에 넣어주셨고 책장을 하얀 달력으로 싸서 붓으로 멋지게 과목이름과 내이름을 써주셨다. 뭐든지 만지게 하고 가슴에 안게 하고 바라보게 하셨다. 큰오빠가 대전중학교에 합격하는 바람에 시골에서 대전으로 나왔다. 처음으로 전기불과 수도물 자동차를 보면서 나는 도시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딸을 데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게하셨고 강아지풀을 만지게 하셨다. 내가 대전으로 이사와 전기불을 보고 별로 착각했던 그날 "아버지 대전은 왜 별이 땅에 있어요" 라고 물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그래 시골에서 있던 별들이 너를 지켜주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게 나중에 전깃불인걸 알았지만 처음엔 정말 그런줄 알고 안심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이런 체험이 나를 시인으로 방송작가로 만드셨을 것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않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형제들이 열심히 공부했을것이다. 청렴한 선비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욕심없이 사는 법을 터득했을것이다. 84세의 아버지는 아직도 우리큰딸이라고 부르시면서 ..자식들이름도 함부로 부르는 것 아니라시던 아버지 가르침이 세상을 조시믓레 살게 만드셨을 것이다. 가난했지만 가슴은 누구보다도 부자로 살게 만들어 주신 부모님 덕으로..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것이다. 우리손녀도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자라기 바란다. 그러자면 우리가 채원이 가슴에 아름다움 꿈물을 들여주어야 한다. 사랑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위대한 분이 우리에게 위탁하신 아름다운 선물을 잘 가꾸고 보호하는 일.. 우리가 겸허히 할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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