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방에서 배운 노래와 무용으로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준 저녁
집안이 웃음으로 가득찼다.

채원이는 제 아빠 이이폰을 기가 막히게 다룬다.
동영상도 찾아 보고 노래도 찾아듣고 만화영화도 보고잇다.
격세지감...
그러며 두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어려서 이렇게 핸드폰과 컴퓨터를 가지고 놀면 정서감은 어떡할까?
두번째는 저 어린게 나도 겁나서 바꾸지 못하는 저런 기계를 다룰줄 안다는게 신기하다.
요즘 식당에 가보면 어른들은 밥을 먹고 아가들은 핸드폰에서 나오는 만화영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우리채원이도 뽀로로만 틀어주면 그만이니 이해가 간다.
핸드폰 화면을 손으로 쓱쓱 문지르며 제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아기
현대문명은 이렇게 아기들마저도 문명속에 끌였다.

이것을 가지고 놀면 몇시간이고 집중하는 아가.
이세상 모든 흥미로운 것들이 이 기계안에 있다니..
그래서 우리는 채원이가 오면 밖으로 데리고 다니며 체험을 하려고 한다.
박물관 과학관 놀이공원 이런곳을 다니며 손으로 만져보게하고 눈으로 보게하고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다.
어제도 시골로 데려가 닭 돼지 소 그리고 들판의 벼 콩 해바라기꽃 코스모스꽃을 보여주었다.
아 이쁘다~하는 감탄사를 가르쳐주었다.
아..이쁘다...아 이쁘다를 연신 하는 채원이를 보면서 눈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라기를 바랐다.

남편이 어머님 산소에 벌초를 가면서 오늘은 지벵서 푹 쉬란다.
뜨거우니 따라오지 말란다.
허긴 따라가도 손도 못쓰니 아무것도 도와줄수가 없으니 오히려 신경만 쓰일것 같았다.
다음주에 친척들이 모여서 벌초를 한다는데 어머님 산소는 장남인 남편이 해마다 한다.
채원이와 노래도 하고 블럭쌓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덕으로 제아빠가 어려서부터 가지고 놀던 미니카가 종류대로 많이 있어서
그것도 이젠 채원이가 대를 물려 가지고 놀게 되었다.
우리아이들도 어려서 이 미니카를 가지고 놀면서 거리에 다니는 자동차 이름을 아주 빠르게 익혔다.

다이아몬드 블럭을 가지런히 쌓아서
탁자에 올려놓는다.
아이와 무엇을 하며 농아야 할까.
어제 시골에 다녀오다가 봉숭아를 따왔는데
아이와 봉숭아물 들이며 예쁜 꿈물을 번지게 할까?
아니면 백화점 놀이시설 입장권이 있는데 거기를 데리고 갈까..
하고 싶은건 많은데..



시대가 참 많이 변했다.
기계가 아이들까지 차지하는 시대..
나는 워낙 깊은 산골에 살았기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마치고 대전으로 전학오기 전까지는
전기불도 수도물도 자동차도 보지못하고 자랐다.
오직 산과 하늘 들판 개울이 내눈에 들어오는 전부였다.
아버지께서 어린딸을 위해 바가지 깨진것을 동그랗게 오려서 소꼽장난 거리를 만들어주셨다.
밥쭉정이에 나무를 끼워 수저를 만들었고
엄마 구리무 빈통은 아주 고급스런 살림이었다.
흙퍼서 밥하고 풀뜯어 반찬하고 개망초뜯어 계란 후라이하고
한상차려놓고 아저비께 잡수시라고 하면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덕으로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감꽃목걸이 만들어 주셨고 가을 알록달록한 감잎으로 치마를 만들어주셨고
토끼풀꽃 반지..그리고 토끼풀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쒸워주셨었다.
종이학을 접어 날려주셨고 가을이면 아카시아 나무에다 코스모스 잎을 꽂아 꽃방망이를 만드렁 주셨다.
위로 오빠둘은 나무로 총 칼 팽이를 가지고 놀때면 나는 아버지와 알콩달콩
놀았다.
학교에 들어가니 연필을 직접 다 깎아서 필통에 넣어주셨고
책장을 하얀 달력으로 싸서 붓으로 멋지게 과목이름과 내이름을 써주셨다.
뭐든지 만지게 하고 가슴에 안게 하고 바라보게 하셨다.
큰오빠가 대전중학교에 합격하는 바람에 시골에서 대전으로 나왔다.
처음으로 전기불과 수도물 자동차를 보면서 나는 도시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딸을 데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게하셨고 강아지풀을 만지게 하셨다.
내가 대전으로 이사와 전기불을 보고 별로 착각했던 그날
"아버지 대전은 왜 별이 땅에 있어요"
라고 물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그래 시골에서 있던 별들이 너를 지켜주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게 나중에 전깃불인걸 알았지만 처음엔 정말 그런줄 알고 안심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이런 체험이 나를 시인으로 방송작가로 만드셨을 것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않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형제들이 열심히 공부했을것이다.
청렴한 선비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욕심없이 사는 법을 터득했을것이다.
84세의 아버지는 아직도 우리큰딸이라고 부르시면서 ..자식들이름도 함부로 부르는 것 아니라시던
아버지 가르침이 세상을 조시믓레 살게 만드셨을 것이다.
가난했지만 가슴은 누구보다도 부자로 살게 만들어 주신 부모님 덕으로..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것이다.
우리손녀도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자라기 바란다.
그러자면 우리가 채원이 가슴에 아름다움 꿈물을 들여주어야 한다.
사랑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위대한 분이 우리에게 위탁하신 아름다운 선물을 잘 가꾸고 보호하는 일..
우리가 겸허히 할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