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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유난히 등을 잘 긁어 달라고 한다 저녁을 먹으면 으례 등을 내밀고 긁으라고 한다. 옳지 거기..어 시원하다~ 아들 둘도 어려서부터 등을 내밀었다. 엄마 손이 제일 시원하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집에 오면 등을 내민다. 아무래도 엄마손이 가야 등이 시원하다는 것이다. 엄마손 참 다행으로 아이들이 나를 기억할게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맛있는 밥을 해먹인것도 아니고 맛있는 간식을 해준것도 아니고 그저 되는대로 닥치는대로 시간되는대로 해먹여 아이들이 엄마를 기억할 때 기가 막힌 엄마 맛이 무언지 궁금하다. 물론 엄마의 닭도리탕..돼지고기 김치찌게 추어탕 ..나도 나만이 잘 할수 있는 음식이 있다고 자부하지만 이젠 그런 음식도 둘이사니 할 기회가 별로 없다 옥수수를 먹고 그 깡치를 햇볕에 말렸다. 까끌한 느낌이 좋다 그것을 프라스틱 대에 꽂았더니 근사한 효자손이 되었다. 나이가 먹으면 등 긁어주는 재미로 산다고 하는 말이 있다. 등 긁어 줄 사람만 있어도...서로 배우자가 있으면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살아갈 수 있다. 꼭 등이 가려워서가 아니라 마음이 가려운..쓸쓸함도 달래주기 때문이다. 이것을 만들어 놓고 재미 있어 했다. 어렸을 때는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손이 닿지않는 곳 등 깊숙한 곳은 이것으로 긁으니 좋다. -------------------------------------------------- -팁- 피부건조의 예방을 위한 생활관리 ① 심하게 피부를 씻는 일을 피해야 한다. ② 때를 밀거나 너무 뜨거운 목욕을 피한다. 매일매일 비누를 사용해 몸을 씻어내는 것은 좋지 않고 비누는 자극이 적은 민감성 전용 세정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③ 목욕은 샤워 정도의 수준에서 10분 이내로 하는 것이 좋으며 목욕 후 3분이내에 피부 보습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때 보습제는 피부의 보호막 성분인 세라마이드 성분이 포함된 것이면 더욱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목욕 후가 아니라도 건조함이 느껴지면 수시로 보습제를 발라주는 것이 좋다. ④ 수분을 충분하게 섭취하고 춥고 바람불고 건조한 환경을 피해야한다. ⑤ 겨울철 난방을 하는 실내의 경우 습도가 10~20%내외로 떨어지기 때문에 실내에 가습을 하여 습도가 40%에서 50%정도를 유지 하도록 하여야 한다. ⑥ 너무 가려운 경우는 즉시 피부과를 찾아 가려움증을 완화시키는 약을 처방 받는 것도 좋다. 긁어서 상처가 생겼다면 이 역시 바로 피부과를 찾아 치료를 받아야만 더 심각한 피부병을 예방할 수 있다. ⑦ 직접 피부에 닿는 의류의 경우에도 가급적 면 같은 천연 섬유를 입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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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9일~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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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순 나혼자의 진단이다. 손목이 아픈지 꽤 오래되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주사도 맞아보았고 물리치료도 받아보았다. 하지만 통증은 가실줄 몰랐고 세수하기도 머리 빗기도 아프다. 인터넷에서 비슷한 증상을 검색해보니 수근관증후군이란다. 요즘엔 아예 손목보호대도 하지않고 될대로 되라다. 간간 밀려오는 통증은 그냥 당하고 만다. 그래 너랑 같이 살자 설마 죽기야 할라고..오기가 생긴다. 그러다 나와 똑같은 증상으로 수술을 했다는 분을 만났다 여자들에게 흔히 있는 증상이라고 한다. 집안 살림에서 아기기르는데서 그리고 컴퓨터를 많이 헤서 생기는 증상 수근관 증후근. 수근관 증후근의 이해를 돕기위해 인터넷상의 글을 옮긴다. Q 수근관 증후군은 혈액순환과 전혀 관계가 없는 건가요? 네. 수근관 증후군은 손목을 많이 써서 손목터널 내의 신경에 문제가 생긴 것인데요. 우리 손목에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힘줄, 신경, 혈관 등이 지나가며, 이를 둘러싸고 보호하는 일종의 터널인 ‘수근관’이라는 통로가 있습니다. 여러 원인으로 손목 터널의 공간이 좁아지고 압박을 받으면서 손목 터널 내에 신경과 힘줄이 자극을 받아 발생하는 마비현상이 수근관 증후군이죠. 주로 손일을 많이 하는 가정주부, 컴퓨터 키보드나 마우스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또 악기 연주자, 미용사, 식당 종사자, 공장 노동자 등 손목을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도 잘 나타나는데요. 이 질환은 30~60세 사이에 흔하며, 남녀 모두에게 발생하지만 주로 여성에게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컴퓨터의 대중화로 남성이나 청소년에게도 적잖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손목 골절이나 외상 때문에 급성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갑상선 질환, 당뇨, 류마토이드성 관절염 및 임신 등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Q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손목을 안 쓸 수도 없고… 수근관 증후군은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합니다. 손목 터널이 압박을 받아서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손목이 구부려진 상태로 장시간 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손목과 키보드의 높이를 비슷하게 맞춰 손목에서 각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마우스의 과도한 사용을 자제합니다. 또한 가끔씩 손목, 손가락 등을 움직이며 운동을 해 주는 습관을 붙이면 효과가 있습니다. 만약 수근관 증후군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조기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한데요. 손이 저리거나 아프고 감각이 무뎌진다면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도록 합니다. 만약 손 저림 증상을 방치하거나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해 잘못된 치료를 하게 되면 수술 후에도 신경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근관 증후군의 치료는 증상이 심하지 않을 때와 증상이 심할 때,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증상이 심하지 않을 때는 손의 사용을 줄이고 손목에 부목을 대어 약 1~2주 정도 고정하면 호전될 수 있습니다. 또 소염진통제나 소량의 부신피질호르몬제 등 약물을 복용하거나 수근관내 스테로이드 주사로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마비가 있고 잠을 못 잘 정도로 손이 저리거나 아프다면 수술을 받는 게 좋은데요. 수술은 기존에는 손목부위를 절개해 피부 아래의 좁아진 손목 터널을 넓혀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최근에는 내시경을 이용해 최소 절개 후 수술하는 방법이 이용되고 있는데요. 이는 손바닥의 1cm 정도를 절개해 압박하고 있던 근육을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수술 당일 퇴원이 가능하고, 2주 정도 압박붕대를 감고 있어야 하지만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가져오진 않습니다. [김성훈 연세사랑병원 어깨·상지관절센터 소장] 그래서 나도 수술을 받고자 결정했다. 간단하다고 하니 마음도 놓이고.. 참 하다하다 못해 손까지 수술하게 되다니.. 내몸 여기저기 수술을 하게해서 미안하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하니 말이다. +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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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가르침 어린아이를 자동차에 태우고 길을 가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신호를 위반해서 경찰에게 적발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차를 한쪽에 세우고 경찰관에게 운전면허증 대신에 지폐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아이가 동그래진 눈으로 쳐다보자 아버지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다들 그렇게 한단다."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어느 날 삼촌이 찾아와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면 소득을 위장해 세금을 덜 낼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때도 아버지는 "괜찮아, 다들그렇게 하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중학생이 되었고 방학을 이용해 채소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소년이 하는 일은 오래된 채소 위에 신선한 채소를 얹어놓고 손님에게 갓 들어온 신선한 채소라고 속여 함께 포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상이 잘 오르자 주인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소년은 시험 기간에 부정행위를 하다가 근신 처리를 당했습니다. 소년의 부모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넌 대체 누구를 닮아 이러니? 왜 엄마 아빠를 닮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은 나쁜 짓만 하는 거야?" 소년은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아빠, 다들 그렇게 하곤 해요." * * * 몇년전 발송햇던 메일 내용중 일부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개각을 할때면 요직에 기용되는 고위직 인사들의 청문회.. 위장전입,부동산투기,병역의혹,국적문제, 이런 단어에서 언제쯤 자유로워 질지.. 언론을 통해 바라보는 서민들의 한숨만 깊어갑니다. 우리사회에 '노블리스 오블리제' 란 단어는 요원 한것인가? 2010. 8. 23. - 밝은태양 - * 음악과 함께 하시려면 메일하단의 표시하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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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경,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쟝-,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 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많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오늘 처서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는 길목... 마음을 가라앉히고 별을 헤고 싶다. 정말 오래도록 별을 바라보지 못했다. 문학소녀일때 이시를 많이 낭송했다. 다 외웠었는데 지금은 간간 생각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올 가을엔 이시를 한번 낭송해 봐야겠다. 아주 오래전 기억을 더듬으며 윤동주를 생각하며..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시인이다. 아호는 해환(海煥),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1936년 가톨릭소년지 동시 '병아리' 발표 윤동주 시인 연희전문학교 문과 1946년 유고 '쉽게 쓰여진 시' 경향신문 발표 1943년 사상불온·독립운동의 죄목으로 일본경찰에 피체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윤동주의 집안은 1900년경 함경도에서 만주로 이주하였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당시 북간도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 (지금의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룽징시 지산진)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중학교가 폐교되어, 광명중학교에서 졸업 후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41년 12월 27일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이 때에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立教大学)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여 그 해 3월 간도 용정에 유해가 묻혔다. 그의 죽음은 일제말의 생체실험에 의한 것이라는 의문이 수차례 제기되었다. 실제로 옥살이 중 윤동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아왔다 한다.[1] [편집] 사후 1948년 1월, 윤동주의 유작 31편과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루어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간행하였다. 1968년 11월 2일 연세대학교 등이 모금한 성금으로 연세대에 유작 〈서시〉가 새겨진 ‘윤동주 시비(詩碑)’가 건립되었다. 1986년 20대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선정되었다.[2] 199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92년 일본 도시샤 대학에 친필 〈서시〉와 일본어 번역본이 새겨진 시비가 건립되었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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