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 가기
ㅣ
내 블로그 글쓰기
ㅣ
내친구 블로그
로그인
ㅣ
블로그 산책
ㅣ
鳥監圖...烏監圖
세상을 보는 방법에 대해,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http://blog.azoomma.com/richard/
프롤로그
|
블로그
|
일기
|
프로필
|
방명록
|
흔적
|
RSS 구독
이웃블로그 (2)
[
신청하기
]
|
즐겨찾기 추가
카론
(richard)
나를 중심으로 다양한 세상의 모습과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정리해 놓는 곳입니다. 어서오세요.
문화/순수예술/문학
카테고리
전체보기
(841)
가족
家族 傳記
(15)
여행 일기
(43)
抒情 문학
에세이 落葉의 書
(17)
詩源
(0)
시사통신
정치/경제
(438)
사회/문화/국제
(231)
과학에세이
(97)
인기글
|
새글
인기글
|
새글
최근 덧글
현병철의 국가인권위는 상을 줄 자격이 없다. 한 여고생의 글
오랜 장마 끝에 하늘로 자라는 무지개를 보았네.
재용이 승마를 배우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 초상화
이상한 나라의 Alice
개일까? 곰일까? '카우카시안 오브차카'
생명을 대하는 태도, 극명한 두 대립
우주에서 가장 큰 별, 그 어마어마한 크기란...
10년째 새해 해 맞이
연탄배달 봉사 다녀왔어요.
최근 방문자
조은희
quinon
강재1
dkwnaak
박창순
인기태그
loading..
선거결과가 나왔으니 원인분석도 하고 책임도 추궁하고 처방도 내려야 할 시간이 왔다.이미 많은 분들이 진단을 내리고 제안을 했으나 배가 산으로 가지만 않는다면야 이런저런 제안은 많아도 괜찮겠단 생각에 걍 찌끄려 본다.많이 중복된 내용은 피하도록 하자. 1. 유시민 장관이 1년전 분석한 글에 의하면,우리당은 핵심지지층이 무너진 상태고 그 표는 한나라당과 민노당으로 쪼금만 가고 부동층이 됐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실망한 지지자들이 이탈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우리당의 정당득표율은 20%를 기록했다. 선거개시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 지지율을 나타내던 것과 비교해선 오히려 약간 상승한 게 아닌가싶다. 아마도 박근혜의 칼침 사건으로 인한 싹쓸이 위기감이 핵심 지지층 일부를 결집시킨것 같다. 간만에 막판 문자돌리기 신공이 발휘되기도 하지 않았나. 2. 문제는 무너진 핵심 지지층을 다시 복구하는 일이다. 박근혜 칼침 사건으로 약간의 계기는 마련됐으나 지속시킬 동력이 없다. 일반적으로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의 선명성을 높여야 한다. 상생과 협력도 물론 하되 개혁의 핵심내용에 관해선 양보하면 안된다. 그리고 상대의 마타도어에 침묵해서도 안된다. 부동산 정책에 조금이라도 딴지를 걸면 反민생적인 태도라고 몰아붙여야 한다. 사학법 문제 또 꺼내면 비리사학때문에 세금 축나고 교육비 부담 는다고 받아쳐야 한다. 오래된 不R 친구는 추억을 먹고 사는거다. 둘이 새로운 일이라고 해야 얼마나 있겠나. 마찬가지로 핵심 지지자는 무용담을 먹고 사는 존재다.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이 치고 올라왔을때의 희열,천정배가 원내대표 할때 천막에서 칼바람 맞으며 버틴 끝에 국가보안법이 폐지됐었다는 추억(물론 안됐지만), 광화문 거리를 메웠던 탄핵의 추억 등등을 먹고 사는게 핵심 지지자들이다. 이들에게 무용담 꺼리를 주는 일이 핵심 지지층 재건의 첩경이다. 3. 정당지지율을 보면 한나라당이 54%로 신기록을 세웠다. 허허님은 수구세력이 50%를 넘은건 보통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맞는 얘기다. 한나라당 평균인 30~40%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하지만 너무 슬퍼할 일은 아니다. 2002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득표율은 52%였다. 그때도 50%는 넘었었다. 경각심을 가지는 정도로 넘어가자. 그리고 지방권력을 교체할 방안을 생각해보자. 4. 지난 총선 이후 우리당이 그동안 추구해 온 노선은 실용주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지지율 까먹었다. 그럼 이제 바꿔볼때 된거 아닌가. 대권 욕심에 눈이 가려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계속 가고 있는데 이제 멈춰야 한다. 농구경기 보다보면 감독이 이때쯤 작전타임 부를것 같은 때가 있다. 즉,우리팀 공격은 계속 실패하고 상대팀은 연달아 득점 올릴때다. 지금이 작전타임 부를 타이밍이다. 작전타임 부르는 것 만으로도 핵심 지지층은 우리당으로 고개를 돌릴거다. 5. 좀 추상적이지만, 이제 한나라당을 상대로 정치하지 말고 국민을 상대로 정치해야한다. 국회의사당 안에 앉아서 한나라당이랑 맨날 지지고 볶지 말고 거리로 나와서 국민과 직접 만나고 국민과 정책을 흥정해라.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드는 순간 정치 무관심층은 점점 더 늘어갈거고 시장 자체가 줄어드는거다. 정치 무관심층이 관심을 보이게 된다면 그건 뭔가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있어서일테고 그런 일은 한나라당보단 그래도 우리당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즉,경쟁자의 지분을 뺏는데 쏟는 힘을 시장 전체를 넓히는 일에 쓰라는 말이다. 오프라인에서의 접촉 뿐만이 아니라 온라인의 접촉도 늘려야 한다. 열린우리당 홈피는 참 하품나온다. 좀더 유치하고 좀더 엽기적으로 바꿔야한다. 국회의원 나리들도 댓글 달고, 일상적인 모습도 공개하고, 딱딱한 정치만 말고 문화적인 감수성도 보여라(물론 이런거 잘못하면 졸라 유치하다.세련되게 좀 해보자) 인간적인 매력도 상품이 된다. 원래 불신자가 교회 나오는 건 사람보고 나오는 법이다. 대통령과 청와대에 추신) 이번 선거패배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30% 넘게 나와 당과 비슷하고 대통령과 정부를 합하면 50%에 육박한다. 모두 인정할 순 없으나 국민의 눈은 그런거다. (근데 해결책으론 대통령이 탈당하라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대통령은 안정모드로 진입해서 정책을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으니 특별히 요구할 건 없지만....한 가지만 하자. 국민과의 직접 접촉을 좀 더 늘리셨으면 한다. 청와대로 부르는 것 말고,국민과의 대화 이런거 말고,밖으로 나와서 재래시장 상인과의 자리도 만들고 중소기업 근로자와도 얘기하는 자리 말이다. 대선후보시절,노무현 후보는 확실히 그런 쪽에 강점이 있었다. 언론으로부터 습득된 여러가지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노무현을 직접 만나면 "생각보다 굉장히 똑똑하다(ㅡ,.ㅡ)" 거나 "신문에서 보는 것보다 합리적이고 온건하다" 고들 했다. 재래시장에 나가 깨를 볶고 있던 아주머니와 악수를 하게 됐는데,아주머니가 급히 장갑을 벗으려는 동안,깨가 탈까봐 주걱으로 깨를 볶던 장면이 있었다. 그 상황이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너무 자연스러워 노무현의 소탈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지금 노무현은 언론이 친 베일 뒤에서 편견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국민에게 비춰진다. 오만과 독선,고집과 막말의 이미지가 너무 두꺼워 개선의 여지가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결벽증이랄까 그런게 있는것 같다. 하지만 나쁜 방법도 아니고 없는걸 지어서 보여주는것도 아니고,원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면 그것만으로 많은 이로움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청와대 참모들아. 노대통령을 그렇게 가까이서 겪고도 모르나. 국민과 직접 만나게 하라. 언론의 탁한 창을 통하지 말고 직접 접촉하는 시간을 늘릴수록 정책추진도 한결 쉬워질거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장 성과나지 않을 장기과제에 유난히 천착했다. 그 결과 당장의 인기가 매우 낮다. 다음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간다면 참여정부를 누가 정당하게 평가해 준단 말인가. 김대중과 노무현이 씨앗 뿌려놓은거 한나라당 정권이 열매 따먹고 개혁정권 폄하하는게 국민에게 먹힌다면 당분간은 개혁세력이 정권 잡는거 물건너 가는거다. 잘 생각해보자. Copyright by 좌회전
제언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오늘은 제목부터 알바이히히 님을 표절하며 시작한다. 음 이제 조금 시원하다. 깨져도 참 시원하게 깨졌다. 홍만이 니킥에 제대로 맞은 느낌이다. 야구로 치면 콜드게임이요, 바둑으로 치면 만방이요, 유도로 치면 한판승이요, 당구로 치면 초구스키다. 스키 어원은 잘 모르겠고 한 큐에 끝내버리는걸 스키라고 한다. 예상을 했음에도 허탈한건 어쩔 수 없다.이렇게 될 정도로 열린우리당이 뭘 잘못했을까? 성폭행에 공천장사하는 한나라당은 뭘 또 그렇게 잘한걸까? 그렇다면 진짜 열린우리당은 무능하고 한나라당은 유능할까? 한나라당이 과거에 유능한적이 있었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내가 지지하지 않은 당을 찍은 사람을 뭐라할 수는 없다는게 결론이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도 살았는데, 박근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다고 못살거 없다. 더구나 대선도 아니고 지방선거다. 한 번 살아보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다음에 바꾸면 된다. 그래도 싫기는 정말 싫다.허탈한 마음에 시조나 한 번 읇어본다.1. 열까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지방발전 행복도시 만든들 어떠하리니들이 아무리용써도 차떼기를 찍으리라 민심이 한 번 등을 돌리면 아무리 용을 써도 다시 되돌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노래다. 역시 국민들은 무능을 못견딘다. 부패는 견딜만 하단다. 그렇다면 없는 능력이라도 포장하는 수 밖에 별 수 없는데 가장 흔한 조중동 포장지에는 오물만 묻어있으니...사면초가다. 하지만 70%의 열까가 처음부터 열까였나? 이 부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2. 딴빠가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차떼기 공천장사 성폭행 졸라해도 딴향한 일편단심 가실줄이 있으랴. 아무 것도 묻지 마라. 아무리 개차반이라도 딴당 이름표만 들이대면 된다. 이게 바로 딴나라당 지지자와 열린우리당 지지자의 근본적인 차이다. 이런게 1당독재지 딴게 1당독재 아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 앞으로 공천장사 값 많이 올라가게 생겼다. 그들의 묻지마 정신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 부모님도 그들 중 한 분이다. 하지만 아마도 내 아들딸들이 딴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 딴나라가 남아있다면... 3. 박쥐가 조ㅅ도 아닌 거시 경기지사 웬말이냐법사위 못질하며 머린 어이 안썼난다.뎌러코 四時(사시)에 변하니 그를 조롱하노라.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가 그만 파블로프가 되어버린 김문수가 경기지사가 되는 모습을 보고 한 시민이 지은 노래다. 노동운동을 했다는 그의 전력이 진실인지 이제는 헤깔린다. 법사위에 못질할 때 머리를 안쓰고 망치를 쓴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4. 실용상생가 내 버디 몇치나 하니 실용과 생생이라 東山(동산)의 달오르니 난닝구도 반갑고야두어라 이 넷 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 달 밝은 밤에 동산에 올라 몰래 만난 난닝구와의 해후을 반갑게 노래했다. 실용과 상생의 절절함이 묻어나는 노래로 주병진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그만 열린우리당은 빼고 딴나라당과 민주당이 상생해 버렸다. 이를 우야꼬. 실용과 상생을 하고자 했으면 진짜 그리 했어야 했다. 그런데 누구누구가 상생했는가? 원래 딴나라당과 민주당의 상생을 위함이었나? 선거 며칠전 제발 싹쓸이만은 막아달라는 모습은 너무 구차하다. 그거 안했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선거 끝나고 민주세력 통합을 한다고? 민주당하고 통합하자고? 한화갑이 또 우쭐하고 유종필이는 또 신나서 논평하나 내겠구만. 5. 명박피박가 청계천 달 밝은 밤에 포크레인에 혼자 앉아큰 삽 옆에 차고 대선걱정 하는 적에어디서 커터칼하나가 남의 애를 끊나니 포크레인에 홀로 않아 다음에 이 나라를 어디부터 어떻게 포크레인질을 하고 삽질을 할지 구상하던 중에 신촌에서 날아온 커터칼 때문에 피박을 맞은 이명박이 수심에 차 지은 노래다. 이제 조금 있으면 실업자 되서 다음 일자리는 걱정말라고 헸는데 이제는 걱정이 될 듯 하다. 자그마한 커터칼 하나가 포크레인 못지 않다. 6. 밀양가 용가비 있다하되 하늘아래 딴이로다 오르고 또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은사람이 제아니오르고 딴만높다 하더라 이번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영남권에서 유일하게 밀양시장에 당선된 엄용수 시장이 부른 노래다. 더구나 딴데도 아니고 용가비의 텃밭인 밀양이다. 서울에서도 전패했는데 밀양에서의 당선은 정말 의외다. 영남 땅에 알박기 해놓은 기분이다. 7. 행복도시가 오백년(五百年) 도읍지를 충청도로 옮기는데 딴나라 반대하고 우리당 찬성해도어즈버 충청도민은 딴나라만 찍더라. 많은 주민이 환영하는 행정도시 이전에 찬성하는 당을 외면하고 왔다리갔다라 하는 딴나라를 찍은 이들에 대한 노래다. 물론 국가 균형발전이 전부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표를 바라는 심정이 오히려 더 컸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당측에서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허탈하리라. 결국 행정구역 개편밖에 없나? 서울을 확 넓혀서 충청도까지? 넓히는김에 대구까지 넓힐까? 그럼 나는 주성영이 지역구로 이사가야지. 8. 알바기상가 동창이 밝았느냐 이빨마녀 우지진다 딴나라 알바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서프라이즈을 언제 까려 하느니. 요즘 유난히 출몰이 빈번하여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서프의 알바들을 근무시간에 맞추어 깨우기 위해 지었다는 전여옥의 시조로, ‘알바출정가’라고도 불린다. 이 시조를 보면 아침 일찍부터 일하는 알바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이 여실이 드러난다. 유급 알바들은 모닝콜을 통해 의무적으로 전여옥이 직접 부른 위 시조를 들어야 한다니, 알바들의 참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를 참다 못한 일부 알바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탄원을 했고 결국 ‘서비스금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현재 전여옥이 부른 원곡 대신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서비스 되고 있다. 9. 알바가 알바로 월백(月百)벌고 시간이 삼경인데 밤마다 연장근무를 딴나라가 알랴마는 섶질도 병(病)인양하여 잠못 이뤄 하노라. 그들이 처한 상황과 알바짓을 하며 오히려 대상에 몰입되어가는 미묘한 심정을 애잔한 필체로 표현한 수작으로, 알바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인 가치가 뛰어난 작품이다. 알바세계의 수많은 ‘알바가’ 중 가장 널리 불리는 노래로 알바문학의 백미로 알려져 있다. 8번, 9번은 예전 글을 재활용한다. 알바야 아니겠지만 하여간 많아지긴 많아졌다. 나만 해도 전같이 자주 못오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선거참패 원인을 민생을 외면하고 4대개혁 입법 등 먹고사니즘과 별 관계없는 일에 힘을 빼서 그렇다는 분석에는 반만 동의한다. 왜 반이냐면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양극화 해소, 경제정상, 일자리 창출, 내수진작...이런 것만 민생안정이 아니다. 4대입법을 원칙대로 마무리 했으면 그것도 바로 민생안정이다. 국보법 폐지...얼마나 힘이나는 소식인가? 이런 소식에 힘이 나는 사람들이 나뿐만은 아니리라 확신한다. 뭐 한 두번 거꾸러지나? 어느 분께서 말씀하셨듯 지방선거는 참패했지만 중앙정부의 행정부 수반은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이고 과반수에 육박하는 국회 제1당은 열린우리당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강금실, 진대제를 얻지 않았나? 오랜만에 멘트 날린다. 읽느라고 욕봤다.
지방선거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1. 19C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쎄 - 봐르테크'와 영국인 '존 로스'는 현재 중국 영토인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2. 중국의 '중국 고금 지명사전' 마저도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속한다고 하고 있다. 3. 몽고가 좋은 말을 얻기 위해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사육했다는 것은 다시 되새김질 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4. 삼국지의 위,촉,오 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20만명 안팎이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명이었다.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6. 삼국시대를 비롯해 고려, 조선 시대에 이동성 메뚜기떼에 의해 입은 피해기록이 무수히 나온다. 한반도에는 이동성 메뚜기가 존재할 수 없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8.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 각종 지리지나 고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지명보다 찾을 수 없는 지명이 더 많다.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있다. 9.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 있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 되었다.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 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많이 닮아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14. 박혁거세의 무덤은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15. 고려, 조선등의 무역 내역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수출하고 있다.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18. 백제의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다.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륙의 장안(시안)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20.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 있어야한다. 21. 조선 초 인구가 37만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23.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 있다. 27.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 유리국의 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28.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29.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30.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31.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 되어있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 밖에 없다.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46.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 너비가 2천여 리, 남북 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 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47. 몽고에서는 징기츠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고구려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48.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명사, 선조실록, 난중일기, 이순신전서, 임진전란사, 은봉야사별록 등) 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명, 상황전개, 위치, 방위, 거리 및 전후사정이 한반도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49.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에 나오는 지명들은 중국에는 모두 존재한다. 50. 난중일기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현역 해군 중령 최두환씨(해군본부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는 난중일기 번역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명을 추적하여 임진왜란의 무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놓자 쉽게 풀려나갔다고 한다. 51.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왜가 침입해오자 조선의 왕은 서쪽으로 피신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상식적으로는 북쪽으로 피신해야 옳다. 52. 어제신도비명 에 보면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하여 부산 동래를 함락하고 여러길로 나눠 서쪽으로 진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한반도라면 당연히 북상 하는 것이 옳다. 53. 지도는 측량학, 수학, 천체학, 광학 등을 두루섭렵하고 있어야 제대로 만들 수있다. 한반도 전역을 3차례 둘러보고 정교한 대동여지도를 김정호가 만들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4. 김정호는 일제시대에 일제가 만든 교과서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동여지도가 공개된 것 역시 일제시대이다. 55. 대동여지도에 씌여있는 글에는 분명 조선의 강역이 1만 9백리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글옆의 지도, 즉 한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56. 조선의 중심지는 낙양이라고 쓰고있다. 한반도에는 낙양이라는 지명은 단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낙양은 중국의 천년고도의 도시이다. 57. 세스페데스라는 포르투갈 신부가 16c 에 쓴 책에 의하면 꼬라이 또는 꼬리아라는 왕국은 일본에서 10일정도 걸리며 왕국의 끝은 티벳까지 달한다고 씌여있다. 또한 조선의 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선땅이다 라고 씌여있다. 타타르는 내몽고에서 활동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조선대륙의 강들은 수량이 풍부한데 강의 폭이 3레구아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58. 루이스 프로이스 라는 신부가 쓴 조선의 강역에 대한 글에는 수량이 풍부한 강과 거대한 사막이 존재한다고 씌여있다. 59.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불태운 우리 역사서가 약 20만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딱 두 권만 남겨두었다. 60.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의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라는 고문헌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슬프다! 후세에 만약 이 책을 붙잡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나 죽어 넋이라도 한없이 기뻐하리라!" -北崖子의 <규원사화> 서문 中에서. ------------------ 이 자료들이 사실이든 조작이든 (그러니까 책 내용을 조작했다는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과거의 일이든 아니든;) 상당히 흥미로운 자료들이군요 ㅇ_ㅇa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ㅅ- 흠....
한국사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제목 + 내용
이름
태그
검색
최근이웃블로그
나의 사랑, 나의 일...
명철블로그
즐겨찾기
재원이랑 재용이랑...
사랑과 음악......
시인의 방
쌍둥이엄마의 이판사...
허브아기의 만화가게...
블로미와 함께하는...
커피 이야기
푸른잎이 가져다 ...
하쿠나마타타
日新又日新
만화로 보는 이선...
내안의 자연 - ...
cebu life/...
행복한 우리 수현...
▒ 落書 葉書 ▒...
제목+내용
닉네임
태그
검색
today
0
| total
3209
0
명에게 즐겨찾기
1
회 스크랩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