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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참 빠르게 흐릅니다 조카 한준이가 군에가고 겨울이 가고 봄이되고 산수유피고 목련 개나리가 피는 오늘 한준이가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을 합니다. 서울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멋지게 군생활 하기를 응원합니다. 이런 날 엄마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늘에서 동서는 보고 있을까요 동서는 이 조카를 낳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위로 딸을 둘 낳고, 낳은 아들 생기기도 잘생기고 자라면서도 별탈없이 잘 자랐습니다. 얼마나 아들에게 지극 정성이었는지 언제나 옷을 삶아 깨끗하게 다려입히고 먹는것도 최선을 다해 만들어 먹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그렇게 잘할까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나는 직장생활한다고 건성건성 아이들을 길렀는데 동서는 직장생활하면서도 살림도 똑 부러지게 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잘 챙긴 엄마중의 엄마였습니다. 이 조카가 자라면서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것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조카 대학교 합격소식을 듣고 그만 입학하는 것도 못보고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아들을 놓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요 나보다 한 살아래인 동서 알았어 형님..하면 무조건 내편이던 동서 어찌 형님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을까요 형님 우리애들 형님에게 맡기고 가요 라던 그말이 생각납니다. 그런조카가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을 합니다. 동서가 더 많이 생각납니다. 정말 세월 빠르게 흘러 가끔 동서를 까맣게 잊습니다. 그더다 생각나면 마안해 미안해를 외칩니다. 잘있는거지..보고 있는거지를 외칩니다. 대학입학식도 군대가던날도 오늘 퇴소식도 큰아빠가 갔습니다. 참석 못하는 큰엄마는 마음이 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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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어려운일이 있어도 가족이 모이면 웃음이 가득해진다 우리도 그렇다 아버님 모시고 서산사는 애들 큰고모 댁으로 아버님 생신잔치를 하러갔다. 매년 아버님을 초대해 생신상을 차려드리는 시누이가 정말 고맙고 천사같다. 8남매중 세가족이 모이지 못했다. 그래도 정말 우리식들이 많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거기에 증손녀들까지 다복한 풍경이다. 포항과 청주의 두 딸이 참여하지 못했다 며느리 셋과 딸 손자며느리 증손녀.. 이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다섯 아들중 네째가 빠졌다 이 웃음을 오래도록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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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봄비가 내리고 있는 날 포항에 사는 시누이에게 봄바람같은 문자가 날아왔다 계좌번호를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큰 오빠인 남편이 2년 전 정년하고 아버님은 병원에 계시지 8남매 맏이노릇하는게 마음에 걸렸는지 아마 연말정산하고 세금을 돌려받은게 있었는지 그것을 조금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문자만 받아도 마음이 따뜻했다. 이 시누이 초등학교 5학년때 나는 맏며느리로 결혼을 했다. 8남매 맏며느리.. 남편아래로 동생이 일곱이었는데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 이었고 이 시누이는 5학년이었다. 눈이 동그란게 그러고 보니 지금 손녀 민서같은 모습이었다. 모든게 낯선 시댁의 모습에서 그나마 귀여운 시누이들이 있다는게 즐거웠다. 막내시누이는 내가 안으려고만 해도 낯설어 울었고 그래도 이 시누이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방학을 하면 대전으로 데리와 분홍구두도 사주고(그때까지 구두는 처음이라고 했다) 공부도 가르치고 시누이가 아닌 동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누이는 생활력이 참 강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시골집에 많은 보탬이 되었고 부모님께 많은 것을 사서 부쳐드리곤 했다. 그러다 큰 시누이이 친구 남동생과 선을 보고 포항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시누이 남편덕에 포항제철이란 곳도 견학도 해보고 동서들과 여행할때도 포항에 들렸더니 대게를 푸짐하게 안겨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시누이가 오빠가 정년하고 아버지 병원비에 힘들어 할까봐 돈이 조금 생겼다고 나와 나누고 싶어한 것이다. 매달 병원비도 보태고 있는데 말이다. 그 마음만으로 나는 따뜻하다. 34년 맏며느리의 길이 조금은 고되기도 했지만 이런 마음을 가진 가족들과 함께 해 왔으니 정말 마음 뿌듯하다. 괜찮아요 고모 오빠 나름 일하고 있고 저도 일하고 있으니 여유되면 아버지 드리세요 어제 아버지 생신이라 떡을 해서 보내드렸더니 기뻐하셨어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나중 오빠 나이 많이 들어 활동하지 못할면 그때 도와주세요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봄비가 내려 흙이 보드라워지면 새촉들이 흙을 들치고 나올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초록 봄이 될것이다. 이미 내마음에는 이렇게 봄이 찾아왔다. 오늘 화이트 데이라고 나..아랫집 처제..두며느리들에게 초코렛과 사탕을 안긴 남편이 있으니 그 남편의 마음이 내 마음에 봄을 더 따뜻하게 지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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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화단에 상사화 잎이 초록물을 들였다 생전 꽃을 만나지 못하는 저 여린 잎은 쑥쑥 그리움을 키우다 꽃이 필 무렵이면 제 명을 다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말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봄이지 않은가 그 봄을 지나야 꽃이 피기에 서럽도록 초록물을 들이며 이렇게 화단에 상사화의 기다림을 시작했다 가슴이 서늘하다 진안 가는길 눈발을 만났다 아직 산에 들에 녹지않은 눈들이 설경인데 눈발이 날리고 있다 봄이 왔는데 봄 앞길을 앞장서는 저 눈발은 땅에 닿기전 물방울로 변하고 우리 마음에 아직 봄 불을 댕기지 못한다 화단에 놓은 화분들에 소복한 흰눈 눈이불을 쓰고도 저들은 살아있으리라 눈 녹으면 발간 볼 내밀고 눈을 뜨리라 ^^눈 속에 섰는 매화나무는 꽃봉오리오 풍선을 불고 있다 통통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눈 녹으며 매화꽃 피리라 아니 뿌라는 눈속에 있어도 햇살 나오면 꽃 피리라 눈 속에서 이렇게 봄은 오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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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30분 막 공주에서 시낭송을 하고 돌아와 씻으려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가 이상하시다는 거였다 아랫집 동생내외와 아버지께 달려가는데 왜 그렇게 신호등에 걸리는지.. 신호에 걸려있는 그 몇분 몇초가 너무도 길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아버지께서는 그야말로 혼미하셨다 다리부터 가슴 얼굴까지 싸늘했다 어떻게 해야할까 오빠는 아버지께 다녀가는 길에 아직 서울에 도착도 않한 시간 고속도로에 있을테고 응급실에 가자니 고생하실테고 흔들리는 촛불같았다 이제 그 초가 얼마나 남지 않은 느낌이 너무도 불안했다. 작은외삼촌을 불렀다 아버지 곁에서 성심을 다해 보살피시는 작은외삼촌이 달려오셔서 체온재고 혈압재시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급체를 하신것 같다니.. 아.. 아버지는 비금 방광암 전립선암에 간과 직장으로 전이돼서 그야말로 암과 사투중이시다. 병원에서는 더이상 할게 없다는 선고였다. 우리는 그야말로 극도의 불안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외삼촌의 대처로 아버지는 다시 편안해 지셨다 눈을 뜨시고 말씀을 하셨다 니들 어떻게 왔냐.. 큰 사위만 오라고 했는데.. 왜 큰사위만 오라고 하셨어요 물으니 믿음직한 우리 큰사위라서.. 아버지는 아마 종종 비상을 거실것이다. 열두시 넘어 돌아오면서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서울갔던 오빠는 그밤 다시 대전을 내려오셨다 오지말라고 했지만 아버지를 뵙지 않으면 안심하고 학교에 출근하지 못하신다고.. 우리오빠의 그 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버지께 드리는 지극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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