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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엄마를 만났다. 이모습 그대로인 울엄마.. ---처음엔 어떤 할머니를 만났는데 울엄마 했던 비녀를 하고 계셨다. 이거 울엄마 비년데~그 비녀를 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꿈속에서도 엄마가 무척 보고싶었다 (엄마는 선비의 아내답게 평생 자태고운 한복을 입으셨다.) 그러다 내가 어떤 아기를 업고 있는데 엄마가 서 계셨다. 비가 내렸는지 질척한 땅에.. 엄마는 아기를 받아 대신 업으셨다. 그러며 이제 가자~하셨다. 엄마 내가 차가져 올테니 차 타고 가요~ 엄마와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엄마가 ~니 아버지도 오라고 하자~ 그렇게 말하셨다. 아버지가 오셨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잠이깼다. 한참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마음이 뒤숭숭했다. 묵직한게 누르고 있는것 같아 한참을 누워있다 남편에게 사과를 달라고 했다. 남편이 사과 반쪽을 가져다 주었다. 우적 깨물었다. 꿈결의 묵작함이 상쾌한 단물로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사과를 먹으며 남편에게 꿈이야기를 하고 아버지께 전화해 봐야겠어~하고 일어났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아침처럼 편안하셨다. "아침 드셨어요? 그럼~이여사가 아침 6시에 와서 밥 해주고 갔다." "통화 중 이던데 어디 통화하셨어요?" "막내가 필리핀 출장다녀와 감기가 걸렸는데 아직도 목소리가 그렇더라 궁금해서 막내랑 통화했다~" "더운나라 다녀와 그런가보네요~글쎄 ~너는 건강하냐?" "네~" "아침은 먹었냐~지금 일어났어요~먹어야죠." "오늘이 니엄마에게 가는 28일인데~마침 일요일이라 못갔다." 아~그렇구나 매달 28일이면 엄마가 잠들어 계신 대학병원 실험실에 가시는데 오늘이 28일 이구나~난 그생각도 못하고 전화 한건데~ 그래서 그런 꿈을 꾸었나보다. 엄마도 28일이면 아버지를 기다리시나 보다. 왠지 두분의 사랑이 아릿하다. 부부~부부란 무엇일까? 아침에 잠깐 두려운 생각이 들었었다. 엄마는 왜 아버지를 부르자고 한걸까? 라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버지랑 엄마는 아직도 사랑을 나누고 계시나봐~" 남편에게 말했더니 "그러게~평소에도 그렇게 지극하시더니~그나저나 당신 돗자리 깔아도 되겠어." 그러며 웃는다. 매달 엄마가 돌아가신 날짜인 28일이면 엄마가 계신 대학병원을 다녀오시는 아버지. 아무리 두분의 뜻이 그래서 엄마를 충남대학병원에 시신기증을 했지만 아직도 끓고 있는 아버지 사랑은 냉동고속 꽁꽁 언 몸으로 누워있을 엄마땜에 잠 못 이루시리라. 아버지도 사후신체기증서를 써 놓으신 그 마음 자식들이 보기에는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두분의 거룩한 뜻을 어쩌지못해 마음만 아파하고 있다. 엄마의 몸이 의학발전에 도움이 되고 나머지 구석구석을 다 세상에 주고 그리고~훌훌 가볍게 떠나고 싶다던 그말씀 아직도 잊지못하고 있는데 울엄만 지금 어떤 일로 의학도들의 연구에 쓰여지고 있을까? 울엄마의 몸으로 의학은 얼마나 발전되고 있는걸까? 새해를 맞은 첫 달 엄마에게 하실 말도 많으실텐데 그곳에 가시지 못하는 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실까? 달마나 오던 남편을 엄마는 얼마나 기다리실까? 꿈속에서도 아버지 식사를 걱정하고 계신 엄마 마음을 읽었다. 아름다운 두분의 사랑이야기가 가슴 뭉클하게 하는 1월28일 일요일 아침이다. 눈물나게 엄마가 보고싶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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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댁의 자랑.. 진안 마이산 입구 독립지사 이재명의사 비와 동상 월요일 부터 오늘까지 3일간 꿀맛같은 휴가가 생겼다. 너무도 숨가쁘게 살아 온 내게 생긴 이 휴가 어딜 갈까 궁리했다. 방학맞은 둘째동서와 울산 세째동서네 가서 정자바다와 간절곶을 다녀올까? 생각하다 이 휴가를 시골에 가서 아버님과 지내고 오자는 마음이 들어 둘째동서에게 전화를 했다. "동서 ~우리 시골가자" 그리고 울산 세째동서에게 전화를 했다. "자네~큰 아이도 대학가고 했으니 혼자두고 시골에 가자~첫차타고 올라 와" 월요일 아침 울산동서가 전화를 했다. "형님 ~여기 칠곡 휴게소 인데요~아홉시 오십분이면 터미널 도착해요. 첫차 탔거든요? 나는 하하 웃었다. "형님 말이 무섭긴 무섭구나~그래 내가 터미널로 나갈게" 이렇게 해서 우리 세동서는 정말 모처럼 여자들만의 겨울여행을 시골 아버님께 가게 되었다. 우리시댁 진안이씨 시조 제각 시골가는길 금산을 지나는데 마침 월요일 2.7 금산장이 열리고 있었다. 금산에서 인삼막걸리 한병을 샀다. "우리 저녁에 삼겹살 구워서 아버님과 인삼 막걸리 마시자" 그리고 장에서 이것저것 반찬거리와 과일을 샀다. 그리고 부귀에 들려 진안명물 꺼먹돼지 삼겹살도 샀다. 아버님은 얼굴에 꽃이피셨다. 혼자서 적적하게 지내던 너른 집에 세 며느리의 웃음소리가 들리니 얼마나 즐거우신지. 도착하자 마자 아버님께 절을 하고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나는 음식을 하고 둘째는 청소를 하고 세째는 설겆이를 하고.. 방에 신문을 깔고 삼겹살을 구워 아버님과 함께 인삼 막걸리를 마셨다. "아니~어떻게 이렇게 왔어~" "큰형님 말씀이 무서워서요. 방학 며칠이라도 아버님 따뜻한 진지 지어드리자고 하셔서 그냥 왔어요..오니까 좋으네요" 경상도 말로 말하는 세째동서의 말을 들으며웃었다. 막걸리 한잔이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3년 적막강산 같은 집에 홀로 계시는 아버님은 올해 8순이 되셨다. 허리도 굽고 손도 떨리는 아버님~ 저녁 먹고 나니 6시30분 이미 고향은 어둠의 바다였다. 아버님과 넷이 앉아 12시까지 ...긴 겨울밤을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튼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을 지어드렸다. 밥 한그릇을 다 비우시는 아버님~그래도 그만하게 건강을 지켜가시는 것이 식사를 잘하시는 것이리라~ 점심에 아버님을 모시고 진안 읍내를 나갔다. 점심은 나가서 사드렸다.진안장에도 들렸다. 그리고 아버님과 마이산을 보러갔다. 시댁 동네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마이산 언제 봐도 아름답고 신기한 산이다. 결혼하고 잔치하는 동안 뜨거운 방에서 신부노릇하는 하는 나를 살짝 빼내어 남편은 마이산을 왔었다. 하루종일 방에서 앉아있으려면 너무 힘들다고..어른들 눈치봐가며 편리를 봐 주었다. 8남매 맏며느리를 본 잔치집에 색시를 보러오신 동네 어른들이 실망하신 모양이다. 아버님 안색이 불편하셨지만 남편은 도시며느리를 너무 고생시킨다며 나를 데리고 마이산으로 가서 약수물도 먹이고 마이산 아름다운 풍경을 설명해 주었다. 아마 그 정이 아니었다면 28년 결혼생활 힘든 고개를 넘기 힘들었으리라. 나 시집갈때 어머님은 47세 아버님은 53세 셨다. 그 젊으셨던 분들이..어머님은 돌아가시고 아버님은 8순이 되셔서 숨을 쉴 수 없도록 엄하시던 그 퍼렇던 아버님의 기상이 다 사라지셨다. 둘째동서. 아버님 .세째동서 마이산을 다녀와 냉이를 뜯었다. 동네 밭에 빨간 잎으로 엎드린 냉이를 호미로 캐면서 세 동서는 정말 시골오길 잘했다고 재밌어 했다. 하루만 자고 오려니 했던 아내들이 하루 더자고 간다고 하니 남편들은 허허 웃었다. 이상하게 잠이 않온다는 남편들~ 거봐~그동안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역할을 했는지 알아야 돼~라며 세동서는 깔깔댔다. 저녁은 둘째동서가 김치전을 부쳤다. 김치에다 깻잎 달걀 감자 갈아넣고 돼지고기 다져넣고 또 방에다 신문을 깔고 후라이팬을 놓고 직접 부치며 어제 남은 인삼 막걸리 마셨다. 아버님은 머루주 한병을 내놓으셨다. "이거 염소막 앞에 있는 머루나무에서 딴걸로 담은거여~한잔씩 해봐" 동서들은 막걸리 한잔에 벌써 가슴이 뜨겁다고 했지만 아버님이 담가놓신 빨간 머루주를 한잔씩 따라주며 아버님 사랑이니 마시라고 동서들에게 한잔씩 따랐다. 아버님께도 석잔 따라드렸다. 금방 부친 김치전과 먹는 머루주는 달콤 쌉쌀 했다. 목줄기가 뜨거워졌다. ....................................... 오늘 아버님을 놓고 돌아왔다. 아버님께 가겠다고 절을 올리자 "그래 몸조심해라" 대문앞에 서신 아버님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고 계셨다. 백밀러에 비친 아버님 모습은 너무 작았다. 작은 아기 같았다. 가슴이 울컥했다. 세동서는 눈물이 고였다. 또 어찌 그 긴 겨울밤을 홀로 보내실까~ 둘째동서 아파트앞에서 동서들 점심을 사 먹였다. 그리고 터미널에서 울산 동서 차표를 끊어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동서~먼길 수고했어~잘가~" "형님 돈 너무 많이 쓰셔서 어떡해요" 라고 걱정했다. 괜찮아~정말 괜찮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2박3일 이었으니~ 도시의 일들을 잊고 까만베일 아래서 먼지없는 공기를 마시며 복잡한 뉴스조차 듣지 않고 지낸 2박3일 내 복잡한 일상이 체에 걸러져 깨끗한 알곡만 남은 산뜻함이었다. 물론 빨리 출근해 스텝회의 하자는 전화가 나를 다시 일상으로 내 몰기는 하지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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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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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에는 그동안 내가 써온 일기장들이 나란히 세월의 무게를 안고 침묵하고 있다. 지금은 노트에 쓰는 일기는 사라졌고 그저 다이어리에 메모정도 해놓을 뿐이고 나머지는 블로그에 일상을 쓰고 있다. 잠이오지 않는 날이면 내 서재에 들어와 묵은 일기장을 펼쳐본다. 어려서부터 일기쓰기를 즐겨했다. 결혼해서도 일기를 계속 써왔다. 그곳에는 결혼생활의 갈등도 즐거움도 아이를 기르는 기쁨도 힘듦도 그리고 가족 ..이야기와 결혼 첫해 받은 남편의 월급봉투도 달마다 붙여져 있었다. 79년 남편에게 받은 월급봉투... 급여액이 14만원이었다. 거기에서 100만원짜리 적금 8만원을 넣고 연탄 오십장을 사고 쌀 두말을 사고..콩나물 100원어치..등등이 적혀있다. 웃음이 나왔다. 그때는 남편월급이 20만원만 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그때는 남편의 월급날이면 아이들에게 통닭한마리를 사주며 즐거웠었다.월급봉투를 내밀며 늘상 미안해 하던 남편에게 적은 용돈을 주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남편이 월급을 타왔는데 나갈것보다 적다고 적혀있던 날도 있었다. 8남매 맏며느리에게 명절과 어르신들의 생신은 지출이 컸다. 그래서 남편 모르게 울었다 라고도 적혀있었다. 그래도 그시절이 지나갔다. 남편 월급이 100만원쯤 되었을때 정말 부자같았다. 이돈을 어떻게 다 쓰나..걱정아닌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참 신기한것이 그 월급에 맞춰...잘 살아온 세월이었다. 아이의 그렇게 많은 수술비를 냈는데도..(1억쯤은 되는것 같다) 빚 지지 않았고 물론 남편 회사에서 대출받아 월급에서 몇년씩 갚았지만 ... 어떻게 그세월을 살아왔는지. 동생들 결혼 다시키고... 집을 사고..차를 사고..아이들을 가르치고..남편이 7년간 공부를 하고.. 그런 세월이 차곡히 일기장에 실려있다. 내손에 잡힌 건 91년 일기장 이었다. 91년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왔다. 91년에 시누이 결혼을 시켰다. 91년 남편 일본 출장도 있었다. 91년에도 작은 아이 수술을 했다. 91년에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 일기장에는 내가 91년 1년간 살아온 일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어느 신문에 1달에 한번씩 쓰던 칼럼도 스크랩 되어 있었고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때 학교신문에 썼던 시도 스크랩되어 있었고 그리고 큰 아이의 편지도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병원에 입원해 수술하고 106일만에 퇴원한 작은 아이의 병원일기도 아픔의 흔적이 희미해진 채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떻게 그많은 아픔을 이겨냈을까? 어떻게 그 절망의 시간들을 넘어왔을까? 25년 근속을 한 남편의 월급도 참 많이 올랐다. 그렇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부족한건 마찬가지지만 그저 눈부시게 가정을 이끌어갈 만큼되니 감사하다. 남편에게 월급적다고 투정해 본적도 없고 시댁에 일이 생겼을때 돈때문에 갈등은 했지만 불평은 하지 않았다. 어젯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좀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달 시아버님 8순 생신잔치를 준비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준비할게 참 많다. 더구나 설 쇠고 바로 생신이다 보니 다른 형제들도 설 지내고 부담이 클것같다. 더구나 세째네는 대학가는 조카도 있고...그러다 남편에게 말했다. 이것보다 어려울때도 다했는데..걱정하지 말자 동생들보다 우리가 좀더 쓰면 되고...그것보다 어려운일도 잘 넘겼는데 뭐.. 일기장을 접는다. 달리기를 할때 넘어졌다 일어서 다시 힘차게 달리는 사람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는 말..그말을 가슴에 담으며.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중해-여보 정말 미안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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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시상문학회 1월 모임이 있었다. 시상문집 14집이 출간됐다. 창백한 얼굴로 나간 나를 보고 모두 놀랐다. 왜그래? 며칠전 갑자기 가슴통증이 심해 응급실로 갔었다. 다행이 심장엔 이상이 없다는데 어지럼증이 가라앉지 앉는다. 손등에 굵은 바늘 꽂아놓고 심전도 검사 혈액검사 런닝머신에 올려놓고 헉헉이게 달리게 하고 심장뛰는 걸 체크하더니..이상없음 그럼 내 심장은 왜 그렇게 통증을 호소 했을까? 20년을 만나온 우리 여자들 이제는 좋은 시를 쓰는 것보다 건강을 지키는 것이 좋은 시라고.. 서로가 그랬다. '우리 아프지 말자' 그래 우리 이세상에서 젖은 별로 뜨지만 서로 아프지 말자 시도 아프지 말아야 쓸것 아닌가 다 소용없다 심장 멈추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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