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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만 모아 보았습니다. 클릭하시면 되구요...^^낮이나 밤이나 감성있는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01- 별이빛나는밤에 시그널(Merci Cerie)(2'45) 02- Lee Oscar 하모니카버전 - 늪(5:38)03- Elvila Madigan-Gheorgh Zamfir(5'13) 04- Scene D' Amore - Bilitis삽입곡(3:53)05- (가을동화)Lover's Lament(3:42) 06- (가을동화)Jude's Theme(4:32)바이올린버전07- (가을동화)On Dyne-피아노버전(3:11) 08- (가을동화)Unforgeting heart피아노버전(4'40) 09- (가을동화)Unforgeting heart기타버전(4'44) 10- (가을동화)Reason- piano버전(4:49) 11- 영화"뉴욕의 가을" 테마곡 (3:16) 12- Moldova - Sergei Trovanov 13- Caccini- AveMaria -슬라바(3'58) 14- 영화 "쉐난도" - Shenandoah(2'54)15- 가시나무새Theme(The thorn bird)(3'04) 16- Monaco-Jean FrancoisMourice17- 영화"유리시스테마" - Lento Largo(5:30) 18- 영화"벤허"사랑의테마(2:51)19- Lecygns(백조)2:29 20- Divano - Era(3:52) 21- It is you-DinaGlover(슈렉ost)3:53 22- 안나를 위하여(3:28)23- Forget 24- 밤하늘의 트럼펫(Il Sirenzio)3:1625- Secret Tears - Rebecca(7'20) 26- The hill of Grencar-Bill Douglas(3:50)27- Adagio - Newtrols(4:49) 28- Unchained Melody-Righteous Brothers(3'36)29- Es War Doch Alles Nur Ein Traum - Monika Martin(2:58) 30- Ever Green-Susan Jacks(2'48) 31- 너만을 위한 사랑(비밀OST)2'35 32- Marie la Foret - Claude Ciari(3'10) 33- 첫 발자국(Le_Premier_Pas)-Claude Ciari(4'17)34- 500 miles-Peter & Paul Mary(2'44) 35- Lake of shadows - Phill Coulter(5'56)36- Comming Home- Stratovarius(5'33) 37- " Bolero" 사랑과슬픔의볼레로- Rahel(5'15)38- Jeg Ser Deg Sote Lam(3'53) 39- Tear -Andante(3'52)40- My way(트럼펱연주) 41- Autumn leaves(트럼펫연주) 42- Apache - Ventures(3'08) 43- My love is like a red rose-Izzy Cooper Ascolta44- Metalic Rain - Vangelis(4'27) 45- 드라마"푸른안개" OST(2'13)46- La Petite Fille de la Mer - Vassillis Saleas(5'03) 47- The water is wide-Karla Bonoff(4'56) 48- 상처입은 새(Love bird)(4'15)49- Am I Wrong-가을에만난남자OST(3'53) 50- Angel Queen천년여왕OST(5'22)51- Love Glows-봄날은간다ost(4'35) 52- Titanic love theme-Kenny G.(4'25) 53- 사랑의 씨앗(Seeds of Love)-Loreena Mckennit(4'55) 54- I owe you-Carry & Ron(3'10) 55- When I dream-Carrol Kidd(4'30)56- Le Chant Du Roseau-Tim Macbrian(5'02) 57- Bocalise - Kag Linch(5'26)58- Sea of Heartbreak - Poco(3'43) 59- 일곱송이 수선화-Carol Kidd(3'23)60- 천일의 앤-연주곡(2'37) 61- Auld Lang Syne- Kenny.G(4'56)62- Amazing Grace-Judy Collins(4'10) 63- Sad Agagio (2'55)64- (가을동화타이틀)Return to Love-Kebin Kerm(4'25) 65- Chi Mai - EnrioMoricone(5'08) 66- Rhythm of the Rain(2'35)67- The Rose-BetteMiddler(3'34) 68- The river in the pines- Joan Baez(3'37)69- 대니보이 - 섹스폰연주곡(4'02) 70- Spring Summer Winter & Fall-Demise Rusoss(5'00)71- Now and Forever- Richard Marx 72- 영화 "마지막 황제" OST(4'00) 73- You call it love - Keroline Kruger(4'55) 74- Pastolale (2'23) 75- Forever - Stratovarius(3'06) 76- 외로운양치기(Lonly Shepherd)-JamesLast(4'22)77- Caravansari -Fantasticmood(4'46) 78- 플래툰OST- 현을위한 아다지오(6'16)79- Stand by Me - Ben E King(2'55) 80- 먼산울림 - 영화"SHANE"주제곡(3'15)81- Be - Neil Diamond(6'31) 82- If You Go Away - Neil Diamond(3'50)83- Maggie(메기의추억) -Jean Redpath(4'22) 84- 영화 Last Mohican- TOP of The WORLD(2'43)85- The House of Rising Sun-Ventures(2'53) 86- 영화 Last Mohican - PROMENTORY(6'13)87- 글라디에이터OST- Now we are free(4'13) 88- 글라디에이터OST- The Battle-Hans Zimmer(10'02)89- Home on the range(언덕위의집)-Arthur Fiedler(3'17) 90- Follow Me - Demis Roussos(7'22) 91- Hotel Callifornia - Eagles(6'28)92- All for the love of a girl-Johnny Horton 93- Calling You-(Laura Figy)바그다드까페 OST(5'21)94- Toute Une Vie-Jean Phillippe Audin(3'07) 95- Both sides Now - Judy Collins(3'17)96- 짚시 바이올린-헨리 만시니(2'50) 97- The Power of Love-Laura Branigan(5'25)98- Una Furtiva Lagrima-Izzi Cooper Ascolta(3'20) 99- Song of our Homeland-Izzy C.Ascolta(3'59)100-(반지의제왕)May it be - Enya 101- (반지의제왕) Amon Hem 102-(반지의제왕)A journey in the dark 103-(반지의제왕) In Dreams104-(반지의제왕)- Lothlorien 105-(반지의제왕)The great river - E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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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Victor choi. 1962.6.21 ~ 1990.8.15) 한인 3세, 러시아의 록가수겸 ·영화배우. 국 적 : 러시아 출생지 : 카자흐스탄공화국 크질오르다 대표작 : 노래<혈액형>,<변화>,<마지막 영웅>,<별>, 영화<이글라>,<아싸> 세상엔 죽었어도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인간의 역사속에 함께 숨쉬고, 늘 기억되는 사람...우리는 이런 이들을 영웅이라 칭한다. 지금은 해체된 구소련에 마지막 영웅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그는 우리의 피가 흐르는 까레이스키 한인 3세였다.그는 위대한 정치인도, 사상가도, 헌신적인 종교인도, 탁월한 군인도 아니었다.그는 한 록그룹의 리더였을 뿐이다. 구소련의 젊은이들은 그런 그를 왜? 마지막 영웅이라 칭했을까? 왜? 아르바트 2번지 그의 추모의 벽(일명 : 통곡의 벽) 앞에선 끊임없이 그의 노래 "끄루빠끄로위(혈액형)"가 울려 퍼지고, 그를 위한 추모문이 계속 씌여지며, 그 무덤앞에는 단 하루도 싱싱한 꽃이 떨어지지 않는가? 왜?왜?여기 씌여진 그의 생애와 노래속에 그 답이 있다.구소련의 "LAST HERO" 록그룹 KINO의 리더, 바로 빅토르 최이다."오늘 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 빅토르 최 빅토르 최는 1962년 6월 21일 카자흐스탄 공화국 크질오르다에서 한국인 2세인 아버지 최동열과 우크라이나 출생인 어머니 발렌치나 바실예브나 사이에서 태어났다.그는 5살 때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게 되는데, 후일 그의 사망후 구소련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사이에서 빅토르 최의 국적논쟁이 벌어졌을 때, 카자흐스탄은 실질적인 출생지가 크질오르다이므로 당연히 카자흐스탄이 그의 국적이라고 주장했고, 러시아에서는 그의 주활동지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였고, 그가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곳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그의 국적은 당연히 러시아라고 주장했다.이 논쟁은 결국 국적은 러시아로 하되, 출생지가 카자흐스탄임을 반드시 표시하는 쪽으로결론을 내렸다. 지만, 지금도 카자흐스탄인들에게 빅토르 최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즉시 카자흐스탄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13인의 위인 중 한명으로 손꼽는다. 이 피소드 하나만으로도 그의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져 세로브 미술학교에 입학, 1974년 막심 빠쉬코프와 함께 교내에서 "팔라타 세스토이(제6병동)"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빠쉬코프에게서 처음 기타를 배우고, 그의 집에서 비틀즈, 롤링스톤즈의 음악을 접하며,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저항적이고 자유지향적인 록은 당시 소련의 공산당 체제하에서는 반국가적인 노래로 간주되어 록을 연주한다는 이유로 퇴교당하고 말았다.문학과 음악쪽은 더욱 천재성을 보이는데, 이미 열다섯에 시를 쓰고, 그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다. 퇴교후 방황 끝에 다시 시립 제61기술전문학교에 합격 목각을 전공하게 되었고, 재학 중 알렉세이 르빈이라는 친구를 만나, 1981년 알렉세이 르빈, 올레그 발리스키와 함께 그룹 Гарин и Гиперболоиды(가린과 쌍곡선) 결성하게 된다. 또 이시기에 아르까지나라는 여학생과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아르까지나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평생동안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아픔을 간직하게 한 여인이었다. 그의 노래 "8학년 여학생"은 아르까지나를 위해 만든 노래였다.그룹을 결성하고, 거리 연주등에 몰두하던 빅토르 최는 어느날 우연히 당대 최고의 록그룹 "아크와륨"의 리더 보리스 그레벤쉬코프를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그로인해서 록그룹협회에 가입하게되고, 당대의 쟁쟁한 록그룹과의 교류를 통해서 더욱더 음악적 완성도를 높여갔다.또, 보리스 그레벤쉬코프는 빅토르 최의 음반을 내주기 위해 그의 프로듀서가 되어주었고, 빅토르 최는 올레그 발리스키가 탈퇴한 "가린과 쌍곡선"을 재편성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그룹이 바로 KINO("영화"라는 뜻)로써 구소련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그룹이다.녹음을 마치기 한달전에 그는 마리안나와 동거하게 되는데, 마리안나는 초창기 KINO의 매니저 역할을 담당했다. 이 마리안나와의 동거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빅토르 최는 별 수입이 없었고, 인종차별 감정이 있는 구소련의 특성상 검은 머리에 노란 피부를 가진 이 동양계 젊은이를 탐탁하게 보는 부모들은 없었다.빅토르는 단칸방에서 마리안나와 동거를 시작했고, 생활고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게 되었다.힘든 상황속에서도 마침내 녹음이 끝나고, KINO의 제 1집이 완성되었다. KINO 1집, 빅토르 최의 최초의 앨범명은 "KINO 45"인데, 뒤의 45는 연주시간이 45분이라 즉흥적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첫번째 앨범이 나왔지만, 대중적인 지지를 아직 얻지 못하고 있던, 빅토르 최는 여전히 시련의 나날들이었다. 제61기술전문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수료로 마친 그는 미장공이되어 일해야 했다. 그의 미래는 여전히 어두운 것만 같았다. ※ 시립 제61기술전문학교에 현관앞 정면 기둥에는 가장 자랑스러운 졸업생으로 빅토르 최의 사진이 걸려있고, 그의 작품이 학교를 장식하고 있다.빅토르 최에 관한 이야기들...빅토르 최와 KINO는 첫번째 앨범 <KINO 45> 발표후, 같은 해 두번째 공식앨범인 <유명하지 않은 노래들>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 속에는 초기 빅토르 최의 히트곡 중 하나인 "마지막 영웅"이 실려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록그룹 경연대회에서 주최측의 애매한 판정으로 참패당한 KINO는 이 일로 인해 내부분열이 생겨 알렉세이 르빈이 탈퇴해 버렸다. 빅토르 최는 심한 절망에 빠졌다. 그의 시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984년 그는 마리안나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곤 빅토르 최는 노래말고, 실질적으로 돈이 생기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음악 활동을 하면서, 일할만한 직장은 그리 많지 않았다. 힘들게 힘들게 구한 일자리는 캄차뜨가 보일러실의 화부였다. 그는 여기서 밤새워 일하며,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그의 세번째 앨범 <캄차뜨가의 대장>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훗날 그의 사후에 이 보일러실은 러시아의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성지가 되었고, 이 작은 보일러실에서 열었던 그만의 작은 콘서트는 이후 "레닌그라드 언더그라운드"의 신화가 되었다. 힘든 삶 속에 하나의 위안이 있었다면 "나는 선언한다"라는 노래로 러시아 국제 평화재단의 반전가수상을 수상한 것 정도였다. 1985년 그의 평생에 가장 기쁜 일이 생겼는데, 마리안나와의 사이에 그를 빼어닮은 아들 샤샤 최가 태어난 것이다. 같은 해, 레닌그라드 록그룹협회 주최의 콩쿨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그 실력을 입증받았다. 그러나, 시중에 나와 있던 KINO의 네장의 앨범 <KINO 45>, <유명하지 않은 노래들>, <KINO 46>, <캄차뜨가의 대장>은 여전히 다수 대중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KINO멤버 빅토르 최, 유리 까스빠란, 찌토프, 구리야노프는 혼신의힘을 다해 앨범 <Ночь 노치>에 녹음을 마쳤지만, 그 음반은 녹음기사와의 문제로 그해 출시되지 못했고, 대신 다섯번째 앨범으로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를 발표했는데, 이 음반 역시 흥행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KINO는 다시 시름에 빠졌다. 1986년 지난해 녹음기사와의 문제로 출반되지 못했던앨범<Ночь 노치(밤)>가 출반되었다. 정식으로 발매되었다면, 다섯번째 앨범이 되었을 <Ночь 노치(밤)>는 마치 서자처럼 KINO의 여섯 번째 앨범으로 세상에 발표되었다. 물론 누구도 성공하리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그러나, 여섯번째 앨범<Ночь 노치(밤)>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며, 발매 두달만에 50만장을 기록하더니 몇달 지나지 않아 200만장이나 팔려나갔다. 그룹 KINO의 첫번째 밀리언셀러가 탄생한 것이었고, 드디어 KINO가, 빅토르 최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 것이었다. 소련연방 음악차트 1위를 달리던 KINO는 또 한번의 시련에 직면하게 되는데, 주력 멤버였던 찌토프가 탈퇴한 것이었다. 빅토르 최는 급거 찌호미로프를 영입하지만 초기에 멤버 들간의 호흡이 맞지 않아 조금 고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곧 정상궤도로 올라서자 1988년 천재감독 "라시드 누그마노프"와 손을 잡고, 영화 한편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 영화가 그 유명한 <이글라>("이글라"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바늘"이라는 의미로 영화에서는 마약을 놓는 주사바늘을 뜻한다)였다. 이 영화속의 배경음악으로 KINO의 일곱번째 앨범<руппа Крови(끄루빠끄로위)>의 곡이 쓰여졌다. 영화 <이글라>는 1988년 소련 역사상 최대인 무려 1500만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특히, 영화중 철길을 따라 걸으며 빅토르 최가 "끄루빠끄로위(혈액형)"를 부르는 장면은 아직도 소련영화 베스트 장면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글라>는 그 해 오데샤에서 열린 황금의 쥬크영화제에서 빅토르 최를 최우수 배우로 우뚝 서게 해주었다. 이 한편의 영화와 그 O.S.T 성격이 강한 앨범<혈액형>으로 빅토르 최와 그의 그룹 KINO는 소련 전역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록그룹으로 확고히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두번째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앨범<혈액형>에는 그를 대표하는 대표곡 중의 대표곡인 "끄루빠끄로위(혈액형)"가 실려있는데, 그 노랫말을 한번 음미해 보자 ※ 어둡고 추운 곳, 그러나 그 거리는 우리의 발자국을 기다린다. 군화위엔 별빛의 먼지... 푹신한 소파, 십자나사, 제때에 당겨지지 않는 방아쇠 햇빛 비춰지던 시절이란 눈부신 꿈속에나 있을 뿐 치뤄야 할 댓가가 아무리 크다해도, 헐값의 승리는 바라지도 않는다. 전우의 가슴을 밟고 싶지 않기에...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단지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러나 하늘 높이 솟은 별은 나를 전장으로 불러낸다. 내 소매 위에는 혈액형 내 소매 위에는 나의 군번 전투로 향하는 내게 행운을 빌어주게 이 들판에 남게되지 않기를 이 들판에 남게되지 않기를 전투로 향하는 내게 행운을 빌어주게 젊은이들은 이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곧 알게 되었다. 이 노랫말 속에 숨은 코드란 "이 세상은 바로 너희들의 것이다. 그 어떤 댓가를 치룬다해도 너희 자신이 스스로 바꿔야 한다. 싸워라! 황량한 들판에 눕지말고, 힘껏 싸워라! 너희들과 함께 있겠다...전투에서의 승리와 행운을 빌며..." 집집마다 "끄루빠끄로위(혈액형)"가 흘러 나왔고, 젊은이들은 목청껏 이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활보했다.소련 전역이 KINO의 노래속에 파묻혔다. 그들의 인기를 말해주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KINO는 첼리아빈스크의 한 대학교에 초청공연을 가게 된 적이 있었다. 긴 기차여행 끝에 첼리아빈스크에 도착한 KINO일행은 역대합실에서 검문을 받던 중 평소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기관원등에게 체포되어 경찰서로 연행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체아빈스크를 떠나라는 통보와 함께 연금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빅토르 최가 창문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린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손에 손에 촛불을 든 대학생들이 경찰서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것도 계속해서 숫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KINO가 공연하기로 했던 대학교의 학생들이 그들이 경찰서에 연금된 사실을 알고, 촛불 시위를 시작한 것이었다. 촛불 대열 중 한 여학생이 소리쳤다. "우리에게 KINO를 돌려달라!"그러자 여기저기서 함성들이 들려왔다."우리에게 빅토르 최를 돌려달라!""우리는 KINO를 원한다!" 처음에는 조그맣던 함성이 점점 불어나는 인원으로 엄청나게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경찰서장은 계속되는 시위에 소요가 날 것을 우려하여 결국, 공연을 허락하고 말았다. KINO멤버들과 빅토르 최가 경찰서 문을 나서자 촛불시위대는 순식간에 촛불호위대가 되어 KINO를 둘러싸고 대학운동장 으로 향했다. 잠시후 운동장에서는 KINO의 "혈액형"이 빅토르 최와 학생들의 합창속에 울려퍼졌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KINO 아니 빅토르 최로 인하여, 젊은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경찰서라는 공권력에 당당히 맞서서 촛불시위와 촛불행렬로 그들의 영웅을 구출했고, 그들의 뜻을 관철시켰다. 변화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1989년 발매된 여덟번째 앨범 <마지막 영웅>에서 빅토르최는 타이틀곡 "마지막 영웅"과 "혈액형"에 필적할 만한 또다른 걸작 대표곡을 선보이는데, 이 노래는 대중 음악으로나, 클래식음악으로나 소련 역사상 유래가 없는 규모인 모스크바 올림픽 주경기장을 가득메운 10만이 넘는 대관중 속에서 열린 KINO 콘서트에서 울려 퍼져 당시 소련 젊은이들의 자유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대변하는 가사로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다. 그 가사내용 중 일부를 보면, ※ 열기와 함께 녹색 유리가 불꽃과 함께 연기가 달력의 그물로부터 날들을 잡아 뺏는다. 빨간 태양은 타오른다. 날들도 함께 타오른다. 활활 타오르는 도시에 그늘이 내린다. 우리의 가슴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눈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웃음에, 우리의 눈물에, 그리고 우리의 맥박에, 변화! 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 ------중략 ※ 그렇다, 이곡이 바로 "혈액형과 쌍벽을 이루는 그 유명한 빅토르 최의 대표곡 "뻬레멘(변화이다. 이 노래는 그를 페레스트로이카의 전령사로 만들었고, 저항과 자유의 투사로 불리게 했다. 이 "변화"가 울려 퍼질 때마다 젊은이들의 가슴은 항상 이렇게 같이 노래했다. 우리의 심장이 변화를 원한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바꿔야만 한다. 그리고, 싸워야만 한다. 우리가 바라는 소중한 그것! 바로 새로운 "변화를 위하여..... 같은 해 아홉번째 앨범<태양이라는 이름의 별>이 출반되었는데, 이 앨범은 무려 500만장의판매고를 기록하였다. 공식 판매기록이 500만장이라면, 해적판이 넘쳐 나던 소련의 상황을 볼 때 적어도 2000만장 이상의 앨범이 판매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토르 최와 KINO는 구소련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저항과 자유를 상징하는 신으로까지 추앙받으며, 끝없는 날개짓을 계속했다. 1990년 6월 24일 구소련 역사상 전무 후 무한 일이 모스크바 올림픽 주경기장 루즈니끼 스타디움에서 일어났다. 올림픽이나 기타 체육관련 이벤트가 아닌 록그룹의 콘서트를 위해 성화가 타올랐다.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10년만에 타오른 성화는 이미 "빅토르 최"가 구소련 연방에 신화가 되었음을 알리듯이 밝게 빛났다. 그 성화를 배경으로 큰 원을 만들고 있는 무려 10만여(구소련 역사상 최다관중) 대인파의 중심점에는 검은 머리와 검은 눈망울을 가진 빅토르 최와 그의 그룹 KINO가 있었다. 드디어,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아직도 건재한 공산당 체제하에서 자유와 저항의 노래가 빅토르 최 특유의 펑크록과 포크록의 형태로 루즈니끼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곡으로 빅토르 최는 그가 출연했던 4편의 영화 중 <이글라>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아싸>의 삽입곡이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정치적 구호가 되기도 하였으며, 개혁의 물결속에 휩쓸린 소련 전국 각지에서 울려퍼졌고, 빅토르 최와 KINO의 콘서트에서 항상 불려졌던, 젊은이들의 여망 "뻬레멘(변화)"을 절규하듯 불러댔다. 스타디움은 빅토르 최와 팬들이 뿜어대는 열기속에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마침내, 노래를 끝내고 빅토르 최는 팬들을 향해 마지막 멘트를 던졌다. "여름에 새로운 앨범이 나옵니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하지만, 팬들은 다시는 빅토르 최의 콘서트를 볼 수 없었다. 한달여 후,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그가 약속했던 새로운 앨범은 유작이 되어 팬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1990년 8월 기쁜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바로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공연신청이 들어 왔던 것이다. 빅토르 최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 시키며, 그의 매니저에게 말했다. "다른 모든 공연을 연기하는 한이 있어도, 서울 공연은 꼭! 하고 싶어." 전화를 끊고도 뛰는 가슴을 붙잡고 한참을 서 있었다. 드디어, 그토록 가보고 싶던 할아버지의 나라에가는 것이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빅토르 최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미리 예정된 공연 티켓들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진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라트비아 공화국 수도 리가에서 뮤직비디오 촬영과 휴식을 취하고 있던 빅토르 최는 1990년 8월 15일 낚시를 즐기고, 자신의 승용차로 호텔로 돌아오던 중 슬로까따우시 도로에서 마주오던 이카루스 대형버스(관광버스보다 약간 더 큰 버스)와 정면 충돌했다. 빅토르 최의 승용차는 충돌 후 10미터나 밀려나 처참하게 부숴져 버렸고, 빅토르 최는 핸들에 가슴을 찍힌 채, 그 자리 에서 절명했다. 이로써 그의 28년 짧은 생애는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사고현장에는 자동차 경적소리만 무심히 울리고 있었다. 아이니컬하게도 한국민들이 억압을 벗어나 자유를 찾은 광복절에, 자유와 저항를 노래하던, 우리의 피를 이어받은 구소련의 마지막 영웅은 영원한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던 것이다. 몇시간 후, 빅토르 최는 시립병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진보파와 보수파간의 극심한 갈등속에 있었던 소련의상황은 빅토르 최의 교통사고가 소련 해체에 불만을 품은 강경파KGB에 의한 암살이라는 추측을 낳았고, 사고조사 기간이 극히 짧고, 사고 운전자가 너무도 빨리 풀려나 행적을 감추는 등, 아직도 의혹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분은 이 대목에서 한가지 의혹을 가질 것이다. 빅토르 최는 정치인도, 혁명가도, 군인도 아닌 록그룹의 리더였을 뿐인데, KGB가 암살까지 하려했을까? 그 답은 그가 단순히 록그룹 리더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것이다. 그의 음악은 러시아 특유의 우울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저항적이며 자유지향적인 러시아 펑크록이었다. 펑크라는 장르는 그 특성상 가사를 매우 중요시하는 장르이다. 리듬은 단순반복이지만 그 단조로움 속에서 날카로운 노랫말에 자유와 저항이라는 메시지를 실어서 쏴댄다. 그중에서도 특히, 빅토르 최의 펑크록은 한번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 다른 펑크록처럼 그의 음악도 가사를 굉장히 중요시 하는데, 그 파괴력의 강도가 엄청났던 것은 단순한 노래의 가사가 아닌, 언제나 신비한 동양적 체취가 물씬 묻어나는 한편의 시였기 때문이다. 자유와 저항"을 노래하는 음유시인 빅토르 최, 일부에선 그의 노래가사를 러시아의 요절한 천재시인 예세닌 (Esenin, Aleksandrovich, 1895.10.19 ~ 1925.12.28)의 시와 비유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노래 아니 그의 시는 뛰어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노래는 구소련 인민들의 가슴에 자유와 저항의 화신으로써의 그를 깊게 아로 새겼다. 그것은 역사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영웅의 이미지, 기존의 영웅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구소련 마지막 영웅의 이미지였다. 보수파(대표적으로 공산당) 입장에서는 당연히 빅토르 최는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위험 인물로 파악되었을 것이고, 그가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강력한 파장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보수파(대표적으로 공산당)들이 죽도록 싫어하는, 글라디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를 외치며, 제 2의 혁명 표방했던, 고르바초프에게 영향을 끼친 다섯명 중의 한명으로 꼽힐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빅토르 최와 KINO를 직접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 손을 앞으로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힘주어 말했다. "동지, 페레스트로이카와 인민을 위해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함께 일합시다." 울리짜 블리히나 15번지 보일러실 화부출신의 까레이스키 3세 빅토르 최가 또 하나에 러시아 혁명사의 별이 되는 순간이었다. 고르바초프는 그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의 노래는 페레스트로이카의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보수파의 대표적인 강경파 KGB로써는 그를 암살할 이유가 충분했다. 빅토르 최 사망, 바로 다음날,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구소련 전체를 흔든 빅토르 최 사망기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모든 진보적 신문들은 그의 사망을 대서특필했고, 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나, 보수파의 대표적인 신문인 공산당 기관지들은 그의사망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진보파와 보수파의 대립은 이렇게 극명하게 드러났고, 보수파에 의한 빅토르 최 암살설은 더욱 설득력을 얻어 갔다.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소련 전역에서 5명의 여인이 외로운 그의 저승길에 동반자가 되기 위해 자살했으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조그만 시립병원은 인산인해를 이룬 추모인파와 팬들의 눈물과 장미꽃으로 뒤덮였고, 자신들의 신이라 믿었던 이의 주검앞에 광적으로 흥분한 팬들의 성화를 견디지 못해 장례식이 며칠씩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빅토르 최가 사망하자 그룹 KINO는 해체되었다. KINO의 역량 중 80% 이상이 빅토르 최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사, 작곡, 편곡, 앨범 제작에 이르기까지 모두 빅토르 최 홀로 했기에, 그가 없는 KINO는 존재할 수도 존재할 의미도 없었던 것이다. 빅토르 최가 죽고, KINO가 해체되었지만, 루즈니끼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그가 약속했던 새로운 앨범 <Черний(쵸르늬)>는 유작앨범이 되어 발표되었다. 쵸르늬는 러시아어로 검정(BLACK)을 뜻하는데, 비틀즈의 화이트앨범을 "하얀앨범"이라고 말하지 않듯이, 빅토르 최의 쵸르늬 앨범도 "검정앨범"이라 하지 않고, 명칭 그대로 쵸르늬 앨범이라고 칭한다. 이 앨범에는 "여름", "뻐꾸기", "개미집", "별", "황금의 나날"등의 노래가 실려 있는데, 당시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던 소련을 상징하듯이 힘차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우울한 느낌이 담겨있고, 빅토르 최 자신의 자아성찰적인 요소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앨범은 빅토르 최 사망 10주년 당시 그의 마지막 앨범을 소장하려는 팬들로 인해 재고가 바닥나고, 판매가의 10배를 훨씬 상회는 가격으로 암거래 되는 등, 엄청난 호응속에 그와 KINO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빅토르 최는 마지막 유작앨범이 되어버린 <쵸르늬>까지 총 10장의 공식앨범과 <이글라>, <아싸>를 포함한 총 4편의 영화를 세상에 남기고, 우리곁을 영원히 떠나갔다. 빅토르 최의 무덤은 페테르부르크 보코슬로 스코야 클라드비세 묘지에 있는데, 그 무덤 앞에는 인상적인 추모비가 서있다. 상아빛 대리석 받침위에 검은 오석기둥이 힘차게 솟아있고, 그 위로 그의 초상이 조각된 청동이 상징적인 반원 모양으로 올려져 있는데, 이 추모비는 평소 그를 존경하던 예술까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페테르부르크의 저명한 조각가들에 의해 헌정된 것이다. 그의 사후 얼마지나지 않아 빅토르 최라는 이름의 거리가 카잔, 키예프, 알마아타, 타슈겐트 등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특히 모스크바 예술의 거리인 아르바트 2번지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의 벽(일명 "통곡의 벽")과 제단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아르바트 2번지 빅토르 최의 벽 (통곡의 벽) 앞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모습이 담겨진 뱃지를 달고, 그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벽에는 빽빽한 추모글로 가득차 있다. "빅토르! 너는 영원히 우리의 심장에 함께 있다." "빅토르! 너는 우리의 생활방식이다."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는 몰라도, 빅토르 최는 우리를 바꿨다." 그의 힘은 이렇듯 그들의 가슴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는 것이다. 지금도, 매년 8월 15일 이면, 그의 기일을 기념해 빅토르 최 추모제가 열린다. 빅토르 최는 1993년 모스크바 콘체르트 자르 앞 스타광장의 명예가수의 전당에 소련의 영원한 인민가수 브소츠키 다음으로 헌액되었고, 페레스트로이카의 빛나는 별로써 소련 역사를 움직인 13인의 위인 중 한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자유를 향한 저항의 시대를 온 몸으로 부딪히며, 자유를 노래한 음유시인 빅토르 최. 그는 체제와 전쟁을 버리고 자유를 찾자고 외치며, 변화를 요구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록그룹 "윤도현 밴드"가 리메이크한 "혈액형" 의 나레이션 부분에서 윤도현은 이렇게 외친다. "빅토르의 노래가 들린다. 싸늘한 그의 무덤 앞에 더 많은 빅토르가 모여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다. 지금도 그의 노래가 끝나지 않은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렇다. 빅토르 최는 죽었어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자유를 향한 외침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싸늘한 빅토르 최의 무덤을 때론, 공중 화장실에서, 때론 천막 안에서 지키며 더 많은 빅토르를 찾아 울부짖고 있다. 그의 노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이유는 사람들에게 다시금 자유를 꿈꾸게 할 더 많은 빅토르를 찾게 하기 위함인 동시에, 자유를 향한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부른 노래 중 이런 가사가 있다. "만약 다 잠든다면 누가 노래를 부르겠는가?" 소련인들의 가슴에 빅토르 최와 페레스트로이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무 나는 안다 - 내 나무가 몇 주도 살 수 없을 것이란 것을,나는 안다 - 내 나무가 이 도시에서 죽어 버릴 것이란 것을,하지만 난 내 모든 시간을 그와 함께 한다.나는 다른 모든 일이 싫증난다.나는 이 나무가 내 집처럼 보인다.나는 이 나무가 내 친구처럼 보인다.나는 나무를 심었다.나는 나무를 심었다.나는 안다 - 내 나무를 어쩌면 내일 철 없는 아이들이 꺽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것을,나는 안다 - 내 나무가 곧 나를 버리고 떠날 것이란 것을.하지만 그가 있는 동안, 나는 항상 그와 함께 한다.나는 그와 함께 기쁘고, 나는 그와 함께 괴롭다.나는 이 나무가 내 세상처럼 보인다.나는 이 나무가 내 아들처럼 보인다.나는 나무를 심었다. 나는 나무를 심었다.Fin.
빅토르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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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배심원 여러분, 우리 검찰이 피고인을 기소한 것은 무고한 시민을 맹목적으로 벌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대낮에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 마땅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살해되었습니다.”(검사) “이 법정에서 더 큰 비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검찰의 부당한 의심으로 한 젊은이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범인은 처벌돼야 마땅하지만 반드시 진범이어야 합니다. 본 변호인, 죽은 사람을 불러서라도 진실을 밝히고 싶습니다.”(변호인)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배심·참심제의 모의재판이 우리 사법사상 처음으로 열렸다. 2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대법정에서 열린 모의재판은 미국식 배심제와 독일제 참심제 도입이 타당한 지 점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날 오전 배심재판에서 배심원에게 쥐어진 사건은 강도살인 사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혐의다. 지난 5월 서울 양재동 ‘양재 시민의 숲’에서 김미자(45·여)씨가 흉기에 찔려 숨졌다. 강도살해범은 김씨가 가지고 있던 현금 200만원과 금목걸이를 훔쳐 달아났다. 경찰은 근처에 사는 조무혁(28)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검찰은 그가 대학 졸업 후에도 취직이 안 돼 카드빚에 몰리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기소했다. 재판 시작부터 검찰과 변호인은 14명의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었다. 먼저 검찰이 유력한 증인이라며 목격자를 불렀다. 그는 다름 아닌 사건 현장에 있었던 김씨의 딸 김경숙씨. 검사는 “현장에서 범인 얼굴을 똑똑히 봤지요. 그 사람이 이 법정에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김씨의 딸은 ‘바로 저 사람’이라며 조씨를 가리켰다. 순간 배심원석이 술렁였다. 기회를 놓칠세라 검사는 또 다른 증거를 제시했다. 김씨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됐던 범인의 몽타주와 조씨의 얼굴 사진이 스크린에 비춰졌다. 언뜻 보기에도 비슷했다. 변호인도 지지 않았다. 법정 스크린에는 목격자가 경찰에서 범인을 지목하는 과정을 담은 비디오가 흘러 나왔다. 화면에서 김씨의 딸은 반대편에서는 볼 수 없는 유리벽을 두고 6명의 용의자를 마주했다. 김씨는 “글쎄 1번인지 5번인지 잘 모르겠네요”라고 고개를 가우뚱했고, 경찰관은 “자세히 보세요”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1번인 것 같아요. 맞나요”라고 김씨가 입을 떼기 무섭게 경찰관은 “맞습니다. 잘했어요”라며 자신이 잡아들인 용의자의 사진을 들이댔다. 분위기를 장악했다고 판단한 변호인은 “저렇게 헷갈려 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피고인이 범인이라고 단정하는 이유는 뭡니까. 어머니를 살해한 사람을 어떻게든 잡고 싶어서 서두르는 것 아닙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심원들은 다시 알 수 없다는 얼굴이 됐다. 이후에도 검찰은 범인이 입은 것과 같은 색깔의 추리닝복이 조씨의 집에서 세탁이 된 채 발견된 점을 물고 늘어졌고, 이에 대해 변호사는 그런 옷은 흔하디 흔한 것이며 오히려 유리벽 범인지목 과정에 수사 경찰이 동행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3시간에 걸친 공방이 끝나고 배심원은 만장일치의 평결을 하기 위해 평의실로 들어갔다. 이날 모의 재판은 실제 사건을 기초로 많은 부분 재구성됐으며, 이 사건에 대해 하급심에서 유무죄가 엇갈리다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판사는 “이 경우 직접 증거가 없고 범인이 동종 전과가 없는 점에서 유죄로 의심하기는 힘든 것으로 보인다”며 “현행 재판제도에서라면 무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심정에 이끌린 배심원들이 유죄 판결을 한다면 이를 근거로 배심제도에 회의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없지않다”고 말했다. ◆배심제=일반인이 배심원단이 돼 법관과 독립해 유무죄만을 판단한다. 판사는 증거채택 여부 등 재판 과정을 조정하고 배심원의 결정에 구속돼 형량만을 정한다. 법률 문제가 아닌 배심원이 인정한 사실에 대해서는 상소가 불가능하다. 상식에 기초한 판단으로 일반인이 쉽게 동의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언론이나 여론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단점이다. ◆참심제=일반인이 참심원으로서 법관과 함께 재판부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법관과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사실문제와 법률문제를 모두 판단한다. 국민이 법관을 견제하고 일반인이 저지르기 쉬운 정서적 오판도 막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법관과 일반시민이 대등하게 참여하기 어려우며, 둘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을 경우 큰 어려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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