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 가기
ㅣ
내 블로그 글쓰기
ㅣ
내친구 블로그
로그인
ㅣ
블로그 산책
ㅣ
사랑으로 상처받기 보다는 사랑하라
당신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합니다
http://blog.azoomma.com/silkjewel/
블로그
|
일기
|
프로필
|
방명록
|
흔적
|
RSS 구독
이웃블로그 (0)
[
신청하기
]
|
즐겨찾기 추가
비단모래
(silkjewel)
당신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합니다
카테고리
전체보기
(2026)
오르가즘 -그 아름다운 비밀
(35)
엄마와 추억만들기
(65)
사랑밖엔 난 몰라
(1873)
내가 사랑하는 시한편
(31)
아들아!너도 아빠처럼 멋진 남편이 되거라.
(4)
내사랑 계족산
(12)
기본 주제방
(6)
제목+내용
닉네임
태그
검색
최근 방문자
재재맘
선녀님
dkwnaak
운주산야풍
최경상
뉴욕의태양
mango
올리비아
brabrakim
황정숙
즐겨찾기
살아가는 것들의 ...
happy life...
포토다큐
햇살한줌
그대가 머무는곳....
bird's-eye...
무산농원
봄의 길목의 둥지...
이런저런 얘기
마지막을 위하여...
절망에 물들지 않...
아침편지 가족공간...
최근 덧글
섹슈얼 감 구경오세요
아버지의 꽃
4월 첫 날
김장은 협동과 사랑나눔이다
고향에
36년 전의 택일지
우리동네 칼국수집
오래된 것들에 대한 연민
고마운 하루
꽃이 되었다
today
0
| total
16222
44
명에게 즐겨찾기
2
회 스크랩 되었습니다
loading..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오늘도 특별한 날이다 아니 오늘도 참 좋은 날이다 북극 아래 첫 땅 툰드라의 네네츠 사람들에겐 기념일이 따로 없다고 한다. '우리에겐 축제일이 따로 없지요 매일매일이 특별하거든요. 날씨가 좋아서... 새가 울 때에도..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서...'라고 그들은 말한다 인디언들은 매년 돌아오는 생일을 축하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에 그 전 해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걸 축하한다고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를... 어제보다 팔굽혀펴기의 늘어난 횟수를... 탁구가 좀 더 유연해 진 것이... 우리는 늘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무슨무슨 데이(day)가 많은가 보다 하지만 그런 기념일이 없어도 툰드라의 유목민과 인디언들을 보면 축하하고 감사할 일들이 많다 생각해보니 정말 축하할 일들 많다. 봄이 우리 눈 앞에 성큼 다가 온 것도... 꽃 피고 있는데 성긴 눈발이 내리는 풍경을 보는 것도... 그리고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도... 오늘 큰 아들 생일이다. 아침 출근길이 바빴을텐데 집에 들려 우리에게 큰 절을 올렸다. "건강하게 길러주셔서 고맙습니다..이 쌀쌀한 날씨에 낳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이 한마디가 왜 그렇게 따뜻했을까? 매년 생일이면 아침에 와 큰 절을 올리는 아들이 참 든든하다. 초등학교 들어가 1학년 부터 소풍을 가면 돌아올 때 꼭 아버지 소주 한 병.. 엄마와 동생 줄 요구르트를 사가지고 오던 아들 연년생인 동생이 아파서 엄마 아빠를 동생에게 무한 양보 한 아들 넉넉지 못한 청소년기에도 메이커 있는 옷이나 신발을 한번도 사지 못한 아들 그러면서도 늘 웃던 아들 결혼해서 우리사는 아파트 뒷동에 살면서 수시로 살피는 아들 컴퓨터가 안되거나 휴대전화가 안되거나 하면 아들...하고 부르면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는 홍반장 처럼 네...하고 달려와 해결하는 아들 우리집과 같은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아들(이건 작은아들네도 동일) 긍정적인 마인드가 더 많은 아들 그아들의 생일에 내가 더 행복한 이유는 뭘까? 81년 3월11일 그날 아침 정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들을 만났다. 유난히 눈이 큰 아기는 얼마나 순한지 지금 생각해도 이 아들때문에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넉넉하지 못해 좋은 음식 좋은 옷 못해주고 길렀어도 언제나 괜찮다고 한 아들이다. 이제 두 아이의 아빠로 가장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도 든든하다. 지금은 조금 힘들겠지만 아직 젊고 서로 근검 절약하면서 살고 있으니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가면 넉넉해 지리라 믿는다. 봄 날에 태어나 마음 따뜻한 아들이 있어 나...이렇게 잔잔히 나이 들어가도 괜찮겠다.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음력 정월 대보름은 농사를 시작하는 날을 의미하는 아주 오래전 부터 명절로 지켜오는 날이다. 긴 겨울을 지내고 그리고 새해를 맞고 첫 음력 보름을 맞이하는 날 만월로 달이 떠오르면 달에게 소원을 빈다. 그리고 농사준비를 한다. 지금이야 시설하우스가 잘 갖춰져 있어서 사시사철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우수 경칩 지나고 정월대보름이 지나야 땅이 풀려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농사를 시작하기전 한해의 풍년을 지원하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대보름제를 지낸다. 윳놀이 투호던지기 고리던지기 그리고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등을 하면서 한동네 사람들과 화합하고 마음을 모아 마을을 위해 고사를 지낸다. 그중에 풍물패도 빠지지 않는다 시집가서 신혼시절 정월대보름 무렵 시댁에 가면 아버님은 꽹과리를 잡는 상쇠셨다. 꽹과리 소리가 쟁쟁 울리면 북 장구 징..이 한바탕 어우러진다. 아버님은 흥이 나시면 꽹과리 잡은 손이 보이지 않게 치셨다. 장구도 앵쪽 손이 보이지 않게 치셨었다. 그러며 동네 골목을 돌며 집집마다 액막이를 한다, 그러면 그집에서 막걸리를 내오고 떡도 내오곤 했다. 요즘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런데 오늘 정월대보름날 마을을 돌며 풍물을 치는 충물패를 만났다. 상가마다 돌며 비나리를 하고 풍물을 치면 얼마간의 봉투가 나오고 그러면 더 신명나게 풍물을 쳤다. 그 중에서 파란눈의 풍물잡이를 만났다. 징을 잡고 있었다. 어떤 연유로 그는 이 뭉물패에 들어와 이국에서 이국문화를 즐기고 있을까 그분은 대전대학교 교수라고 했다. 이름은 임대빈..영어로 뭐라 들었는데 그건 기억이 안나고 임대빈이란 이름만 기억났다. 진지하고 몰입해서 징을 치고 있었다. 풍물소리가 좋고 풍물패의 의상이 아름다워 풍물패에 들어왔다고 한다. 마침 오늘이 그의 생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풍물이 더 신이났다. 풍물이 끝나고 그는 곧 강의가 있다고 학교로 돌아갔다 밝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잊고 지내는것을 함께하고 있는 모습애 감동을 받았다. 풍물행사가 있다고 연락하면 시간이 되는 한 선뜻 달려온다고 한다. 우리가락 어떤 것에 매력을 느낀 것일까? 참 신선했다. 정월 대보름 이렇게 푸른눈의 그가 복을 빌었으니 올해도 풍년들겠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안녕하겠다.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이쁜마누라 2월 많은일 치루어내느라 수고많았어요. 새봄이열리는 3월 뭔가가 잘될것같은 희망을 갖게하네요. 채원이가 학교에 입학을 하니 열리는3월이 참 기쁘고 행복하죠? 늘 이쁜마누라 건강하게만 지내주는것이 가장 큰 소망이랍니다. 3월에도 즐거운일 기쁜일 행복한일 함께해요 건강하게요. 사랑해요. 3월 첫날 남편이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우리집 첫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통지서를 받은 날부터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8년전 ,예고없이 아주 쬐그만 아기는 내곁에 왔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참 당황했고 고민했지만 그 쬐그만 아기가 세상에 나오던 날, 아기의 모습을 보자 그동안 고민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감동과 감격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아기는 우리품에서 자랐습니다. 며느리가 학생이어서 아기는 3개월부터 아기집을 다녀야 했습니다. 어린아기를 아기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려면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다 세살무렵 아빠의 직장을 따라 안양으로 이사를 갔고 우리는 살점을 떼는 아픔을 느껴야했습니다. 아기가 보고싶어 자다말고 눈물 지은적도 많았습니다. 아기는 대전에 다녀갈 때마다 안가겟다고 울었습니다. 할머니 활아버지랑 살겠다고 우는 아기를 떼어보내고 우리도 울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그리워하다 그 아기가 다시 우리곁으로 왔습니다. 아들이 대전으로 직장으로 잡아 바로 우리아파트 뒷동으로 이사를 하게되었습니다.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 아가는 지금도 토요일만 되면 우리집ㅇ[ 와서 잡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가운데서 자면서 춤도추고 노래도 하면서 할머니 활아버지를 즐겁게하고 있습니다. 이 아기가 여덟살이 되어서 오늘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내 아이들도 초등학교를 입학시켰었는데 오늘처럼 설레진 않앗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냥 걱정만 있었던것 같습니다. 가슴에 수건을 다는 입학식은 옛날이야기입니다 부모가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메고 오는모습도 옛날이야기입니다. 엄마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찍기에 바빴습니다. 어린이들은 국민의례도 척척 해냈고 애국가도 잘 불렀습니다. 여자어린이 48명 남자어린이 31명 79명의 입학생이 있었습니다. 예전 우리학교 다닌때는 70여명이 한반이었는데 한반에 20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정말 행복한 학교생활이 되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안전한 학교생황이 되었으면 합니다. 꿈이 가득한 학교 손녀의 꿈이 영글어가는 학교생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긴 마라톤을 시작합니다. 손녀의 초등학교의; 입학을 축하하면서 기쁨도 가득합니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덧글쓰기
|
트랙백걸기
|
추천하기
신고하기
이 게시물을..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제목 + 내용
이름
태그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