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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2016년은 행복하겠습니다 다가오는 2016년은 당신과 함께 행복하겠습니다 다가오는 2016년은 우리가족과 함께 행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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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1일 2012년 8월16일 이쁜마누라! 2015년 마지막 남은 달력 한장이 왠지 아쉽질 않네요. 살면서 겪지 않아야 될 큰 일을 겪었는데도 이쁜 마누라 의연하게 잘 견뎌줘서 다행스럽기도 고맙기도합니다. 아마도 아물상처가 너무 커서 빠른 시간이 필요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한장 남은 달력이 아쉽지않고 쓸쓸하지 않은이유는 큰 시련 잊으려고 건강하려고 애쓰는 이쁜마누라가 곁에 있어서 그럴겁니다. 미안하고 고맙고 감사하고 그리고 많이사랑합니다. 한장이나 남은 2015년 한달도 우리 건강하게 잘 지내요. 12월1일 이쁜마누라 결혼기념일을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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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100장 들여놓고 쌀 들여놓고 김장 해놓으면 겨울의 반양식 준비했다고 뿌듯해 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님은 김장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겨울내 김장김치 외에는 별다른 반찬이 없으니 김장이라도 넉넉해야 한다고 친정어머니는 2접가까운 김장을 하셨습니다. 그럴때마다 친정아버지께서 그 많은 배추를 쪼개고 절이고 하는 것을 도와주시고 김장쓰레기를 버려주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김장하는날은 동네 잔치였습니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다 오셔서 김장을 거드셨습니다. 소금을 더 넣어야 하네, 젓갈을 더 넣어야 하네 남의 집 김장도 자신들의 입맛으로 간을 맞추었고 간간 웃음꽃으로 고단함을 달랬습니다. 어린아이가 얼아듣기 어려운 은근한 이야기로 한바탕 웃음을 쏟아부어 김장을 버무렸습니다. 그리고는 뜨끈한 국과 수육 겉절이로 함께 밥을 먹고 한대접씩 겉절이를 갖고 졸아갔습니다. 어머니는 혹여 김장할때 못온 이웃집은 우리를 시켜 한대접씩 보냈고 담장넘어 누구엄마를 불러 김장을 나누었습니다. 김장은 정말 이웃과 협동해서 정을 나누는 축제였고 사랑을 나누는 문화였습니다. 그래서 인가요 우리나라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겨울이 돌아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랑나눔 김장대축제를 엽니다. 그 김장은 사랑이 담겨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며 긴 겨울을 함께 견뎌갑니다. 우리집도 지난 주말 김장을 했습니다. 아파트 특성상 배추를 쪼개고 절이고 씻는 번거로움때문에 절임배추를 샀습니다. 그리고 참 고맙게도 농사지은 골파와 무 생강을 넉넉하게 가져다준 이웃이 있어서 재료비도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외의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번거로운 일들을 가족이 함께 도왔습니다. 나와 동생은 골파를 까고 동생남편은 무를 잘라 시레기와 분리하고 남편은 골파와 무를 깨끗이 씻어놓았습니다. 생강을 까서 찧어놓고 마늘은 마늘철에 많이 까서 간수해 놓은 것이 있어 수고를 좀 덜었습니다. 그리고 찹쌀플을 쑤고 새우젓과 까나리액젓을 준비했습니다. 늘상 양가 어머님이 해놓으신 김장김치를 갖다먹다가 두분이 계시지 않자 처음엔 김장이 참 막막했습니다. 아무리 김치를 사먹는 시대에 산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김장김치 맛을 잊지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장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재료에 대한 부담도 있고 어머니 맛을 낼 수 있는 자신도 없었습니다. 김장을 한다고 하자 가족 모두가 나서서 도왔습니다. 남편 동생네 아들네가 한자리에 둘러앉아 김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뜨끈한 동태찌개와 굴겉절이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우리집과 동생네 그리고 아들네는 함께한 김장김치를 먹으며 긴 겨울을 날 것입니다. 그러며 여기저기서 김장했느냐고 연락을 해옵니다. 김장 안했으면 한통씩 준디고 합니다. 그 마음을 받으며 따뜻해 집니다. 김장을 하면서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직도 넘치기 때문입니다. 김장을 해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보니 추위가 온다고 해도 조금은 안심입니다. 식구들이 함께한 김장김치가 맛있게 익어가 우리들의 밥상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원합니다. 첫 눈 소식이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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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마누라 마음 아프고 바빴던 10월 그 10월의 마지막 날 잠시나마 함께 할 수있어 좋았어요. 노래 부를 수 있어서... 이쁜마누라가 좋아해줘서 더 좋았어요. 살아있어서 건강하기만하면 아무리 큰일이 닥쳐온다해도 다 해결될 수 있다는것 알았죠? 마음 아파 하지마세요. 더 걱정없이 더 즐거우라고 잠시 시련을 준거라 좋은 마음으로 생각해요, 서로 건강하기만 하자구요.11월이 더 멋지고 즐겁고 행복한 그런달이 될거예요. 사랑해요. 11월 첫날 남편이 시월 마지막 날 밤 남편이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한 라이브 잊혀진 계절을 불렀다 그리고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불렀다 노부부의 노래를 불렀다 가슴 뭉클...따뜻했다. 노부부의 노래 태진아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온세월 구름처럼 흘러간 내 인생아 낯설기만한 하루 또 하루가가고 이내 쉴 곳은 사랑하는 당신 뿐 세월 지나니 후회가 되오 좀 더 따뜻하게 해줄것을 모두 다 주고 싶은데 남은 날이 너무 짧아 미안하오 사랑하오 다시 태어나도 사랑하오 세월 지나니 후회가 되오 좀 더 따뜻하게 해줄것을 모두 다 주고 싶은데 남은 날이 너무 짧아 미안하오 사랑하오 다시 태어나도 사랑하오 오래오래 곁에 있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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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남편이 일반 기업에서 메이커 기업으로 직장을 옮긴 후 우리에게 의료보험증과 보너스라는 생소한 복지가 생겼다. 적은 월급이었지만 2달에 한번 씩 나오는 보너스가 있다는 것은 무너지는 가계부를 지탱하는 힘이 되리라 믿었다. 약속대로 첫 보너스가 나왔다. 이걸 어떻게 쓸것인가 고민하다 전화를 놓자고 합의했다. 시댁과 친정에 우리가 사는 것을 궁금하지 않게 전해드리자는 의미였으나 실은 나는 문명의 이기를 살림으로 들여놓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서 우리집에 생긴 전화는 74-0000. 번호를 달고 있었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시댁으로 친정으로 전화를 드렸다. 그때까지도 시골동네인 시댁은 공동전화를 쓰고 있었다. 114에 전화를 걸어 00도 00군00읍00리 를 대달라고 하면 전화가 있는 아저씨댁에 연결이 된다. 그러면 대전에 사는 누구씨 아들집인데 부모님을 바꿔달라고 하면 스피커 소리가 들렸다. 000씨 대전에 사는 며느리에게 전화왔습니다..어서 오셔서 전화받으세요하면 숨이 턱에 닫게 달려오시는 아버님 소리가 들렸다. 몇마디 안부를 물으면 전화비 많이 나온다고 다 잘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뚝 끊으셨다. 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참 허허로웠다. 전화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었다. 남편이 밖에서 가끔 전화를 해주면 참 좋았다. 전화가 없을때면 퇴근때나 되어서야 남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혹시 남편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공중전화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전화 때문에 남편과 다투게 되는 적도 있었다. 남편이 회식이나 모임이 있을 때 저녁을 해놓고 기다려도 오지 않고 전화도 없을 때였다. 남편이 전화를 못한 이유는 대략 이랬다 전화를 하려면 공중전화가 가까이 없고...공중전화가 있으면 동전이 없어서 였다. 그렇게 전화는 우리의 일부가 되어 특별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백색 전화기에서 흑색전화기로 그리고 다양한 컬러와 기능을 가진 전화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전화수요가 많아져서 인지 우리집 전화번호는 74국에서 634국으로 변해 30여년 우리와 함께 했다. 그러며 휴대전화가 나오기 시작했고 집전화는 어느땐 전화번호까지 생각나기 않게 쓸모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아들 며느리 하다못해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까지 휴대전화가 있으니 집 전화를 사용하는 횟수가 없어지게 되었다. 또 얼마 전 부터는 집 전화로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아들 이름을 대면서 아들이 다쳤다느니 병원에 갔다느니 하는 전화를 서너번 받으니 집 전화가 두려워졌다. 너무도 오래 노출된 집 전화번호를 원치않은 사람들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 부담 스러웠다. 그래서 전화코드를 빼놓고 두달 쯤 지내다가 전화를 해지하기로 했다. 남편이 100번으로 전화를 하니 주민등록증을 복사해서 주빈번호 뒷자리를 지운 뒤 팩스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당장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휴대전화에 저장된 우리집 버튼을 눌렀다. 어느 여성이 나와 친절하게 들려준 목소리는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다시 확인 하시고 걸어주세요.. 35년 우리와 함께 했던 우리집 전화번호는 이렇게 우리집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전화를 걸어도 없는 번호가 된 우리집 전화번호... 그리고 아직도 내 휴대전화속에 저장된 엄마 아버지 휴대전화번호는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다시 확인 하시고 걸어주세요.. 가 되고 말았다. 우리집 전화로 참 많은 소식을 전해 들었었다. ARS로 들은 아이들 대학 입학 소식도 있었고 군대가서 가슴 설레게 하던 아들의 전화도 있었다. 가을속에서 좀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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