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인터넷 속 또 다른 나의 발견] 촌장과 시골아낙

해가 뉘엇뉘엇 넘어갈려고 할 때 내일 아침 국을 끓일 무를 뽑으려 밭으로갑니다.
해만 지면 세상이 어두워지는 시골살이는 때론 그 옛날 도깨비도 나올것같아 달음박질을 쳐 봅니다.
혼자 달리면서도 항상 달음박질을 꼴지를 면치못한 학창시절이 생각나서 웃음이납니다.
 
고등학교 체력장을 치르던 날,
상급학교의 진학이 달린 문제라 젖먹던 힘까지 내어서 달렸건만..
돌아오는 친구들의 말이란...
'너 걸어가더라' 요샛말로 허걱이 절로 나옵니다.
마흔을 갓 넘긴 지금 나는 일등을 하여야할 아무런 이유가없기에...다만 도깨비가 무서워서 달음박질에 속력을 더하여봅니다.

무를 뽑아들고 돌아오는 길 
어김없이 눈길이 머무는 그 자리..
그 텅빈 마당에도 어김없이 가을의 색깔이 때깔나게 차고 앉아있습니다.
해가 지나도 떠나버린 주인은 다시 올 줄모르지만 올 해도 가을은 이 주인없는 집에 머물면서 예쁜 가을자리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주인없는 그 집 마당에 주인처럼 떠억 버티고 서 있는 모과와 감나무.
올 해는 감은 별루 보이지 않는데 모과는 주렁주렁 열려 주인없는 집에 많은 가족을 만들어냅니다.
그리 크다고 볼 수없는 모과나무는 노란 가을색을 물들이고 하늘과 참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마당 여기저기 떨어진 노란 가을을 아낙은 이쁜마음으로 거두어 들입니다.
내가 짓는 농사처럼 손 한번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는데 그냥 이 예쁜 가을을 거두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첫해는 그냥 남의 집이라 주인이 없어도 선뜻 들어가 줏을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한 해 두 해의 세월을 거치면서 이제는 제가 주인인냥 그냥 들어가 떨어진 모과를 줏습니다.
주인이 없음을 슬프함인가 아직 익지도 않은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것들도 떨어져 내 발밑에서 뒹굽니다.
가을의 선물이라 그냥 두고 가기에는 미안함이 앞서 모두모두 거두어서 이고 지고 집으로 옵니다.
늙으신 어머님은 또 며느리가 자연을 탐하여 이고 지고 무겁게 오는 모습을 염려하십니다.
80해를 자연과 같이 사신 어머님은 이러는 젊은 며느리가 이해가 되지않을성도 싶습니다.

해 지나면 열리고 떨어지고 그러면 맨 날 보는것을 굳이 집안으로 끌여들어 여기저기 소쿠리에 담아서 가을 냄새를 맡는 며느리가 이상도 하시겠지요.
그래도 가는 가을을 더욱더 잡아 두고픈 마흔의 아줌마는 오늘도 온 집안 가득 가을냄새를 피웁니다.

ㅂ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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