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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집은 담장이 낮다. 단지 큰 길과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대문도 그다지 튼튼해보이지는 않는다. 적갈색 대문을 열면 구불구불한 길이 남루한 마당 한켠을 가른다. 담벼락에는 호미가 추녀밑 비를 피해 바짝 옹크리고 걸려있고 왼쪽의 텃밭이랄 것도 없는 좁은 흙마당에 지금은 김치깡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름내내 풋풋한 고추를 따고 상추를 따먹던 그 손바닥만한 밭이 이제는 김치독에 자리를 내주고 추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좁다란 마루에 비닐 장판이 깔리고 그 아래 식구들의 신발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많은 식구만큼 신발도 가지각색...벗어놓는 모양도 제각각으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신발 정리는 늘 엄마 몫이었던것 같다, 일할 손이 많았음에도.... 아무리 엄마가 신발 좀 예쁘게 벗어놓으라고 해도 잔소리 듣는 그때뿐, 언제 그랬냐는듯 신발들은 여전히 뒹굴고 있었다. 가끔 막둥이는 신발을 신은채로 방에 들어오기도 했었다. 막둥이만의 특권으로....... 겨울 시린 바람이 불면 신발들은 주인 못지않게 호사스런 생활을 했다. 방문 첫머리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식구들 신발을 들여놓았던 건 엄마다. 겨울의 아침은 그때나 지금이나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손발을 얼어붙게 한다. 밥 먹는 것과 잠자는 것, 텔레비젼 보는 것 등의 몇몇가지 일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일들이 밖에서 이루어졌던 어린 시절이었다. 화장실도 마당한켠에 있었고, 집안에 지금처럼 컴퓨터나 게임기 등이 없었기에 어린시절의 모든 놀이문화는 바깥에서 이루어졌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아파트처럼 신발이 실내에 놓이는 일은 결코 없었는데 유독 찬바람 불던 겨울엔 이른 아침 학교가는 5남매와 출근 하는 아빠의 신발이 따스하라고, 발 시리지 말라고 전날 밤 방안에 신발을 들여놓고서야 잠을 청했던 엄마.. 한 겨울 방문 바로 곁 신문지 크기만큼의 자리, 거긴 엄마의 사랑으로 늘 아랫목처럼 따스하던 자리였다. 유일하게 남루한 신발들이 호사스러움을 누리던 자리였다. 오늘 아침도 여전히 강추위라고 한다. 신발이 차갑지 않다. 더이상 우리식구들의 신발은 추위에 몸을 떨지 않는다. 따스한 온기가 가득한 집안에 현관이 있으니.... 하지만... 고향집의 신발들은 오늘 아침에도 그 자리에서 아빠를 엄마를 할머니를 동생을 기다렸겠지. 밤이되면 엄마는 또 여전히 그 자리에 식구들의 신발을 들여놓을터... 어릴 때 엄마가 밥을 해서 제일먼저 했던 일은 아빠 밥을 담아 아랫목 이불에 묻어두는 것이었다. 아랫목에는 밥공기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던 셈.. 지금은 항시 보온이 되는 보온 밥통에 자리를 빼았겼지만... 그러고 보면 우리집엔 참 자리들이 많았던것 같다. 그 자리엔 늘 사랑이 온기처럼 깔리고 말이다. 나는 어떤 자리를 만들어볼까 집안을 두루두루 살펴본다, 이 아침에...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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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은 살림밑천이라더니 어쩜 그리 공부도 잘하고 부모도 위하는지... 큰 아들은 장손이자 집안의 기둥이라더니 참 듬직하네 세째도 언니 오빠 닮았나보다. 기특하다. 네째... 우리집 네째... 생각하면 가슴에서 눈물이 솟는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부모님의 따스한 손길을 미처 받지 못한 녀석... 사춘기의 기나긴 방황을 끝낼즈음 세상은 녀석도 모르는 사이에 성인이라는 갓을 씌워주었다. 막내는 막내라는 이유만으로도 모든것이 용서가 되고, 맨 끄트머리에 돌출되다보니 손길 한번이 더 가게 되고... 네째는 누나들과 형이 만들어놓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고스란히 받아야했고... 아무리 잘해도 거기엔 미치지 못함이 있었으니 좌절 또한 컸으리라. 왜 미처 보듬어 주지 못했을까...왜 미처 헤아려주지 못했을까.... 말 한마디조차도 녀석의 반항기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온 몸을 찔렀을텐데... 새벽, 추운 한 겨울 새벽, 녀석의 교통사고 소식은 나를 얼어붙게 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전화속 다급하던 목소리, 공포가 밀려와 어둠을 밀어냈지만 정작 방바닥에 앉아있는 나는 일으키지 못했다. 그래, 그렇게 속 썩일바에야 차라리....이렇게 나쁜 마음이 그 순간 밑바닥에서 꿈틀댄건 왜였을까? 두번째 전화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 응급실로 가던 그밤의 일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피가 흥건한 녀석의 얼굴을 보면서 참았던 눈물을 흘렸던 내가 보인다. 아프다고 울먹이는 녀석 앞에서 ,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신께서 주신 귀한 생명을 마음으로 죽이려 했던 나를 한없이 뉘우치며 무릎 꿇었던 그때의 내가 보인다. 한달을 병원에서 새우잠 자던 그때의 내가 보인다. 뇌수술 마치고 혼미한 정신 속에서 녀석은 정작 친구는 알아보면서 가족들은 알아보질 못했었다. 녀석은 아마도 가족에 대한 애정 없음을 그런 무의식 속에서 털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십대의 마지막을 녀석은 홍역을 앓듯 보냈다. 도심 속의 아침 칼바람이 매섭다. 자꾸 몸이 움츠러든다. 네째 생각이 나서 또한번 마음이 아프다. 이 추운날 공휴일도 없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네째... 장갑은 끼고 일하는지...내복은 입었는지...밥은 따스한 걸 먹는지... 전화로 안부를 묻고 또 묻는다. 녀석은 걱정하지 말라며 큰 웃음을 웃는다. 잠시 짬을 내어 녀석의 미니홈피에 방문을 해본다. 말문이 막힌다. "엄마 같은 우리 큰 누나..." 두고두고 네게 미안할거 같구나, 네째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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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날씨가 지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니 그보다는 다람쥐 체바퀴 돌듯 반복되는 스물다섯 그해의 내 생활들이 지리했던 탓에 날씨까지도 더욱 날 후덥지근하게 한 것 같다. 지금은 몇해를 이곳 인천에서 살아도 별로 좋은걸 모르겠다. 오히려 여러 지방색이 섞여버린 깐깐한 인심과 시끄럽게 울어대는 까치소리가 점점 서먹하게 느껴질 뿐이다. 처음엔 까치소리가 들리면 반가움에 창문을 열어젖히곤 했는데, 오염도가 높은 도시일수록 까치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조차 일상에서 멀어져버렸다. 어쨌든 시골 흙냄새를 뒤로하고 낯선도시의 향기를 좇아 차를 달린 곳이 이 곳 인천, 그 해 여름볕 뜨겁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남자들만 우글대던 집에 느닷없이 아가씨가 온다니까 아침부터 쓸고 닦고한 기색이 대문입구에서부터 엿보였다. 고기 굽는 냄새도 집안 가득하고 대문이 미처 닫혀버리기도 전에 맨발로 뛰쳐나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너무나 뜻밖에어서 순간 멈칫했었다. 빛에 반짝이는 살색 머리와 뚱뚱한 체구, 턱과 코 밑의 하얀 수염, 유난히도 굽은 허리가 애처롭기까지 한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얼굴을 자세히 볼 새도 없이 뒤이어 따른 한 여인네의 쨍쨍한 목소리... "아이구, 이 영감아 !!! 바지나 제대로 올리고 나가야지 !!" 그러고보니 바지가 이미 반은 내려와 허벅지 쯤에 걸린 상태였다. 파자마만 걸치고 있다가 느닷없이 아가씨가 왔다니까 미처 바지도 제대로 못 갖추고 맨발로 뛰쳐나왔으리라... "아가씨 앞에서 이 무슨 주책이꼬? 아이구, 아이구...." 연신 나무라는 말투로 혀를 차시며, 그래도 누가 볼 새라 얼른 끌어안고 뒤에서 바지를 끌어올리고 있는 한 여인네의 모습에 그제서야 난 얼굴이 붉어졌다. 이 두분이 바로 나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되신 분들이다. 감히 시아버지 어려운줄도 모르고 그런 첫 만남으로인해 보는순간부터 웃음을 참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끊임없이 웃어대는 큰 손녀뻘 되는 날 보시고 같이 허허 웃으시는 통에 온 식구가 다들 웃고 말았었다. 그 웃음소리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는데도 우리 시아버지는 말 벗도 없을 머나먼 나라로 긴 여행을 가버리셨다. 여느때처럼 살포시 잡아본 시아버지의 커다란 손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냉기로 가득차 있어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다. 시아버지의 몸이 그만큼한 나무집에 들어가고 그 위에 흙이 뿌려지고 잔디가 뎦였음에도 난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이젠 명절때나 한식날 산소에 가서꽃 한다발과 음식 올리는 것으로밖엔 시아버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난 "만남"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ㄱ"과 'ㄱ', 'ㄴ'과 'ㄴ', 'ㅏ'와 'ㅏ'라는 글자가 각각 두개씩 짝을 이루어 이루어진 단어인지라 단어자체로도 얼마나 큰 인연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같은 자음과 모음이 두개씩 모여있는 단어는 유일무이하다. 만남이란 단어처럼 그렇게 귀한 인연으로 시아버지를 통해 새로운 만남의 기쁨을 만끽했는데, 너무 연로하신 연유로 맘껏 응석조차 부려보지 못한게 마음에 사무친다. 내 가까운 사람이 어느날부터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죽음과의 갑작스런 만남이 내겐 너무도 큰 공허로 남아있다. 아직도 퇴근할 때면 골목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계시다 가 함박웃음을 웃으며 내 손 잡고 집에가자 하실 것만 같다. 이것이 다만 꿈에서나 가능할 뿐이라니, 아직은 어색하기만한 새로운 그리움과의 만남이 그저 서글프게 다가올 따름이다. 아버님!! 저예요, 막내며느리...기억하시죠? 얼마전에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에 정찬이 데리고 다녀왔어요. 제가 올해 학부형이 되거든요. 정찬이가 여덟살이 되었죠.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아버님 그렇게 저희곁을 떠나신지가...아마 아버님이 정찬이 보시면 깜짝 놀라실거예요. 물론 아주 기분좋은 탄성이겠지만요... 너무 어려서 할아버지 품에 제대로 안겨보지 못하고 커버린 정찬이를 보면서 지금쯤 아버님이 같이 계셨다면 녀석이 얼마나 응석을 부렸을가 하는 마음에 아쉬움이 커져만 갑니다. 요새 8개월된 동생 때문에 녀석이 좀 외로와하거든요. ㅎㅎ 어느날 밤 아버님 제 꿈속에 나타나서 말없이 그저 웃고만 가셔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얼마후 둘째 가진걸 알았어요. 아버님 그때 축하해주러 오셨던거죠? 그 녀석이 벌써 8개월이 되었어요. 요즘은 방바닥 기어다니느라 정신 없어요. 이름은 정재예요. 올 한식에 산소갈 때 데리고 갈께요. 아버님...여러모로 미흡하고 부족한거 많은 막내며느리지만, 그저 내 식구들 아끼고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께요. 지켜봐주세요. 2004년 2월 16일 막내며느리 올림.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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