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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냑, 독을 풀다
나의 여동생
아버지
다영이의 웃지 못할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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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참 독하다. 술로 치자면 아마 꼬냑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3년동안 난 지독한 우울증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숨을 쉬는 것보다 더 많이 했었다. 그러면서 밥을 먹었고 둘째아이도 낳았고 아이들과 뒹굴며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동네 아줌마들과 점심먹으러 다니기도 했고 일도 했다. 심지어 한 낮에 남편과 모텔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난 한번도 내가 살아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아니면 아무도 아는 척 할 수 없게 난 까무러쳐 있었다. 그렇게 나를 포기하며 세상속의 사람으로 아이들의 엄마로 동네 아줌마로 과외 선생으로 그리고 아내로 살아갈 이유는 뭐였을까.... 그냥 난 독한가보다....고 생각한다. 솔직하자면 싸울 힘이 없었다. 세상의 사람이 되지 않을 자신이 없었고 아이들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의 날 빼내올 기력이 없었다. 그것마저도 난 포기했었다. 그러면서도 난 끝없이 죽고 싶었다. 지독한 싸움이었다. 3년..... 조금씩 난 그 얽히고 섥힌 내 삶의 그물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그런지 안 그런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이제 날 조금씩 사랑하기 시작했다.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았던 그 뿌옇고 현기증나던 내 생활이 가끔씩은 아주 청명한 소주빛 하늘처럼 맑다. 아... 난 이제 글을 쓸 수 있다. 몸이 마음이 움직여 머리는 소용이 없다는 다이어리 내 낙서에 절망했던 때가 불과 몇개월 전인데 이젠 몸으로 마음으로 머리로 나만 읽어도 좋을 글을 쓰고 싶다.....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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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엄마 줄라구 선물 가져왔어!" 할아버지댁에 갔다 온 딸아이가 현관문에서부터 큰 소리로 날 찾았다. 신발도 벗지 않고 가방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더니 내게 들이밀었다. 모 아이스크림 전문점의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랬어? 엄마 이거 쓰라구?"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고마워 엄마가 잘 쓸께..." 수첩안을 몇장 넘기자 나뭇잎 하나가 떨어졌다. "그것도 엄마 줄라구 가져왔지." 할아버지 집에 있는 화분에서 하나 줏었단다. 그걸 주워서 수첩에 끼워넣고 빨리 엄마한 테 주고 싶어서 조그만 것이 얼마나 안달이 났었을까? 아... 정말 행복하다.... 놀이방 차에서 내리면서도 낙엽하나 내게 안겨주는 딸아이다. "엄마, 선물이야." 하면서 너무 행복한 웃음을 보이는 내 딸 다영이를 볼 때마다 나도 그냥 그 웃음에 빠져 버린다. 오늘 아침 화장대 서랍에서 그 수첩이 나왔다. 나뭇잎도 그대로 꽂혀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아....나의 하나 밖에 없는 여 동생이 떠올랐다. 내 여동생은 말을 참 많이 더듬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도 한두번 이불에 오줌을 쌌었다. 초등학교도 특수반 수업을 받았었고, 신발도 오른쪽 왼쪽 번번히 바꿔 신었었다. 생각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고 나에겐 참 불편한 동생이었다. 두 살터울 내 동생이 참 싫었다. 내게 걸려온 친구 전화를 내 동생이 받기라도 할까봐 벨 이 울리면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었고, 같이 목욕탕에 가서 나보다도 덩치가 큰 내 동생의 때를 밀어줄때도 친구들이 볼까봐 구석에만 앉았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단풍잎을 모았던 적이 있었다. 각종 단풍잎을 모으고 코팅을 하고 책갈피에 끼우고 그런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동 생이 내 책상위에 나뭇잎을 잔뜩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하나같이 구멍 뚫리고 바싹 말라 있고 부서지고 .... 정말이지 단풍잎이 아니라 낙엽부스러기였다. "어어언니이... 줄라아고....." 더듬더듬 혀 짧은 소리 내 동생 목소리가 어찌나 짜증이 나고 화가 났던지 "이게 쓰레기지 단풍잎이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다음날 아침 학교에서 교과서를 폈는데 아 그 낙엽 부스러기가 책갈피마다 꽂혀 있는 거였다. 그걸 책갈피에 끼우면 빳빳해진다고 믿었을까...? 내 교과서 가득히 채워진 동생 의 모습이 너무 짜증스러워 교실 쓰레기통 앞에서 털다털다 끝내 난 울음을 터뜨렸다. 그랬던 동생이었다. 내겐 짜증스럽고 짐이고 참 없었으면 좋겠을 동생이었다. 그 동생이 지금 정말 없다. 동생은 철이 들면서 가출을 몇 번 하더니 급기야 집을 나가버렸다. 스물 이 되기도 전에.... 지금은 내가 맘껏 사랑해줄 수 있는데... 지금은 내 딸 아이의 이모로 얼 마든지 자랑스러울 수 있는데...... 지금은 ....... 내 동생이 어떤 모습이건 ..... 딸아이가 제 이모를 닮았나보다.... 딸아이가 제 아빠에게 준 카드에도 나뭇잎을 하나 넣 었더란다. 아 더이상 쓸수가 없다. ..... 눈물이 쏟아지면 끝이 있겠는가? ....아예 시작을 말자. 그저 나뭇잎 빛깔이 곱기만 하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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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여동생과 두 명의 이복형제를 주셨다. 나의 오빠는 할머니와 작은 어머니 밑에서 나이 차이 얼마 나지 않는 삼촌들과 형제처럼 자랐다. 아버지는 핏덩어리 오빠를 남겨두고 오빠의 어머니를 버리고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바다도 뒤로하고 육지로 날아오셨다. 수려한 외모와 언변과 몇몇가지의 재주로 나이 어린 아내와 두 딸과 남부럽지 않은 재력으로 빨리도 자리잡은 아버지에게 세상은 또 어떤 유혹을 했었던 것일까? 긴 생머리, 오똑한 코, 야무진 입매... 아버지의 새로운 그녀와 나와 아버지는 사진을 찍었다. 누구를 노려보는건지 부릅뜬 눈의 여섯살난 여자아이가 그렇게 박혀있었다. 나의 여동생은 그 사진에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오면서 딸도 하나만 들고 나온 이유였겠지만... 정말 새엄마와 나와 아버지는 여관방에서 살았다. 단칸방으로 옮기고 배신감으로 크게 멍든 나의 외할머니는 어느날 찾아와서 나의 여동생을 데려다 놓고 새엄마가 내 놓은 쥬스도 한잔 마시고 가버리셨다. 그렇게 우린 네 식구가 되었고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간지 얼마 안되어 우리 자매에게 솜털같은 남동생이 생겼다. 철이 없었을까... 새엄마와 나와 내 여동생은 양푼에 밥을 비벼 먹으면서 행복해했다. 옆에서 남동생이 오줌싸는 것을 보고 배꼽이 빠져라 웃으며 우린 맛있게 밥도 먹고 한 식구가 되어있었다. 남동생도 크고 제법 큰 집으로 이사를 가고 정원에서 돼지고기도 구워먹으며 적어도 나와 내 여동생과 내 남동생은 끔찍한 형제였다. 제주도의 오빠는 가끔씩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나 뭐 그런 행사의 회비가 없어 곤욕을 치루기도 했었다. 고사리를 뜯는 할머니와 목수인 작은 아버지와 식구들 수발하러 결혼한거나 마찬가지인 작은 어머니의 낮은 한숨에 나의 오빠는 키도 자라지 못하고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살았던 모양이다. 다 자란 오빠는 내 어깨정도 밖에 닿지 않는다. 그렇게 국민학교들어가고도 몇년이 지나서야 우리 아버지는 참 철없이도 나타났다. 고급자가용에 썬글라스에 새엄마에 낯선 꼬마까지 데리고... 그렇게 오빠 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옹졸한 변명적힌 편지 한 장 보내지 않고 데리고 가마 약속한 번 해주지 않고 성공해서 돌아온 옆집 아저씨마냥 고렇게 나타났다고 한다. 오빠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우리 집에 왔다. 아빠를 닮아 다 같이 속이 없는 이유였을까 드라마 보면 탈도 많더만 우린 금방 오빠 동생 형이 되어 그렇게 어우러졌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에게 부족한 건 뭐였을까... 세상이 아버지에게 바란 건 뭐였을까... 그렇게 우리가 아버지를 끝없이 이해하면 할 수록 아버지는 나이를 잊고 가정을 잊고 세상속의 남자로만 살고자 했다. 술과 여자와 세상속의 것들로 늘 묻혀 지내는 아버지는 이미 우리 식구가 아닌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네 살 난 딸아이를 키우며 난 정말 행복하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그 자식을 껴안고 킁킁 거리며 맡는 그 냄새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정녕 아버지는 그런것을 못 느끼고 사신걸까? 세상은 그것보다 더 좋은게 있다고 아버지를 호시탐탐 노려온 것일까? 아버지는 지금 아무것도 없다. 아내도 없고 돈도 없다. 인간으로 이해하자고 오빠가 말했었다.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그저 한 인간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거라고 용서할 수 있다고 했다. 왜 그런 용서는 다른 형제들도 아니고 오빠만 할 수 있는 걸까? 지금까지도 끝없이 배신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다른 사람도 아닌 오빠가 이해할 수 있는 걸까? 두 살난 아들의 아버지가 된 우리 오빠는 지금 저기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고단한 세상을 쉬고 있겠지. 아버지도 용서한 편안한 마음으로 곤히 잠들어 있겠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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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피스텔에서 가르치기 전 집에서 서재에 학생을 불러서 과외를 하고 있을 떄였다. 네살 난 우리 딸 다영이는 바로 옆단지인 할머니네 집에서 저녁 나절을 보내곤 했었는데 그 날 저녁엔 피치 못하게 할아버지랑 그냥 우리 집에서 있게 되었다. 한참 과외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곤대는 오디오소리가 크게 나는 것이었다. 나갈려고 하는데 갑자기 조용해져서 설명하던 것을 마치고 잠시 후에 나가보았다. 나가자 마자 시아버님이 조용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부르시는 거다. 안방으로 가보니 아버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안절부절... "왜 그러세요?" "이 비디오 때문에..." 그 비디오는 애기 아빠가 신혼초에 재미반 장난반으로 친구에게 얻은 포르노 비디오였다. 서랍에 넣어놓고 가끔 다영이가 물으면 " 어른들만 보는 비디오야"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고 넘어갔었고 다영이도 그 비디오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글쎄 다영이가 의기양양 "할아버지 내가 할아버지 보는 비디오 틀어줄께" 할아버진 "그래그래. 우리 비디오 보자~" 다영아빠가 영화를 넘넘 좋아해 큰 맘 먹고 산 프로젝터 비디오에 소리빵빵한 오디오에 거실 한 벽면 가득히 퍼졌을 화면하며 웅장한 소리하며.....에궁 노인네 뒤로 안 넘어가시길 다행이지.... 그 사건이 여름이었고 난 그 비디오를 깔끔히 처리하지 못하고 그냥 겨울옷 상자에 쳐박아 두었다. 며칠전 그 상자의 옷들을 꺼내 정리하고 비디오가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분리수거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뚜껑을 덮어두었다. 화장을 하고 있던 나는 딸아이가 무언가를 덜그럭 거려 그러려니 했다. 마스카라로 모든 화장을 마무리하고 있을때 다영이가 덥석 묻는다. "엄마 이거 엉덩이 나오는 비디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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