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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薛氏)의 딸과 가실(嘉實) 총각 신라의 도읍 경주에 설씨(薛氏)라는 늙은 홀아비는 오직 딸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설씨의 딸은 재색을 겸비하였으며, 언행마저 고운 여인이었다. 그런데 진평왕 때에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말미암아 이 늙은 홀아비도 병역의 의무를 치러야 했다. 국방 경비를 위한 소집 영장을 받고 보니, 늙고 병든 아비를 보내느니 차라리 자기가 대신 나가고 싶지만 여자의 몸으로 어쩔 도리가 없어 전전긍긍을 하고 있던 차에 사량부(沙梁部)에 설씨의 딸을 좋아하는 가실(嘉實)이라는 총각이 있었다. 가실 총각은 설씨네 딱한 사정을 알고 찾아와 자기가 대신 군대에 나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설씨 부녀는 이 기적 같은 고마움에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무척이나 고맙고 반가웠다. 그러자 설씨 노인은 가실 총각에게 "나를 대신하여 군대에 나가겠다니 너무나 기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네. 내 그대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의향으로 만약 그대가 내 어린 딸이 어리석다고 생각지 않으면 아내로 맞아주면 어떨지?" 라고 운을 떠보았다. 이것은 가실 총각이 원하고 바라던 바였으므로 흔쾌히 받아 드리자, 설씨의 딸은 거울 하나를 꺼내어 반을 갈라 한 조각은 가실 총각에게 나머지 한 조각은 자기의 품에 넣고 훗날 혼인할 때의 신표(信票)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가실 총각은 설씨 딸에게 말 한 필을 주며 "이것은 천상(天上)의 좋은 말이니 내가 없는 동안 맡아서 기르시오." 하고는 설씨 노인을 대신하여 의젓이 전쟁터로 떠났던 것이다. 3년이면 돌아오게 되어 있었던, 가실 총각은 기한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자. 설씨 노인은 자신의 노쇠함과 딸의 나이도 혼기(婚期)를 훨씬 넘기게 되었으니, 설씨 노인은 딸에게 다른 신랑감을 찾아서 혼인하기를 강요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딸은 "신의를 저버리고 언약(言約)을 어기면 어찌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금수만도 못한 처사입니다" 하며 아버지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설 노인은 이윽고 딸도 모르게 이웃 청년과 혼약을 하고 말자. 딸은 가실 총각이 두고 간 말을 쓰다듬으며 외로움을 달래다 그 말과 함께 집을 떠나 버리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실 총각이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설씨 노인과 딸마저도 그가 가실 총각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몰골은 해골처럼 마르고 옷은 남루하며, 기나긴 전쟁터에서 배고픔과 피로에 지친 가실 총각은 전혀 딴 사람의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가실 총각은 반쪽의 거울을 설씨의 딸에게 건네자, 설씨의 딸은 그 거울 조각을 받아들어 자기의 것과 맞추어 보니 조금도 틀림이 없이 꼭 들어맞아 그때야 가실 총각이라는 것을 판명이 되어 서로가 기뻐하며 꿈에서도 그토록 그리던 두 남녀는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 [삼국사기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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