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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굴스
(ticell)
궁시렁거리다 넘쳐 끄적끄적... 사사로운 견해와 살다보니 생긴 에피소드 여기에 만화를 더하기... 내키면 골치아픈 허구 몇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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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고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교육받은 여자로 여기서 21세기를 살자니 종종 20세기 19세기를 느낄 때마다 사는게 싫어진다. 듣자하니 선진국은 여자와 아이들의 천국이라는데 나는 여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이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배운대로의 언행을 아무쪼록 삼가하고 어쟀든 모나지 않게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얼마전에 이민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한국에 살기 싫은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50% 가까이 더 많다고 하더라. 나도 한국에 살기 싫은 한국여자중의 하나이다. 남편은 이민가면 머 하냐 그래도 한국이 젤루 살기 좋다고 믿는 한국남자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극성스럽지도 악착같지도 못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어 아차하면 전쟁터같은 이 사회에서 도태될까 불안한 남편을 보자면 멀 건질게 있다고 한국이 젤 낫다고 믿는지 실로 의아스럽다. 지금 남편의 회사는 또 구조조정중 직장동료 중에는 대상에 포함되어 와이프한테 어떻게 얘기하나 허구헌날 술로 지새는 사람도 있단다. 남의 얘기같지 않아 나역시 갑갑해진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남편은 남자들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힘주어 말한다. 공감한다. 곰곰히 곰씹어 보면 한국은 여자의 세상이 아니듯 남자의 세상도 아니다. 그러면 여기는 어떤 곳인가? 나의 모국 한국은 남성의 세상이 아니라 남성성의 세상이다. 모국이 아니라 부국이라 불러야 될 판이다. 남성성에 대해서 대단히 관대하며 또 남성성을 훌륭히 관철시키고 있는 이들에게 지당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대신 그렇지 않은 것들에게는 지극히 냉담하고 무자비한 남성성의 나라이다. 남성성... 적극적이고 주도적이며 추진력 있으며 경쟁심이 있고 능력있고 돈 잘 벌며 당당하고 큰소리 치고 술 잘 마시며 과묵하며 통이크고 의리를 지키고 고집이 세고..... 철저한 위계질서...약한 것은 찌그러져 살아야 하고 강한 것은 무소불위...간단한 접촉사고가 난 도로위에서 부터 국회의사당 까지 목소리 큰 사람만이 승자이며 영웅은 호색이며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쟁취하고 취업광고에는 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자를 모집중이며 과정과 소통을 중시하기 보다는 무조건 밀고 들어가고 되든 안되는 자신있다 호기있게 장담해야 남자이며 처자식이 기다리는 집으로 제 때 들어가는 팔푼이보다는 동료들과 어울려 룸사롱에서 끝내주게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인정받는 남자의 스타일이다. 꼼꼼하고 세심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부드럽고 가정적이면 사실 그저그런 남자일 뿐이다. 남성성의 사회에서 여자들 살기 정말 힘들다. 같은 사회에서 남성성의 최고경지를 실현하기 어려운 대개의 평범한 남자들 역시 살기 정말 힘들다. 자학과 열등감에 빠지기 쉽다. 한 번 실패한 많은 남자들은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면 인생을 포기한 것 처럼 술에 절어 산다. 하지만 여자는 사모님에서 파출부까지 기꺼이 밑바닥으로 떨어져 오히려 남자들 보다 더 남성적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갈 줄 안다. (한국 아줌마의 극성은 그런 남자들의 공헌이 크다고 본다.) 아마 능력 있고 주도적으로 보여야 되는 남자의 자리에서 미끄러져 버린 비애감이, 쉽게 여성성을 수용하지 못하면서 채우지 못하고 잃어버린 남성성의 공허가 사람을 공황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강한 것이 부드러운 것보다 부러지기 쉬운 법인데 말이다... 여자 눈에 남자다운 것이 보기에는 좋다. 그 반대의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 성의 특징은 다른 성과 조화될 때 더한 경지에 오를 수 잇다. 상상해 보자. 엄청 남성적인 남성과 무작정 여성적인 여성의 우스꽝스러움을...ㅋㅋ 조물주가 인간을 얼마나 잘 만들어놨는지 사람의 몸에는 남녀 두가지의 호르몬이 둘 다 흐르고 잇고 어느쪽이 더 우세한지에 따라 성이 결정 되는 것일 뿐인 것을...우리는 호르몬 둘 다를 쓸 수 있는 신체구조와 정신구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남성성 편향의 사회를 벗어나야만 여자와 아이도, 남성성에 핍박당하고 있는 남성들까지 해방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다 알아서 한다가 아니라 고백하고 더불어 의논하고 줄이고 꾸리며 '남자답지 못한' 모습을 드러낼 줄 아는 용기가 더 큰 거.. 여자들도 다 안다.역설적이지만 남자답지 못한 남자의 모습에 여자는 가장 큰 힘을 느낀다.. 남편과 아버지의 눈물... 남편과 아버지가 체면의 굴레를 벗고 기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헌신적인 모습은 엄마의 그것보다 훨씬 감동적이다. 소리도 내지 말고 삼켜야 하는 질펀하지 않은 진한 것이 있다. 아무튼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 하지만 살아가야 한다. 50년대 세계 꼴지를 앞다투던 최빈국이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하면 된다 식의 남성적인 힘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렇게 살만한 상태에 이르러서 오히려 더 한국이 싫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미래에 대한 것,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대가 없기 떄문이 아닌가 싶다. 남자도 살기 힘든데 여자들이 나댄다고 불평하는 남자들... 손에 꽉 쥔 남자의 칼을 놓으면 발목에 채인 차꼬도 느슨해질텐데... 누구든지(남자든 여자든) '남자답게' 살아야 하니까 우리 살기가 힘든 것은 아닐까? 사는 것이 고달프고 팍팍하다고 느낄때 가끔은 나의 자식을 바라보는 그런 부드러움으로 매우 여성적으로 세심하게 한 번 자신을 돌아봐야겠다.... 세상을 바꾸는 진취적인 정신도 나쁘진 않지만 나와 타인을 간간히 살피는 눈길 한 방이면 양성을 지닌 그대와 나의 한국살이가 좀 여유로워 지지 않을까 싶다. 60년대 유행했던 노래인데 지금 딱 리바이벌 해야겠다. "잘 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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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이 신통치 않아 얼마전에 취업사이트를 기웃거리다가 원서를 넣어봤더니 곧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사실 연락온 것 자체가 좀 의외였다. 왜냐면 내 나이 벌써 서른여섯...여자...그것도 아줌마.... 면접 오라는 것 자체가 고마워(?) 부랴부랴 포트폴리오를 챙겨들고 비오는 날 버스를 타고 택시를 또 갈아타고 1시간 반을 내쳐 달려갔다. 회사는 유명한 어학원 소속의 교재담당연구소로 강남의 깨끗하고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고 자유분방한 복장의 직원들이 쌸라쌸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촌구석에서 올만에 상경한 이 아줌마에게는 참으로 거시기(?)해 보였다. 면접을 담당한 여직원은 이것저것 기본 사항을 물어보더니 꽤 난감해 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난감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실력만 있다면 서른여섯의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가 기본전제였다. 헌데 그너무 회사가 일주일에 반은 야근이요 토욜도 저녁까지 근무이며 어린이 날 등 확연히 빨갛게 표시된 날에도 출근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었다. 출퇴근만해도 세시간은 걸릴텐데 맨날 야근에 공휴일까지... 놀이방 아니면 맡길데도 없는 네살짜리 아들을 따로 사람을 써서 돌보자면 거기서 주는 월급을 몽땅 털어넣고도 나머지 경비는 내 돈으로 감당해야 할 것 같았다. 간단한 테스트를 너무 많은 생각들속에 무성의하게 치르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남푠이 면접 잘 봤냐며 나더러 다니게 됐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처녀적처럼 엄마가 집안의 모든 뒷바라지를 다해 준다면 내 몸하나 힘든 것은 감내하고 다닐 자신이 있었다. 남푠은 반반이라고 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말 속에는 마누라가 돈 벌어 오는 것에 대한 찬동 반과 거기에 자기가 분담해야 할 가사일에 대한 거부 반이 포함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 "회사가 맨날 야근이라서 내가 취직하면, 6시 칼퇴근인 당신이 아들놀이방에서 데리고 와야돼... 어울려서 술마시고 오고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이야... 그리고 밥하고 국 끓여서 둘이서 먼저 먹고 설거지 좀 해놔.. 토욜도 근무한다니까 토욜도 쉬는 당신이 청소해 놓고 애 델꼬 가서 장 봐오면 일욜날 내가 반찬 만들어 노코 빨래 돌리면 되겠네..." 라고 하자 남푠은 금방 "안 다니는 게 좋겠다" 로 말을 바꾸었다. 다행히(?) 그 곳에서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아 우리는 평상의 삶을 지금껏 유지하게 되었다. 친구들 중에는 유난히 공무원이 많다. 그것도 다들 처음부터 공무원은 아니었는데 작은 무역회사의 회사원, 시민단체,유치원교사,학원강사 등 다른 일을 하다가 여의치 않자 안정적인 일자리로 찾아나선 것이 공무원이고 (물론 그것도 다들 돌보아야 할 식솔들이 없던 처녀적 시절이나 대신 돌보아 주는 친정어머니가 계신 경우이긴 하지만) 그 치열하다는 경쟁률을 뚫고 다들 잘도 척척 붙어 주었다. 흔히들 여자의 직업으로 가장 좋다고 꼽는 것이 교사와 공무원이다. 그것은 교사와 공무원이 많지는 않지만 안정적으로 소득을 보장해 주며 여타의 직업에 비해 여가의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일반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남자의 직업으로 높이 쳐주는 의사나 변호사가 여가의 시간이 부족한 대신 드높은 사회적 지위와 고소득이 보장된다는 일반의 인식과는 대조적이다. 즉 여자의 직업을 평가하는 기준에는 적당히 가계에 보탬이 되는 지속적인 소득과 돈 버는 일을 하면서도 가사와 육아까지 다 떠맡을 수 있을 정도의 '남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맞벌이의 가사 분담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지는가는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여자의 직업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 선에서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면 교사를 하든 회사를 다니든 아니면 의사나 변호사를 하든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돈을 벌어도 돈을 못 벌어도 여자는 갑갑하다. 물가는 천정부지, 집값에 사교육비에 한 사람만 벌어서 먹고 살기에는 힘든 세상이라는데 실업률은 치솟아 아이가 아파 좀이라도 일을 등한시했다간 일차로 짤리기 십상이며 당장 아이를 맡길데도 없는데 둘째는 무슨 소리이며 가뜩이나 저임금에 일하는 아줌마를 쓰자니 남는 것도 없고(심지어 눈치도 보인다) 가족행사에 생신에 제사에 경조사는 왜 이리 많은지 모든 문제를 다 떠안고 슈퍼우먼으로 살거나 아무리 집안일을 죽을똥 살똥 해도 돈 한푼 못 벌어 오기에 무능력한 동네 아줌마로 살거나 생각해 보면 여자가 살기는 매한가지로 아직도 고달픈 시대이다. 최근 삽화의뢰가 많아지면서 집에서 15시간씩 일을 했다. 아빠가 퇴근한 후에는 아들과 놀아주긴 하지만 (평상시에는 잘 안 놀아주고 초저녁부터 잔다. 흥!) 하지만 바삐 밀린 일을 하는 와중에 잠깐 쉬는 동안 나는 세탁기를 돌리며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며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전화를 받고 흘린 과자부스러기를 줍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실은 애초부터 여러가지 일을 한번에 하는 멀티 태스킹(multi-tasking)형 인간이 못된다. 아줌마들이 그래서 산만해지는 거다. 정신을 엇다 두냐고 구박하기 전에 남편들아, 늬들이 일어나서 한가지 일이라도 좀 도와라... 문득 정신이 들 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나는 참말로 일 하기 싫어진다. ....끙~
여자에게 좋은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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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한 얼굴 5월이 아니랄까봐 무척이나 조은 날씨가 며칠이나 계속되고 있다. 이 조은 날씨가 좀 지나쳐 한낮에 더운 느낌마저 들기 시작하자 아파트 놀이터에는 가뜩이나 바쁘던(?) 아이들이 그나마 싸그리 자취를 감추었다. 네살짜리 아들놈은 놀이방에 다녀오자 마자 다시 밖에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뙤약볕속에 놀이터에서 혼자 놀게 내버려두는 것도 무식한 짓이다 싶어 차라리 근처에 있는 마트엘 가자고 꼬셨다. 물론 녀석은 대환영이었다. 사실 지난 주말에 한바탕 장을 봐왔기 땜에 특별하게 살것은 없었지만 주섬주섬 옷을 걸쳐입고 후덥지근한 길 15분을 가벼운 마음으로 걸었다. 마트의 반짝거리는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역시나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살갗을 스친다. 아들넘이 굳이 카트을 타야겠다길래 태운 김에 덩그러니 두부와 슬리퍼를 던져넣고 하릴없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살까말까 망설이다 역시나 돌아서고 만다. 그러다가 녀석 손에 이끌려 찾아든 곳이 장난감 매장과 도서매장이었다. 아들놈이 샘플로 진열된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무료한 엄마는 장난감 매장에 오가는 다른 엄마와 아이 커플들을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눈알을 화끈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당장 내 눈에 덤벼든 것은 엄마들의 복장상태였다. 화장기 하나 없는 까칠한 얼굴에 대충 빗질한 머리, 헐렁하게 늘어진 박스형 티셔츠와 짙은색 긴 바지, 아무렇게나 꿴 슬리퍼 대각선으로 울러맨 적당한 크기의 가방과 머리에는 하나같이 검은 필름이 코팅된 썬캡... 맙소사... 나랑 똑같았다. 어쩌면 약속이나 한 듯이 이 엄마도 저 엄마도 나랑 별 다르지 않은 젊은 엄마들이 규정이 없음에도 지극히 통일적인 양상의 '아줌마 복식'을 제대로 갖춰입고 다들 지치고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의 아이들에게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내가 좀 나았다면 한 손에 유모차가 아닌 카트를 끌고 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쇼핑하는 사람의 자세(?)는 되어 있었다고나 할까? 두번째로 내 눈알을 커지게 했던 것은 그 모든 엄마들의 체형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상당히 뚱뚱했다. 하필이면 그시간 그 장소에 유달리 많았는지는 모르겠지만 60키로, 아니면 80키로, 100키로는 되지 않을까 싶은 여자들까지... 가뜩이나 방만한 차림새에 살들까지 가세하여 전체적인 품새에 스스로를 방기한 무력감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밝은 조명 아래 다양한 상품이 잘 정돈된 우아한 할인마트의 매장은 순식간에 허름한 아줌마들이 어슬렁거리는 삶의 뒷골목으로 전락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들과 하나 다를 바 없던 나는, 순간 그들과 다르고 싶었고 어쩐지 챙피해져 당장에 훌렁훌렁 재주를 넘어 미녀탈랜트로 변신하던지 그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가야지만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놀이터에도 못나갈 정도로 춥거나 더운 날씨가 계속되면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작은 아이를 데리고 온통 아파트촌인 동네에서 갈 수 있는 곳이라곤 정말이지 할인마트가 고작이었다. 그 할인마트마저 생기기 전인 작년 이맘때 나는 보채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일단 문을 나선 다음 무작정 이 단지 저 단지 땀을 흘리며 서너시간씩 쏘다니다가 온 몸이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곤 했다. 날이 더 더워지면서 그나마 '지옥산책'도 못하고 종일 아이와 집에 들어앉아 징징거리는 녀석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곤 했다. 친구 하나는 남편이랑 대판 싸운 다음 짐을 싸서 두아이를 데리고 호기있게 집을 나왔는데 나오고 보니 갈 데가 없어 근처 대형마트에서 두 아이와 함께 두시간을 쭈그리고 있다가 그냥 집에 돌아갔다고 해서 다들 웃은 적이 있었다. 캐나다에 사는 친구 생각도 났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서 그녀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채 버스를 타고 도시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그 곳 버스에는 휠체어나 유모차가 타고 내릴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운전기사가 직접 내려와 승하차를 친절히 도와주기에 돌쟁이와 함께 도시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한국에 사는 나는 네 살이나 된 아들놈을 데리고 버스 타는 것이 아직도 힘들다. 내 다리도 짧은 편이라 버스 계단 오르려면 콤파스 각도를 크게 만들어야 하는 형편이니 더 짧은 아들놈은 내가 안고 태워야만 한다. 녀석이 무거워서 힘이 부치기 땜에 역도선수처럼 심호흡을 하고 순간의 힘을 이용해 번쩍 처든 다음 삼단뛰기 선수처럼 다리를 재빨리 놀려 버스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빨리 타고 빨리 내려야 하는데 서두르다가 아이가 차 안에서 넘어질까봐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느릿느릿대다간 운전기사한테 욕이라도 먹지 않을까 싶어 지레 눈치 보이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지남철처럼 딱 들러붙는 내 아이와 함께 먹고, 자고 움직여야 한다. 취미도, 운동도, 컴퓨터도, 청소도, 목욕은 물론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것 까지도 내 맘대로 안 되는데 외출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나가봤자 갈 곳은 할인마트밖에 없다. 그나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말이다. 관찰을 계속하다 보니 색다른 타입의 아줌마들도 몇몇 눈에 띈다. 아이보리색에 자잘한 꽃무늬가 박힌 우아한 원피스를 입은 아줌마가 카트에 아이를 태운 채 옆으로 지나간다. 얼핏 보니 카트속에 식료품이 잔뜩 들었는데 맨 위에 장어초밥 도시락과 화사한 빛깔의 핑크색 여자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물건들이 마치 유명쇼핑몰 메인화면의 잘 짜여진 디스플레이처럼 세련되어 보인다. 궁금해진다. 저런 그녀는 나와 같은 처지에 내몰려 이곳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나처럼 심약한 소비자가 아니기에 조금 더 나아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할인마트가 갈 곳 없이 방황하는 아줌마들의 뒷골목임을 마침내 깨달았을지라도 나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 곳 밖 에는 다른 데 갈 곳이 없다. 휘황한 조명과 넘쳐나는 상품,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을 누비고 다니며 업는 게 없어도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없는데, 초저가 세일과 하나더 끼워주기와 최신상품의 스타일에 도취되어 나는 잊고 싶은 것을 잊고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을 것이다. 광폭하게 내달리는 거대한 도시화와 정보화, 자본주의의 이 시대 그 어느 지점의 가운데도 있지 못하고 오로지 아이 하나 보듬어 안고 고치속에 숨을 쉬다 바람을 쇠러 나온 여자들에게 갈 곳이라곤 정녕 거기밖에 없는 걸까? 그곳은 정말 마지막 도피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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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 그러므로 지금 그대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들이란 그대들의 소유는 아닌 것을.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들의 생각까지 줄 순 없다. 왜? 아이들은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가졌으므로. 그대들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들과 같이 만들려 애쓰지 말라. 왜? 삶이란 결코 뒤로 되돌아가지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도 않는 것이므로. 그대들은 활,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들로부터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크리슈나무르티의 글이었나 이거이 기억이 가물가물??? 애 키우다 성질날 때 한 번씩 들여다 보곤 합네다.... 도 닦으려 노력하는데 잘 안 되네요.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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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부아가 치밀면 애맨 강아지만 발로 찬다는 유사한 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조선시대 여권이 바닥을 기던 시대, 시댁식구들 구박에 화풀이 할 데가 없어 그 집에 오로지 만만한 것이 강아지이기에 발로 차고 때리고 했다는 것인데, 바꿔 말하면 며느리는 벙어리, 귀머거리,장님 3년의 존재 아닌 존재로서 그 집안에서 인간으로서는 가장 낮은 지위에 처해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의 며느리들은 강아지를 발로 차지 않아도 될 만큼 뻔뻔(?) 스러워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이 현란한 21세기에 아직도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호칭이 아닐까 싶다. 유교적 가부장제의 가족제도에 의거 한국땅에 살자면 많이 먹을수록 힘이 되는 엄청난 위력의 '나이'라는 단위를 무시하고 (싸우다가 딸리면 몇살이나 처먹었냐고 한다.) 서열에 따라 형님 동생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까지는 넘어간다 치자. 나는 결혼초기에 남푠의 동생들을 부를 때 도련님, 아가씨란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기만 하고 잘 나오지가 않았다. 사극 드라마 찍는 것도 아니고 종년이 주인집 자제분들에게나 하는 그런 식의 호칭이 어색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아가씨의 신랑은 내 서방도 아닌데 서방님이라 불러야 한단다. 윗서열은 어차피 높여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무관하지만 감히 며느리가 시댁식구들을 아랫서열이라고 하대하여서는 안되기에 그런 호칭을 쓰게 하면서 동시에 반드시 존대를 해야 하게끔 한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그러면 남편들은 어떤가? 서열 윗대가리들에게 존칭을 써야 하는 점에서는 언뜻 평등해 보이나 아랫서열을 일컫는 부분에 가서는 참을 수 없는 배신을 때리고야 만다. 처남, 처제...' 님' 짜 '씨' 짜 업다. 처남, 처제가 아무리 지보다 나이가 많아도 반말 안하면 그것이 더 예의(?)에 어긋난다고 한다. 시댁은 '댁'이지만 처가집은 '집'이다. 남푠집 가족들과 마눌집 가족들의 서열은 단위 자체가 틀린가 보다. 겨론하고 첨 느낀 거지만 그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시댁에 앉아 있으면 내가 그 모든 시댁식구들 심지어 꼬맹이 조카들보다도 더 낮은 가장 아래 서열에 몸둘바 모르고 있는 종년같다는 우울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심지어! 내가 낳은 울 아들보다도 엄마인 내가 더 낮은 서열에 위치하고 있다는 암묵적인 느낌이 종종 든다. ( 하긴 내 아들이 나의 미래의 주인님(호주)이니 영 틀린 느낌은 아니다.) 여성들 각자도 겨론하기 전에는 당당한 가족의 기둥이지만 관습적으로는 아직도 겨론하면 시댁에 무작정 혼신의 힘을 다해 적응해 줘야 한다. 종년이 아닌 시댁 식구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말하고 행동하려면 얼마간 욕 먹을 각오 해야 한다. 세상이 조아져 딸같은 며느리가 좋다는 시어머니들도 많아졌다. 아니라고 본다.. 좋은 딸처럼 엄마 위하고 싹싹한 며느리라면 좋겠지만 나쁜 딸처럼 엄마한테 집안일 다 미루고 신경질 부리는 며느리를 그래도 내 딸이니 온전한 엄마의 마음으로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시모는 얼마나 될까? 그 때의 딸이란 딸로서 성녀에 가까운 퍼펙트한 딸을 원하는 것이다. 사위가 어쩌다 처가에 갈 때마다 칙사 대접을 받으면서도 며느리가 허구헌날 시가에 가 갈 때마다 종년 노릇을 스스로 자청해도 좋은 며느리 소리 듣기란 참 어렵다. 며느리든 사위든 하나 건너 하나인 똑같은 내 자식의 배우자 아닌가? 며느리도,사위도 다 같은 자식이란다. 하지만 자식도 여러가지 부류가 있더라. 사위가 손님에 가까운 대접받는 자식이라면 며느리는 어떤 부류의 자식일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하나 건너 하나인 자식은 아직은 아픈 손가락이 따로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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