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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 삼국의 불교 문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순도'가 불경 전파, 신라, 황룡사 짓는 등 통치 이념 삼아 백제는 일본 아스카 문화에 영향 끼쳤다.... ◇생각의 뿌리가 된 불교문화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순도라는 사람이 불상과 불경을 가져와 퍼트리면서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졌습니다. 이어 백제에는 침류왕 때 승려 마라난타가 처음 전했어요.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왕실에서 나서서 절과 탑을 짓고, 부처님의 사상을 퍼트렸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속도로 불교가 전국적으로 퍼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라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이미 눌지왕(417~458년) 때 묵호자가 은밀히 들어와 부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귀족들의 완강한 반대로 불교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지요. 이때 이차돈이라는 사람이 법흥왕 앞에 나서서 말했습니다. "폐하! 소인이 임금님의 명령을 핑계 대고 절을 짓겠사오니, 그때 저를 붙잡아 신하들이 보는 데서 목을 베어 주십시오. 그리하오면 신비한 일이 생길 것이온데, 이후에는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옵니다." ▲ (왼쪽부터) 일본의 호류사 금당. 담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금당벽화. 반가사유상. 이차돈 순교비.그런 뒤, 이차돈은 하필이면 천경림(귀족들이 토착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숲으로, 이곳에 사당이 있었다)에 절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귀족들은 이차돈을 잡아 왕에게 끌고 가서 목을 베라고 청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왕은 명령을 내려 이차돈의 목을 베게했지요. 그런데 이때 이차돈의 목에서 흰 피가 솟아오르고, 사방이 캄캄해지면서 천둥 번개가 울리더니 하늘에서 꽃 비가 내렸습니다. '삼국유사'는 이런 신비한 조화를 계기로 신라의 왕실이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곧 법흥왕은 이차돈을 추모하기 위해 자추사라는 절을 지었습니다. 이후 불교는 신라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진흥왕은 궁궐을 지을 자리에 대신 황룡사라는 절을 짓고, 자식들의 이름을 불교식으로 짓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진평왕의 왕비인 '마야' 부인이나, 선덕 여왕의 '선덕'이라는 이름도, 각각 석가모니의 어머니 이름과, 불교 경전에 나오는 이름을 딴 것이었지요. 성왕 때부터 특히 불교를 적극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한 백제도 무왕 때 이르러 '미륵사'를 짓고, 백제 사람들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 했습니다. 불교는 왕과 귀족들에게는 통치 이념으로, 백성들에게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마음을 의지하는 대상으로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불교가 자리 잡음으로써 '승려'라는 계급이 새로이 생겨났고, 그들은 불교를 전파하는 일만이 아니라,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로, 때때로 외교관의 역할을 하거나 정치에도 참여하는 등 삼국의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답니다. 무엇보다 불교는 사찰과 탑, 불상, 종과 같은 풍부한 문화유산을 남겼어요. ◇일본으로 전해진 삼국의 문화 고구려를 비롯해 백제와 신라는 대륙과 가까웠기 때문에 중국의 다양한 문화를 빨리 접할 수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중국을 통하면 서역 중국의 서쪽 너머에 있는 나라들, 중앙아시아 일대부터 넓게는 이집트와 로마까지 아우르는 지역을 통치함의 문물까지 받아들일 수 있었죠. 그런 덕분에 삼국은 왜에 비해 한층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어요. 그래서 왜는 삼국의 각 나라에 사신을 보내, 우수한 삼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려 노력했습니다. 왜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나라는 백제였습니다. 일찍이 근초고왕 때, 아직기가 왜나라로 건너갔습니다. 이때 아직기는 말 두 필과 칼, 그리고 거울을 가지고 갔습니다. 왜왕은 크게 기뻐하며 아직기에게 태자의 학문을 가르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왜왕이 아직기를 불러 물었습니다. "백제에 그대보다 더 훌륭한 학자가 있소?" "물론입니다. 그중에서도 왕인 박사의 학문이 가장 깊고 뛰어납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백제의 왕께 사신을 보내 왕인 박사를 청해야겠소." 왕인 박사는 특히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 등 다섯 가지 경전에 아주 능했어요. 그런 덕분에 '오경 박사'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왜왕의 부탁에 백제는 왕인을 왜나라로 보냈습니다. 이때 왕인은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가서 태자는 물론 귀족과 왕의 신하들을 직접 가르쳤지요. 이 외에도 백제는 절이나 불상을 만들 줄 아는 기술자를 보내기도 했고, 스님을 보내 불교 문화를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덕분에 일본에서도 백제의 것과 흡사한 예술품들이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고구려에서 건너간 스님이 왜나라 태자의 스승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바로 595년에 왜나라로 건너간 혜자 스님이었습니다. 혜자 스님은 일본의 불교를 크게 일으키고, 문화를 발전시킨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610년에는 고구려의 화가 담징이 왜나라로 건너갔습니다. 담징은 종이와 먹의 제조법을 왜나라에 전해 주었지요. "호류사의 금당에 벽화를 그려 주십시오." 왜의 간곡한 청을 받은 담징은, 그러나 자신의 나라 고구려가 수나라와 전쟁을 벌인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걱정에 휩싸인 나머지 그림을 그리지 못했지요. 그런데 얼마 후, 고구려가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기뻐하며 자신의 재능을 다 동원해 벽화를 완성했습니다. 그 그림을 '금당 벽화'라 불렀습니다. 삼국 시대, 백제와 고구려를 중심으로 전해진 한반도의 문화는 특히 일본 아스카 시대의 불교 문화를 꽃피우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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