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옆 사진에 갈색강쥐가 울도치하고 비슷하네.
울도치는 3키로가 안되었어.
그 많은 강쥐들 보살피는 송이맘 정말 대단해.
다시금 존경의 맘 보내네.
위로의 전화 정말 고맙고 또 울도치에게 이쁜옷 보내줘서 잘 입혔네.
송이맘 하는일 매사 잘되길 바라며 학업에 큰 정진 있길 바라이.
울집 도치공주 어제 새벽에 하늘나라로 갔다네.
생각만 나면 눈물나. 젖뗀 아기로 나에게 이 봄날에 왔어.
손지갑 위에 얹을정도로 너무 작아서 쩔쩔맸던 그날이 기억나.
그렇게 12번째 봄날에 내 이불위에서 평상시 처럼 그렇게 갔지.
밤새 부대끼고 새벽녘에.
좋은데 가라고 쓰다듬어 주며 울기만했지.
이별은 너무 힘들데.
사람처럼 꼭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밤이 그렇게 길 수 가 없어.
낮엔 내가 거의 집에 없어.
휴일엔 아들은 집에 있지만 나는 일찍 야외나 산에 가 버리지.
가여운 공주는 종일 나를 기다린거야.
늦은밤 돌아오니 그래도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기러 나오데.
하지만 얼마안가 쓰러지고 나는 평상시처럼 막힌 기도를 열어주고 가슴을 문질러주며 한참을 안고 있었지.
종일 물 한모금도 먹지 않았더라고.
하지만 그길로 혼수상태가 오고 밤새 심장이 거칠게 뛰며 고토스러워 하는데 한 밤중에 어떻게 손 쓸수가 없었네.
차라리 낮이면 동물병원에 데려가 회생불가이면 빨리 편하게 해주는게 도리였지 싶은데.
나 또한 5시간을 참 견디기 힘든 이별식이였어.
죽은 강쥐를 놔두고 집을 나온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불가야.
아들과 도치아빠는 아침에 출근을 했고 나만 쩔쩔 매며 울기만 했어.
데려온것도 나 였으니 보내는것도 나의 몫이였어.
광목천에 싸서 상자에 담고 가지고 놀던 곰돌이 인형도 넣었어.
혼자 보성으로 가기엔 혼자 돌아오는것도 힘들것 같아서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어.
친정아버지가 모셔진 산소아래에 묻었네.
울아버지가 잘 보살펴줄것 같아서.
12년을 곁에서 습관처럼 재우고 먹이고 치워주고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을 교감하며
그 많은 시간들을 공유했다는거 그것은 가족이였다는 것 일세.
내방이 너무 쓸쓸함 뿐이네.
그녀석이 차지했던 공간들 말일세.
핸폰을 열면 그녀석 사진이 뜨네.
참 이런 이별도 참 견디기 힘들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