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의 마지막을 위해 좋은일로 정리해 보고싶어 무던히 애써봅니다.
직장생활할때부터 해온 봉사활동이지만 찬이송이가 태어난 이후로
더 애착을 느끼는 일중에 하나라면 봉사활동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입으로 말하는 형식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참된 나눔말입니다.
사랑의전화 복지재단과 함께한 "사랑의 김장나누기"
항상 좋은 일이라면 마다않고 몰려오는 우리 아줌마들과 함께 한
시간이었습니다.
공덕동에 위치한 "사랑의전화"
이름 그대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는곳인데 하는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24시간 무료탁아시설과 노인들의 쉼터
푸드뱅크
노숙자들에 삶의 기회를 주고자 마련한 게이트하우스등
김치담그는 일을 하러 갔지만 또다른일에 마음이 돌려지더군요.
처음본 봉사자들도 있었지만 전혀 낯설지않고 척척 마음 맞춰가며
누가 먼저랄것 도 없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김치담그기~
크게 틀어놓은 80년대 유행하던 노래에 흥을 돋우며 재밌게 담궜네요.
우리가 만든 김치와 된장국에 먹었던 점심식사는 꿀맛이었고
그 김치를 가져가실 독거 할머님들이 직접 오셨고
우리는 한사람씩 짝을 찾았습니다.
저랑 마니또가 된 최순실할머니
연세는 77세라고 하셨는데 피부는 저보다 오하려 더 뽀얗고 이뿌셨어요.
고향이 평양이신데 가족을 찾아보지 못하셨다고 하셨어요
간호장교로 일하시다 일을 그만둔후부터 이일저일 하시다 보낸
청춘이 아깝다하셨어요
외로움때문인지 자꾸 말을 하고싶어하셔서 이야기친구가 되기로 했습니다.
공덕동 굴다리를 지나 골목길에 자리한 할머니의 거처는 비록 좁은 방이지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차 대접을 못했다고 내내 불편해 하셨던
할머니의 정이 아직까지 마음에 남아있네요.
지갑을 두고가서 주머니에 있던 만원짜리 한장을 드리면서
목욕가시라고 하며 나오는데 마음이 왠지 무겁더라구요.
한통의 김치이지만 할머니께는 소중한 반찬이 될거라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우리 부모님을 되돌아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마니또 최순실 할머니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왔답니다.
우리 시댁의 김장은 그날 우리어머님이랑 동서형님이 소문도
안내고 담으셨다고 연락이 왔는데 참 못말릴 며느리고 대단한 시어머니시죠?
찬이송이엄마는 여러모로 행복한 아줌맘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