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고 애원하던 그 눈빛 결코 잊을 수 없어'
기본 주제방 2010/07/03 16:09   http://blog.azoomma.com/young-ae/283293
 
살고 싶다고 애원하던 부상병들 눈빛 결코 잊을 수 없어
 
  투철한 반공의식으로 무장, 경계심 늦추지 말아야“

 

-참전용사 인터뷰-해군 부사관으로 명예제대 박명룡 씨


 
 
 

해군으로 참전했던 박명룡 씨

 해군으로 참전했던

 박명룡 씨

 6.25전쟁에 해군 위생병으로 참전했던 박명룡(80) 씨. 6월이 다가오면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생각하기조차 끔찍했던 6.25였다. 당시 19세 소년병 박 씨는 유명한 도솔산 전투에 참가했다. 한창 청춘을 만끽할 나이에 평생 떨쳐버릴 수 없는 전쟁을 겪고 참전용사라는 이름아래 평생을 살아왔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제대한 후 결혼을 한 그는 공무원으로서 다시금 국가를 위해 젊음을 바쳤다. 이제 소년병의 머리 위엔 하얀 서리가 내려 인생의 황혼 무렵에 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정부가 발급해준 참전용사증서와 6.25참전 국가유공자의 집이라고 씌어진 패를 가끔씩 바라보며 국가를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았던 시절을 회상해 보는 박씨.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대전광역시 판암동에 살고 있는 그를 만나 6.25 이야기를 나눠봤다.


 
▶해마다 6월이 되면 감회가 어떠신지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생각하기조차 힘든 악몽입니다...
 
▶6.25는 입대후 얼마 만에 일어났나요?

 

1년 만이었습니다. 1949년 7월 20일 해군에 입대했거든요. 열아홉의 보통 군인으로서 생활 하고 있었는데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 부닥치니 너무도 당혹스러워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 지 몰랐습니다. 당시 해군은 미국에서 가져온 배 몇 척 밖에 없어 전쟁을 치를 수 없는 상황이라 육지전만 가능했었죠. 당황하던 중 낙동강을 건너 대구 인근까지 떠밀려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저는 ‘육전대’로 경남 고성에 배치됐는데 통영을 시발로 북쪽 원산까지 진격했습니다. 1.4후퇴 때 다시 떠밀려 제주도까지 내려갔다가 진해 군항으로 돌아와 부대가 해병대에 편입됐지요. 그래서 해병 2기이자 해군 14기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해군에 원대복귀해서 육상근무 및 소해정 505정을 비롯한 여러 배에서의 복무를 거쳐 LSM602정을 마지막으로 부사관으로서 명예제대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바로 제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후배양성을 위해서였는데 7년 2개월간 복무를 한 것이지요.

 

젊은 시절 박명룡 씨

젊은 시절 박명룡 씨


▶복무 부문은?
 
입대시 해군병원 배치를 계기로 전쟁 후에는 제1연대 의무대대 소속 위생병으로 복무했습니다. 전시엔 중동부전선에 배치돼 그 유명한 도솔산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부상자를 들것으로 옮기면서 보았던 그들의 눈빛을, 살고 싶다고 애원하는 그 눈빛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부상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하는 것이 너무도 끔찍하고 힘들었습니다.
 
 
▶참전용사로서 정부로부터 받고 있는 예우에 대해.
 

UN종군기장(국제연합 헌장을 옹호한 공훈)과 참전용사증서

  UN종군기장(국제연합 헌장을 옹호한 공훈)과 참전용사증서 

 옛날 이야기부터 하자면, 전쟁이 끝나고 상이용사들은 국가에서 많은 예우를 받았으나 저는 다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생 동안 예우란 걸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험한 전쟁터에서 죽지도 또 다치지도 않고 멀쩡히 살아온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죠. 국가적인 비극으로 저 혼자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으나 나라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정작 예우는 너무도 소홀했었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 김대중 정권에 이르러 참전용사 증서라도 주니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참전국가유공자의집’이라는 패를 대전광역시로부터 받았고, 가끔씩 국가에서 속옷 등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보내왔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국가보훈처에서 참전명예수당을 보내주더군요.


 
 
처음에는 6만원씩 주더니 요즘에는 9만원을 보내줍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공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라면?
 
북의 적화야욕이 변치 않는 이상 우리 국민들은 투철한 반공의식으로 무장하고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합니다.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6.25 참전용사들은 박씨 처럼 황혼의 나이거나 이미 사망하기도 해 이제 그 수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당시 당한 부상으로 현재까지도 보훈병원에 입원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경우들도 많다. 국가를 위해 젊음은 물론 생명까지 바친 참전용사들을 위해 국가는 그에 걸맞는 예우로써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훈의 달 6월,  박 씨에게 수여된 공훈증서 내용들을 훑어보면서 새삼 참전용사들의 노고를 되새겨보게 된다.
 
 
글, 사진 위민기자 박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