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약도 없다
일상 2007/12/22 15:13   http://blog.azoomma.com/young-ae/264169

 

토요일 낮, 

아는 선생님 딸 결혼식을 보고

집에 왔다.

  적막이 흐르는 거실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주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인생의 맛처럼 달콤 쌉싸름한

커피를 한 모금 삼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20년 넘게 함께 산 내 짝꿍( ? )이다.

결혼식엔 잘 다녀 왔느냐고.........

이제 회의가 끝났으며

식사하고 퇴근할 예정이라는 말.

 

텅빈 집에서

짝꿍을 기다리려니

남편의 장난기 섞인 말투와

나를 놀려대던 순간들이

커피향에 섞이어 허공을 가득 메운다.

 

이젠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생각이나 행동까지

귀신처럼 알아내고

이해하며 적당히 속아넘어가주는 경지에 이른 나.

하지만 가끔은

애정 섞인 질투도 마다하지 않는다.

 

몇 해 전이던가 싶다.

배달되어 온 우편물 속에 섞여 있던

그 문제의 카드 명세서,

남편이 꺼내보고 아무렇게나

책상 위에 던져 둔 것인데

나는 퇴근해 올 남편을 기다리며

딸과 함께 그 명세서를 보게 되었다.

문제의 그 명세 -- 러브~~ 어쩌구 어쩌구-- 하는

분명 여자와 관련 된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지라

나는 딸을 바라보며

'야 , 이게 뭐라니? 이름이 어째 쫌 냄새가 나지 않니?'

혹시, 나몰래 느이 아빠에게 딴 여자라도........'

액수도 상당했다. 몇 십만원 .......

호기심과 의심이 뒤섞인 뒤숭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엄마, 딴 생각은 마세요.

절대 아빠는 엄마 실망시킬 일 안하실 거예요.'

 

나의 생각은 마음껏 나쁜 상상의 나래를 편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딸,

으흐흣~~~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

딸은 벌써 감 잡았다는 눈치다

 

번개처럼 스치는 일.

'오모나 오모나, 이를 어째

'늙으면 죽어야 한다'더니

아직 늙지 않았어도

이렇다

 

그 것은 다름 아닌 남편이 나에게 사준 선물값으로 지불한

남편의 카드값.

 

'나도 이젠 늙었나봐 이렇게 건망증이 심해서야.....'

괜히 생사람 잡을뻔 했다.

***

***

그일의 진상은 이러했다.

'띵동띵동'

어느날 느닷없이 택배가 와서 문을 여니

택배아저씨 날보고 누구냐고 묻는다.

이집 안주인이라하니

싸인을 하라고 했다.

네모난 상자를 안고

거실로 들어와

조심스레 포장지를 벗기니

예쁜 코사지와 함께 하얀 케이스에 얌전히

누워 있던 그 목걸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거울 앞으로 다가가

목걸이를 걸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거울이 뚫어지도록

H라인 몸매를 돌려대며

쌩쑈를 했다.

저녁 때 귀가한 남편을 보며

'고마워'하며 적당한 비음이

들어간 목소리로 감사의 뜻을 전했었는데.

 

그 목걸이 값으로 지불한 카드값이었던 것이다.

******

그날 저녁,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 한 것이

미안한 마음에 난는 괜스레 애교를 떨어댔다.

영문도 모르는 남편은

'저 여자 왜 저래 하는 표정으로

흘끔흘끔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나이 든 마누라의 애교가 싫지만은 않은 듯.

 

부부란?

이렇게 가끔씩 생각해보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