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 - 하늘과 맞닿은 길 하늘재와 중원문화의 중심인 미륵대원지
내나라여행사진 2014/04/29 11:50   http://blog.azoomma.com/womancaps49/285436

 

 

하늘재

 

하늘재는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

죽령보다 수년 먼저 개통된 하늘재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해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역사속의 하늘재이기도 하다.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하늘재(해발 525m)라고 하며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이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잇고 있는 도 경계이다.

 

 


 

충주 미륵대원지에서 하늘재 정상까지

거리는 2Km 소요시간은 2시간

 


 

 


 

싱그로운 연녹색의 숲속으로  활기차게 걸어간다.

 


 

자연관찰로 갈림길 구름다리

 


 

 


 

 


 

역사속의 하늘재

 


 

 


 

 


 

 


 

 


 

연아를 닮은 소나무

 


 

 


 

 


 

느릿 느릿 걷다 어느새 하늘과 맞닿은 길 하늘재에 오르다.

 


 

여기서부터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잇는 도 경계이다.

아스팔트가 깔려 있어선지 차량이 눈에 띤다.

 


 

하늘재 오르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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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정상에서 멀리 문경 대미산이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늘재에서 바라 본 포암산

 


 

하늘재 정상에서 내려다 보니

주막이 보이고 고갯마루에는 아스팔트길로 이어져 있는지 차량이 올라와 있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시도했으며

고려시대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피난할 때도 이 길을 이용하였고

신라 망국의 한을 품고 마의 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금강산으로 향할 때

피눈물을 머금고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하는 역사 속의 하늘재...

 

 

충주미륵대원지

 

하늘재 오르기 전...입구에 있으며 신라 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옛 절터...

당간지주와 회랑 등의 흔적만으로도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각석등, 석구, 오층석탑,, 3층석탑, 미륵리석불입상등이 있다.

유일하게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지릅재와 하늘재 사이의 분지인 미륵리에 자리하고 있다.

 

 


 

미륵대원터

사찰 창건 후에 별도로 역의 기능을 담당하는 원(오늘의 여관)을 세우고 미륵대원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충주미륵대원지

고려초기의 석굴사원터로 하늘재와 지릅재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큰 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충주 미륵리사지 귀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거북모양으로 비석 받침돌이다.

 


 

귀부의 등에는 비좌(碑座)가 있으나 석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거북의 좌측 어깨부분에 작은 새끼거북 두마리가 기어 올라가는 형태가 보인다.

 


 


 


 


 

사각석등

기단석과 화사석으로 기단부에는 큼직한 양련을

간주석에는 화염모양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석등(石燈)

석불입상과 5층석탑 사이에 있는 균형이 잘 잡힌 석등이다.

연꽃 봉오리 모양의 보주를 조각하였다.

 


 

 


 

 


 

석가탄신일인 사월 초팔일을 맞아 연등이 사찰의 신도수대로 걸어 놓아

고즈넉하던 사찰 분위기가 이날만큼은 화사하게 느껴진다.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석불입상(石佛立像)

미륵리 절터의 주존불(主尊佛)로 북쪽을 향해 서 있으며  석굴식법당을 이루고 있었으나

목조건물이 불탄 후 석축만 남게 되었다.

 


 

 

공기돌 바위

 거북이와 비슷하여 거북바위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바위에 올려져 있는 직경1m 가량의 공기돌은 온달장군이 힘자랑을 하였다 하여

온달장군 공기돌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석등하대석 ( 石燈下臺石)

연화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함에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입산하러 가던 길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 덕주사를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을 조성하였고

태자는 이곳에 석굴을 창건하고 불상을 북쪽으로 두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