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방울
조현설 글/ 김은정 그림/ 나라말 刊

이 책은 고등학교 때 제목만 들어서 알고 있는 한문소설 '운영전'을 읽기 쉽도록 현대글로 다시 옮긴 것이다.
그리고 '국어시간에 고전읽기'라는 기획으로 첫 출간된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을 위한 배려가 눈에 띈다.
삽화도 그렇고, 책 중간에 끼어있는 정보들(예를 들면 안평대군과의 인터뷰, 한시에 대한 이야기, 궁녀들의 삶 등), 책 뒤에 있는 토론과 독후활동을 위한 질문들이 그렇다.
국어 선생님들이 만든 책이라 그런지 기획도 좋고 잘 만들어졌다는생각이다.
내가 '운영전'에 대해 아는 것은 제목, 작자미상의 한문소설이라는 것 밖에 없다.
나는 이 책이 연애소설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비극으로 끝나는 연애소설이었다.
안평대군의 궁녀 운영과 김진사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였다. (나중에 죽어서 신선이 되어 함께 있으니 해피앤딩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려나.....?)
이 책의 주인공들은 한시로 마음을 주고 받는다.
그래서 한시가 무척 많이 나온다.
그들의 그리움은 은근하지만 때론 노골적이어서 의외로 읽히기도 한다.
'발 사이로 낭군님을 훔쳐보면서 낭군님을 섬길 인연을 헤아려 보았고 꿈속에서 만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이어 보기도 하였답니다.
비록 한번도 이불 속의 즐거움을 누려 보지는 못했지만....' (이 글은 스물도 안 된 운영의 편지다.)
운영은 참 현대적인 이미지다.
김진사에게 먼저 마음을 고백하는 편지를 쓰고,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후에는 김진사로 하여금 한밤중에 궁궐의 담을 넘도록 한다.
때문에 운영은, 막연히 조선 여인들은 이러했을 거라는 선입견을 깨뜨리는 여인이다.
운영의 외모나 재주에 대한 설명, 궁녀들간의 우애는 아마도 그 시대 여자들의 이상형이 아닐까 싶다.(그것이 남자의 환타지가 만든 이상형인지, 여자 스스로 도달하고 싶던 이상형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읽은 책 한권은 잠을 잊게 한다.
책 속에서 읽히는 그 시대의 운치와 풍류도.....
이 책의 제목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방울"은 운영과 김진사의 첫만남의 순간이다.
제목으로 잡아낸 저 글이 시적(함축적)이고 회화적이어서, 더더욱 책 전체와 너무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