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 그가 있기까지..
학교가기전에 2004/09/09 06:16   http://blog.azoomma.com/tnr7917/158435

그땐

참으로

갈곳이 없었다.

친정도 한두번이지.

초등짝지랑 결혼 하자마자

아이둘을 년녕생으로 낳아 키운다고

미워진 내 모습을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보여줄수가 없었고,

지금은 안양에 사는 언니가

그때는 가까이 살았었다. 글치만

언니도 울 아이들보다 딱 한살씩  많은

연년생을 키우고 있었기에

나의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갈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그 당시

울 고구매는 일요일도 없이 출근을 했고

(아이들 피해서 도망쳤겠죠? 집에 있음 정신없으니)

난,,,,,,,

하루종일 ㅡ,ㅡ

일주일 내내 ㅡ,ㅡ

한달내내 ㅡ,ㅡ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갈곳이 없었다.

 

미칠것 같았다

미치는거 같았다.

거진 한달동안 진짜루 말 한마디 안하고 

책만 읽은적도 있었다.

답답하여 터질듯한  그 가슴이 진정 되지않아

꾸역꾸역 먹어대니

추리링 바지의 허벅지 안쪽만 먼저 떨어지는 현상도

그때 경험해봤다.

저 아이들이 다 클때까지

이렇게 계속 지내다간

내가 먼저 죽을것만 같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살아야겠기에

......

 

"날,,,

아주 반갑게 맞아주는곳이 어딜까?

나뿐만아니라

우리아이들도

 

그렇게 해서 생각 해낸 곳이

교회

그래

교회로

가자

!

 

 

이렇게 마음을 먹은 후

첫 일요일~!

그날도 고구매는 일찌감치 도망을 가버렸고

난, 그냥 무작정 너무나도 오랜만에 정성드려 화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최고로 이뿐 옷을 입혔다.

신발을 신었다.

집을 나왔다.

앞만보고 걸었다.

집에서 젤로 가까운 교회로.............

 

물론 성경책도 없었고 찬송가도 없었다.

양손엔 두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

어께엔 2통의 우유가 들은 기저귀가방

 

아~~~~

짧은 글 실력으로

그때의 그 감격을

우찌 다 쓸수 있을련지..

 

"혼자 오셨습니까?"

"처음오셨습니까?
"잘오셨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들이 보고 있을께요"

"이쪽으로,,자,,여기 앉으시죠"

 

결혼하여 3년만에

나에게 껌처럼 딱 달라붙어 있던 아이들이

내 옆에 없는 시간이 생겼다.

무려 한시간동안이나...

초등학교땐 언니들 따라 교회를 다녔었고,

고등학교와 대학땐 기독재단이라 채플시간이 있었기에

왠만한 찬송가는 알고 있는 상황이라

처음 가보는 교회가 그리 어색하지도 않았다.

아니 어색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도 생각 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지금 ㅎㅎ눈가에 물이 잡히네요.ㅎㅎ)

그 한시간이 날 살려낸 것이었다...

 

 

그런데 더 더욱 그날을 감사히 여기는것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 날의 목사님 의 설교말씀~!

"집안의 남편(어른)이 싫다고 하는 일은 하지마라

그대신 싫다고 거절하는 그 마음이 바뀔수 있도록 노력하여라"

아~

날 위해서 준비하셨을까?

이런 말씀을 들으라고

오늘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나?

결혼 내내 불평만 했지..

내가 무슨 노력을 해봤던가.....

네에..맞습니다..

네에...

 

 

이렇게 하여 나와 현수 벼리가 갈곳이 생겼다.

오라는 곳이 생겼다.

반가히 맞아주는  사람이 생겼다.

일주일동안 날 기억하여 기다려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 누가 날 위해 이런 기도를 해줄까?

신랑도 안해주는데

엄마도 안해주던데

친구도 멀어지던데

 

그 후로

내 삶이

바뀌었다

화알짝~!

펼쳐졌다.

세상이 달라보였다.

이젠 내가 다가가도 세상이 날 피하지 않았다.

 

 

유치원다닐때부터 초등4학년때까지

울 현수의 장래희망은"목사님"이기도 했었다.

지금은 우주과학을 연구하고 싶은 과학자가 꿈이지만

그것도 지금의 목사님의 영향을 받아

신화와

하나님의 말씀과

과학의

관계를 규명하는 방향으로 생각 하고 있단다.

 

 

울 아이들과 다르게

현재는 열심히 다니고 있지는 못하지만

(시어머니와 문제가 생기데요)

내안에 그 있다.

 

항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