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컴으로
우먼채팅방 사람들을 다 델고 왔다.
수다에서 백작님으로 (지금의 아듸는 모르겠음)활동하시는
그 분도 내가 모셔 온
로미오님이다.(우먼아듸)
참 놀라웠다.
사람들이 내 아지트를 구경 하고 흔적을 남겨 놓다니.
더군다나 가입까지 하다니.
"초등저학년을 위한 한자방"
이라는 특이한 방을 개설하게된 이유는,
다른 아지트와 차별화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구 그런 아지트가 아닌
필요와 공감에 의해 대화 할수 있는 방~!
그러면서 아이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방~!
회원이 250명 까지 올라간적도 있었다.
로즈랑 추띵이 그때 내 방 횐이었다.
한자에 관한 글을 계속 올린후
한달에 한번 시험도 봤다.
문제를 낸다.
비번은 1번.
답변으로 적지말고 수정 눌러 답변을 적는다.
이런 방법으로 시험을 봤는데,
들어갈땐 비번 1로 들어가놓곤
나올땐 자기도 모르게 본인의 비번으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감자언니 비번 바꿔주~~~~~~" ㅎㅎㅎㅎㅎㅎ
문제는 어려웠지만,
정답은 아주 쉬웠다.
왜냐면, 다른 사람의 정답이 다 보이니까...
왜냐면, 아지트속에 정답이 있으니까.....
지금은 다 까먹고 하나도 모르지만
태그도 이때 배웠다.
조금 배운 태그실력으로
그당시 4학년이었던 현수반 아이들에게
2시간동안 태그강의도 했었다.
"아줌마 진짜 잘하시네요"
ㅎㅎ
내가 부산인 관계로
내 아지트엔 부산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다른지역 사람들의 눈총까지 받으며 우리들은 참 자주 만났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의 엄마들이 많았기에 돌아가면서 서로의 집에서 만났었다.
회비는 만날때마다 만나는 사람에 한해서 만원이었다.
누구집이던지 재료만 준비 해놓기로 했다.
그래야 부담이 안되니까..
하하호호 웃으며 만들어 먹는 음식들~!
그것이 더 잼있으니까
.....
작아진 옷도 물려주고
아기를 낳으면
축하하러 병원으로 뛰어가고,
드뎌 태클이 걸렸다.
"한자방이 부산방이가? 와 너거들만 만나는데?"
ㅎㅎㅎ할수 없지 내가 움직일수 밖에.
여주ㅡ 여수ㅡ 대구ㅡ수원ㅡ서울ㅡ안산ㅡ,등등
울 아이들을 델고 참 많이 다녔다.
전국에 있는 내방 횐을 보기 위해.
울집에서도 자고 가기도 했다.
"도배들이"ㅎㅎㅎㅎ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이뿌게 단장을 했었다.
도배를 새로 하고 장판을 새로 깔았다고
집들이를 했다..
이름하야,,
"도배들이"
대구에서 로린이 오고,
아이를 델고 송아지가 남편이랑 아이(찬우)랑 함께 왔었다.
(아구 찬우 보고싶넹.학교에 입학했을까?)
그렇게 3년의 세월동안 참 재있게 운영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모든것이 귀찮아져버렸다.
내가.
그래서
방치해버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2년동안을.
참으로 책임감없는 행동인줄은 알지만
진짜로 아무것도 할수가 없는
공허의 상태...
무력의 상태...
허무의 상태...
라고
설명할수밖에
없는
,,,,,,,
그리곤,,,,,,,,,,,
작년 12월 어느날~!
난, 거짓말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돌아왔노라"
아지트에 알리고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
그래두 주인없는 빈방을 지키며
청소하고 보일러 돌리는
몇명을 제외하곤
모두 떠난뒤였다.
셀레나(인경) 쟈스민언니.부희.올밤다래끼.와인.땡이.솔의눈,
다들 너무 너무 고마워....
"한자방 닫을꺼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그러나,
문을 닫아버리기엔 우리의 추억이 너무 많다.
한자방에는.
그래서,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며칠밤을 새워,
지난 이야기방을 만들어
추억을 담아놓고
진짜이야기방을 만들면서
초등저학년을 위한 한자방에서,
감자소쿠리로 아지트명도 바꿨다.
모두 탈퇴시키고
16명만 남겼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으로,
그리곤,,,,,,
다른사람들은 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궜다.
지금도
우리는 감자소쿠리안에서 알콩달콩 논다.
2003년.12월 21일~!
그리하여 드뎌,,,,,,,,,,,
감자가 블로그에 얼굴을 내밀게 된다.
별난감자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