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란사를 아시나요?
햐~그렇구나 2004/04/21 13:05   http://blog.azoomma.com/tnr7917/125444

하란사 [ 河蘭史 , 1875~1919.4.10 ]

독립운동가, 교육자.
본관 : 김해
별칭 : 낸시 하
국적 : 한국
활동분야 : 독립운동, 교육
출생지 : 평남 안주
주요수상 : 건국훈장 애족장(1995)



1875년(고종 12) 평안남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원래 김씨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하나 그밖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고,

하란사라는 이름은 이화학당(梨花學堂)에 입학해 세례를 받은 뒤

영어 이름 ‘Nancy’(낸시)를 음역해 ‘蘭史’로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일찍이 정부 관리의 후처로 들어갔으나

가정에만 매이지 않고 서구 문명을 접하는 한편,

1896년에는 기혼자라는 이유로 이화학당에서 입학을 허락하지 않자

당시 교사로 있던 프라이(L.E.Frey)를 찾아가 결국 입학을 허락받았다.

 

졸업한 뒤 일본 유학 길에 올라 도쿄[東京]

게이오의숙대학교[慶應義塾大學校]에서 수학한 뒤

1900년 미국에 유학해 감리교 계통의 웨슬리대학에 입학,

1906년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과 동시에 미국 북감리교회 선교사인 메리 스크랜턴(Mary Scranton)을 도와

영어와 성서를 가르치면서 여성 계몽운동에 앞장섰고,

이후 이화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자모회를 구성해

가정의학·육아법 등의 지도는 물론,

계몽강연을 통해 여성들의 자각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특히 1907년부터 이화학당의 학생 자치단체인 ‘이문회’를 지도하면서

민족의 현실과 세계 정세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한편,

국권피탈 뒤에는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은둔 중에 있던 고종의 밀지를 받아

1919년 6월 파리강화회담에 의친왕(義親王)을 파송할 비밀계획을 추진하다

고종의 승하로 실패하자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베이징에 도착한 뒤

교포들이 마련한 만찬회에서 먹은 음식이 잘못되어 결국 죽었는데,

단순한 병사나 자연사가 아니라

독살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분명하지 않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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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존여비사상이 짙었던 시대에

결혼한 주부의 몸으로 공부를 시작했더라구요.

 

한밤중에 이화학장이던 프라이를 찾아가

"지금 우리나라는등불조차 꺼진 캄캄한 밤중과 같습니다.

남녀노소가리지않고 지혜를 깨치고

하나라도 열심히 배우는것이 나라의 어둠을 밝히는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밝은 학문의 빛을 열어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프라이 학장은 그녀의 입학을 허락했다네요.

 

참,,대단한 여성이지요..

전,,,,처음 알았답니다...이런 여인이 있다는것을

온몸에 소름이 쏟으며 머리카락이 쭈삣해지는 느낌이랄까.........

올만에 맞아보는 충격에 또 행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