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에 대해 이야기 할께요.
<인조반정의 명분>
1)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대명사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
2)선조의 적자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 인목대비를 유폐시켜
형제를 죽이고 불효를 저질렀다는이유
1)에 대한 풀이
그 당시 중국의 흐름은 명은 기울고 청은 일어나는 나라였다.
때문에 조선은 중국의 그런 세력다툼을 이용해
개국 이후 계속되던 중국과의 군신관계를 청산하고
대등한 위치로 격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광해군은 이 점을 읽어내고 중립 외교 노선을 걸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대명사대주의의 길을 걸어
결국 뒷날 청에게 왕이 무릎을 꿇고 군신관계를 맺는 대 치욕을 겪게 된다.
2)에 대한 풀이
영창대군을 비롯하여 능창군 인목대비등의 왕권위협세력들을 제거한 것을
폭정으로 몰았는데..
본래 폭정이란
집권층에게 행사된 정치적 행위를 말하는것이 아니고
민생을 위협하는 폭력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광해군은 일부 왕권 위협 세력을 제거하긴 했지만
민간을 위협하고 학대하는 정사를 편적은 없다.
오히려 민생구제에 주력하여 민생경제를 일으키는데 전력을 쏟은 왕이다
<<그럼, 조선의 성군 내지 명군이라고 일컬어지는 왕들과
비교하여 살펴보자>
태종(이 방원)
자신의 배다른 형제를 죽였고(두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
동복형제도 유배시켰으며 계모 강씨의 능을 일개 후궁의 무덤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를 했으며
장자인 양녕이 왕이 될 인물이 못된다고 하여 폐세자를 단행했다.
그리고 명에 대해 상국의 예를 갖춰 조공 함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태종은 12명의 부인을 뒀는데.
태종의 집권에 여러방면으로 도움을 준 첫부인 원경왕후 민씨와의 불화는 유명하다.
하마트면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날 처지에 직면하기도 한다.
세조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을 죽였으며,
형수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 헤쳐 관을 없애기도 했고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신하들을 죽이거나 유배보냈는데.
이것은 왕권에 대한 도전이 두려워 철저한 심복 정치를 실시한 것이다,
광해군
인목대비를 죽여야 한다는 대북세력의 강력한 주장을 물리치고
자신의 판단으로 인목대비를 살려놓았고
영창대군을 죽이는것을 반대했다.
그러니까,,인조반정은 그야말로 반란이다.
인조반정을 주도한 인물들이 사대주의자이며 광해군에게 개인적인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연산군과 다르게 생각해야 할점은
연산군은 철저한 폭군이었으나
광해군은 정치적 이념을 달리한 현실적인 왕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인조는 스스로 군사를 일끌고 반정을 주도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그야말로 반정이고 역모인것이다,
역모가 성공한것이다.
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