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이야기(3)
햐~그렇구나 2003/12/23 18:09   http://blog.azoomma.com/tnr7917/110343

(광해군의 유배생활)

광해군은 폐위된 뒤 그의 가족들과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광해군과 폐비 유씨, 폐세자 질과 폐세자빈박씨 네사람은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곳이 감시하기에 용이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정세력은 이들 네사람을 한곳에 두지않고 각각 동문과 서문쪽에 안치시켰다.

(세자부부의 자살)

당시 20대 중반이던 폐세자 부부는 아마 강화도 바깥쪽과 내통을 하려고 한것같다.

세자 질은 어느날 담밑에 구멍을 뚫어 밖으로 빠져나가려다

잡히게 되는데. 그의 손에는 은덩어리와 쌀밥, 그리고 황해도감사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었다.

은덩어리를 뇌물로 사용해 강화도를 빠져나가려 했던것 같다.

편지는 자신을 옹호하고 있던 황해도 감사와 평양감사와 모의하여 반정세력을 다시 축출하려는 시도였을것이다.



이 때문에 인목대비와 반정세력은 그를 죽이기로 결정했는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세자 질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세자빈도 이 사건으로 죽는데..

세자가 울타리를 빠져나갈때 나무위에서 망을 보고 있다가 탈출에 실패하여 다시 안으로 붙들려 오는것을 보고 놀란 그녀는 나무에서 떨어졌으며, 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의 죽음)

그 후 1년 반쯤 뒤 광해군의 아내 유씨도 죽는데..

폐비 유씨는 한때 광해군의 중립정책을 이해 할 수 없는 처사라고 하면서

대명사대정책을 주청하기도 했다.

광해군이 폐위되자

궁궐 후원에 이틀동안이나 숨어 있으면서 인조반정이 종묘사직을 위한것이 아니라

몇몇 인사들의 부귀영화를 위한것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엇다.

그러나,,유배 생활이 시작되자 화병을 얻어 1624년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광해군은 초연한 자세로 유배생활에 적응해서 그 후 18년을 더 산다.

그 과정에서 몇번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는데..

인목대비. 인조세력들이 그를 죽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엇으나,

이원익과 광해군을 따르던 관리들에 의해 성공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는

광해군의 재등극이 염려스러워 그를 배에실어 태안으로 이배시켰다가 다시 강화도로 데려온다,

1636년 청나라가 쳐들어와 광해군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자

그를 또 교동으로 안치,시켯으며,

경기수사에게 그를 죽이라고 암시햇지만 경기수사는 오히려 그를 보호했다.


637년 조선이 완전히 청에 굴복한 뒤에 인조는 그를 제주도에 보내버린다.

광해군은 제주땅에서 아랫방에 거처하는 모욕과

심부름하는 나인이 "영감"이라 호칭하며 멸시해도 묵묵히 의연한 태도를 지킨다.

그리하여 1641년 그의 나이 67. 귀양생활 18년만에 생을 마감한다.

 

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