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14일 아침 11시
배가 아파온다,
그래서 난 일주일 전까지 내가 근무하던 병원으로 가방을 싸서 혼자 택시를 타고 갔다,
울신랑에게만 전화를 하고
마침 분만 대기실엔 아무도 없었기에 난 독방을 차지 할수가 있었다,
나의 대학 선배이신 간호 과장님께서
"어서와라, 이제부터 고생이다"하시며 반겨주셨다,
내가 다니던 병원이라 모든사람들이 날 보러 왔다,
자꾸 사람들이 들랑거리며 놀려서 (그 유명한 고구마씨에요?) 울신랑 병실에도 못들어오고 밖에서 왔다 갔다,,,,
좀 있으니 나의 팔에 링겔..이건 약간의 유도분만의 약이 들어 가 있는거다,
모든 산모가 병원에 입원을 하면 다 다는것
12시 부터 링겔이 들어가는데 더 이상의 진전이 없어서 퇴근하시는 과장님께서
"오늘 저녁은 신랑이랑 맛나게 먹고 낼 아침부터 다시 시작하자"
하시며 링겔을 뽑아주고 가셨다,
그래서 울 신랑과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랑 짱뽕 만두 뽁음밥을 시켜먹었다,
낼 부텀 굶어야 하니..억수로 먹었다,
앙~~~~~~~~~~~~~~~~~~~~
근뎅,,,밥숟가락을 놓는 순간,,,,,
아고,,,아파라,,,,,,,,,,,,,,,,,,,,,,,,,,,,
진짜 진통이 시작 된거다,,,
다시 관장을 하고 링겔을 꼽고,,,난리를 쳣다,
차츰차츰 시간이 좁혀 오는 진통,,,,
넘 아파서 울기도 하고
계속 나의 허리랑 팔을 주물러 주던 울 신랑이 잠깐 담배 피러 나간 시간이 어찌 그리 긴지...
들어오는 사람에게 막,,,욕을 퍼 부었다,,,
이제 밤 11시.
너무 아픈데 자궁이 더 이상 안 열리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잠은 왜그리 많이 쏟아 지는지...
안아픈 시간에 꼬박 꼬박 잠을 잤다,나도 모르게
새벽 2시
더 이상 견딜수가 없었다,
울신랑을 막 졸라서 수술을 하자고,,,
또 대학 선배이신 야간 당직 조산사께서 검사를 하시더니 그러는게 좋을것 같다고,,,,
우리 병원은 중환자실 바로 옆에 산모 대기실이 있는데
나의 고함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중환자실 환자들이
"저 산모가 죽겠다 어찌좀 해주라"하며 더 걱정을 하셨다나,,,
히히.....내가 근무 할때 (산부인과 근무) 산모가 아프다고 고함 지르면 내가 젤로 야단치는 간호사 였는뎅.
내가 고함소리로 병원을 들었다 놨다 하다니..
할수 없이 울 신랑 수술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수술 준비에 들어 갔다,
엣스레이 찍고(가슴이랑 골반)
다시 정밀 피검사 하고 링겔 큰 바늘로 바꿔 달고 ,,
그동안 난 넘 아파서 힐체어도 못타고 침대차로 댕기며 검사를 했다,
그 시간 새벽5시.
모든 검사를 끝내고 신랑이랑 같이 손을 꼭 붙잡고 있는데 울신랑이 운다,
왜 우냐고 성을 내면서 말하니.
"수술 서약서를 보니 니가 죽을것만 같아서,,,
이래 말한다,
나,,참,,,병원의 수술 서약서가 다 그렇지..."
드디어 밖이 시끌하다,,,
산부인과 부장님이 오시고 마취샘이 오시고 스크랍 널스도 오고 보조하는 당직도 오고ㅡㅡㅡ간호 과장님도 뛰어 오시고
다들 감자땜에 잠도 못자고 새벽을 달려온것이다,
이제 나는 수술실로 향했다,
그 시간 6시
전부들 잠도 못자고 달려 왔지만,싫은 내색 하나도 안하고 수술 준비를 한다,,
미안한 생각은 하나도 안낫징.
그래서 울아들 태어난 시간 오전 6시 31분
다시 눈을 뜨니....회복실...그 시간 9시
옆엔 여전히 울 신랑만,,,,,
울신랑 어른들 걱정하신다고 아무도에게 연락을 안했단다,
배는 계속 아프고 머리는 어지럽고 입에선 마취약냄새..
수술후 산부인과 부장님 말씀
"한 덩치 해서 골반도 정상인줄 알았는데 억수로 작더라"
"감자 니는 전부 다,,고거이 살이니 운동좀 해서 빼라!"하시네
좀 있으니 울 친정엄마가 오셨다,
울 신랑에게 야단을 치시네.
'그래 힘들었으면 전화라도 하지..."하시며,,,
좀 있으니 울 시엄니....
또 울신랑에게 야단을 치시네..
산모가 허리 아프다고 할때 주무리거나 두드리면 안된다고 하시며,,,
울신랑 그 때까지 밥도 못먹고 내 옆에서 눈물 흘리며 있엇는데...
한 덩치 하는 자기 마누라 이리 돌려주고 저리 돌려주고 하면서 딱아주고 혔는데...
미리 아들이라는 것은 알았지만,그래도 궁금하여 물어보니 아들이란다,,,현수
히히..뒤에 들은 이야기인데..
울 신랑 아들이 먼저 수술실에서 나올때 아빠에게 보여주는데.
또 눈물이 나와서 화장실 가서 울었단다,
아들을 확인해서 기쁜 눈물이랑 지 엄마를 저리 아프게 해서 나온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울신랑 히히..지 마누라 죽는줄 알고,,,,
오후 2시경 병실로 옮겨졌다,
엥?
근뎅..울 아들,,,
너무 고생을 해서 황달이 심하게 온것이다,
황달이 심하면 핵 황달로 소아마비의 원인이 된다,
부랴부랴 불빛 치료를 받는데 특혜로 내 병실에 기계를 가져와서 하게 됐다,
내가 불안해서 내 눈으로 봐야 하기에 부탁을 드렸다,
두 눈을 가리고 형광등 불빛 아래에 벌거벗고 누운 울아들,,,
넘 불쌍해서 나도 울고 울 신랑도 울고,ㅡ,,
다행히 5일만에 황달의 수치가 정상은 아니지만 걱정할 정도의 수치를 내려온것이다,,,
울 병원의 외과 과장님.
전에 부터 출산 선물로 내가 아들 낳으면 포경수술 해주신다고 혔는데 울아들이 아파서 그 선물을 못받았다,
7일만에 우리는 퇴원을 했다,
친정으로
그런데 울 시엄니.....
친정에 간 며느리 궁금도 안하신가?
전화 한통도 없으시면서 손주 절에 팔아야 한다고 울신랑보고 돈을 달라 하셨단다,,
갑작스런 수술이라 병원비가(직원 이었기에 50%만 내고 왔지만 그래도 시간외 수술은 비싸다)넘 많이 나와서 신랑이 가진돈이 하나도 없었다,
어렵게 울 신랑이 나에게 10만원을 달라고 하네...
나도 가진돈이 없어서 울 친정엄마가 줬지.10만원,
"손주를 보러 미역들고는 안오시고 절에는 돈을 왜 갖다주지."하시며,,,,
이렇게 태어난 현수가 내년엔 중학교에 간다.
174의 키를 가지고.
얼마나 씩씩하고 똑똑하고 건강한지..
우리 부부가 현수를 보며 항상 하는 말!
태어 나자 마자 다,,,아파서 아플일이 없는 가 보다.
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