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에 유명한 이야기라
아버지의 눈을 뜨이기 위해 목숨마저 내던졌던 한 여자의 스토리는
특별한 감동으로 와닿기 이전에
교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효도'해야 한다는 것이
화장실 다녀와서 손을 씻어야 한다 정도의
거부할 수 없는 규칙으로 뇌리에 잡으면서
그 이야기는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착한 아이로 성장하게끔
오날날의 나로 이끌어 주었다.
그런데 한 번쯤 세상을 삐딱한 눈으로 보기 시작할 무렵부터
마음에 안 드는 인물 중 하나로 심청이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시비비는 둘째치고
그 이야기가 구전되어 널리 퍼질 때 껍데기는 가고
핵심적인 딱딱한 알맹이만 남아
개개인의 앞통수 뒷통수를 막 치고 다니는 효 라는
돌멩이에 대한 반감이엇다.
요즘 효자효녀들 별로 없다지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 스스로 효자 효녀이길 좋아하는 것 같다.
돈 있어 손이라도 벌리고 힘 남아 애라도 맡아줄 여력이 있는 부모라면
그나마 나은 편이고
자식이 늙은 부모 고생시키는 것에 대해 얼마간의 죄책감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나마 효자효녀이다.
늙고 가난하고 병든 부모는 솔직히 부담스럽다.
그나마 안스러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효자효녀이다.
그런데 효자 효녀가 아닌 것이 어느날 갑자기 로보트 삼단변신 하듯
돌변하는 경우가 제일 황당한 경우이다.
그것은 효도가 아니라 동물 무리가 다른 집단에 적개심을 품고 텃세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왜 흔히~ 평생 부모 속 썩이던 망나니 아들이
제 부모가 이웃에게 멱살 잡혔다 하면 그대로 과격 효자로 돌변
우리 부모에 대한 모욕을 나에 대한 것 이상으로 부풀려
과도한 응징을 통해 상대방을 초죽음으로 만들어 내는 스토리인데
그렇게까지 노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우리 일반에는 그런 은근한 피해의식에 가까운 효(?) 내세우기가
팽배해 있다.
그 유사한 현상의
대표적인 적군 모델이 며느리가 아닌가 싶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아들들 ...
총각 때는 유별나게 효자 티 내고 다니지 않는다.
무작정 돌보아지는 것에 익숙하고 ..
자식으로서의 감사나 배려도 별로 없다..
(말로 안 할 뿐이라는 주장도 물론 있다)
그랬던 그들이 결혼하면 효자로 돌변하다.
아내를 의식하면서 효자로 돌변하는 것은 야비하다.
엄마 고생 안 시킬려고 결혼해야 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심각하게 나쁜 말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은 여전히 적당히 무책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부모가 아들에게 쏟아부은 기대와 노력을
자신의 아내가 그 이상의 봉사와 노력으로 보상해 드려야 함은 당연하다.
자신은 (처가는 말도 말고) 제 부모에게 전화 한 번
드리지 않아도 아내가 시댁에 전화 않으면
올바르지 못한 처신으로
시댁을, 제 부모와 자신을 우습게 여긴다고 느낀다.
또한 대부분의 딸들 경우...
부모에 대한 자상한 배려는 아들보다 뛰어나
반만년 역사를 굽이치는 남아선호사상의 땅 한반도에서도
딸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학설을 정설로 굳히게까지 되었는데
그래도 알고보면 실속은 다 차린다.
아들 가진 엄마는 사거리에서 얼어죽고(오라는 데가 없어)
딸 가진 엄마는 부엌에서 쓰러져 죽는다는 신종 속담이 최근 딸들의
경향을 잘 반영한다.
하지만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 맞벌이를 안 할 수 없는 형편이니
사회가 분담하나 남편이 분담해 주나 울며 겨자먹기로 친정부모에게
기대는 거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같은 경우라도 자신이 부모에게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자질구레한 보상 및 단순한 죄책감으로 무마가 되는 데 반해
올케가 자신의 부모에게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단순한 죄책감 이상의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댓가를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으면
매우 꼬인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친정어미와 제 시모를 욕하면서 제 올케 흉을 보는 것은
다르지만 같은 심리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당연하지만 어쩌면 이기적인 심리이다.
남의 집 딸이 남의 집 부모를
당장에 내 부모같이 생각할 수는 없다는 걸 이해한다면
같은 호적상에 등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어설픈 부모, 어설픈 딸 노릇을 흉내내지 말아야 한다.
기대해서도 안 된다.
부모가 반신불수가 되면 아들 딸 모두
일차적으로 며느리의 헌신적인 병수발을 기대하며
며느리가 헌신적이지 못할 때
아들딸은 자신들이 불효자 불효녀의
불명예를 뒤집어 쓸까봐 몹시 신경쓴다.
하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진정한 효자 효녀는
그 집에 헌신적인 효부가 없을 때만 탄생한다.
효부가 없어야만
그들에게 기회(?)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심청이 왜 그랬는지 알 것도 같다.
그것이 효라는 이데올로기의 허구라는 것 또한 편견으로 취급하여
벗어던져 버리고 나면
그것은 그냥 흔하디 흔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십수년동안 성치 않은 몸으로 갖은 시련을 겪으며
먹이고 입히고 해 온 자신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보답'이라는 기브앤 테이크의 논리로 파악한다면
목숨을 거는 그러한 전개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심청 자신 또한 그렇게 아비를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 거 같다.
내가 누려온 30여년의 사랑은
계약상의 조건이 아니니
갚아도 그만 안 갚아도 그만이지만
굳이 갚는다면
그것은 30년 자라난 내 살과 피에서 우러나오는
나 자신의 사랑으로 되갚을 수 있는 것...
갓 시집온 며느리가 무슨 지난한 역사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고
내가 누려온 것과 똑같은 강도의 사랑을
나의 부모님께 갚아야 한다는 말인지...
나의 남편 역시 내 부모에게 똑같은 아들이기를 강요하지 말 것처럼...
효도할 사람... 각자 먼저 효도하자...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되지 않은 어설픈 가족구성원으로 살라 치느니
차라리 아들의 아내라는 좀 떨어진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세월이 지나 부대끼고 용서하고 화해하길 되풀이해서
남같지 않은 공감대를 이룰 만한 시기가 되면
조금은 자식 같은
송진같은 끈끈한 사랑이
천천히 살갗에서 배어나올 것이다.
더불어 오래 보고 살 생각이라면
천천히 변신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