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happygreen.net 에서 퍼온 사진.

단순히 놀러가기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일찍 나서본 것은
결혼 이후 처음이었다.
전날 밤에 김밥을 미리 싸 놓고 수선을 떨었기에
아침에 세수만 마치고 8시 정각에 집을 나설 수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미리 여러 가지 정보를 확인하고 길을 떠나긴 했지만
사람들이 와 몰리는 단풍철에 꽤 먼 데까지
당일치기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서둘러서였는지 영동고속도로는 별반 밀리는 곳 없엇다.
그런데 심상치 않은 기운은 고속도로 휴게실...
지나치는 휴게소마다 주차장에 빼곡한 관광버스들..
문막 휴게소에 들르려다가
진입입구에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수십미터씩 줄을 서 있는
관광버스의 행렬에 질려 버렸다.
좀 더 가 그나마 할랑해 보이는 휴게소를 들어갔는데
주차할 자리가 그나마 있다 뿐이지
거기도 가득한 관광버스, 5,60대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 아주머니...
그나마 남자화장실은 회전율이 높아서 남편과 아들은 용무가 가능했지만
나는 화장실 쓰기를 포기하고 나와버렸다.
그 전에는 꽃놀이, 단풍놀이를 가 본적이 없으니
이렇게 연로하신 분들의 단체관광이 많은 줄도 몰랐고
그 좋은 경치 구경하고자 나선 길이 사람 구경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 시작했다.
횡계인터체인지를 돌아나오자 목장의 이정표가 가는데 마다
잘 표시되어 있었다. 오대산 자락에 위치한 대관령 삼양 목장은
우리에게는 수타면(?)으로 잘 알려진
삼양그룹에서 운영하는 동양 최대 규모의 목장이란다.
가을 동화등 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명성을 얻으면서
불과 몇 년 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을 하기 시작했는데
나 역시 다녀온 적이 있는 친구의 추천에 용기를 얻어
수십 년 묵은 게으름을 떨치고 용감히 발길을 해 본 것이다.
평지는 아직 푸릇푸릇한데
강원도 산악지대에는 과연 단풍이 오색찬란하게 물들어 있었다.
울긋불긋 화려한 치장을 한 비좁은 산자락 사이에
맑은 물이 참하게 내달리는 계곡을 끼고
오르막길을 얼마 올라가자
포장 도로가 끝나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가 나타났다.
10년 운전경력에 비포장도로는 처음이라 궁시렁대면서
나으 허즈반드는
매우 조심조심 속력을 늦추고 산모퉁이를 돌아돌아 길을 올라갔다.
10분 정도 들어가자 목장의 입구, 매표소가 나타났다.
우리가 정문을 통과하자 라디오에서 정각 11시를 알리는 시보 소리...
door to door...딱 세시간이 걸린 것이다.
입구에서 어른 둘의 표를 구입하고(어른 5000원 소인 3500원)
안내원의 간략한 안내를 받은 다음 모퉁이를 돌자
좌우에 풀숲 우거진 완만한 언덕들 ....
그 언덕들 어디에는 조각이나 미술 전시물이 세워져 있었고
어디에는 양과 토끼를 풀어놓기도 했다.
동물 매니아 아들놈이 그냥 지나칠 쏘냐...
녀석은 “양아~~”를 부르짖으며 양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양들은 사람 손길이 귀챦은지 손만 닿으면 슬쩍 내빼 버린다.
(양은 목장에서 떼로 방목하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이 목장의 분위기를 느낄수 있도록
열 마리 정도만 풀어놓은 것이다.
머 우기자면 희생양이라고도 할 수 잇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매표소에서 천원짜리 양먹이를 사 왔더라면
양을 매수하여 사진 한 방 자연스럽게 찍지 않았을까 싶었다.
차를 타고 좀 더 올라가자 매점과 휴게소가 나온다.
산악오토바이를 대여해 주는 곳이 있는데
처녀총각들은 거기서 오토바이를 타고
스피드를 즐기며 전망대 까지 올라가는 것이
애와 짐으로 늘 무거운 나로서는 무척 부러워 보였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지라 어디서 풀어놓고 요기를 좀 해야했다.
남푠은 마누라의 독기 어린 눈치주기도 아랑곳 않고
기어이 떡볶기 한접시를 사먹는다.
가격은 좀 세고 맛은 좀 없다.
매점에서는 삼양사에서 나온 각종 라면들과
지역 특산물을 싼값에 팔고 있었다.
라면이 마트에서 얼마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저것이 과연 싼가
확신이 들지 않아 라면박스를 사는 것은 그만 두었다.
대신 사발면 한 그릇을 사서 따끈한 국물을 홀짝이며
김밥을 냠냠 먹었다.
라면 먹는 사람들로 붐비는 매점이 좀 더 넓었으면 조으련만...
암튼 그 와중에 아들놈이 바나나 우유를 확 엎질러버려
바지가 푹 젖고 대걸레 빌려와 바닥 닦아내고...
후~ 암튼 녀석의 전신에서 풍겨나오는 우유 냄새로 인해
목장일꾼으로 오해받는 일은 없겠지...
차로 도는데만 두시간이 걸리는 목장 내부는 전체가 다 비포장 도로이다.
따라서 레저용 차량이 더 요긴하긴 하겠지만
우리의 아반떼도 별 무리없이 잘 달려 주었다.
애초에 상상하기로는
영국의 시골같은 작고 아담한 둔덕의 목초지를 연상했지만
역시 백두대간 태백산맥 자락의 산이라
들판같은 한가로운 풍광 보다는
뒤로 눈을 이고 선 알프스 산 아래의 푸른 목초지에 더 가까워 보이는
장려하고 장대한 멋이 있었다.
크고 거칠게 떨어지는 높은 산맥의 옷자락에 싸여
여기저기 작고 완만한 언덕에는 약간 갈빛을 띤 초록풀밭이
산 모양의 굴곡을 이루며
아래로 아래로 부드러운 융단처럼 펼쳐져 굴러 내린다.
산이 많은 나라에 살다 보니
바다 아닌 내륙에서 탁 트인 광경을 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산 한 가운데서 숨통이 시원하게 탁 트인다.
산아래서 밀려오는 바람은 융단같은 풀밭을 휘리릭 쓸고 지나며
은빛 부드러운 물결을 일으킨다.
햇빛에 반사된 풀 파도가 정말로 보기 좋게 일렁인다.
전망대로 올라 가는 길엔
곳곳에 무슨무슨 촬영지였다는 안내간판이 서 있다.
연애소설 ,가을동화, 선녀와 사기꾼. 태극기 휘날리며.. 기타등등...
문화생활 전반에 무지한 나는
그 많은 드라마나 영화들 중 제대로 본 것이 하나도 없어
어떤 장면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 나무, 그 바위에 서서 주인공들의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그저 천방지축 풀밭에서 뛰고 구르고
올만에 눈이 호강하는데 만족할 뿐이다.
곳곳에는 천혜의 풍경 말고도
목장 측에서 관광객을 위해 특별히 설치한 듯 보이는 미술품들이 많았는데
특별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지나친 배려(?)가 자연스러운 목장의 풍경에 좀 거슬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것 말고도 타조우리가 있었는데 역시 아이들 차지였고
정작 목장의 주인공이어야 할
소는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축산 쪽으로는 많이 퇴락한 대신
관광 쪽으로 수지가 맞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도 풀밭에는 여기 저기 소똥으로 추정되는 검은 덩어리들이 발견되었다.
어디 사람들 안 보이는 데서 소를 키우기는 키우나 보다 했다.
풀밭에서 함부로 구르다가는 쯔쯔가무시, 랩토스피라, 유행성출혈열과 같은
가을 전염병과 더불어 온 몸으로 소똥을 뭉개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좀 유의해야 할 것이다.
전망대에 오르자 한 쪽으로는 풍력발전소 예정지에서 하얀 바람개비 모양의
풍력 발전기 세 기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돌아가고 있다. 동쪽 절벽 너머로는
발아래 단풍의 바다 너머 멀리 강릉시가지와 경포호,동해 앞바다가
푸르스름하게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동해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차들은 여기에서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하지만 우리는 한바퀴 완주를 위하여 다른 길로 돌기로 했다.
반대로 돌아가는 길은 올라온 길보다도 좀 더 울퉁불퉁했다.
하지만 우리의 아반떼는 뒤뚱뒤뚱 덜컹거리면서도
그 비포장 도로를 심드렁하게 잘 짚어 내려갔다.
아들놈은 풀밭에서 뛰다 지쳐 벌써 잠이 들었다.
내려가는 길은 너무도 호젓하여 좀 불안했다.
하지만 좀 지나자
아... 이 길로 내려오길 참 잘했다.
길은 내내 유리처럼 맑고 아담한 계곡을 끼고 죽 이어져 있었는데
원앙이 서식한다는 아름다운 계곡에는
바닥에 하얗게 깔린 하얀 강모래 위로
헤엄치는 송사리떼가 그림처럼 어울렸고
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가을햇살에
올망졸망 솟은 바위들의 흰이마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계곡 맞은 편으로는 따가운 가을햇살에 더욱 진하게 타오르는
가을 단풍의 숲...
풍악의 호사스런 절경이 부럽지 않은 곱디 고운 단풍이었다.
게다가 말할 수 없는 호젓함....
차소리도,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은 깊은 숲 하나를
내가 몽땅 다 가진 듯한 비현실적인 꿈같은 느낌...
산맥과 목초지에다 단풍까지 덤으로 얻은
이루말할 수 없는 아줌마 식의 기쁨은 물론이고....
나중에야 안 이야기지만 레져용 아닌 차고가 낮은 일반 차량은
그 길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고
특히나 비 오고 나면 진흙탕길이 되어 아예 불가능이라고 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연수원이 있었다.
그 건물에는 백반을 파는 식당이 있었고
그 앞에는 송어낚시를 할 수 있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말갛게 들여다 보이는 연못속의
검고 살진 송어들은 낚시밥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미끼를 무는 일 없이 유유히 노닐고만 있었다.
우리는 빨간 지붕이 예쁜 은서 준서의 집을 지나 다시 입구쪽으로 나왔다.
이미 세 시 인데도 차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차가 많았지만
목장이 넓어서인지 사람에 치인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유명세를 탓다고는 하지만
북적대거나 시끄럽지 않았고
요란하게 치장하거나 뺀질뺀질 윤나게 잘 닦여지지 않아
나는 그것이 참으로 좋았다.
봄에는 한참 화사한 연두빛으로 풀물 오를 무렵 그 빛깔이 아름답다 한다.
여름이면 무성한 풀숲과 더불어 평지보다 시원한 기온에 피서지로 인기라 한다.
가을이면 단풍과 더불어 즐길 수 있으니 그것이 좋을 것이고
겨울이면 천지가 다 새하얀 눈밭이라 눈썰매 타느라 재밌단다.
아마 입장료 수익이 좀 더 짭짤해지고 돈이 더 모이면
길도 포장하고 콘도 같은 것도 세우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놀이시설에....
사람들과 차들이 미어터질 그 날이 조만간에 올 것 같다.
그런 편리함이 좋으신 분들은 좀 더 기다리시고
그런 분위기가 싫으신 분들은 늦지 않게 지금쯤 한 번 둘러 보시길...
지금이 단풍의 절정이라 한다.
하지만 단풍을 놓칠까 서두를 필요는 없을 거 같다.
화려한 단풍마저 다 가버린 늦가을의 을씨년스러운 정취도
분명 그 나름의 멋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뿐 것들은
무슨 옷을 입어도 이뿐 법...
가을..
올만에 명화 한 편 감상한 기쁨이다.
참고...@고지대라 기온이 몇 도 낮은 거 같다. 이 점 주의
@오는 길 다섯시간 걸렸습니다..
점심먹는 거 까지 돌아보는 데 세시간 걸린 거 감안하면
길에서 버린 시간 8시간...
@사진 뽑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디카가 없서서리....^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