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주책없이
저녁 안개 부여니 분위기 좋고 한가하고
계절에 묻어 숱하게 지나간 언젠가의 서늘한 기억이 남아서인지
아들에게 남편에게 저런 거 먹지마.... 라고 주입시켜 놓고도
애가 섰나 도대체 왜 그런지
컵라면이 넘 넘 먹고 싶어 해가 훌쩍 저버린 껌껌한 도로변을 되짚어
아들놈을 이끌고 마트에 갔다.
"우리 환경호르몬이나 한사발 하까?"
네살난 놈은 멋도 모르고
"응*이라고 기꺼이 대답해 준다.
중학교때 매점에서 고등학교도 물론
대학교때 도서관 앞 에서 추운날이면 시린 맘이 더더욱 땡겨서
스티로폼에 뜨거운 물을 좍 부어 줄줄이 녹아드는 환경호르몬 따위는 걱정않고
그 저렴하기 짝이 없는 따끈함이 목구멍을 촤르륵 넘어가
온 몸을 덥혀주던
그런 나의 또렷하고 맑았던 가을들이 가슴으로 흘러든다.
그냥 라면은 왜 그런맛이 안 나는지 몰겟다.쩝~~
나야 그렇다 쳐도
아들놈은 씩씩거리며 그 한 사발을 국물까지 맛있게 다 긁어먹고 잠들었다.
흑...!나는 나쁜 엄마다...-__-::(맥주 마시며 반성중) 캬~~~
글치만 아들에게 어떤 먹거리를 먹이는 어떤 엄마이냐 따지는 거
잠시 포기해 본다.
젊어서(어려서일지도)는 먹지 않아도 상관없었고
혼자여서 외롭기도 했지만 강하고 솔직하고 담백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살이 올라도 웰빙열풍에 좋은 것만 먹어도
갈수록 허약하고 얄팍하고 질척거리고
여럿이면서도 외롭지만 강한 척 해야 하는
이 중년의 스러지는 가을이 버거워서일까?
먹는 게 중요한 걸 아는 데도 속이 허전하다.
조미료를 듬뿍 친 얼큰함이
방부제에 절은 얇은 밀가루의 부드러움이
환경호르몬이 좍 발린 하얀 스티로폼의 따끈한 열기가
양 손에서 혀끝으로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환경 호르몬들아.
아무쪼록 소화 잘 되거라...
피가 늙은 나는
이제 살이라도 웰빙 할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