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고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교육받은 여자로 여기서 21세기를 살자니
종종 20세기 19세기를 느낄 때마다 사는게 싫어진다.
듣자하니 선진국은 여자와 아이들의 천국이라는데
나는 여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이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배운대로의 언행을 아무쪼록 삼가하고
어쟀든 모나지 않게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얼마전에 이민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한국에 살기 싫은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50% 가까이 더 많다고 하더라.
나도 한국에 살기 싫은 한국여자중의 하나이다.
남편은 이민가면 머 하냐 그래도 한국이 젤루 살기 좋다고 믿는 한국남자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극성스럽지도 악착같지도 못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어
아차하면 전쟁터같은 이 사회에서 도태될까 불안한 남편을 보자면
멀 건질게 있다고 한국이 젤 낫다고 믿는지
실로 의아스럽다.
지금 남편의 회사는 또 구조조정중
직장동료 중에는 대상에 포함되어 와이프한테 어떻게
얘기하나 허구헌날 술로 지새는 사람도 있단다.
남의 얘기같지 않아 나역시 갑갑해진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남편은 남자들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힘주어 말한다.
공감한다. 곰곰히 곰씹어 보면 한국은 여자의 세상이 아니듯 남자의 세상도 아니다.
그러면 여기는 어떤 곳인가?
나의 모국 한국은 남성의 세상이 아니라
남성성의 세상이다.
모국이 아니라 부국이라 불러야 될 판이다.
남성성에 대해서 대단히 관대하며 또 남성성을 훌륭히 관철시키고 있는 이들에게
지당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대신 그렇지 않은 것들에게는 지극히 냉담하고 무자비한 남성성의 나라이다.
남성성... 적극적이고 주도적이며 추진력 있으며 경쟁심이 있고 능력있고 돈 잘 벌며 당당하고 큰소리 치고 술 잘 마시며 과묵하며 통이크고 의리를 지키고 고집이 세고.....
철저한 위계질서...약한 것은 찌그러져 살아야 하고 강한 것은 무소불위...간단한 접촉사고가 난 도로위에서 부터 국회의사당 까지 목소리 큰 사람만이 승자이며
영웅은 호색이며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쟁취하고
취업광고에는 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자를 모집중이며
과정과 소통을 중시하기 보다는
무조건 밀고 들어가고 되든 안되는 자신있다 호기있게 장담해야 남자이며
처자식이 기다리는 집으로 제 때 들어가는 팔푼이보다는
동료들과 어울려 룸사롱에서 끝내주게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인정받는 남자의 스타일이다.
꼼꼼하고 세심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부드럽고 가정적이면
사실 그저그런 남자일 뿐이다.
남성성의 사회에서 여자들 살기 정말 힘들다.
같은 사회에서 남성성의 최고경지를 실현하기 어려운 대개의 평범한 남자들 역시
살기 정말 힘들다. 자학과 열등감에 빠지기 쉽다.
한 번 실패한 많은 남자들은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면 인생을 포기한 것 처럼 술에 절어 산다. 하지만 여자는 사모님에서 파출부까지 기꺼이 밑바닥으로 떨어져
오히려 남자들 보다 더 남성적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갈 줄 안다.
(한국 아줌마의 극성은 그런 남자들의 공헌이 크다고 본다.)
아마 능력 있고 주도적으로 보여야 되는 남자의 자리에서 미끄러져 버린 비애감이, 쉽게 여성성을 수용하지 못하면서 채우지 못하고 잃어버린 남성성의 공허가 사람을 공황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강한 것이 부드러운 것보다 부러지기 쉬운 법인데 말이다...
여자 눈에 남자다운 것이 보기에는 좋다. 그 반대의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 성의 특징은 다른 성과 조화될 때 더한 경지에 오를 수 잇다.
상상해 보자. 엄청 남성적인 남성과 무작정 여성적인 여성의 우스꽝스러움을...ㅋㅋ
조물주가 인간을 얼마나 잘 만들어놨는지 사람의 몸에는 남녀 두가지의 호르몬이 둘 다 흐르고 잇고 어느쪽이 더 우세한지에 따라 성이 결정 되는 것일 뿐인 것을...우리는 호르몬 둘 다를 쓸 수 있는 신체구조와 정신구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남성성 편향의 사회를 벗어나야만 여자와 아이도, 남성성에 핍박당하고 있는 남성들까지 해방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다 알아서 한다가 아니라
고백하고 더불어 의논하고 줄이고 꾸리며
'남자답지 못한' 모습을 드러낼 줄 아는 용기가 더 큰 거.. 여자들도 다 안다.
역설적이지만 남자답지 못한 남자의 모습에 여자는 가장 큰 힘을 느낀다..
남편과 아버지의 눈물...
남편과 아버지가 체면의 굴레를 벗고 기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헌신적인 모습은
엄마의 그것보다 훨씬 감동적이다.
소리도 내지 말고 삼켜야 하는
질펀하지 않은 진한 것이 있다.
아무튼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 하지만 살아가야 한다.
50년대 세계 꼴지를 앞다투던 최빈국이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하면 된다 식의 남성적인 힘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렇게 살만한 상태에 이르러서
오히려 더 한국이 싫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미래에 대한 것,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대가 없기 떄문이 아닌가 싶다.
남자도 살기 힘든데 여자들이 나댄다고 불평하는 남자들...
손에 꽉 쥔 남자의 칼을 놓으면 발목에 채인 차꼬도 느슨해질텐데...
누구든지(남자든 여자든) '남자답게' 살아야 하니까 우리 살기가 힘든 것은 아닐까?
사는 것이 고달프고 팍팍하다고 느낄때
가끔은 나의 자식을 바라보는 그런 부드러움으로
매우 여성적으로
세심하게 한 번 자신을 돌아봐야겠다....
세상을 바꾸는 진취적인 정신도 나쁘진 않지만
나와 타인을 간간히 살피는 눈길 한 방이면
양성을 지닌 그대와 나의
한국살이가 좀 여유로워 지지 않을까 싶다.
60년대 유행했던 노래인데 지금 딱 리바이벌 해야겠다.
"잘 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