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좋은 직업..
기본 주제방 2004/07/13 12:10   http://blog.azoomma.com/ticell/143580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이 신통치 않아

얼마전에 취업사이트를 기웃거리다가 원서를 넣어봤더니

곧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사실 연락온 것 자체가 좀 의외였다.

왜냐면 내 나이 벌써 서른여섯...여자...그것도 아줌마....

면접 오라는 것 자체가 고마워(?) 부랴부랴 포트폴리오를 챙겨들고

비오는 날 버스를 타고 택시를 또 갈아타고 1시간 반을 내쳐 달려갔다.

 

회사는 유명한 어학원 소속의 교재담당연구소로

강남의 깨끗하고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고

자유분방한 복장의 직원들이  쌸라쌸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촌구석에서 올만에 상경한 이 아줌마에게는 참으로 거시기(?)해 보였다.

 

면접을 담당한 여직원은 이것저것 기본 사항을 물어보더니

꽤 난감해 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난감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실력만 있다면 서른여섯의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가 기본전제였다.

헌데 그너무 회사가 일주일에 반은 야근이요

토욜도 저녁까지 근무이며

어린이 날 등 확연히 빨갛게 표시된 날에도 출근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었다.

출퇴근만해도 세시간은 걸릴텐데 맨날 야근에 공휴일까지...

놀이방 아니면 맡길데도 없는 네살짜리 아들을

따로 사람을 써서 돌보자면 거기서 주는 월급을 몽땅 털어넣고도

나머지 경비는 내 돈으로 감당해야 할 것 같았다.

간단한 테스트를 너무 많은 생각들속에  무성의하게 치르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남푠이 면접 잘 봤냐며

나더러 다니게 됐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처녀적처럼 엄마가 집안의 모든 뒷바라지를 다해 준다면

내 몸하나 힘든 것은 감내하고 다닐 자신이 있었다.

남푠은 반반이라고 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말 속에는

마누라가 돈 벌어 오는 것에 대한 찬동 반과

거기에 자기가 분담해야 할 가사일에 대한 거부 반이 포함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

"회사가 맨날 야근이라서 내가 취직하면, 6시 칼퇴근인 당신이 아들놀이방에서 

데리고 와야돼... 어울려서 술마시고 오고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이야...

그리고 밥하고 국 끓여서 둘이서 먼저 먹고 설거지 좀 해놔..

토욜도 근무한다니까 토욜도 쉬는 당신이 청소해 놓고 애 델꼬 가서 장 봐오면

일욜날 내가 반찬 만들어 노코 빨래 돌리면  되겠네..." 

라고 하자 남푠은 금방

"안 다니는 게 좋겠다" 로 말을 바꾸었다.

다행히(?) 그 곳에서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아

우리는 평상의 삶을 지금껏 유지하게 되었다. 

 

친구들 중에는 유난히 공무원이 많다.

그것도 다들 처음부터 공무원은 아니었는데

작은 무역회사의 회사원, 시민단체,유치원교사,학원강사 등

다른 일을 하다가 여의치 않자

안정적인 일자리로 찾아나선 것이 공무원이고

(물론 그것도 다들 돌보아야 할 식솔들이 없던 처녀적 시절이나

대신 돌보아 주는 친정어머니가 계신 경우이긴 하지만)   

그 치열하다는 경쟁률을 뚫고 다들 잘도 척척 붙어 주었다.

 

흔히들 여자의 직업으로 가장 좋다고 꼽는 것이 교사와 공무원이다.

그것은 교사와 공무원이 많지는 않지만 안정적으로 소득을 보장해 주며

여타의 직업에 비해 여가의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일반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남자의 직업으로 높이 쳐주는 의사나 변호사가

여가의 시간이 부족한 대신 드높은 사회적 지위와 고소득이 보장된다는

일반의 인식과는 대조적이다.

즉 여자의 직업을 평가하는 기준에는

적당히 가계에 보탬이 되는 지속적인 소득과

돈 버는 일을 하면서도 가사와 육아까지 다 떠맡을 수 있을 정도의 '남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맞벌이의 가사 분담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지는가는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여자의 직업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 선에서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면

교사를 하든 회사를 다니든 아니면 의사나 변호사를 하든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돈을 벌어도 돈을 못 벌어도 여자는 갑갑하다.

물가는 천정부지, 집값에 사교육비에

한 사람만 벌어서 먹고 살기에는 힘든 세상이라는데

실업률은 치솟아 아이가 아파 좀이라도 일을 등한시했다간 일차로 짤리기 십상이며 

당장 아이를 맡길데도 없는데  둘째는 무슨 소리이며

가뜩이나  저임금에 일하는 아줌마를 쓰자니 남는 것도 없고(심지어 눈치도 보인다)

가족행사에 생신에 제사에 경조사는 왜  이리 많은지 

모든 문제를 다 떠안고 슈퍼우먼으로 살거나

아무리 집안일을 죽을똥 살똥 해도 돈 한푼 못 벌어 오기에

무능력한 동네 아줌마로  살거나 

생각해 보면 여자가 살기는 매한가지로 아직도 고달픈 시대이다. 

 

최근 삽화의뢰가 많아지면서

집에서 15시간씩 일을 했다.

아빠가 퇴근한 후에는 아들과 놀아주긴 하지만

(평상시에는 잘 안 놀아주고 초저녁부터 잔다. 흥!)

하지만 바삐 밀린 일을 하는 와중에 잠깐 쉬는 동안

나는 세탁기를 돌리며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며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전화를 받고 흘린 과자부스러기를 줍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실은 애초부터 여러가지 일을 한번에 하는

멀티 태스킹(multi-tasking)형 인간이 못된다.

아줌마들이 그래서 산만해지는 거다.

정신을 엇다 두냐고 구박하기 전에

남편들아, 늬들이 일어나서 한가지 일이라도 좀 도와라...

문득 정신이 들 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나는

참말로

일 하기 싫어진다.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