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부아가 치밀면 애맨 강아지만 발로 찬다는
유사한 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조선시대 여권이 바닥을 기던 시대,
시댁식구들 구박에 화풀이 할 데가 없어 그 집에 오로지 만만한 것이
강아지이기에 발로 차고 때리고 했다는 것인데,
바꿔 말하면 며느리는 벙어리, 귀머거리,장님 3년의 존재 아닌 존재로서
그 집안에서 인간으로서는 가장 낮은 지위에
처해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의
며느리들은 강아지를 발로 차지 않아도 될 만큼 뻔뻔(?) 스러워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이 현란한 21세기에 아직도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호칭이 아닐까 싶다.
유교적 가부장제의 가족제도에 의거
한국땅에 살자면 많이 먹을수록 힘이 되는 엄청난 위력의 '나이'라는 단위를
무시하고 (싸우다가 딸리면 몇살이나 처먹었냐고 한다.)
서열에 따라 형님 동생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까지는
넘어간다 치자.
나는 결혼초기에 남푠의 동생들을 부를 때
도련님, 아가씨란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기만 하고 잘 나오지가 않았다.
사극 드라마 찍는 것도 아니고 종년이 주인집 자제분들에게나
하는 그런 식의 호칭이 어색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아가씨의 신랑은 내 서방도 아닌데 서방님이라 불러야 한단다.
윗서열은 어차피 높여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무관하지만
감히 며느리가 시댁식구들을 아랫서열이라고 하대하여서는 안되기에
그런 호칭을 쓰게 하면서 동시에
반드시 존대를 해야 하게끔 한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그러면 남편들은 어떤가?
서열 윗대가리들에게 존칭을 써야 하는 점에서는 언뜻 평등해 보이나
아랫서열을 일컫는 부분에 가서는 참을 수 없는 배신을 때리고야 만다.
처남, 처제...' 님' 짜 '씨' 짜 업다.
처남, 처제가 아무리 지보다 나이가 많아도
반말 안하면 그것이 더 예의(?)에 어긋난다고 한다.
시댁은 '댁'이지만 처가집은 '집'이다.
남푠집 가족들과 마눌집 가족들의 서열은 단위 자체가
틀린가 보다.
겨론하고 첨 느낀 거지만
그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시댁에 앉아 있으면
내가 그 모든 시댁식구들 심지어 꼬맹이 조카들보다도
더 낮은 가장 아래 서열에 몸둘바 모르고 있는 종년같다는
우울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심지어!
내가 낳은 울 아들보다도 엄마인 내가 더 낮은 서열에 위치하고 있다는
암묵적인 느낌이 종종 든다.
( 하긴 내 아들이 나의 미래의 주인님(호주)이니 영 틀린 느낌은 아니다.)
여성들 각자도 겨론하기 전에는 당당한 가족의 기둥이지만
관습적으로는 아직도 겨론하면 시댁에 무작정 혼신의 힘을 다해 적응해 줘야 한다.
종년이 아닌 시댁 식구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말하고 행동하려면
얼마간 욕 먹을 각오 해야 한다.
세상이 조아져 딸같은 며느리가 좋다는 시어머니들도 많아졌다.
아니라고 본다..
좋은 딸처럼 엄마 위하고 싹싹한 며느리라면 좋겠지만
나쁜 딸처럼 엄마한테 집안일 다 미루고 신경질 부리는 며느리를
그래도 내 딸이니 온전한 엄마의 마음으로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시모는
얼마나 될까?
그 때의 딸이란 딸로서 성녀에 가까운 퍼펙트한 딸을 원하는 것이다.
사위가 어쩌다 처가에 갈 때마다 칙사 대접을 받으면서도
며느리가 허구헌날 시가에 가 갈 때마다 종년 노릇을 스스로 자청해도
좋은 며느리 소리 듣기란 참 어렵다.
며느리든 사위든 하나 건너 하나인 똑같은 내 자식의 배우자 아닌가?
며느리도,사위도 다 같은 자식이란다. 하지만 자식도 여러가지 부류가 있더라.
사위가 손님에 가까운 대접받는 자식이라면
며느리는 어떤 부류의 자식일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하나 건너 하나인 자식은
아직은 아픈 손가락이 따로 있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