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브레이크는 노는 시간이 아니다.
전여옥 작가 의 [간절히 두려움 없이] 중에서...
내 친구는 한국계 회사에서 외국계 회사로 옮기고 나서 제일 좋았던 것이 커피 브레이크 라고 했다. 외국계 회사에서 커피 브레이크는 대개 오전 10시와 오후 3시쯤 있다. 시간은 약 15분 정도로, 짧게는 10분 길어도 20분을 넘기는 일은 드물다. 이 시간은 말 그대로 일하다가 커피를 마시며 쉬는 시간이다. 내 친구는 나처럼 먹을 것을 엄청 밝히는지라 새로 옮긴 사무실의 한 코너에서 갓 뽑아낸 신선한 커피와 미니 샌드위치, 비스킷을 보고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고 했다. 나는 100% 동감했다.
차를 즐겨 마시는 영국계 회사에는 티 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 특파원 시절, NHK의 내 사무실 옆에는 영국의 ITN 방송 지사가 있었다. 이곳은 지국장부터 카메라 퍼슨까지 모조리 여자였다. 그런만큼 그들은 외부 취재가 없으면 철저하게 티 타임을 즐겼다. 이들과 사이 좋게 지냈던 나는 취재를 나가지 않으면 당연히 그들의 티 타임에 출석하는 고정 멤버였다. 이들과 가졌던 티 타임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적어도 서너가지 종류로 매일 바꿔가며 내놓던 홍차-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복숭아 맛이 나는 달콤한 홍차였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탄 밀크티 역시 그립다. 거품 낸 생크림을 잔뜩 발라 먹던 스콘이나 잉글리시 머핀, 그리고 소냐(지금은 CNN의 메인 앵커로 일한다)가 집에서 구워온 쿠키 맛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이들과 티 타임을 거듭하면서 이 시간이 아주 유용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쉬는 것 같지만 단순한 휴식 이상이었다. 그저 긴장을 풀기위한 수다 떨기에 불과한 듯했지만 이 15분 동안 창조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직장에서 티 타임은 결코 업무와는 떨어질 수 없다. 영국계 방송사지만 소냐는 아르헨티나 사람이었고 나이도 어렸다. (확실히 영국은 국제화된 나라이다. 우리로서는 한국 방송의 해외 지국장을 외국인에게 맡기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으니까) 소냐는 이 티 타임을 잘 이용했다.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소냐는 티 타임을 이용해 업무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 나는 티 타임을 통해 한 여성의 리더십이 발휘되고 증진되는 것을 보았다. 그 이유는 따뜻한 홍차와 달콤한 것들을 앞에 놓고 있는 만큼 모든 사람이, 특히 여성들이 아주 작은 행복에 취해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인 톰 피터스는 MBDA 이론(?)을 주장하였다. 이렇게 말하면 대단한것 같지만, 이 MBDA는 Managing By Doughnet Around 의 약자이다. 즉 먹을 것을 항상 옆에 두고 일을 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산성이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볼이 미어져라 먹을 것을 우물거리는 동안 일종의 공감대 (너나 나나 어쩔 수 없는 동물이야), 동지애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일단 배가 부르면 너그러워지고 긍정적으로 된다는 지적이다.
물론 나에게도 한국적인 커피브레이크의 기억이 있다. 첫 직장인 KBS에서 아침은 사람들과 커피 마시는 일로 시작되었다. 자리에 앉아있으면 선배나 동료들이 들러 "커피나 한 잔" 하고 말한다. 그러면 마다할 내가 아니다. 자판기까지 쪼르르 달려가서 종이컵 커피를 뽑아들고 5분 내지 10분 동안 신나게 엔터테이너 역할을 한다. 그러면 또 한 선배가 나타난다. 때로는 누구한테라고 할 것 없이 "커피 한 잔" 하고 말하고 또 10여 분의 화기애애한 담소가 이어진다. 이렇게 하다보면 어떤 날은 자판기 커피를 10 여잔 넘게 마시면서 커피 자판기 앞에서 아예 사는 날도 있다. 한마디로 '온종일 커피 브레이크' 였다.
물론 뉴스 직전에는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 하지만 일단 일하는 시간이 다른 직장보다 긴 만큼 화끈하게 일하는 한 시간과 커피 자판기와 책상을 10여 차례 왕복하며 보내는 서너 시간의 대비가 극명했다. 하지만 대개의 다른 한국 회사들도 이와 그다지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한국식 커피 브레이크' 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서양의 커피 브레이크와 한국의 커피 브레이크는 달라도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는 점이다. 그 목적이 사뭇 다르다. 서양의 커피 브레이크는 '정말로 뇌가 소진되어 달콤한 것과 카페인 각성이 필요할 때' 라는 조건이 붙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뼈빠지게 일하고 겨우 커피 한잔 얻어 마시는 셈이다. 그리고 커피 브레이크 외에는 커피 마시고 수다 떠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 일터라는 이야기이다.
커피 브레이크는 한마디로 서양과 동양ㅡ한국의 노동강도의 차이를 말해준다. 지금도 여전히 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선진국들이 속한 서양의 노동강도는 대단하다. 특히 이른바 엘리트 계층, 고위직의 노동강도는 굉장하다. 통계에 따르면 간부직, 고위직,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주당 100시간에서 110시간은 일한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대부분 주 5일 근무를 한다지만, 그런 사람들 일수록 당연히 토요일에 일을 하는 만큼 주당 근무 시간을 6일로 나누어보면 적어도 하루에 14~15시간은 일한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와서 한국 경제를 분석한 외국의 경영 컨설턴트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과잉 투자에 과잉 고용이라고 지적한다. 아무리 인력을 삭감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10~15%의 삭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양인들의 여유있어 보이는 티 타임, 커피 브레이크는 바로 지극히 높은 노동강도가 만들어낸 최소한의 휴식이다. 정보화시대 21세기, 노동 강도를 올리는 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하루에 오전 오후 단 15분씩의 커피브레이크ㅡ바로 그 여유의 커피 맛을 진짜로 즐기기 위해서는 나머지 시간은 눈부시게, 눈 코 뜰 새 없이 일하라. 21세기에 살아남으려면.
글쓴이 : 전여옥 서명 : 간절히 두려움 없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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