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
|
| 상세 |
|
|
1923 ~ 1977
1950년대 큰 인기를 누린 프리마 돈나로 오페라의 전설이 되었다.
본명은 '칼로게로풀로스'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라 디비나(오페라의 聖女)라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는 1923.12.2 미국 뉴욕에서 그리스 이주민의 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1937년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그리스로 되돌아왔으며 이듬해부터 아테네의 국립 콘서바토리에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1947년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la gioconda(라 조콘다)'를 부르는 것으로 이탈리아 데뷔 공연을 갖게 된다. 공연은 성공적이었음에도 별 인상을 남기지 못해서 추가 계약은 맺어지지 않았지만 그해 12월에 이탈리아어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졸데역을 부르게되고 푸치니의 '투란도트'중 타이틀롤로 재계약을 맺는데 성공하게 된다.

■ 마리아 칼라스의 전성기
칼라스는 1951년 권위있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의 시즌 개막공연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으며, 1954년 시카고 오페라 극장에서 '노르마(norma)'역으로 미국에서 데뷔했고, 같은 역을 1956년 뉴욕 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는 등 1958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맡게된다.
칼라스는 음악의 감성을 정확히 표현하는 힘과 매력적인 음색으로 사랑을 받았으며, 특별한 발성 능력을 요구하는 배역들을 맡아 이름을 떨쳤고, 프랑스 오페라, 독일 오페라, 이탈리아 오페라에 모두 출연했다. 벨리니·로시니·도니체티·케루비니 등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칼라스의 연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우아한 용모, 대스타로서의 기품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뛰어난 오페라가수로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의 오페라가수로 인정받았다.
■ 오나시스를 만난 후..
그러나 한창 전성기 무렵 칼라스는 화려한 축하 파티에서 남편 메네기니와 함께 참석했다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를 만나고 남편 곁을 떠나게 된다. 오나시스와 함께 있는 동안 아기를 유산하고 자살기도까지 할 정도로 황폐해진 그녀는 오나시스가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해 버리자 1965년 42세의 한창 나이에 코벤트 가든에서의 '토스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칼라스는 영화 <메데아>(1971)에 출연했으며, 이듬해에는 줄리어드 음대에서 마스터클래스(정상급 음악가들이 지도하는 실기교실)를 열기도 했고, 1973년과 74년에 걸쳐서는 미국과 유럽에서 마지막 순회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75년부터 은둔생활을 하던 마리아 칼라스는 1977년 우울증과 수면제 과다복용이 원인이 되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002년 마리아 칼라스 서거 25주년을 맞아 영화 '칼라스 포에버'가 제작되었다.
| |

http://myhome.nate.com/enig/
마리아칼라스를 자세하게 소개한 곳.......
마리아 칼라스와 이사도라 던컨........
써니가 가장 인상 깊게 마음에 남아 있는
여자 예술가 이네요...
어젯밤에는 비가 무섭게 내렸어요
ㅎㅎ 남편이 옆에서 자고 있으니 무섭지는 않았지만
새벽에 오시는 쓰레기 수거 아저씨 차 소리 땜시
잠에서 깼어요... 우리가 잘때도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생활을 보살펴 주시는 분들...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안락한 생활을 하겠지요
그런분들께 오늘은 감사하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써니네 큰시누이께서 직접유기농사하시는 옥산농원
http://myhome.naver.com/freshGra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