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그때 나는......
sunyhouse방 2004/05/18 14:53   http://blog.azoomma.com/suny2683/130220

 

 

 

 

 

 

 

 

 

 

왜 그때 그랬냐고는 묻지마십시요....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이고 그리고

이웃이였습니다...  가족이 죽어나가고 형제가 죽고 이웃이 넘어가는데

피를 흘리는데 가만이 있는 부모가 어디에 있으며 조용히 있을 이웃이

어디 있습니까....  멀리 고통을 받는다고 다른 나라 전쟁에도 참여하는데.... 

참 이런 순간들은 마음이 착찹해집니다......  아직도 그들은 버젓이 대접받고

사는데.....

 

 

   sunyhouse 꼬리글삭제 2004년 05월 18일 14:39:10   

제가 아직도 그때의 정권을 잡았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은 그들이 사람의 목숨을 제물로 삼아 부와 영화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부는 그날의 죽음당한 그 사람들의 목숨의 값입니다.... 

그날 그땅에서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울부짖으며 내 새끼들을 불러댔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내가 사랑하는 조국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

 

 

 

 

 

 

   sunyhouse 꼬리글삭제 2004년 05월 18일 14:37:02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에서 아침이고 밤이고 머리맡 저쪽으로는

총소리가 콩볶는듯 들리고...  할머님과 작은 아버님은

아이들은 간수하신다...   나가지마라.... 오발탄에 맞아 죽을라.... 

우리는 그렇게 대문 밖으로 나가길 무서워 했지만 십시일반이라고

얼마씩 거두어 힘들게 대항하는 그들을 도왔다..... 

그것은 누굴 돕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밥을 주는일.....

 

 

 

 

 

 

 

 

5.18 민주화운동기념일 (얼마 전까지만해도 우리는 이 날을 광주사태로 불렀다)

그때 써니는 여자 아이인데다가 나이도 아직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질만하지

못한 나이였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왜 도로에는 탱크가 다니는지.... 

왜 작은 아버지와 할머님께서는 우리들을 대문밖에도 못나가게 하는지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우리가 다 폭도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음을....

지금이야 다들 그때의 기억들을 올바로 이해해주지만

그 긴 시간동안 우리는 대접받지 못할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취업을 나왔을때도

저는 광주 사투리를 감추어야 했습니다..  그런 요구로...

부지런히 서울말씨를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슬펐습니다...  가슴이 아프고

억울하고...   하지만 어찌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지금은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날짜를 잃어버리지 않고 기념일도 하고 있으니....

 

 

 

5.18의 그때 써니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쳐해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슬프지만 우리 모두의 역사이고

우리 모두 사랑하는 조국의 일입니다.

그때 자유 수호를 위해 그리고 이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그분들을 추모합니다....

 

조국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써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