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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千祥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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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시인.
1930년 일본에서 출생. 해방 후 귀국하여 1949년 마산 중학 5년 재학 중 당시 담임 교사이던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시 '강물'이 <문예>지에 추천되었다.
6.25전쟁중인 1951년 부산에서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 송역택 김재섭 등과 함께 동인지 <처녀지>를 발간했으며, <문예>지에 평론 '나는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다'를 실음으로써 시와 평론활동을 함께 시작하였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약 6개월간 옥고를 치뤘으며,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생활에서 오는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서울 시립 정신병원에 입원되었다. 이때 주위 사람들은 행방불명된 천상병이 죽은 것으로 알고 그의 첫번째 시집 <새>를 유고시집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1972년 친구 목순분의 누이동생인 목순옥과 결혼했으며, 이후 시집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문학선집 <구름 손짓하며는>, 시집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을 간행했다.
1988년 간경화증으로 입원하여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회생했으며, 1990년 시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를 간행했다. 1993년에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를 간행한 후 4월28일 지병인 간경변증으로 사망했다.
천상병 시인은 생전에 주벽과 방랑으로 이어져 온 그의 별난 기행 때문에「천희갑」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의 시는 고단한 삶과 비통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며 소박, 단순하고 투명한 시정신을 보여준다. | |
잠모습 아내
어이없게 어이없게 깊게 짙게
영! 영! 여천사 같구나야!
시간 어이없게 이른 새벽!
8월 19일 2시 15분이니
모름지기 이러리라 짐작 되지만
목순옥 아내는
다만 혼자서 아주 형편없이 조그만
찻집 귀천을 경영하면서
다달이 이십만원 안팎의 순이익(純利益)올려서
충분히 우리 부부와 동거하고 있는
어머니(사실은 장모님)와 조카
스무살짜리 귀엽기 짝없는 목영진
애기 아가씨와
합계 네사람 생활, 보장해 주고
또 다달이 약 오만원 가량
다달이 저금하니
우리 네 가족 초소시민층(超小市民層)밖에 안돼도
그래도 말입니다!
나는 담배 - 그것도 내 목구멍에
제일 순수한 담배 골라 피울 수 있고요!
술은 춘천의료원 511호실에서
보낸 날수로 따져서 말해요!
1월 20일에서 1월 17일까지니
담배 더러 피우긴 했었지만
그러니 불법(不法)적으로
피운긴 했어도
간호원이나 기분 언짢고 그래서 지금 금연중이고
소설가인 이외수(李外秀)씨와 이름잊은 제수씨가 퇴원때
집에 와서
한달동안 지기들 집에서 머물러 달라고 부부끼리 간청했지만......
다 무시하고
어머니와 영진이가 있는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직귀(直歸)했습니다!
아내야 아내야 잠자는 아내야!
그렇잖니 그렇잖니.

지금도 서울 종로 인사동에 있는 귀천에서...
천상병님 살아 생전에 찍으신 목순옥 여사님과 함께 다정하신 모습으로....

오래전부터 천상병님을 한번 소개 하고 싶었습니다.
편찬으시전의 그 젊고 멋진 사진을 찾아 보고 싶었는데....
찾질 못하여서 아쉽습니다.
훤칠하시고 핸섬하셨던 그모습....

천상병 시인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저 순수하다는 그것....
세상의 어떤 것도 그의 정신을 물들일수 없었다는 그것.....
오월의 신록
오월은 신록의 달이다.
파란 빛이
온 세상을 덮는 오월은
문자 그대로 신록의 달이다.
파란 빛은 눈에 참 좋다
눈에 좋을 뿐만 아니라
희망을 속삭여 준다.
오월 달은 그래서
너무 짧은 것 같다.
푸른 오월이여
세계의 오월이여
-이 시는 천상병 시인이 마지막 남긴 것이다.
월간조선의 청탁을 받고 써둔 것인데
운명할 때 윗옷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

위의 자료는 야후에서 소개된 사이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마지막 그림은 야후에서 펌하여온 그림입니다.
평소에 천상병 시인을 무척 존경하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앎이 부족한 사람으로서
이나마 이런 정보라도 올리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써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