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잠기며,,,,,
sunyhouse방 2003/12/29 17:52   http://blog.azoomma.com/suny2683/110891

 

 

사임당 신씨는 1504년(연산군 10년) 10월 29일 강릉 북평촌(오죽헌) 외가댁에서,
고려 건국공신 장절공 신숭겸장군의 18대 손인 신명화공과 이사온공의 따님이었던 이씨부인의 사이에서 둘째 따님으로 태어나 외조부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사임당은 어려서 부터 조선조 화단의 태두 안견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 산수, 포도, 초충도에 남다른 솜씨를 보였으며,
여성으로서의 교양과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19세 때 이원수공과 혼인한 후에 아버님이 일찍 별세 하셨으므로 홀어머니
이씨를 모시고 친정에 살면서 서울 시댁과 율곡리 (현 경기도 파주)를 내왕 하였다.

대관령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산을 날아 내리네.


이 시는 사임당이 38세 때 강릉 친정으로 어머님을 찾아 뵙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도중에 대관령에서
오죽헌쪽을 바라보면서 홀로 계시는 늙으신 어머님을 그리며 지은 것이다

사임당이 33세 되던 해 1536년(중중 31년) 12월 26일 새벽에 검고 큰 용이 바다로 부터 날아와
부인의 침실에 이르러 문머리에 서려있는 꿈을 꾸고 아기를 낳으니 그가 바로 율곡선생이다. 그 방을 몽룡실이라 하는데, 일설에는 사임당이 율곡선생을 잉태하신 곳이 봉평이라고도 한다. 그 까닭은 부군 이원수 공이 수운판관으로 여러 곳을 다니게 되었는데 지금의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의 속칭 판관대에 우거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38세 때에 강릉 친정을 떠나 서울 시가(수진방 : 현 청진동)로 옮겨 사시다가 삼청동에 돌아가시니 그 때 나이 48세 였다.

어머님 그리워
산 첩첩 내 고향 천리이건만
자나 깨나 꿈 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가에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 모래톱에 흐트락 모이락
고깃배는 바다 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밟아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 할까.

이시도 같은 무렵 서울 시댁(수진방)에 계실때 늘 고향에 계신 늙은 어머님을 그리며 지은 것이다.

사임당은 일찍 학자의 집안에서 자라나 엄격한 교훈 밑에서 유학의 경전과 명현들의 문집을 탐독하여 시와 문장에 능하였다.
글시에도 고상한 정신과 기백이 넘쳐 흐르며 기품있는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예찬은 많은 사람들의 발문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여류의 으뜸이다.
또한 시, 서, 화에 걸친 수많은 걸작들을 남기고 있다.

살아 계실 제
밤마다 달을 향해 비옵는 마음
살아 계실제 다시한번 뵈옵고저
...


이 시는 전편이 전해지지 못하고 첫머리 한 귀절만 전해온다.
역시 어머님을 생각하며 지은 것이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평소에 존경함으로 우러러 봄직한 신사임당에 관한 자료를 올려

보았습니다. 관련 사진이나 글을 모두 '야후'에서 발췌해온 것 입니다.

 

오늘날 우리주부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나 아이들 교육에 관하여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삶으로 - 남편에게는 현명한 아내로 - 자녀들에게는 덕있고 엄격한 교육자로서 - 항상 자리를 지켜내셨고 - (그렇다고 자신을 감추고 산 삶은 아니고) 자신의 문학이나 예술에 관한 삶도 나름대로 잘 꾸려오신 신사임당님 에게서 또 한번 배우고자 하는 맘으로 올려본 글입니다. 지나간 한해를 반성하고 다가 오는 한해에 좋은 계획을 세우고자 하실때 참고 하시길 바라는 맘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한해 잘 마무리 하시고 다가 오는 한해의 설계에도 빈틈이 없으

시기를 항상 블로거님 가정에 건강과 행복 그리고 더불어 행운도 함께 하시길

두손모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