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여름의 오후
차를 끓여내고 뒷뜰에 자리를 잡건만 사소한 하소연이라도
들어줄 친구는 커녕, 동네 아는 아줌마도 없다.
어쩌면 나스스로 그런 고립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혼자 있으면 스스로 자신의 내면깊이 다다라보기도 하고
그냥 스쳐지나볼 파란 하늘 한쪽도 생각에 잠기게 하는데...
그래도 곁에 참으로 편안한 친구하나 있다면 오늘은 말벗으로
불러내고 싶다. 쏟아내고 돌아서면 들은 이가 잊어주기를
바랄정도로 늘 후회하는 말, 말들이건만
서로가 살아온 것에, 더 많이 가진 것에 시기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좀 더 지혜롭게, 성실하게 살아보지 못한 것에 위로
해줄수 있는 그런 친구를 불러내고 싶다.
내 설령 부끄러운 고백에 고개를 떨구어도 백마디 핀잔보다
말없이 한번 등쓰다듬어줄 그런 친구를 오늘은 많이 그리워
하며 지는 해를 맞았다.
벗 하나 있었으면
도종환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때
낮은 노래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 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흙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