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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 어서 내려와!" 나는 5살 난 딸에게 크게 외쳤다. 딸은 놀이터에 있는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 구름사다리를 제일 높은 데까지 오르고 있었다. 불안감 속에 숨을 한번 들이쉬고 나자, 문득 야누쉬 코르착(Janusz Korczak)이라는 사람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의사이자 고아원 원장이었던 야누쉬 코르착은 1878년 바르샤바의 유대계 폴란드인 가정에서 태어나, 1942년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에 진주한 독일군에 의해 트레블링카(Treblinka)의 집단수용소로 옮겨져 그 곳의 가스실에서 그가 돌보던 아이들과 함께 죽음을 맞기까지, 의학과 교육실천과 문필활동을 통해 평생 동안 어린이를 돌보고 사랑하는 이례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야누쉬 코르착은 그의 저서 '아이들이 존중받을 권리'(1928)에서 아주 이색적으로 세가지 명제를 표현했다. 그 세가지는 첫째,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어린이의 권리, 둘째, 오늘을 위한 어린이의 권리, 그리고 셋째 그저 여기에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어린이의 권리를 일컫는다.
해괴한 말처럼 들릴 수 있는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권리'란, 당시의 교육이 어린이를 지나치게 감싸고 돈 나머지 아이 스스로는 아무런 경험도 할 수 없도록 강요된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반어법이라 할 수 있다. 혹시 다치면 어쩌나, 그러다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하는 어른들의 두려움 때문에, 조금이라도 다칠만한 것들을 모조리 눈앞에서 없애거나 심지어는 모든 것을 어른이 대신해준다. 어린이들은 무엇을 해볼 만한 기회가 박탈당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는 어른의 행위는 어린이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라는 말이다.
'오늘을 위한 권리'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교육에 대한 비판이다. 어린이 시절을 뛰어넘어 멀리 놓여 있는 미래를 지향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은 근본적으로 결손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저 여기에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란, 아이들의 각기 있는 그대로의 성격과 특성 등의 모습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틀대로 아이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천성적으로 가지고 나온 성격, 소질, 그리고 능력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빼곡하게 들어선 잿빛 아파트들, 텅 빈 놀이터, 그리고 아파트 주변에 들어선 수많은 학원들을 바라볼 때면, 이 시대 부모의 극성스런 교육열에 대한 신문과 방송 기사를 접할 때면, 문득 야누쉬 코르착의 세가지 명제가 떠오른다. 나 또한 극성스런 그런 범주의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또 아이들에 대해 굉장히 자유롭게 사고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내가 막상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참 소심한 부모가 되고 있다. 감기 기운이 있으면 밖에 나가고 싶어하는 아이를 무조건 집안에 꽁꽁 묶어 놓으려하기 일쑤고, 집안에 깨지기 쉬운 물건 같은 것은 잘 만지지도 못하게 한다. 이 시대의 부모들은 '사랑한다'는 이름 아래 자기 자녀를 유리 인형으로 만드는 것 같다. 그 유리 인형이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하게 다루며, 그 유리 인형에게 너는 유리로 되어 있으니까 위험한 것은 어떤 것이든지 하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물론 어린이들의 안전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하에서,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그들의 권리-이른바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어린이의 권리-를 돌려줄 때, 어린이들에게 자발성과 창의성, 그리고 자기 책임성이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
놀이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음에는 내 딸에게 '위험해, 어서 내려와!'라고 외치기 전에, 내가 먼저 뛰어가 아이가 자유롭게 오르도록 구름사다리를 보다 안전하게 잡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끝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까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