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이곳이 좋아"
기본 주제방 2004/10/16 15:12   http://blog.azoomma.com/sun2835/163862
아내 소식 감감… "차라리 이곳이 좋아"
최경운 기자 '빠삐용의 섬' 3박4일 숙식 르포
청송=최경운기자 codel@chosun.com
입력 : 2004.10.15 17:52 24' / 수정 : 2004.10.15 18:14 17'

“교도소 생활이요? 사회보다 더 편합니다.”

10대 때 처음 교도소에 발을 디뎌 올해로 25년째 복역 중인 모범수 A씨. 작업을 마치고 사동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이곳 생활이 어떠냐고 슬쩍 묻자 주저없이 “나가봐야 나을 것도 없다”고 했다.

전과 5범이 될 때까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교도소에서 보낸 그는 세번째 교도소에 왔을 때 적응이 되더라고 했다. 자기도 초반에는 난동을 부리는 등 꽤나 말썽꾼이었다며 싱긋 웃었다.



刑期 반 넘어야 火 식어

교도관들은 “장기수들의 경우 처음 3~4년은 고삐 풀린 황소같다”며 “대개 형기(刑期)의 절반을 넘어야 화(火)를 다스릴 줄 알게 된다”고 말했다.


▲ 한 일반수용자가 작업을 마치고 자신의 방에서 TV를 보고 있다. 그는 “저녁 때 2시간 동안 교도소가 편집해 방영하는 TV를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이명원기자 mwlee@chosun.com)

이처럼 범법자가 교도소에 적응하는 과정을 학자들은 ‘교도소화(prisonization)’라고 부른다. 교도소 질서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살아갈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뒤집어 놓고 보면 이는 사회로부터는 멀어지는 체념의 과정이기도 하다. 격리생활에 익숙해질수록 사회생활에는 미숙해지기 때문이다.

청송제2교도소의 전체 수용자 562명 중 초범은 32명(전체의 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누범자(평균 3.72범)들이다. 사회로 돌아가봐야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수감→출소→재수감’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면회, 전국교도소 '꼴찌'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가족들도 서서히 발길을 끊는다. 이곳 면회실이 다른 교도소와 달리 유난히 더 썰렁한 이유이다. “전과가 쌓이니까 가족들도 연락이 다 끊어지더니 결국 누군가 절실할 때 내곁에 아무도 없더라고요.” 한 특강수(특정강력범죄자)의 말이다. 경력 5년의 유진석 교위(7급)는 “청송까지 흘러온 문제수와 특강수들의 경우 대부분 담장 밖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끊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송제2교도소의 면회건수는 하루 평균 4건에 불과하다. 전국 교도소 중 최하위이다. 교도소측에서는 가족만남의 날까지 마련하는 등 애쓰고 있지만, 가족들의 냉랭한 시선은 여전하다.


▲ 청송제2교도소 독방에서 내부 모습을 취재하고 있는 최경운 기자.
(이명원기자 mwlee@chosun.com)

특강수 B씨가 아침부터 전화를 걸게 해달라고 졸라대는 이유도 가족과 연락하기 위해서였다. “몇달 전부터 집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안와요. 아, 정말 미치겠네!”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곧 전화통화가 허락됐다. ‘교정목적상 전화통화가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는 상황인 것이다.

B씨가 계호요원과 사무실을 나서자 교도관은 “경험상 부인의 마음은 이미 떠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출소하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교도소 앞에서 이별을 통보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수감 중에 떠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내곁에 아무도 없어요"

재작년 말부터 부인에게서 연락이 끊겼다는 대구 출신의 특강수 C씨. 그는 이날 오전 사동에서 한바탕 자해소동을 벌였다. 그는 부인과 연락이 안되자 작년 대구지하철사고 피해자 명단까지 확인했다고 한다. 담당 교도관은 “피해자 명단에서 부인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저렇게 변했다”고 말했다. 교도소화라는 기준으로 볼 때 이들은 아직 ‘익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갈 무렵 조폭사범 D씨가 계보가 다른 조폭사범의 옆으로 방을 옮겨달라고 떼를 썼다. “밤에 잠도 안오고 답답해요. 죽은 듯이 있을테니 옆방에 있도록 옮겨주세요.” 그는 얼마 후면 출소하는 수용자인데 느닷없이 말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교도관은 만기(滿期)가 다가오는 수용자들이 대개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귀띔했다. 출소 후 일어날 상황에 대한 불안, 막막함 등으로 ‘만기병(滿期病)’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출소가 불안한 '만기病'

5년째 복역 중인 20대 모범수 E(전과 2범)씨. 그는 요즘 교도소가 일반수들에게 저녁 때 2시간씩 틀어주는 드라마 ‘매직’을 보는 게 가장 큰 낙이다. 한창 TV에 빠져 있는 그에게 출소하면 다시는 교도소에 들어오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창살 너머로 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요. 지난번 출소할 때는 자신이 있었는데….” 그도 A씨처럼 사회가 교도소보다 더 불편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그는 사회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자신의 처지에 대한 체념이 덮어가고 있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