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사람
기본 주제방 2004/10/15 17:33   http://blog.azoomma.com/sun2835/163756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람들은 분명 ‘또 길은정이야?’하면서 고개를 돌릴 게 뻔했다. 지리했던 길은정과 편승엽의 진흙탕 싸움에 팬들의 마음은 동정에서 지탄으로 바뀌었고, 급기야는 무관심으로 변해버렸다. 편승엽의 고소 취하를 끝으로 무관심의 정도를 넘어선 요즘. 그녀를 만나려 한 것은, 지리멸렬한 그들의 재판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 아니다. 죽음을 앞둔 한 여인으로서 그녀의 안타까운 일상을 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은 농담처럼 이렇게 말꼬리를 올렸다. “길은정, 또 쇼하는 거 아냐?” 더 이상의 진실 게임은 무의미한 줄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쇼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가엾은 여자, 길은정. 2004년 가을, 지금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잘못된 게 있다면, 그 시작은 과연 어디서부터일까.

생에 마지막일지도 모를 1박 2일의 짧은 여행
목발을 짚고 거실로 나온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감돌았다. 얼굴 위에 서려 있는 병자의 그늘을 반쯤은 가릴 수 있을 만큼. 휠체어에 옮겨 앉은 그녀를 마주 대하자 잠시 망설여진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MT는 잘 다녀오셨나요?” 그랬다. 이틀 전 그녀는 자신이 DJ를 맡고 있는 원음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노래 하나 추억 둘> 식구들과 함께 MT를 다녀왔다. 암투병 중인 사람이 MT를 다녀오다니. 하지만 휠체어와 목발을 대동하고 기어이 동행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9월 4일, 여의도 야외 무대. 원불교방송 개국 3주년기념 공개방송을 <노래 하나 추억 둘> 제작진이 맡았다. 5개월 전부터 전체 팀원이 공들여 준비해온 무대였다. 그녀는 목발을 짚은 채로 무대에 서고 싶지 않아 강한 진통제에 의존해 다리를 절며 무대에 올랐고, 다행히 공개방송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후 그들은 공개방송이 끝나면 MT를 떠나자던 5개월 전 약속을 지켰다. 강촌에서의 1박2일. 그녀에겐 4~5년 만에 처음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대학생 때도 가보지 못했던 MT를 생애 처음으로 다녀왔어요. 너무 좋았죠. 휠체어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특히 깊은 밤에 강변에 앉아 사람들과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던 시간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웃음).”
흘러간 팝송이든 귀에 익은 가요든, 부르고 싶은 대로 마음껏 노래를 불렀다. 다음날 아침, 베란다에 앉아 있던 그녀를 알아본 여행객이 “어젯밤 노랫소리 정말 듣기 좋았어요”라고 인사를 건넬 만큼, 아름다운 노랫가락이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기를 쓰고 다녀온 여행. 그것을 계기로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고, 1년 동안 자신을 아껴준 프로그램 식구들과 한층 더 깊은 마음을 나눈 느낌이다.

내게 라디오 방송은 마지막 한 움큼의 ‘산소’
지난 해 11월이었다. 3년 동안 진행해온 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길은정의 백팔가요> 진행을 ‘지나간 인연’과의 법정 공방으로 인한 갖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둔 지 약 1년 만에, 원불교방송에서 DJ 제안이 들어왔다. 무조건 그 일을 하고 싶었다.
방송도 라이브 공연도 할 수 없었던 지난 1년 동안 지독한 자폐증상에 시달렸던 그녀에겐 무엇보다 일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신기하게도 아픈 걸 잊어버릴 수 있어요.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제 방송을 들으며, 하루를 기분 좋게 마감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일인데요. 어떤 분은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에 도착하면, 차 안에서 마저 방송을 듣고 집으로 들어가신대요. 요즘엔, 아파도 여전히 밝은 목소리를 들려주어 고맙다는 글도 많이 올려주시고요(웃음).”방송을 하러 나가기 전부터 그녀는 행복에 젖는다. 방송국에 가면 청취자들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식구들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녀가 방송국 앞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작진은 곧바로 문 앞으로 나와 그녀를 맞이한다. 한 사람은 휠체어를 밀고, 한 사람은 짐을 들어주고, 또 한 사람은 목발을 챙겨준다. 마치 여왕이라도 떠받들 듯이.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방송을 하고 싶다고 전했어요. 그랬더니 다들 힘껏 도와주겠다고 하더군요. 지금의 저로서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방송을 진행하며,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게….”
그녀의 하루 동선은 집, 방송국, 집의 반복이다. 밤 9시까지 방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가 하는 일은, 게시판에 DJ 추천곡을 올리는 일.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친 밤늦은 시간에는, 그 전까지 참을 만했던 고통이 기다렸다는 듯이 엄습한다. 1시간 간격으로 진통제를 맞으며 밤잠을 설치기 일쑤.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해가 중천에 떠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방송국에 나갈 생각에 마음은 다시 들뜬다.

한 번은 말하고 싶고, 해야 할 이야기
마치 꿈을 꾸듯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의 일상을 털어놓던 그녀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부엌에 있는 사람에게 설탕이 들어간 음료 한 잔을 부탁한다. 혈당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면서…. 음료수를 받아든 순간부터 테이블에 빈 잔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그녀의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는 그녀가 안쓰러워진다.
길은정은 강력한 진통제를 맞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녀가 치러야 하는 전쟁은 암과의 전쟁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4년 전부터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우울증의 특수 형태라 볼 수 있는 ‘공황장애’가 그녀의 병명. 꾸준히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장애가 일어나 급기야 발작증세까지 온다. 원인은 80% 이상이 스트레스다.

“‘공항장애’의 원인을 알기 위해 2년 동안 병원에서 상담치료를 했어요. 결국 원인이 ‘분노’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것을 마음껏 밖으로 분출해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죠. 한동안 그렇게 정신과 치료를 받고 오는 날에는, 차 오르는 분노 때문에 한숨도 잘 수가 없었어요. 공교롭게도 그때 ‘썼다 지우는 일기 사건’이 터진 거였죠.”
아…, 그녀는 2년 전의 일을 지금 다시 꺼내려 했다. 이제는 모든 걸 털어버렸기를 바랐는데.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지금이 아니면 그녀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 2년 동안 ‘피고인’으로 재판에 연루돼 있던 터라, 한 번도 언론을 상대로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그 심정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도 이번 한 번쯤은 가슴속에 꾸역꾸역 눌러두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기회를 주어야 했다.
그 시작은 우발적이었다. 그에 대한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날, 속마음을 한바탕 휘갈겨 썼다 지워버리면 그나마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아 자신의 홈페이지 일기장에 써 내려간 글들.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순간적인 실수 혹은 시스템의 오류로, 썼다 지우려던 내용이 냉큼 화면에 뜨는 경우를.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커져버렸다. 어떤 형식으로든 스스로 나서서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그 일기는 내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터진 사건이 2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게 그녀도 믿어지지 않는다. 제발 하루 빨리 사건이 종결되기를 바랐지만 기 싸움이 시작되고, 진실 게임으로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그녀는 지금 구차한 변명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에너지를 낭비할 생각은 없다. ‘진실하지 못한 길은정’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 사실 관계를 알리고 싶을 뿐이다.

허위사실 유포는 무죄, 사생활 유포는 인정
2000년 9월, 편승엽은 고소인으로, 길은정은 피고인 자격으로 법정에 섰다. 그리고 1심에서 길은정은 편승엽이 내건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명예훼손죄’에 대해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다만, 재판과는 무관한 사생활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사실적시에 대한 명예훼손)이 인정되어 ‘1백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에 편승엽은 ‘1백만원의 벌금형’을 인정할 수 없어 항소했다.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명예훼손’에 대한 항소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말은, 편승엽이 더 이상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명예훼손’에 대한 무혐의 판결에는 항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길은정에게는 결국 7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현재 항소를 한 상태다.
“제가 항소를 한 것은 편승엽 씨와 계속 싸우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당초 검찰측의 구형이 ‘벌금 1백만원’이었을 만큼 미미하게 다뤄졌던 것이, 왜 ‘7개월 실형 선고’라는 형량으로 갑자기 커져버렸는지 이해하지 못할 뿐이에요. 이건 더 이상 편승엽 씨와의 문제가 아니라, 20년 동안 연예계 활동을 해온 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을 위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예요. 뜻하지 않게, 편승엽 씨 가족에게 상처를 입힌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잘못을 인정해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실형을 선고받아야 한다는 건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더욱 속상한 것은, 이번 판결에 대해 정확히 사실 전달을 한 언론이 없다는 거예요. 실형을 선고받았으니, ‘모든 잘못은 길은정에게 있다’라고 전했던 거죠. 그건 정말 아닌데….”
실형 선고를 받은 다음날, 편승엽은 이미 법정에서 모든 것이 밝혀졌으니 고소를 취하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길은정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이미 실형 선고가 내려졌기 때문에 판결의 효력이 생긴 상태였으니, 항소를 하지 않으면 그녀는 실형을 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공판은 10월 7일에 있다.
“저는 더 이상 편승엽 씨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 미움도, 분노도, 저한테 남아 있지 않죠. 그런데, 참…. 왜 2년이란 시간을 그렇게 무의미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겠어요. 2년이란 시간은 저한테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주었고, 그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면서 암이 재발되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속이 상해요.”

나에게 맞는 암 치료 요법은 ‘웃음’뿐
한 차례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담배를 피워도 되겠냐고 물었다.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실컷 하다 가려 작정했으니 이해해달라고 하면서. 그녀의 몸은 한마디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7년 전 직장암 선고를 받았을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8월 말, 다리가 너무 아파 X-선 검사를 했더니, 오른쪽 골반 전체에 암세포가 퍼져 온전한 뼈는 고작 3cm정도만 남아 있었다. 이미 그녀는 오른쪽 다리에 마비 증세가 생겨, 목발이 없으면 걸을 수가 없다. 그리고 골반 내에는 이미 암 덩어리로 가득 차 있어 손을 대면 불룩한 부분이 만져질 정도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나마 그림을 그려가며 몸 상태를 설명해준 덕분에, 병의 심각성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수술을 하면 열흘 안에 죽을 거예요, 아마.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수술인지 알고 나니, 차마 받을 수가 없더라고요. 하반신을 절단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항암치료도 이미 7년 전에 받아본 경험이 있어서 그 고통을 너무 잘 알잖아요. 남은 시간을 구역질 해대면서, 지독하게 고통스러워하면서 보내고 싶지가 않았어요. 의사는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이래요.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게 제 바람인데, 그러기 위해서 지금 제게 맞는 최고의 치료법은 ‘웃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이나 잘 웃는 아이였다. 게다가 방송생활을 20년 동안 해왔으니, 미소가 얼굴에 배어있는 사람이다. 암세포가 웃음의 횟수만큼 줄어든다면, 그는 아마 벌써 완쾌되었을 것이다. 늘 웃는 모습 때문에 ‘꾀병’이 아니냐는 웃지 못할 의심을 받곤 한다.
“너무 아플 때도, ‘나 정말 많이 아파’하면서 웃어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는데,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방법이에요. 웃는 순간만큼은 아픔을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엔도르핀이 몸 속에 가득 차면, 암세포도 왠지 기가 죽을 것 같거든요(웃음).”
웃음은,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을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이기도 하다. 주어진 시간을 늘 웃고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길은정. 그렇다면, 앞으로 그녀에게 한껏 웃음을 안겨줄 수 있는, 미래의 계획들은 무엇이 있을까.
2년 전에는 계획했던 것들이 많았다. <길은정과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록밴드 앨범은, 컴퓨터 음악이 아닌 순수한 음악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기획했던 앨범이다. 발매만 남겨둔 상태에서 재판으로 결국 세상에 내놓지 못한 그 앨범이, 본인이 혹 세상에 없을 때라도 나와주었으면 하고 그녀는 소망한다. 그리고 10년 전부터 구상해오고 준비해두었던 동요 음반이 언젠가 아이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고, 녹음작업을 완성해두고 재킷만 만들면 되는 오디오 북도 누군가의 손으로 완성되어 빛을 보게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콘서트만큼은 자신이 없다. 그건 남의 손에 의해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지금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연말특집을 ‘길은정의 콘서트’ 형식으로 꾸며보자고 하는데도 선뜻 반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녀는 이미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의사도 제 모습을 보고 놀라워해요. 놀랍도록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으니까요. 요즘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과거도 돌아보지 말고, 미래도 앞당겨 두려워하지 말자. 단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잘 보낼 것인가만 생각하자. 사실 저는 지금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사람은 어차피 모두 죽잖아요.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하늘에서 빨리 데려가 주었으면 하고 오히려 조심스럽게 기도하고 있는 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