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왕후의 생가
기본 주제방 2004/09/15 18:48   http://blog.azoomma.com/sun2835/159544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에 있는 명성황후의 생가.

소재지 경기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2

1973년 7월 10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다. 고종황제(1863~1907)의 비 명성황후 민씨(1851~1895)가 태어나서 8세까지 살던 집으로 1687년(숙종 13)에 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묘막(墓幕)으로 건립되었다

당시 건물로서 남아 있는 것은 안채 뿐인데 1975년과 1976년에 한번 중수하였다가 1996년에 다시 수리하면서 행랑와 사랑, 별당 등을 함께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 명성 황후(明成皇后/1851 - 1895)의 생애 조선 고종의 비, 16세 때 대원군의 부인 민씨의 추천으로 고종의 비가 되었다. 대원군이 역대의 세도 정치를 근절할 목적으로 가문이 외롭고 단출한 민씨 집안에서 왕비를 택하였으나, 1873년에 왕자 척(拓)을 낳은 후 명성황후의 친족이 정권을 잡으려 했으나 대원군이 이를 막기 위하여 궁녀 이씨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 하자 양자의 싸움에 명성황후는 드디어 대원군을 탄핵하고 고종으로 하여금 직접 정사를 돌보도록 한 후, 끝내는 대원군 일파를 모두 쫓고 나라의 문을 열어 일본과 수교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에 도움 을 청해 대원군을 청나라로 납치해 가게 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민씨 일족이 실각하자 다시 청나라를 끌어들여 개화당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김홍집 등의 친일파가 정권 을 잡게 되자 러시아 힘을 배경으로 세력을 펴 친일파의 세력을 물리치려 하다가 1895년 을 미 사변 때 일본 공사 미우라의 부하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1897년에 명성황후라는 시호가 내렸다.

명성 황후는 어떻게 살았을까
1851년 9월25일(양력 11월17일) 본관 여흥에서 여성부원군 민치록의 외동딸로 출생
1863년 12월13일 고종 즉위(조선 26대)
1866년 3월6일 왕비로 책봉(당시 15세)
1874년 2월8일 순종(척) 출산
1874년 11월5일 국왕 친정 선포(대원군 실각)
1882년 6월5일 임오군란
1882년 6월10일 명성황후, 장호원으로 피난
1882년 8월1일 명성황후 환궁
1884년 10월17일 갑신정변
1894년 1월10일 동학농민전쟁
1894년 6월23일 청일전쟁
1894년 6월25일 갑오경장
1895년 10월8일(양력) 명성 황후 시해(을미사변)
1897년 10월12일(양력) 왕비 민씨에게 명성 황후 시호 하사
1897년 11월22일(양력) 명성 황후 국장 거행, 양주(홍릉)로 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