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일농장 장독대
여자의 공간, 어머니 장독대
나도 이제 나이가 먹어가나 보다. 그동안 무심했던 것들에게 마음이 쓰이고 눈길이 가니 말이다. 그중에서 요즘 가장 마음이 쓰이는 건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고추장 된장이다.
반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양념, 그 집안의 맛을 좌우하는 장이 프라스틱 통에 담겨 햇살 없는 냉장고 구석에서 있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불량주부다. 결혼해서 20여 년간은 양가 어머니께서 장이며 김치 반찬 기름 하다못해 참깨까지 다 볶아주셔서 내손으로 할 일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반찬을 먹으면 다 맛있다고 했다. 시골 장독대에서 잘 익은 고추장 된장 간장을 쓰고 소금도 장독 안에서 몇 년을 묵어 간수가 다 빠진 것을 썼기 때문에 고추장도 된장도 간장도 참 맛있었다. 양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잃음과 동시에 우리는 어머니 맛까지 잃게 되었다. 무언가 반찬을 해놓으면 밋밋한 맛...깔끔하고 매콤하고 구수한 맛이 우리 집 식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공장표 장이 식탁에 올라오면서 부터 맛이 밍밍해지고 하여튼 우리는 그리운 어머니 맛을 잃고 살아가게 되었다.
얼마 전 어머니 손길을 잃은 장독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결혼 30년이 지났는데도 그렇게 애잔하게 장독대를 바라본 적이 없었는데 자꾸 장독대에 눈이 갔다. 바가지와 수저를 들고 장독대로 된장을 푸러가시던 어머니 모습이 어른거리고 거기 어머니 미소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참 무심하게 오래 그 장독대를 바라보지 않았었다.
봉숭아 소담하게 피던 장독대, 금낭화 청사초롱처럼 피어나던 장독대..노란 골단초 개나리처럼 종종 피던 장독대, 여름이면 주먹 만 한 불두화가 피어 밤에도 환하던 어머니의 장독대 풍경이 아른거렸다. 아 어머니의 장독대를 다시 아름답게 꾸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공간, 여자의 마음을 풀어놓는 장독대를 만들고 싶어졌다.
역시 장은 햇살 좋은 우물가나 뒤란에서 햇살을 받으며 장독 안에서 발효되고 익어가야 제 맛이 났다. 그리고 그 장이 담긴 장독대를 우리어머니들은 얼마나 정성으로 보살폈는가?
장독대는 어머니의 장소였다. 어머니는 속상하신 일이 있으면 장독대로 가셔서 장독 하나하나를 반짝이게 닦으셨다. 장독위에 눈처럼 쏟아지던 불두화 꽃잎을 날리며 어머니는 장독대를 쓰다듬고 다독이면서 그 속내를 다독이셨다. 그리고 그 장독대는 어머니의 기도 장소였다. 남편이나 자식들의 건강, 자식들이 시험치를 때 어머니는 하얀 사발에 우물물을 담아 장독대에 올리시고 기원하셨다. 그 기원이 하늘에 닿고 달빛에 닿고 별빛에 닿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음력 오월 아들들이 가면 쑥이나 익모초를 뜯어다 돌확에 갈아 꼭 짜서 밤새 장독대에 올려놓으셨다. 밤새 별빛 빠지고 달빛 빠지고 이슬까지 빠진 그 초록 물을 더위 타지 말라고 아들들에게 먹이셨다. 그 쌉쌀하고 텁텁한 초록 물을 마시면 아들들은 금방 푸른 동맥이 힘차게 뛰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장독대에서 아들들을 건강하게 길러내셨다.
오갈 데 없는 이 맘 그리움만 젖어드네/어머니 살아생전 그 고생 외면하고 이제서 무덤앞에 통곡 하네/장독대 제단위에 정한수 떠 놓고서 정갈한 삼베적삼 흰머리 곱게 빗고 이 자식 잘 되라고 두 손 모아 빌어주시던 어머니, 어머니 그리워서 불러봅니다.
싸릿문 나오시며 잘 가라고 손 흔드시던/어머니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다시는 볼 수 없어 통곡 하네/장독대 제단위에 정한수 떠 놓고서 새벽 잠 설치시고 찬 이슬 맞으시며 이 자식 잘 되라고 두 손 모아 빌어주시던 어머니, 어머니 그리워서 불러봅니다. 어머니, 어머니 그리워서 불러봅니다
-가주 지중해-어머님 정한수
이 노래처럼 자식들이 어머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모습, 바로 장독대의 어머니시다. 이 장독대에는 가족의 생명이 푸르게 들어 있었다. 집안의 맛은 장맛이 죄우하듯 장독 안에서는 어머니의 손맛이 익어가고 발효되었다.
그래서 언제나 정갈하게 정성스럽게 장독대를 가꾸어 내셨다.
장독대는 놀이터였고 보물창고였다.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할 때 커다란 장독대에 숨어도 좋았다. 어머니는 장독이 하나라도 깨질세라 노심초사 하셨지만 아이들은 그 장독대에 웃음도 풀어놓았다. 쌀도 커다란 장독 안에 들어있었고 잡곡도 장독 안에서 부시럭거리며 들어있었다. 가을이면 지천으로 익은 홍시를 따서 넣어두면 한 겨울 꽁꽁 언 홍시를 꺼내 먹을 수 있었고 가을햇살에 잘 말린 취나물 고구마줄기 고사리 같은 묵나물도 장독에서 우리를 위해 알라딘 램프 같은 즐거움이 나오곤 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 한겨울 쌀독에 쌀이 떨어질 때면 바가지로 장독을 긁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득득...밑에 조금 남은 그 쌀을 푸기 위해 어머니는 얼굴이 발개지셨다. 밤새내린 눈이 장독뚜껑위에 소복하던 그 새벽, 어머니는 그게 흰 사발에 고봉으로 담긴 쌀밥이기를 바라지는 않으셨을까? 장독뚜껑위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두 손으로 긁어모아 손안에 한 아름 담고 그 찬 눈을 입에 넣으시며 어머니의 허기를 달래시지는 않으셨을까?
어머니는 그 장독대를 남겨두고 하늘로 가셨다. 어머니 떠나신 후 한동안, 장독 뚜껑을 열고 가만가만 장을 다독이신 어머니 손자국이 선명한 된장을 보며 숨을 고른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구불한 손가락이 화인처럼 찍한 장을 바닥까지 다 퍼다 먹었다. 어머니의 속살을 다 먹어버리고 지금은 빈 장독만 장독대에서 내 손길을 애잔하게 기다리고 있다.
“ 나 장독대 예쁘게 만들어야겠어, 당신이 도와줘” 이 말을 들은 남편의 눈빛이 빛났다. 드디어 아내의 손맛이 이 장독에서 발효되겠구나 생각이 든 모양이다.
아니 그동안 잃었던 어머니 손맛을 다시 보게 되는 기대를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자신 없다. 된장을 담그는 일, 고추장을 담그는 일, 그동안 직장 생활 한다고 무심했던 그 일을 한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조심조심 장독대를 가꾸어 나가려 한다. 어머니가 풀어놓으셨던 지혜를 , 어머니가 꿈꾸셨던 추억을, 그리고 여자의 아름다운 장소 장독대를 만들어 놓고 이제 어머니 나이쯤으로 달리는 한 여자의 마음을 발효시키고 익히려한다.
올 여름도 어머니가 남기신 장독대에는 주먹 봉숭아 붉게 피겠다.
봉숭아꽃과 잎을 따 백반을 넣고 콩콩 찧어 아주까리 잎을 따서 어린 딸의 손톱에
꽃물을 들여 주시던 그때처럼, 어린 손녀의 손톱에 발간 꽃물을 들여 주어야겠다.
어머니 그 환한 웃음, 꽃물로 새겨야겠다.(*)
어느 사보에 실린글